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들이 쏟아지고 있다.

관심 저자들의 신작 알림메일이 속속 도착했다.

문젠 돈과 시간.... 그리고 나이가 드니 체력도 문제가 된다.

다음달 초엔 하루키의 신작도 번역되어 나온다.

작고한 움베르토 에코가 남긴 마지막 소설도 내달이면 출간된다고 예고돼 있다.

 

아침에 알라딘이 예정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도 먹통이자 금단현상마냥 몇번씩 새로고침을 눌러제끼는 나를 보는 씁쓸함...

절판된 책 중고책을 주문했고, 몇권의 책들을 구입할까 망설이며 오전내내 서성였다. 미쳤음...

 

신작들(한겨레의 책과 삶에 소개된 좀 된 책들도 있고), 이 정도만 하겠다.

 

이언 매큐언의 [넛셀]은 '가장 파격적인 햄릿의 재해석'이라는 문구를 앞세우고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태아-햄릿, 가장 무력한 상태에서 지켜봐야 할 어떤 절대절명의 상황.

그동안 전문직의 윤리적 고뇌를 그려왔던 작가가 이번에는 상상력을 몰아부치며 쓴 소설이라고 하니 완전 기대.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은 쇼스타코비치 이야기이다. 

스탈린 시대 예술가의 존재론적 고뇌. 

죽느냐 사느냐, 두 종류의 작곡가만 있는 세계. "겁에 질린 채 살아 있는 작곡가들과, 죽은 작곡가들." (75)

 

"왜 제1주제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친 철강 노동자가 휘파람을 불지 않는거요?" (83)

 

아, ㅅㅂ, 소비에트 ㅈ까라 그래

.................... 대학시절 책으로 읽었던 그 혁명의 시대는 이제 아픔으로 닫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인류가 진보를 향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해온 역사를 폄훼할 수 없다.

혁명 이후 혁명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는 추악해져만 갔다.

레닌까지는 괜찮아, ...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글에서 봤던가, 레닌이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산 자들의 목숨에 대해 말했던 것을.

굳이 옮기지 않겠다.

그 거대한 수용소로서 소비에트는 어쩔 건가.

인류는 또한번 실패했다.

레닌이 말했다, ""예술은 인민의 것이다." ...................................................

예술은 누구의 것인가? 쇼스타코비치를 통해 반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존 윌리엄스의 [아우구스투스]를 읽을 때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실존 인물, 그것도 꽤나 유명한 인물을 내세웠을 때는 전기나 평전을 읽지 않고 소설로 읽을 때는 작가의 해석한 그 인물의 뭔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줄리안 반스의 소설을 에세이소설이라고 칭한다.

절반쯤 읽고 있는데 반스의 최고작.... 운운은 지나친거 같다.

왜 이렇게 '그'라는 3인칭 대명사를 많이 쓰는지..

스탈린 체제하에서 천재적 작곡가가 겪어야 할 '공포와 수치'.

얼굴에 살이 살짝 붙은 존 레논같은 얼굴의 소심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자신과 가족도 지키고 싶었고, 그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음악가로서의 창조적 열망은 늘 그 공포를 뚫고 어김없이 튀어나오고 만다. 아, 문제적 인간들이란... 

호방한 영웅이 아니라 공포와 수치속에서 모멸감을 견디며 자신과 주위를 지키는 소심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했다.

'공포와 수치'는 문학수의 표현이다.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정보를 찾다가 문학수의 [더클래식] 3권을 찾아봤는데, 문학수의 정보에 [시대의 소음]에서 다뤄지는 에피소드들이 겹친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쇼스타코비치가 셰익스피어를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문제작에는 <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이 있다.

오래도록 무대에 올려져왔고 수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던 작품이 단 한 공연, 스탈린이 관람하다 중도에 나가버린 그 사건 후, ....... 당 공식 기관지가 비판적 사설을 실었다면 그건 단순히 한 작품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음악가의 존재 자체에 대한 안위의 여부가 되는 상황.

우리도 알잖아.

 

어쨌든 쇼스타코비치의 셰익스피어 사랑.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66번

 

이 모든 것에 지쳐 휴식 같은 죽음을 원하노라......

 

새로 번역된 A.C. 브래들리의 [셰익스피어 비극론].

19세기 저자의 고전적인 성격비평론.

