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시계만큼 시간의 흐름을 착각하게 만드는 장치가 또 있을까. 주기적으로 돌고 도는 바늘을 한참 바라보면, 시간도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오후 427분이 24시간마다 완벽하게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직선이 곡선으로 왜곡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계를 떠올린다. 삶의 시계는 이야기 안에서 직선으로 뻗은 철길처럼 펼쳐진다.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기에 반복되거나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시간과 관계들. 제각기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공통적으로 펼쳐지는 상실감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책 표지처럼 깊다.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즐겨본다. 보다,말하다,읽다시리즈로 추상적으로만 접하던 작가. TV를 통해 실물을 보니 호기심이 생긴다. 일단 목소리가 좋다는 이유 하나면 충분하다. 드라마 <킬미힐미>가 생각난다. 이런 목소리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어떤 글을 쓸까. 그의 소설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책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는 편이다. 표지를 관찰하고, 표지 안쪽의 작가 소개를 꼼꼼하게 읽는다. 본문을 읽듯 차례를 읽고 마지막 표지 뒤편까지 한 장 한 장 눈자국을 찍는다. 이번에는 뒤에 실린 작가의 말부터 본다. 편집자의 의도대로 재배치된 순서대로 읽고 싶지 않다. 작가가 교정을 보며 다시 읽어보았다는 발표 순서대로 7편을 읽는다.

다 읽고 나서는 작가의 말을 다시 읽는다. 그 어떤 작가도 스스로 쓴 작품에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글을 잘 분석하는 사람이다. 7편의 이야기는 상실이라는 기본 코드를 공통적으로 지닌 채 다양한 전개로 변주된다.

 

판타지적인 요소도, 추리 소설처럼 극적인 반전이 있는 요소가 곳곳에 펼쳐진다. 얼핏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은근히 다음이 궁금하다. 결말이 도무지 예측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에서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슈트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후배가, 최은지와 박인수에서는 주인공 아버지의 죽음이 잠시나마 등장한다. 아이를 찾습니다에서도 아버지의 관점에서 실종되었다 찾은 아이와 아내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일부러 표현하지 않아도 절로 풍기는 고독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p12, 오직 두 사람)’이 배어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어떤 말을 남에게 하고 살지요.(p38, 오직 두 사람)’ 소설이 다큐는 아니지만, 이 글들을 썼던 당시의 작가는 외로웠을 것 같다는 짐작을 감히 해본다.

 

묘하다. 마냥 슬픈 것도 아니고, 마냥 아픈 것도 아니고, 마냥 먹먹한 것도 아니고,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뒤엉켜서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아버지의 감정들이 그대로 내게 투영되어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이었다, 어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내 가족을 향했다, 언젠가 들었던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옮겨간다. 내게 아직 남아있을 관계의 앙금들이 선명하게 다시 떠오른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그것이 일상이 되었다.(p65, 아이를 찾습니다)’는 문장이 무섭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상황을 겪는 신의 장난처럼 풀리지 않은 관계들이 화석처럼 굳어져 무감각한 일상이 되어 버릴까봐.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드라마든 소설이든 열린 결말이나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 뒤에는 찜찜함이 따라온다. ‘그래서 그 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류의 동화 같은 끝맺음이 좋다. 밥을 먹고 나서 숭늉까지 마신 후의 개운함과 비슷한.

그런 걸 왜 좋아할까. 책을 덮고 나서 다시 한 번 내면을 들여다본다. 이미 알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동화 같은 엔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싶던 건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안간힘이었음을.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p269, 작가의 말)’ 애써 가리고 있던 위선이 한 꺼풀 벗겨진 기분이다. 그래도 마음 한켠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런 상실감을 깊이 느끼고 글로 표현한 사람이 세상 어딘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조금은 덜 외롭게 견뎌내며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읽는 내내 먹먹하고 답답하고 뭉클했지만 해피엔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후련하다. 슬픔을 슬픔으로 위로해주는, 누군가와 함께 실컷 울고 난 후에 느껴지는 따뜻한 개운함이었을까.

