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청미래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스노볼의 눈처럼 쏟아지는 별밤을 구경해야지. 몽골의 밤하늘이 그렇게 장관이라던데. 인터넷 사진들 말고 눈으로 사진을 찍는 풍경을 꿈꾼다. 퇴직 이후 스스로 선물하는 이벤트를 상상할 때마다 세렝게티를 누비는 야생마라도 될 듯 설렜다. 체력을 키워야 하니 가끔 등산이라도 가야겠어. 순식간에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를 다녀올 때면 찌든 피곤도 가벼워졌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인생은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는 일이 닥친다. 순간적으로 발생했다기보다 서서히 진행되던 과정이 결과를 드러냈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리라. 작년 가을부터 슬금슬금 무릎이 삐그덕거린다. 동네 병원에서 물리 치료와 주사를 몇 번 맞고 그럭저럭 잊은 듯 지내온다. 드디어 임계점에 도달한 걸까.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욱신거리는 통증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금 큰 정형외과를 방문한다. MRI 사진을 찍고 3차 대학병원의 상담까지 받는다. 양쪽 슬개골 중앙 부분의 연골이 모두 닳아있다는 현실을 마주한다.

뼈다귀의 선천적 기형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있어야 할 부분이 편평하여 둥그스름한 무릎뼈 가운데 부위의 마찰이 지속된 결과라나. 젊었을 때는 근육의 힘으로 지탱하다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존재감을 드러낸 듯하다. 퇴행성 관절염은 노화가 데려오는 인지상정의 현상이다. 문제는 인공관절을 하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이다.

 

밭일 하셨어요?” 벌써 무릎이 아프다는 말에 친한 지인이 농담을 건넨다. “제조사에 AS 신청해야겠네.” 남편이 농담으로 위로한다. “내일 가서 컴플레인 넣을까.” “..? 50년 쓰고 컴플레인이라뇨, 고객님..” 큰 딸의 단톡방 멘트다. 그래, 반백 년 넘게 사용했으면 많이 사용한 거지. 제각기 가벼운 농담으로 건네는 위로들로 잠시 스노볼 속 눈인 양 마음이 들썩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선고라도 받은 듯 우울감이 마음 전체를 잠식한다.

병원에서 관절염의 근본적 원인 치료제와 골관절염에 좋은 영양제 6개월 치를 준다. 쭈그려 앉기, 양반다리 금지. 10배 정도의 충격을 감당해야 한다니 계단 이용도 자제한다. 한 층을 오르내릴 때도 엘리베이터를 탄다. 학교의 것은 장애인용이라 엄청 느리다. 게다가 틈새를 노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는 녀석들로 인해 더욱 느려터진다. 기다리다 속도 터진다. 마음으로 몇 번이나 왕복하며 하염없이 기다리고또기다리고다시기다린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니 업무기동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일도 하기 싫고 근육을 키우라는 운동도 하기 싫고 책도 읽기 싫고 뭐든 하기 싫어진다. ‘철학의 위안은 개뿔. 지금이 고고한 형이상학을 논할 때인가? 재생도 되지 않는다는 연골이 무로 돌아간 이 마당에? 형이하학으로 둘러싸인 무연골인의 감성은 온통 삐죽투성이다. 독서 모임만 아니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책을 기대 없이 펼친다.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 등 학창 시절 교과서를 한창 누비며 이름깨나 날리던 철학자들이 등장하지만, 내용은 생소하다. 요약본의 업적만 가물가물 기억나는 정도다. 철학에 문외한인 나는 그들의 철학서에 제대로 접근한 경험이 없다.

철학의 위안위안에 초점을 맞추어 철학자 6명의 사상을 정리한 에세이이다. 건조하고 심오하리라는 편견이 앞섰기에 설마 철학책이 지금의 나를 위로해줄 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저자의 깔끔한 서술과 각기 다른 관점에서 철학자들이 건네는 위로에 마음이 차츰 정돈된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의 평가와 내 실제 사이의 간극이 어느 만큼인지 생각해보라고 한다.