 4대비극을 주인공의 성격 분석을 통해 비극을 해부한다는 오래된 저서인데 이미 이대석 교수가 80년대에 번역된 바 있다.

성격비평의 고전중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모양인데 이번에 나온 책은.... 역자들이... 믿을 수 있을지...

이대석 교수의 셰익스피어 연구서들도 함께 봐야 할 듯하다.

 

쇼스타코비치도 읽는 김에 소련에 대한 '목소리 소설' [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소비에트쿠스의 최후]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신작들 중 우리 저자들의 책은... 흥미가 당기는 게 없어서, .. 그 중 김원우의 [운미회상록]은 구한말 실존 인물 운미 민영익을 통해 극과 극으로 치달은 그의 운명과 근세조선의 운명을 겹쳐 놓았다. 우리 운명이 몰락으로 치달았던 때의 모든 것을 작가가 담지 않았을까 기대해본다.

정조와 정조이후도 그런 관점에서 흥미롭다. 르네상스 군주로 여기는 정조. 정조의 죽음 후 조선은 왜 그렇게 빠르게 몰락으로 미끄러져 갈 수 있었던가, 정조가 뿌린 씨에서 세도정치가 꽃피게 될 줄이야.. 역사는 늘 현재에 비쳐진 거울이다.  

 

 

 

 

 

 

 

 

 

 

 

 

 

 

 

 

줄리안 반스의 소설도, 이언 매큐언의 소설도 분량이 많지 않은 편. 3백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한 작가가 몇년, 심하게는 수십년 결려 한 작품을 발표하는 건데 분량도 중요한 거 아닌가.

요즘 우리 기준으로 4백 페이지 넘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장르소설 작가들 뿐인 듯 싶다.

어리석고 허세스럽게도 나는 여전히 겨울 아랫목에서 뒹굴며 두꺼운 소설책에 빠져 읽던 그 시절의 나를 언제나 그리워한다.

어렸다고 세상 평안하고 안락하지는 않았었지만 그때처럼 이야기 좋아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페이지 넘기는 게 아까울 정도로 흥미로우며 두~~꺼운 소설 내놓으란 말이다, 작가들이여.

 

왕은철의 책도 흥미로운 게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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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은 몇년 전부터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열심히 써온 글들을 때가 되면 책으로 묶고 책으로 엮는 와중에도 글을 쓰고, 다시 어느 정도 모아지면 다시 책으로 묶고... 생활이다.

 

어제 받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나도 연출하고 있을 장면들(아마도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경험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지라 낄낄거리며 웃기도 하면서 아이고, 왜 이러고 살까(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함) 한숨 쉬기도 하고, 여튼 출발은 좋다. 

이번 책은 책 표지도 마음에 들고, 제목은.... 금정연은 한번도 자신이 책 제목을 지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제목짓기에 잼병인 거다,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이라는 제목에는 질투심도 느껴진다.

'멋진' 보다는 '실패를 모르는'에 방점이 찍혀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마도 책을 읽는 누군가를 쓰러넘어뜨릴만큼 꽉차 있는 문장들의 향연.

짧은 글안에 글을 쓰도록 만든 한 문장을 고르고, 그 한문장의 의미에서 확장되거나 수렴되는 다른 몇권의 책들이나 문장들이 인용돼있다. 과연 하루에도 몇번씩 책상자들을 받아들고 책을 살피고 읽어왔을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부 삶과 문장 사이에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나는 실패한다

 

                                          

1부 '눈을 감고도 쓸 수 있는 소설의 첫문장'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룬다.

 

오래전부터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 

 

어마무시하게 방대한 그 소설의 첫문장은 바로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여기에는 싫어한다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3권도 잠깐 나온다. 

나올만한 에피소드가 실려 있으니까. 싫어해도 등장시킨 듯하다. 낄낄

나의 [잃어버린 시간]은 1권 스완네 집쪽으로.. 가다가 도착하지 못하고 저 민음사판으로 분권된 2권 2/3 지점 어디쯤에서 멈춰서버렸는데,

여기서 다시 이 문장들을 만나니 다시 스완네 집쪽으로 가야 할 듯 싶다.

 

마들렌과 차를 먹는 그 문제적 장면에 이어지는 문장들.