 

 

*p40,6째줄: 실을 요전까지 쓰다~ →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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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2년째다. 읽기만 하다가 쓰기가 더해지더니 독서모임에서 말하고 듣기까지 하고 있으니 드디어 초딩 국어 4종 세트를 완벽하게 갖춘 인간으로 거듭났다. 이런 시간들이 고통이던 때도 있었다. 빠르게 휘리릭 읽어재끼고 싶어도 느려터지기만 한 독서 속도에 얼마나 갑갑했던가. 갈 길은 까마득했다. 이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가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드문드문 찾아오던 그런 순간들이 마라토너에게 찾아온다는 데드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책 읽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은 편안하다. 계속 걸어가다 보니 길이 나왔다. 이제 세컨드 윈드로 들어선 걸까.

 

여전히 마음 한 구석 해결되지 않은 답이 있기는 했다. 내가 왜 책을 읽지? 책을 읽으며 시시때때로 질문을 던졌다. 작사가나 시인이 되고 싶어서? 뭔가 1% 부족하다. 반드시 그런 목적만은 아닌데. 그럼, ? ……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드디어 이 책에서 답을 찾았다.

 

서문의 첫 문장을 보고 선택한 책이다. ‘책을 펼쳐 들면 순식간에 나만 남습니다.(p5)’ 그 느낌이 뭔지 알 것 같아서. 홀로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알 것 같기에. 이 한 문장에 홀딱 반해서 주문했다.

평소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주로 세 가지이다. 서문을 읽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한 다음, 차례를 훑어보며 내 성향과 맞을까 짐작한다. 마지막으로 한겨레신문까지 추천해주면 대부분 낙점이다. 이동진 작가가 말한 세 가지 방법 중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일치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말한 방법은 책에서 3분의 2지점을 펼쳐서 읽는다는 것이다. 그 근거가 은근히 설득력이 있다. 대부분의 저자는 책의 3분의 2지점쯤 되면 힘이 빠지는데, 그 부분마저 훌륭하다면 나머지도 좋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에세이나 시는 편집 방법에 따라 순서를 뒤섞을 수 있으니 이 방법을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소설을 선택하기에는 타당한 방법으로 판단된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란 이름은 많이 들어봤고, 내 책장에는 김중혁과 함께 쓴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질문하는 책들이 꽂혀있다. 문제는 두 권 다 사놓기만 하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며, 나는 팟 캐스트가 도대체 뭐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른다는 거다. 어떤 분야에 대해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 거의 바닥상태라는 게 내가 가진 결정적인 단점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을 통해서 이동진의 세계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건, 저자가 만들어낸 지적인 세계, 그러니까 한 사람의 세계와 통째로 만나는 것입니다.(p79)’ 사는 무대가 다르기에 그와 내가 평생 만날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썩 괜찮은 세상을 알게 된 느낌이다.

 

17천 권의 책을 소유한 사람의 독서법이 담겨있다. 17천이란 숫자에 강한 의미를 부여한다. 물론 그가 이 많은 책들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17천 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각각의 책들을 선택하기 위해 17천 번의 생각을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은 생각이라는 도구를 통해 다듬어진다. 존재는 끝도 없이 깊어지거나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세공하는 것처럼 다듬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각도에서 몇 번을 커팅 하느냐에 따라 빛의 반사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생각이 섬세하게 다듬어진 사람은 세상이 뿜어내는 빛도 섬세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고통에도 민감하게 공감하며 반짝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고 마치 재미있는 책을 또 한 권 읽는 느낌을 줍니다.(p6)’ 대화뿐 아니라 책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저자와의 공통점을 찾으며 위안을 받았다. 나와는 다른 점도 많았다.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된 듯 신선했다.

 

<1>생각이라는 주제로 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유를 소개한다.

책을 읽는 이유를 정보를 얻기 위해, 있어 보이기 위해, 재미있으니까.’등 세 가지로 제시한다. 그가 말한 세 번째 이유가 바로 내가 찾은 답이다. 재미있다는 데, 뭐 다른 이유가 필요하단 말인가.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도 이유가 없듯이 책도 마찬가지인거다. 그냥 좋으니까, 재미있으니까 읽는 거다. 읽어지는 거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고 쿨한 답이다.

