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여 페이지가 넘는다. 좋아~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가 7월 13일 출간된다고 예고됐다. 예약판매중.

책이 나오는 건 좋고 반가운데 그게 7월 하고도 보름 가까이에 나온다니 시간이 그만큼 흘러야한다는 게 슬프다.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만큼 나의 시간(모두의 시간이겠지만)이 흐르는 거다.

그러니까.. 7월도 하루키 신작을 읽을때쯤이면 훌쩍 간다는 얘기다.

2017년도 반이 지났다. 남은 반년 동안 무슨일이 생길 것인가.

아버지의 하루하루는 어떠실까. 기나긴 한나절일까 ... 알 수없다.

 

 

 

 

 

 

 

 

 

 

 

 

 

 

 

 

표지는 이게 최선이었을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히로시마 내사랑]도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영화로만 봤는데 소설도 이번에 읽어야겠다.

영화가 어땠더라.....알랭 레네 감독의 영화였군. 어느덧 20년이 넘는 시절이 됐다. ... 90년대였다, 벌써.

 

"피차 줄 수있는 건 유일하게 시간뿐인 그런 나이"

[팅테솔스]에서 스마일리가 은퇴당한 서커스 전직 조사요원 코니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말이다.

코니는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세월이 흘러 [스마일리의 사람들]에서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코니는 스마일리에게 기억을 줄 수 있었다.

시간이 기억이겠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하루키가 등장시킨 음악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지오반니>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돈지오반니 악보를 받아뒀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흔히 돈 후안이라고도 불리는 천하의 호색한의 이야기인데 이와 관련한 도서들도 찾아뒀건만 정작 읽어보지 못해서 밀로스 포만의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돈지오반니의 이미지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

영화에서는 살리에르에 의해 진혼곡 작곡을 의뢰받은 후 정신적 압박을 받던 모차르트가 <돈지오반니>가 상연되는 극장에서 희롱하며 놀던 장면에서 나온다. 벽을 뚫고 나오는 흑가면을 쓴 기사단장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냉엄한 얼굴을 연상하는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에 나오는 흑기사옷을 입은 인물이 석상을 연기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가물가물하네.

기사단장은 처음에 나오자마자 돈 후안에게 죽음을 당하니까.

하루키는 <돈지오반니>를 들을 때마다 기사단장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단어의 기묘함에 끌려서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소설에서 '기사단장 죽이기'는 그림의 제목이라고 했던 것 같다.

<돈지오반니>도 유투브에 몇작품이 올려져있긴 한데 두시간이 넘은터라 맘잡고 봐야 한다.

 

 

 

 

 

 

 

 

 

 

 

 

 

 

T.S. 엘리엇의 시극 중에 [대성당의 살인사건]이 있는데 거기에도 기사단장이 나오는 얘기가 있던 걸로기억하는데 아닌가? 

그건 어떤 이야기인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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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2017-06-3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 알림 저한테도 왔네요.
보름쯤이야 뭐...
가진건 시간뿐인걸요~

포스트잇 2017-06-30 13:33   좋아요 0 | URL
행복한 기다림이시네요.전 지금도 가는 시간이 무서울 지경입니다...
 

조지 스마일리가 최초 등장하는 존 르 카레의 초기작이자 작가로서 본격적인 명성을 얻게 해 준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가 합본으로 새로 출간됐다. 

그래, ...합본도 좋고 다좋은데, 그래도 이빠진 것들은 채워줘야 하지 않겠는가.

카를라 3부작 중 두번째 이야기에 속하는 [오너러블 스쿨보이]는 아예 잊어버린 것인가.

새로운 옷을 입히고 나오는 것도 좋지만, 그래서 새로운 독자 유입도 좋지만, 빠진것들과 작년 출간된 평전이나 자서전같은 주요 저작도 내주면 좋겠다.


[스마일리의 사람들](1979)에서 조지 스마일리는 "인간성을 잃었"고 또 다른 자아이자 카운터파트였던 카를라는 "정치적 신념을 희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실험) 체제에 대한 르 카레식 비판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본주의하에서 성과와 효율 지상주의로 인해 가치나 존엄을 지킨다는 건, 주워담지 않는 앤의 라이터처럼 버려졌고, 공산주의(실험)가 신념에 의해서만 지탱할 수 있다면 그건 너무나 많은 인간적 "약점들"에 의해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초기작들도 다시 들여다봐야겠다.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죽은자에게 걸려온 전화 합본판 (아직 상품에 뜨지 않네. 링크만 걸어놓은다.)


[A Perfect Spy] (1986)는 자전적 소설이라는데 이 역시 번역되지 않았다.
















얼마전 국제도서전에서 열린책들30주년 기념 대표작가선집을 낱개로 판매했다고 들었다.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꼭 구입하고 싶었는데 부탁할만한 인사들은 도서전에 갈일 없다 하고, ... 딱히 부탁하기 그래서 포기했다.