 

이제야 우리들의 꽃이란 꽃은 모조리, 스완 씨의 정원의 꽃이란 꽃은 모조리, 비본 내의 수련화 마을의 선량한 사람들과 그들의 조촐한 집들과 성당과 온 콩브레와 그 근방, 그러한 모든 것이 형태를 갖추고 뿌리를 내려, 마을과 정원과 더불어 나의 찻잔에서 나왔다.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에서도,

 

 

만약 지금도 다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뒤척이기라도 하면 그 책들은 묻혀버린 날들을 간직한 유일한 달력들로 다가오고, 그 페이지들에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저택과 연못 들이 반사되어 보이는 것을 기대하게 되는것이다."

 

문장을, 책을 다시 읽게 하는 힘.

다시 프루스트를 꺼내와야 할 것 같다. ....

 

 

   

 

 

 

 

 

 

 

 

 

 

 

 

 

 

 

 

 

 

 

 

 

 

 

 

 

 

 

소심하리만큼 얌전한 제목과 표지를 가진 김정선의 [소설의 첫문장 : 다시 사는 삶을 위하여]와 함께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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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5-3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의 책들은 사두기만 하고
절대 읽지 않게 되네요 ㅠㅠ

포스트잇 2017-05-31 18:12   좋아요 0 | URL
그렇죠..저렇게 졸음을 번쩍 깨울 문장은 긴 독서끝에 나오는거라서 ㅎㅎ 다리를 다쳐 꼼짝 못할때나 ...어디 갇혀 별달리 할일이 없고 옆에 있는거라곤 ‘잃어버린 시간‘밖에 없다면 가능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ㅎ

oren 2017-05-3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부턴가 저도 프루스트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오래도록 두고 두고 단단히 벼르고 난 뒤에 만나야만 끝장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요. 저는 요즘 ‘오래도록 요리조리 피해 왔던 셰익스피어‘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답니다. 최종철 번역의 <민음사판 전집 시리즈>에 실린 16작품은 어느새 다 읽었네요. 언제 완간이 되어 나올지도 모르는 나머지 ‘출간 예정 전집 시리즈‘를 마냥 기다리는 것도 지칠 듯하여, 오늘은 퇴근길에 중고서점에 들러 아직 못 읽은 다른 작품을 몇 권 싼 값에 건져왔네요. 헤럴드 블룸에 따르면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가 ‘닮은 점‘도 있다고 하더군요.

* * *

성적 질투심을 극화시키는 데 뛰어난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

니체는 가장 햄릿적인 진술의 하나로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 말을 찾아 내면 그것은 이미 우리 마음 속에서 죽어 있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래서 말하는 행위에는 일종의 경멸감이 들어 있다. 프루스트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이 경멸감에서 자유로웠다. 주요 인물들은 프루스트의 관대함을 나타낸다. 이기적 에고이즘은 셰익스피어만큼이나 프루스트의 성적인 질투심으로 표출하는 강한 관심이다.

감히 말하건대, 소설을 읽으면 질투가 완화된다. 그 가운데 성적 질투심이 가장 독성이 강하다. 이런 성적 질투심을 극화시키는 데 뛰어난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였다. 따라서 소설이란 ‘성적 질투심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고 축소해 볼 수 있다.

포스트잇 2017-05-31 21:43   좋아요 1 | URL
늘 부지런히,그리고 참 치열하고 치밀한 독서를 하시네요. 벌써 셰익스피어도 다 읽으셨네요.ㅎㅎ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라.. 흥미로운 관계네요. 전 가끔 셰익스피어가 구사하는 저주의 말들에 깜짝깜짝 놀랍니다.저주용례사전을 만들고 싶을만큼요.ㅎㅎ
프루스트는 산맥이라 무턱대고 올라가다간 도중에 내려오기 쉽상일듯요. 저도 가다 멈춘지 꽤 됩니다ㅠ 블룸의관점도 재밌네요. 제가 읽다만 지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어런 화자 마르셀의 눈에 비친 어른 스완의 사랑은 사랑의 환희와 질투와 의심의 극단을 진동하는데요...그 부분 읽다가 제가 지쳐버렸답니다. 다시 읽을땐 기호 해독하듯, 수수께끼 찾듯 블룸의 주제를 참고 삼아 ‘시간‘을 읽어야겠습니다.