소설을 읽는 이유에 마음이 크게 움직인다.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장르였다.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한다 해도 어디까지나 이야기니까. 소설 속에 설정된 극단적인 상황과 인위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싫었다.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인 것만 같았다.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 그 한계를 좀 더 체계적이고도 집중적인 설정 속에서 인식하게 하고 고민을 숙고하게 만들죠.(p29)’, ‘직접적인 경험보다 간접적인 경험이 더 핵심을 보게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p30)’ 궁금해졌다. 인간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의 색깔이. 소설 몇 권을 거부감 없이 구입했다. 두근거렸다.

저자는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인간은 한 번 밖에 못 살기 때문, 언어를 예민하게 다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감한다. 읽은 책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말을 조심하게 되었으니까. ‘다르고 다름을 좀 더 민감하게 말하고, 비언어적 행동도 자세히 관찰한다. 사람의 감정은 의외로 작은 것에 흔들리고 상처받는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섬세해진다. 미묘한 공기의 흐름과 호흡의 차이점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위 고전에 대한 찜찜함을 가지고 있었다. 학창 시절 독서의 주된 대상은 교과서였기에, 개나 소나 다 아는 필수 고전 중 안 읽어본 책이 꽤 많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없습니다.(p36)’라는 저자의 말에서 상당한 위안을 받았다.

독서에서 정말 신비로운 순간은, 책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을 때 책과 나 사이 어디인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p80)’ 책에서 흘러나오는 기운과 책으로 향하는 내 마음이 만나는 그 적절한 지점에는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그 무엇을 공감대라 해석한다.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공감대의 균형이 잘 맞는 책을 만나는 순간, 가장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 것 같다.

 

<2>는 이다혜 작가와의 대화가 담겨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행복에 관하여 나눈 대화가 가장 인상적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고 빈도라고.(p141)’, ‘우리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이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거예요.(p142)’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집 근처 커피숍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한 느낌을 쓰는 일이 이제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엄청나게 돈을 버는 직업은 아니지만, 하루 한 번쯤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에 쓸 수 있는 시간과 커피 값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고 있음에 감사한다.

 

<3>에는 이동진의 추천도서 500권의 목록이 있다. 이 중 내가 읽은 책은 7권이고, 읽지는 않았지만 책장에 있는 책이 16권이니, 아직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 있을 책은 477권이다. 관점의 전환이 일어났나. 예전 같으면 나의 무지함에 괜히 주눅이 들어 마음이 쪼그라들었을 터이다. 이제는 그의 추천도서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의 생각과 내 생각이 겹쳐지는 책이 23권이고, 평소 관심을 갖지 않던 책이 477권이라는 것뿐이다. 그의 독서법에 의한 목록이니 다만 내게 맞는 책을 선택하는 데에 참고로 하면 될 것이다. 그 중 내가 선택한 책을 읽어간다면 477권이 빚어내던 생각의 차이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I have read, I'm reading, I haven't read’ 알라딘 인터넷 서점의 북플 북엔드에 적힌 글귀이다. 읽은 책이 있고, 읽고 있는 책이 있고, 읽을 책이 있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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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30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30 0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30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서 모은 책들이 몇 권인지 궁금해서 2년 전에 책을 세어 보는 작업을 시도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 세어보지 못하고 포기했어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어요. ^^;;

나비종 2017-07-01 04: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서 전 알라딘에서만 구입하니까 구매목록으로 대략만 압니다. 알라딘 중고에 판 것도 꽤 되는데. .^^;
 
