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연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은 몇년 전부터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열심히 써온 글들을 때가 되면 책으로 묶고 책으로 엮는 와중에도 글을 쓰고, 다시 어느 정도 모아지면 다시 책으로 묶고... 생활이다.

 

어제 받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나도 연출하고 있을 장면들(아마도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경험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지라 낄낄거리며 웃기도 하면서 아이고, 왜 이러고 살까(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함) 한숨 쉬기도 하고, 여튼 출발은 좋다. 

이번 책은 책 표지도 마음에 들고, 제목은.... 금정연은 한번도 자신이 책 제목을 지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제목짓기에 잼병인 거다,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이라는 제목에는 질투심도 느껴진다.

'멋진' 보다는 '실패를 모르는'에 방점이 찍혀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마도 책을 읽는 누군가를 쓰러넘어뜨릴만큼 꽉차 있는 문장들의 향연.

짧은 글안에 글을 쓰도록 만든 한 문장을 고르고, 그 한문장의 의미에서 확장되거나 수렴되는 다른 몇권의 책들이나 문장들이 인용돼있다. 과연 하루에도 몇번씩 책상자들을 받아들고 책을 살피고 읽어왔을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부 삶과 문장 사이에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나는 실패한다

 

                                          

1부 '눈을 감고도 쓸 수 있는 소설의 첫문장'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룬다.

 

오래전부터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 

 

어마무시하게 방대한 그 소설의 첫문장은 바로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여기에는 싫어한다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3권도 잠깐 나온다. 

나올만한 에피소드가 실려 있으니까. 싫어해도 등장시킨 듯하다. 낄낄

나의 [잃어버린 시간]은 1권 스완네 집쪽으로.. 가다가 도착하지 못하고 저 민음사판으로 분권된 2권 2/3 지점 어디쯤에서 멈춰서버렸는데,

여기서 다시 이 문장들을 만나니 다시 스완네 집쪽으로 가야 할 듯 싶다.

 

마들렌과 차를 먹는 그 문제적 장면에 이어지는 문장들.

 

이제야 우리들의 꽃이란 꽃은 모조리, 스완 씨의 정원의 꽃이란 꽃은 모조리, 비본 내의 수련화 마을의 선량한 사람들과 그들의 조촐한 집들과 성당과 온 콩브레와 그 근방, 그러한 모든 것이 형태를 갖추고 뿌리를 내려, 마을과 정원과 더불어 나의 찻잔에서 나왔다.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에서도,

 

 

만약 지금도 다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뒤척이기라도 하면 그 책들은 묻혀버린 날들을 간직한 유일한 달력들로 다가오고, 그 페이지들에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저택과 연못 들이 반사되어 보이는 것을 기대하게 되는것이다."

 

문장을, 책을 다시 읽게 하는 힘.

다시 프루스트를 꺼내와야 할 것 같다. ....

 

 

   

 

 

 

 

 

 

 

 

 

 

 

 

 

 

 

 

 

 

 

 

 

 

 

 

 

 

 

소심하리만큼 얌전한 제목과 표지를 가진 김정선의 [소설의 첫문장 : 다시 사는 삶을 위하여]와 함께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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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5-3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의 책들은 사두기만 하고
절대 읽지 않게 되네요 ㅠㅠ

포스트잇 2017-05-31 18:12   좋아요 0 | URL
그렇죠..저렇게 졸음을 번쩍 깨울 문장은 긴 독서끝에 나오는거라서 ㅎㅎ 다리를 다쳐 꼼짝 못할때나 ...어디 갇혀 별달리 할일이 없고 옆에 있는거라곤 ‘잃어버린 시간‘밖에 없다면 가능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ㅎ

oren 2017-05-3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부턴가 저도 프루스트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오래도록 두고 두고 단단히 벼르고 난 뒤에 만나야만 끝장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요. 저는 요즘 ‘오래도록 요리조리 피해 왔던 셰익스피어‘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답니다. 최종철 번역의 <민음사판 전집 시리즈>에 실린 16작품은 어느새 다 읽었네요. 언제 완간이 되어 나올지도 모르는 나머지 ‘출간 예정 전집 시리즈‘를 마냥 기다리는 것도 지칠 듯하여, 오늘은 퇴근길에 중고서점에 들러 아직 못 읽은 다른 작품을 몇 권 싼 값에 건져왔네요. 헤럴드 블룸에 따르면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가 ‘닮은 점‘도 있다고 하더군요.

* * *

성적 질투심을 극화시키는 데 뛰어난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

니체는 가장 햄릿적인 진술의 하나로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 말을 찾아 내면 그것은 이미 우리 마음 속에서 죽어 있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래서 말하는 행위에는 일종의 경멸감이 들어 있다. 프루스트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이 경멸감에서 자유로웠다. 주요 인물들은 프루스트의 관대함을 나타낸다. 이기적 에고이즘은 셰익스피어만큼이나 프루스트의 성적인 질투심으로 표출하는 강한 관심이다.

감히 말하건대, 소설을 읽으면 질투가 완화된다. 그 가운데 성적 질투심이 가장 독성이 강하다. 이런 성적 질투심을 극화시키는 데 뛰어난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였다. 따라서 소설이란 ‘성적 질투심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고 축소해 볼 수 있다.

포스트잇 2017-05-31 21:43   좋아요 1 | URL
늘 부지런히,그리고 참 치열하고 치밀한 독서를 하시네요. 벌써 셰익스피어도 다 읽으셨네요.ㅎㅎ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라.. 흥미로운 관계네요. 전 가끔 셰익스피어가 구사하는 저주의 말들에 깜짝깜짝 놀랍니다.저주용례사전을 만들고 싶을만큼요.ㅎㅎ
프루스트는 산맥이라 무턱대고 올라가다간 도중에 내려오기 쉽상일듯요. 저도 가다 멈춘지 꽤 됩니다ㅠ 블룸의관점도 재밌네요. 제가 읽다만 지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어런 화자 마르셀의 눈에 비친 어른 스완의 사랑은 사랑의 환희와 질투와 의심의 극단을 진동하는데요...그 부분 읽다가 제가 지쳐버렸답니다. 다시 읽을땐 기호 해독하듯, 수수께끼 찾듯 블룸의 주제를 참고 삼아 ‘시간‘을 읽어야겠습니다.

포스트잇 2017-05-31 22:07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면 ‘시간‘은 어린 마르셀이 잠자기전 엄마의 잠자리 키스를 기다리며 엄마를 늦게까지 붙잡고 있는 손님들을 질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