포스트잇 2017-05-31 22:07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면 ‘시간‘은 어린 마르셀이 잠자기전 엄마의 잠자리 키스를 기다리며 엄마를 늦게까지 붙잡고 있는 손님들을 질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요 ㅎㅎ
 

이런 짓 안하려했다.

가지고 있는 책도 못읽는 처지에(이런 류의 엄살 정말 싫다..지 사정이지, 왜 징징거리는건지.) 새로나오는 책을 날마다 들여다보며 침 질질 흘린다.

새로나온 책,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하는데 분에 넘치는 돈을 쓰고 있다, 노인연금도 일반연금도 받으려면 아직도, 아직도 멀었는데 ㅅㅂ 알량하게 가지고 있는 돈으로 책에 펑펑(내 수준에는 펑펑쓰는 거나 마찬가지ㅠ) 쓰고 있는데, 아, 이런,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새책 순례를 통해 또 갖고 싶은 책이 생기고 말았다.

 

금정연의 [실패를 모르는 문장들].

금정연과 정지돈의 [문학의 기쁨]도 다 읽지 못했는데 그 사이 금정연의 새책이 나왔다.

그가 말하길, 이책은 문장론이나 문장 잘 쓰는 법을 담고 있는 책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서평가로서, 매문가로서,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문장들에 대해 얘기한다고 한다.

생각을 몰고 오는 문장들. 금정연의 경우는 어떠한지 들여다보고 싶고, 나 또한 그런 문장들을 고를 수 있지 않을까.

 

 

 

 

 

 

 

 

 

 

 

 

 

 

 

 

 

아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생전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카이사르에 대한 소설을 계획하고 있었고 그 꿈은 오랜 소망이었다고 한다. 마르케스만이 아니라 어떤 영화감독도 카이사르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역사속 인물인 카이사르는 왠지 신화속 영웅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콜린 매컬로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지 가늠할 수 없지만 평들이 좋아서 언젠가는 읽어야지 벼르고만 있었는데 [카이사르의 여자들]에 이어 어느새 [카이사르]까지 나와버렸다.

이쯤되면 [카이사르의 여자들]을 읽어야 할지 판단이 안선다.

예약판매중이다.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 (6월 19일 예정)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도 카이사르 편 두권은 사두었는데 읽지 못하고 있다.

 

그런 꿈들이 있다. 유치할 수도 있지만 평생 빠가 될 수 있는 한 사람 혹은 한 인물을 갖는 것.

역사속 인물이든, 신화속 인물이든, 소설 속 인물이든, 누구든.

미친 듯 빠져들어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안달하는 빠순이의 느낌을 가져보고 싶다.

어쩌면 내 남은 나날은 그런 인물 하나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가끔 생각해본다.

나는 빠순이가 되고 싶다, 되고 말껴.. 뭐 이런... 좀 어이없나?

 

 

 

 

 

 

 

 

 

 

 

 

 

 

 

 

 

 

 

 

 

 

 

 

 

 

 

 

 

 

 

 

 

근심어린 독서.

빡빡한 책 읽다 머리가 더이상 안돌아갈 지경이 되면 만만한 글을 찾아 읽는데, 새로 다시 읽기 시작한 소설은 존 르카레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이다. (3부쟉 중 2부에 해당하는 오너러블 스쿨보이는 도대체 나오는 거야, 마는거야.)

카를라 3부작 얘기를 꺼냈다가 생각난 김에 꺼내다 놓은 책인데 오래전 처음 읽을 때보다 훨씬 쉽다.

존 르 카레의 정치적 색깔이 내가 지지할만한 건 아닌데 소설은 그와 무관하게 읽힌다. 그게 근심이다. 아니, 무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무관하고 싶어진다.

 

 

영국 첩보당국, 일명 서커스에서 냉전의 최고조 시기에 자국의 이해관계가 달린 세계 곳곳에서 첩보질을 하며 그 나라의 독립이나 민주화투쟁에 관여해왔다. 고쳐말하면 영국의 이해에 반하면 해당 나라의 민족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척살해왔다고 할 수 있다.

책에도 나오듯이 '스캘프헌터'라는 암살, 납치, 협박, 회유 등 소규모 부대로 운영하는 조직을 두었다. 조지 스마일리 역시 이 공작원들의 선출, 교육 등을 맡아왔다.