에피쿠로스는 행복한 삶을 위한 비물질적 요소를 강조한다.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켜봐 줄 누군가의 우정과 자유와 사색을 둘러본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들이 두려워하는 것만큼은 아니라는 세네카의 말에 울컥한다. 어떤 사건들을 바꿀 만한 힘은 없더라도, 사건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자유는 주어진다는 말에 큰 위안을 받는다.

신을 죽인 인간으로만 알고 있던 니체에게서 의외의 따뜻한 촌철살인의 관점을 발견한다. 완성된 삶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 어려움에 당혹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으로부터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일구지 못하는 사실에 당혹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든다.

 

자기 연민에 빠져있던 나는 몽테뉴를 지나면서 이성적 인간 모드가 된다. 학문과 지혜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 평이한 글을 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창작은 인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서열이 높다는 말을 깊이 담는다.

사실 여러 책과 화려한 인물들의 말을 인용하는 글을 볼 때마다 내 지식의 초라함을 내려다보곤 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닌 내 생각만으로 글을 구성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주눅이 들었다. 우리 자신에게서 더 위대한 통찰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몽테뉴의 말에 힘을 얻는다. 내가 쓰는 문장들은 내가 최초이므로 당당히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니 뿌듯함이 화하게 번진다.

쇼펜하우어는 생에 대한 의지로 이성에게 눈이 멀었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언급한다. 세상만사 다 잿빛일 것 같은 철학자가 상심한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가 뜻밖이다.

이 많은 분량이 머릿속에서 나온 창작이라니! e북 쿠폰으로 구매한 <수상록>의 두께에 압도당했던 나에게 니체의 사상은 희망을 준다. 알랭 드 보통은 이와 관련하여 빽빽한 수정의 흔적들이 보이는 <수상록> 원고 사진을 싣는다. 책이 태어나기까지 치러야 했던 수많은 첨삭과 퇴고를 발견해야 한다는 문장을 곁들인다. 작가를 희망하는 사람은 10여 년의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니체의 문장은 도전 의지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토닥토닥 책이 건네는 위로는 마음을 덮는 이불인가. 세월을 거슬러 온 말들이 나를 위로한다. 위로의 방식 역시 제각각이다. 이 책을 읽으며 신문지를 떠올린다. 스스로의 온기로 몸을 데우는 셈이지만 노숙자에게 신문지는 건조하면서 따뜻한 이불로 더없이 뭉클한 존재 아닌가.

알랭 드 보통의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불안한 존재들을 위해 6인의 철학자와 이들의 생각을 엮은 작가. 담담한 위로는 지금의 나에게 더없이 적절한 방식이었다.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앞으로 해야 할 행동을 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니까.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고통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기로 한다. 잃어버린 관절 말고 얻은 것과 얻을 것을 헤아린다. 계단이 없는 곳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장애인의 어려움을 깨닫는 시간을 갖는다. 나와 함께 먼 길을 돌아 걸어주는 동료의 마음을 본다. 내 몸을 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치킨을 통해 골격 구조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인간과의 유사성에 놀라는 학습자로 빙의한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근육운동이다. 내 안에 있어야 하는 줄도 모르던 대퇴사두근과 빗내측광근을 키울 기회를 얻었으니. 세렝게티 초원을 누비지는 못할지라도 근육질녀가 되는 미래가 온다면 몽골의 별밤이 몽골몽골 피어오르는 날도 가능하지 않을까.

 

 

p14, 1째줄: 불안해해거나 불안해하거나

p14, 2째줄: 내비치치 내비치지

p86, 밑에서 7째줄: 상활 상황

p126, 마지막줄: 받을∨∨것이고 받을것이고

p284, 6째줄: 표현했다)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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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5-29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육운동 꾸준히 하셔서 몽골 초원의 별밤은 꼭 보러가셔야죠!
응원하겠습니다.
염세주의 철학자들에게서도 위안을 받으셨다니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나비종 2023-05-29 17:2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다리 펴기 운동하면서 감격 중입니다.
보다 많은 내용이 펼쳐져 있지만 다리 병자의 눈에는 온통 다리 병자와 연관된 문장만 눈에 쏙쏙 들어오던 지라. 실제로 읽어보시면 저의 리뷰와 느낌이 많이 다를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