서민적 정치 - 좌·우파를 넘어 서민파를 위한 발칙한 통찰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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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어릴 때 매일 빠짐없이 신문을 보긴 했다. ‘TV편성표띠별 오늘의 운세. 두 가지 코너가 신문을 통해 접하던 세상의 전부였다. 사실 세상이랄 것도 없었다. 오늘 텔레비전에서 무슨 프로그램을 하는 지, 12분의 1의 확률로 똑같은 행운을 갖게 되는 닭띠들의 운명을 확인하는 일로 세상을 알 수는 없었으니까. 그 때의 내게 정치라든지 경제라든지 사회 분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딴 세상의 일이었다. 인쇄되어 지면에 담긴 실제 세상은 박제된 글씨에 불과했다. ‘정보는 넘쳐 난다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사실이 된다.(p44)’ 보고 싶은 것만 보던 나의 세상은 매우 밋밋했고, 그 밖을 메우던 나머지 세상은 미지의 검은 대륙처럼 거대하고 멀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p65)’ 젊었을 때는 뭔가를 스스로 판단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하라면 하고, 가라면 가는 수동적인 인간은 판단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흔히 오르던 단골 주제는 정치였는데 나는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관심 분야에 대한 호불호가 워낙 극명하게 갈리는 성격이다. 좋아하는 분야는 끝까지 파고들었지만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한 상식은  최소한이라는 하한선이 전혀 없는 제로 상태였던 거다. 우리,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 맞니? 어떻게 이 사람을 모를 수가 있지? 친구의 핀잔에 속으로 항변했다. 모든 분야를 다 알 필요는 없잖아. 난 단지 정치에 관심이 없을 뿐이야. 플라톤이 했다는 말은 과거의 나를 향해 죽비를 내리친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p65)’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었던 것을.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p158)’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말했다고 한다. ‘의식이 존재를 배반한다.’던 홍세화 선생님의 말씀이 디졸브 된다. 몇 년 전에 들었는데도 아직까지 또렷하다. 강연장에서 그 말을 듣던 순간 조용하던 내 세상에 균열이 일어나는 듯했던 느낌도 생각난다. 2080의 사회에서 1090으로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를 이보다 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었다.

 

큰아이가 대학교 3학년이 되니 서서히 취업 걱정이 된다. 뱃속에 있을 때는 배 밖으로만 나오면 만사가 해결될 것 같더니. 이유식을 먹다가 내가 지은 밥에 어떤 변형을 가하지 않고도 식사가 가능해졌을 때, 이제는 되었다 싶더니.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다 될 줄 알았다. 무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이번이야말로 더 이상 할 걱정이 없다 했다. 어미에게 자식은 네버 엔딩 스토리인가. 오십이 다 되어가는 딸을 아직도 걱정하시는 우리 엄마를 보면 나 역시 예외는 아닐 것 같다.

청년 문제에 대한 내용이 가장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는 아나운서 면접에 지원하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변변치 않은 대학을 나오고 스펙도 없는 그녀의 합격 여부는 말도 꺼내보기 전에 이미 스캔되어 결정된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이런 것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p194)’ 책에서 언급된 상황이 내 아이의 일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서늘해진다.

 

저자의 글은 억지스럽지 않아서 좋다. 아직도 정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운 나 같은 사람에게도 부담가지 않게 사회를 알려준다. 묘하게 도발적인 면도 있다.  ‘상황이 이런데, 당신은 어쩔래?’ 라는 멘트를 간간이 은밀하게 날린다. 기생충을 향한 접근 방식에 신선한 매력을 느끼고, 글쓰기에 대한 경험담에 경계심이 풀렸던 걸까. 그래서 용기를 얻었나보다. 몇 년 전까지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일어났으니. 내가 정치에 관해 쓰인 책을 스스로 구입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고요하던 내 삶으로서는 분명 파격적인 사건이다.

 

설마 진짜 안 보게 될까 전날까지도 긴가민가했던, 어제 시행되었을 지도 모를 학업성취도평가도 폐지되었다.  ‘대선이 끝나면 정치 책을 읽는 일에는 시들해(p9)’ 질 거라는 그의 말이 내게는 틀린 말이 되어버렸다. 변화가 피부로 확 와 닿는 요즘, 정치에 더욱 관심이 가기 때문이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 결정할 수 있도록 힘을 행사하는 것, 이게 바로 정치의 힘(p177)’ 정치의 영향력에 관한 그의 정의가 명쾌하다.  ‘지구의 자원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는 충분하지만 소수의 탐욕을 위해서는 부족하다.’ 했다던 간디의 말이 생각난다. 판단하고 싶어졌다. 내 밖의 세상이라고 여겼던, 나를 담고 있는 이 세상을 좀 더 알고 싶어졌다.