 

 

 

 

본격적인 스토리 전개의 끄나풀이 될 리키 타르의 진술이 초반에 나오는데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탁 걸렸다.

 

"그는(리키 타르) ......케냐의 특별 임무를 부여받았다.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현상금을 노리고 마우마우를 쫓는 일을 했다."(60)

 

 

그런데 문제는 각주였다. 역자인 이종인은 '마우마우'에 대한 각주 딱 한 줄 "케냐의 흑인 비밀 결사"라고만 달았다.

 

 

케냐는 영국령이었다.

백과사전에 의하면 마우마우는 케냐의 민족운동세력이었다. 탄압과 학대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마우마우는 끝내 영국으로부터 케냐의 독립을 이끌어 냈고 마우마우를 이끌었던 리더들이 새로운 정부를 구성했다.

이후 케냐, 지금의 케냐의 정치상황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1963년 케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마우마우는 '흑인 비밀결사'라고만 알아서는 안되는 저항조직이었다.

조선의용대를 조선인들로 이뤄진 비밀결사 이렇게 알아선 안되듯이 말이다.

 

 

.......... 그럼에도 나는 존 르 카레의 소설들을 읽을 것이고 싫어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바그너의 오페라에 대한 바디우와 지젝의 새로운 해석들에서 유의미한 생각들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홀로코스트의 경험 이후에 우리가 왜 계속해서 바그너에 귀를 기울여야 할까요? 우리가 바그너의 음악을 즐긴다면, 이로 인해 우리는 홀로코스트에 공모했거나 적어도 묵인한 자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인가요?" (지젝의 발문에서)

 

 

 

 

바디우와 지젝의 근심과 미학적 해석이 바그너에 대한 오래된 생각들, 반유대주의와 파시즘의 화신이라는 생각들에 어떤 미학적, 정치적 해석을 부여하고 있을지 독서를 재촉하는데........ 역시 지젝의 글들은 중반 이후부터 사정없이 꼬여맞물려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따라 잡기 힘들다.

사이 사이 존 르 카레의 소설도 읽어가면서 오늘 배송될 금정연의 자꾸 '옆길로 새는'(김중혁의 말에 의하면) 문장들도 보면서 즐거운 근심거리 독서를 해나갈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문장들이 너무 흔하지 않나? 갈수록 뭔 혹할만한 생각들이 전개될지 모르지만 여튼 초반은 너무 흔해빠진 문장들이라 손을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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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돈지오반니>며 바그너의 오페라(악극) 대본들을 정리해놓다.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줄거리를 보니, 여기서도 절대반지를 얻는 자에게 사랑을 포기해야 한다는 저주가 내려진다는 테마가 사용된다. 신과 인간이 얽히고 무지막지한 운명과 저주의 한바탕 난장에 가까운 극이 전개돼도 결국은 사랑의 열정과 희생의 장엄함으로 수렴되는 극의 노정이 허무하다고 해야 하나 경건하다고 해야 하나.

 

대충만 봐도 인물들이며 이야기, 갈등이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거 알 수 있다.

<반지의 제왕>도 딱 한편 본 사럼아자만, 그 판타지의 원천이라는 이 오페라를, 그리고 바그너라는 인물 자체를 안 들여다보고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내게는 중학교 때 봤던 만화의 영향으로 지그프리트, 브륀힐데, 크림힐트.. 등등의 신화(당시는 신화로만 알고 있었다)를 대충 동화 수준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보니 어마어마한 대작이었다.

바그너가 약 28년간 매달린 작업이었으며 4부(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 공연이 총 16시간에 이른다고 한다.

유투브에서 조금 봤는데 무대장치며 장면장면마다 얼마나 창조적 역량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가히 장관이었다.

그러니까... 다 보려면 16시간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거다.

 

 

 

 

 

 

 

 

 

 

 

 

 

 

 

 

 

 

 

 

 

 

 

 

 

 

 

 

 

 

 

 

 

바그너라는 인물 자체가 질투와 성공의 열망으로 가득차 있던 인간이었으며 어쩌면 그렇게도 후원자나 친구의 아내를 탐했는지...

알랭 바디우의 [바그너는 위험한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들, 예를 들어 히틀러의 뮤즈로 얹혀져 반유대주의라든지, 민족주의자로, 거의 파시즘의 화신이라는 편견에 대해 현대철학과 미학의 개념들을 재조정하면서 바그너와 그 음악에 대한 재정립을 시도하는 모양이다. 바그너 음악의 구원의 문제, 주체의 문제, 연속성과 불연속성, 총체성의 문제... 등. 