금정연이 글에 잘 올리지 않는 "일독을 권한다"고 했던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읽어보고 싶은데, 열린책들은 합본으로 다시 내주라. 내줘.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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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6-28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에서 지원하는 작은동네책방에
갔다가 <야만스러운 탐정들> 합본 보고서
너무 갖고 싶었는데 말이죠.

근데 정작 책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 다
못 읽었네요.

포스트잇 2017-06-28 11:43   좋아요 0 | URL
전 합본 나올때까지 기다릴까 합니다...열린책들은 합본 내놔야 한다고 봅니다 ㅎㅎ
 

주석달린 셜록홈즈에 존 르 카레가 추천사를 썼고 셜록홈즈와 왓슨 콤비가 없었다면 조지 스마일리와 피터 길럼도 없었을 거라는 헌사를 쓸 정도로 셜록홈즈를 애독한 독자였다는 걸 알게 된 후 급작스럽게 존 르 카레가 다시 보고 싶어져서 재독하기 시작한 게 엊그제 같다.

고작 [팅테솔스]와 [스마일리의 사람들]을 다시 읽었을 뿐이다. 

카를라를 찾아서 3부작 중 번역된 두 편만 읽은 셈인데  두번째 읽은 이번에 느낀 건, 처음 읽었을 때 내가 얼마나 많은 걸 놓쳤었나, 이다.

카를라는 조지 스마일리의 또다른 자아라서 스마일리를 알면 카를라도 아는 거라고 치고, 스마일리라는 인물에 대해 페이퍼를 써볼만하겠다.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서문을 잠깐 들여다보는데, 코난 도일이 나폴레옹을 두고 했던 말이 카이사르에게 "다소 덜했을지도 모르지만"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저자는 인용하고 있다. 


"그는 놀라운 사람이었다. .....나를 경악시킨 것은 그의 성격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를 극악한 인간이라고 단정 지은 순간 고결한 성품이 보이고, 다시 그에게 감탄한 순간 곧바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비열함에 압도되게 된다."


군인이자 정치가인 인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성격일 수도 있겠다. 

르 카레는 조지 스마일리를 편력기사 knight-errant로 여겼다. 냉전과 냉전 이후 데탕트에 걸쳐 전성기를 누렸다가 은퇴당하고 자꾸 과거의 사건과 사람들 때문에 다시 무대에 올라야 하는 스파이. 


카를라 3부작의 마지막 [스마일리의 사람들]에서 르 카레는 조지 스마일리에게 파국을 선언한다. 

조지 스마일리는 "인간성을 잃었다."

작가가 자신의 주요 인물을 욕보이는 설정을 할때는 어떤 심정일지...흥미로운 창작의 과정이다.  

 

코난 도일도 자신의 셜록 홈즈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지 않았는가. 도일 보다는 르 카레는 더 씁쓸한 마음이었을 수도 있겠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스마일리의 사람들]의 마지막 공작, 카를라를 잡기 위해 세팅하는 배경은 스위스 베른이라는점이 눈에 띄었다. 셜록홈즈와 모리아티 교수의 최후의 대결이 이뤄진 장소가 바로 스위스 베른에 있는 라이헨바흐 폭포이다. 르 카레가 조지 스마일리와 카를라의 최후의 대결 장소로 스위스 베른을 택한 건 아마도 스위스가 비자금을 운용하는 데 유용한 지역이라는 현실적 설정도 있었겠지만 셜록홈즈에 대한 오마주도 있지 않았을까.

조지 스마일리 또한 셜록홈즈처럼 무대에 올라 단서 하나하나를 추적하며 사건의 진실,핵심에 다가선다.

사건이 끝나면 셜록홈즈처럼 자신이 어떻게 추리해갔는지를 설명할 관객이 그에게는 있지 않다.

비극, 비극만이 있을 뿐.

  .........

 















[스마일리의 사람들] 표지의 그림 또한 다시 보니 의미심장했다.
르 카레가 설정하고 묘사하는 마지막은 모두 굉장했던 듯하다. 대개가 비극을 완성한다.
[스마일리의 사람들]의 스마일리와 카를라의 대면 장면은 참 많은 걸 읽게 한다.
여기서도 여자가 교환거리라고 읽을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서로의 "약점"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된다는 건 비참한 일이다. 

누군가는 조지 스마일리를 '햄릿'에 비유하기도 한다. [팅테솔스]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특히 그러한데, 이미 누가 '두더쥐(이중스파이)'인지 마음속에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계속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더우기 모욕당한 남편으로서 그의 '복수'는 스마일리 자신이 아니라 다른이에 의해 이뤄진다. 비껴서있는 스마일리.


실비아 플라스(1932~1963)

테드 휴즈(1930~1998)


 

 

이번달 알라딘 탁상달력의 모델은 실비아 플라스이다.

이 여인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곤 가스오븐자살, 시인, 정신질환... 정도였던 것 같다. 