 

 

p155, 밑에서 3째 줄: ~이회창 후보 김대중 후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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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청년 새끼 - 망가진 나라의 청년 생존썰
최서윤.이진송.김송희 지음 / 미래의창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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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편견이란 참 오만하다. 그것은 자연 그대로의 빛을 차단하는 선글라스와 같아서 하나의 단어나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가치관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다소 과격한 이야기를 상상했다. 제목에 버젓이 새끼라는 말이 등장하는 책은 흔하지 않으니까.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지금은 맨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이건 그냥 이야기다. 거기서 우리를 발견한다면 다행이겠다.(p7)’치열하게 고민하며 스스로의 삶을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이들. 마음 한 구석이 찡하다. 그대로의 삶이 반짝반짝 빛나보여서이다. 눈부신 햇살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뭉클함이랄까.

 

청년세대에 대하여 세 명의 청년이 적은 그들 자신의, 그들이 바라본 세상의 이야기이다. <먹고사니즘>, <정치>, <문화>, <연애>, <주거>등 다섯 분야로 나누어 이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서술한다.

 

<먹고사니즘>을 읽으며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 본 장면을 생각한다. 아나운서를 꿈꾸는 여주인공. 면접 장소에서 그녀에게는 어떤 질문도 주어지지 않는다. 면접관은 말한다. 남들 어학연수, 유학 다녀오는 그 시간에 당신은 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공백으로 비어있는 이력서를 펄럭이며 스펙을 위해 아무 것도 못한 그녀를 비난한다. “! 벌었는데요!”떨리는 음성을 애써 누르며 말하는 그녀. 계속 마음에 남는 대사이다. ‘그 한 줄 너머에는 긴 시간이 존재한다.(p45)’는 저자의 말과 겹쳐진다. 주인공이 내뱉은 그 짧은 문장 너머에는 지리하고도 치열한 시간들이 존재할 것이다. 드라마를 넘어 현실에 수없이 존재할 다큐가 생각나서 마음이 답답하다.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며 여유 있게 면접을 마친 또 다른 지원자, 번쩍이는 부모의 차를 타고 유유히 돌아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표정이 처연하다. 생존을 위해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구조적인 모순을 감추고 있는 사회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개인에게 냉정하고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댄다.

 

업무를 하다보면 조심스럽고 불편할 때가 있다. 예컨대 학생들에게 건강보험료 8만원 이하를 납부했다는 증명서가 필요하다는 말을 전할 때이다. 저자 대담에서 끊임없이 내 불행을 증명하거나, 쓸모를 입증해야만 어느 정도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할 수 있잖아요.(p26)’란 문장을 접하며, 몇 달 전을 떠올린다.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취지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자신이 얼마나 저소득층인지 명확하게 증명을 해야 참여할 수 있다. 취지는 좋지만 업무 담당자의 입장은 종종 난감하다.

 

어린 시절을 많이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는 <주거>이다. 방과 장거리 통학러, 집에 대한 저자의 경험담에 나의 10대와 20대를 떠올린다.

내방을 가져보는 게 소원이던 적이 있다. 여섯 식구가 살았던 집의 대부분은 단칸방이었다. 결혼 직전에는 방이 3개로까지 발전하지만, 부모님, 남동생, 세 자매의 공간으로 나뉘다보니 나만의 공간은 확보될 길이 없었다. 끝내 완벽한 내 방을 가져보지 못했다. 지금은 한 면에 책장이 있는 안방을 내 방화시키고 있지만, 이 역시 완벽한 내 공간은 아니다. ‘이 다음에 돈 많이 벌면에 해당하는 직업군이 아니라 영 글러먹은 꿈이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내 방에 대한 로망이 있다.