동일성의 일자(the One)를 지향하고 있는 듯해 보이는 바그너가 아니라 동일성에 저항하는 예술가로서 바그너....

(1849 드레스덴 혁명을 지지하고 공화정을 지지했던 청년 바그너는 이후 망명자가 되어 파리로 이주했다. 파리에서 거듭된 실패와는 반대로 승승장구한 유대인 친구에 대한 질투를 바그너의 반유대주의의 시작점으로 보기도 하는 국내 필자도 있는데 어떤지 모르겠다. 어쨌든 청년 바그너는 혁명에 동조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이후 아닌가? ....)

흥미로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 이책 역시 언젠가는 봐야 할 것 같다. 

  

니체와 바그너의 관계도 소문은 무성했지만 막상 잘 알지 못한 터라 이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지만...

니체, 히틀러, 바그너까지 다룬 책도 있지만.... 이책은 기회가 되면.

웅장함, 과도함, 스펙타클이 압도하고 지치게 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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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구자들에 의해 천착된 독일 미학 관련 책.

 

몸 뒤집는 법도 모르는데 뛰고 싶어하는 욕심이 언제나 앞서는 나로서는 쥐뿔도 모르는 미학, 독일미학 전문서를 덮석 쥐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이성주의 철학에서 간과되었던 인간의 몸과 감성에 대한 재평가,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인한 예술적 표현 가능성의 확대 등의 변화가 전통적 미학연구에서 에술 작품을 넘어 감각적 지각과 관련된 모든 것과 인간의 감성적 지각 방식을 변화시키는 다양한 매체들에 대한 연구로까지 확장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 어렵겠다. 

 

다루고 있는 인물들의 생애와 저작을 소개하고 주요 저작들을 함께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기획된 책이라 저자들의 안내에 따라 조금씩 읽어가다보면 현대미학의 주요 디딤돌들을 확인할 수 있을 듯도 싶다.

 

벤야민도 제대로 모르고 읽어본 게 거의 없는데,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이들, 

아비 바르부르크, 한스 블루멘베르크, 게르노트 뵈메, 귄터 안더스,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미학을 조명한단다.  

 

칸트와 후설, 하이데거 등을 어차피 거치는 경로가 놓여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관심 가는 건, 기술발달에 따른 매체환경의 변화가 감각과 인식, 사유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미학이 어디까지 밝혀줄 수 있는지 보고 싶다.

최근의 과학이 인간의 기억과 인식능력, 사유능력 메커니즘까지 들여다보려 애쓰고 있는 상황을 보자면 두렵기까지 하잖아.

기술매체미학까지 다루는 거 보면 일독해보고 싶은데

 

또한 벤야민에 대해 다룬 김남시의 글들도 흥미로울 듯하다.

왜 벤야민의 글들에 그토록 '유년시절' 을 다룬 글이 많았는지 그 테마로 이어지게 되는 벤야민의 정수에 주목한다니 읽어보고 싶다.

 

 

 

 

 

 

 

 

 

 

 

 

 

 

 

 

 

 

 

 

 

 

 

 

 

 

 

 

 

 

 

 

 

 

 

 

 

 

 

 

 

 

 

 

 

 

 

 

 

 

 

 

 

 

 

 

 

 

 

 

 

 

 

 

 

 

 

 

 

 

 

 

 

 

 

 

 

 

 

 

 

 

 

 

 

 

 

 

 

 

 

아비 바르부르크는 평전도 번역되어 나와있네. 놀라워라.

 

줄리언 반스의 새책도, 이언 매큐언의 새책, 그리고 7월이 될 듯한데 하루키의 새책... 모두 기대되는 책들이다.

하루키의 책을 읽기 위해 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를 봐야할 것 같은데 대본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는 있는데 관련 글들도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내게 모차르트는 영화 <아마데우스>가 워낙 강하게 남아 있어서 <돈 지오반니> 또한 그 영화의 잔상에 머물고 있다.

세상에 모르는 거 천지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도 덥석 구했는데, 이책부터 일단 읽고 보자.

명성대로 볼만한 책인지 열심히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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