대학교 때는 통학을 했다. 집에서 시내버스, 시외버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내려 강의실까지 도착하는 데, 도보와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치면 두 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기숙사나 자취는 꿈도 꾸지 못했다. 500원의 백반 값을 아끼려 300원짜리 국수를 사먹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때, 나와 동갑이던 주인집 아들은 우리 집과 연결된 초인종을 자주 눌렀다. 자기 집 초인종이 버젓이 있는데도 굳이 우리 집 것을 누르는 그 녀석이 기분 나빴다. 여동생을 시켜 우리 집 초인종 누르지 마!”라 말하게 했다. 그 집이 진정한 우리 집이 아닌 것을, 그 모든 공간이 주인집의 소유인 것을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어린 나는 내가 거기 살고 있으므로 그 공간이 내 공간이라 착각했나보다. 그날 낮잠을 자던 잠결에, 주인집 아주머니가 우리 엄마에게 뭐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의 하극상을 따지셨던 것 같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만이 타인과 자신의 삶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p335)’더 많은 것을 가져보지 못한,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던 경험은 이 문장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구병모의방주로 오세요,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에서 그들만의 공간을 가졌던 집단이 생각나기도 한다.

 

<연애> 이야기에서는 불쑥 유성생식의 장점을 떠올린다. 부모가 같다 해도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유전자 조합으로 인하여 완벽하게 똑같은 아이는 단 한 명도 태어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의 연애도 그렇지 않을까. ‘사랑이라는 제목만 같을 뿐 나의 연애와 너의 연애는 제각기 다르다. 그리고 연애의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지금 연애 중이 아니라 격하게 공감하면서 읽지는 못했지만, 연애가 선택이라는 저자의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치> 이야기를 읽다 1인 출판사 최측의농간이 생각났다. 작년 2, 책을 보내준다는 이메일을 받고, ‘공짜로? 이 험악한 세상에 왜에? 제목도 어쩐지 수상해라며 한동안 의심의 눈초리를 품고 그 의도를 파악하고자 집요하게 메일을 주고받았던 적이 있다.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 벌기가 쉽지 않다면 마음대로나 해보자는 것이다.(p122)’ ‘최측의농간의 신동혁 대표는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은빛 물고기와 함께 동봉해온 그의 손 편지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이들만이 뿜어낼 수 있는 열정을 보았다. 그 후로 여림의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과 허만하의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를 구입했다.

 

<문화> 이야기에서는 나를 돌아보고, 미래를 상상해본다.

낯선 눈으로 자신과 일상을 돌아보게 하고, 낯선 것들과 부딪히며 삶의 실감을 느끼게 하는 점이 여행의 매력이라고 의견이 모였다.(p187)’혼자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들썩인다.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거기에는 어떤 사고방식이 내포돼 있는지 답하다보면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p194)’나란 인간에 대하여 가끔 생각하는데, 이전에 알던 모습과 다른 면을 발견할 때가 있다. 상금에 관계없이 글짓기대회에서 상을 타고 좋아라했던 때를 생각하면, 의외로 명예를 좋아하는 인간인가 싶다.

자기를 서사화하는 과정은 스스로의 아픔과 슬픔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도록 돕는다.(p206)’여러 책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다. 볼 때마다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리뷰에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섞어내는 것도 서사화라 주장해본다. 남의 사적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품고 내 이야기를 읽는 누군가는 공감을 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에 꿋꿋하게 내 이야기를 담는다. 책에 담긴 저자들의 이야기에 자주 공감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현재를 둘러보거나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3종 세트를 모두 돌아보게 한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했고, 청년 시절을 떠올렸으며, 현재의 나를 바라보고 앞으로의 나도 상상해보았으니까.

삶은 결국 수많은 서사들의 연속이다. 똑같은 삶은 없지만 공명할 수 있는 삶은 있다. 우리는 글이나 그림, 음악이나 영화 등을 통해 다양한 서사들을 접한다. 20대의 서사 앞에서 나는 단지 구경꾼의 역할에 지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 세대로부터 20년을 넘어 50대에 접어들기 직전이기에, 서서히 분리되는 마법의 고리처럼 그들과의 접점이 거의 없을 줄 알았다.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세대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20대든, 30대 혹은 40대든 삶의 이야기는 인간이라는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시작되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공감의 폭은 나이차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사람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그 자체로 살아내는 것이고, 살아지는 것이므로.

 

*p318, 밑에서 2째 줄 : 모르는 마주치는 게 싫어서... 문맥이 어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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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삶을 서사화하는 기본 과정이 일기입니다. 어렸을 때 일기를 꾸준히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른이 돼서도 일기를 계속 씁니다. 그리고 일기 외에 다른 글도 잘 쓰는 것 같습니다. ^^

나비종 2017-06-16 16:43   좋아요 0 | URL
중학교 때까지는 전시용 벼락치기 소설 일기를 썼는데요, 고등학교 때부터는 자발적으로 쓰게 되더군요. 중간에 끊긴 적도 있지만, 생각해보니 어떤 형태로든 꾸준하게 기록을 적어왔네요. 알라디너가 되어 다이어리를 득템한 이후로는 위클리에 핵심 단어만 적는 기록을 써오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해도 신기하게 그날이 기억나더라구요. 서사화의 기본 과정이 일기라는 말씀에 격하게 동의합니다ㅎㅎ
 
제후의 선택 - 제17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70
김태호 지음, 노인경 그림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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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바라본 세상의 대부분은 평범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잔잔한 바다처럼 평온하고 아름다운 빛깔이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상은 바다라기보다 바다를 그리워하는 갯벌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치열한 생명력을 뿜어내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차라리 그런 모습에 가까웠다.

 

책에 실린 9편의 단편에서 갯벌을 연상한다. 멀리서 바라다보면 그저 질척거리는 공간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꿈틀거리는 생명들을 무수히 안고 있는 공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수시로 파도가 덮치는 절박한 세상을 견뎌야 하는 존재들. 절반 이상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의 모습은 종종 아이들과 겹쳐진다. 어린이문학상을 심사한 작가 김지은의 말처럼 이 시대 어린이가 겪는 현실은 동물의 처지와 닮았다.(p168)’

 

독특한 시선을 가진 작가이다. <토끼전>, <손톱 먹은 쥐>와 같은 동화나 민담을 절묘하게 접목시켜 현실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을 묘사한다. 어른들이 이끄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폭력 앞에 내몰린다. ‘아이의 손가락 끝은 모두 빨갛게 멍울이 져 있었다.(제후의 선택, p46)’자신의 손톱을 뜯어 쥐에게 먹이며 가짜 나를 만들어낸 제후. 아이가 선택한 행동에 덜컹 가슴이 내려앉는다. 선택지는 첨예하게 좁다. ‘넌 먹어야 살고, 엄마는 굶어야 살았던 거야. 아빠는 죽을 것처럼 일해야 살았던 거고. 각자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던 거지.(구멍 난 손, p133)’살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이 스스로 할퀴는 것밖에 없는 아이들이 먹먹하다.

 

작가의 시선은 아이들뿐 아니라 동물이나 꽃,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에게 닿는다. 의인화된 거북이, 고양이, , 개와 모기에게까지 그들의 처지를 항변할 기회를 부여한다. 그들 앞에서 지배자인양 행동하는 인간의 오만함은 자연의 역습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무모하다. ‘우리에겐 적이 없어요.(나리꽃은 지지 않는다, p141)’라 말하는 꽃을 무참히 꺾어버리는 대장의 행동에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을 본다. 자정 작용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강물, 점점 설 곳을 잃어가는 북극곰의 눈물, 서서히 멈추어가는 거대한 심층수의 흐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두렵다.

 

2의 지구, 화성을 향한 프로젝트가 ‘NASA’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라고 한다. 우주 공간 어딘가에 또 다른 생명체가 숨 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은 분명 두근거리는 설렘이다. 하지만 지적 호기심을 떠나 프로젝트를 향한 천문학적인 비용과 에너지 소모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나는 우주 개발을 반대한다. 지구온난화, 환경오염으로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엉망이 되어 가는데, 그런 분야에 시선을 집중한다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훌륭한 과학으로 지구를 구하지 못하고 왜 떠나려 합니까?(꽃지뢰, p157)’작가는 눈부신 과학적 성취가 지닌 맹점을 외계인인 아토인의 말을 통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지하게 숙고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어린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탈출하고 자신을 지키기 시작했다.(심사평, p171)’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가려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안쓰러움을 넘어 삶을 이끌어내는 의지가 있다. 자동차에 치인 고양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동생 모기를 온기 있는 공간으로 옮겨 살게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어린 형의 모습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본다. 아이들이 건네는 작고 따뜻한 불씨가 있어 세상은, 아직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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