왕은철의 [애도예찬]을 읽다가, 실비아 플라스와 그녀의 남편 테드 휴즈의 이야기를 읽고 놀랐다. 

실비아 플라스의 남다른 예술적 민감함과 예민함이 우울증에 사로잡히게 했으려니, 그러다 삶을 놓아버렸으려니, 대충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 알게 된 건 실비아 플라스에게 '심리적 과부하'로 작용한 트라우마 아버지의 죽음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비아의 나이 여덟살 때의 일.

어머니의 사랑 또한 온전하게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머니가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던 듯. 부모란 참 어렵다.

어머니의 냉정함. 이것이 실비아로 하여금 아버지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할 수 없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분석.


남편 테드와의 결혼 후 원만치 못한 생활. 남편 테드의 바람. 별거. 그리고 자살.

테드의 새로운 연인 또한 자살.

이후 벌어진 일들. 테드는 뭇 사람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게 된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은 맹렬했던 모양. 당시는 1960년대였다.

왕은철은 지나쳤다고 비판한다.

이후 남편 테드 휴즈의 실비아 플라스 애도와 관련된 글, <생일에 부치는 편지>는 테드 휴즈를 이해하고자 한 글이다.

테드 휴즈는 실비아와 만난지 4개월만에 결혼하고 시인이자 교수로서 명성을 쌓아간다.

실비아와의 결혼 파탄과 그녀의 자살, 새로 만난 여인과의 불행한 결말.

그리고 30년 뒤 1998년 그는 [생일편지]라는 시집을 발간한다. 실비아와 함께 했던 삶을 회고하며 쓴 글들로 출간 후 얼마지나지 않아 암으로 사망한다.

실비아가 시인으로서 알려지게 된 데는 남편 테드의 노력 때문이라고도 하는 사람이 있고(왕은철은 이 편이다), 실비아의 저작권 등 모든 권리를 지니고 있는 건 남편 테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특히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테드가 실비아의 시들 중 중요한 것들을 누각시키거나 폐기처분 해버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게 진실인가.

테드의 [생일편지]는 자신에게 가해진 비난을 무마하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정리해둘 필요를 느껴서 기획된 출간이었는지... 실비아와의 관계정리를 - 왕은철식으로 말하면 애도- 해왔던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
































조지 스마일리도 그렇고 실제 인물들인 실비아와 테드의 삶도 그렇고 나는 그들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나.

가끔 사람을 깊이 안다는 거.. 그 사람에 대해 아주 오래 생각한다는 거.. 에 대해 생각해본다.

뇌과학이나 심리학이 고도로 발전하면 트라우마나 정신적 '과부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인간. 심리와 정신작용에서 발생하는 난감한 어려움이 한 인간을 그리고 곁에서 지켜봐야 할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건 참 쓸쓸한 일이다. 어느 사이에 자라나서 내곁에 있게 될 수도 있다. 불행은 오래전에 뇌에 전달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집에 길고양이네가 들어와 살림을 차린듯. 새끼들과 함께 나타난 그 녀석의 울음에 어찌할바 몰라 우선 가까운 마트에서 사료를 사다 부려줬다. 물과 함께.

이것들이 꼬박꼬박 먹는다. 고양이 사료도 꽤나 여러 종류가 있는데 잘 몰랐다. 다 똑같은 건줄만 알았다.

고양이는 육식동물이라는 거. 어렸을 때 우리가 먹던 밥에 멸치류 등을 얹어 주며 함께 살았던 때와 너무나 달라서 어리둥절하다. 

처음에 발자국 소리에도 부리나케 도망치던 어미는 이젠 하악 거리면서도 나를 빤히 보고 있곤 하다.

그래도 아직 녀석과 나는 데면데면하다. 어서 새끼들 키우라. 너는 길고양이로 나는 니가 오면 밥 챙겨주는 그런 관계로 족하다.


(윈도10 엣지브라우저에서는 책 이미지 정렬이 잘 안되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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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레와 홈즈와 실비아 플라스라.... 저에게는 기가 막힌 앙상블이네요.
매우 흥미진진하게 이 글을 읽었습니다. 이달의 당선작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포스트잇 2017-06-27 16:40   좋아요 0 | URL
아이고,,;;; 변변찮게 급히, 늘 그렇지만.. 쓴 페이펀데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비아와 테드,이 두사람 심상치 않아요.
이들의 글을 읽어본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보려고 합니다.
근데... 먼저 구입한 게 테드의 [생일편지]네요. ......

cyrus 2017-06-27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의 첫 문장에 ‘홈즈‘가 보여서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존 르 카레가 왜 추천사를 썼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포스트잇 2017-06-28 09:47   좋아요 0 | URL
cyrus님의 홈즈 번역본 비교 페이퍼를 보고서 주석달린 홈즈를 돌아봤답니다.
덕분에 르 카레의 추천사를 알게 됐구요. 이게 다 cyrus님 덕분입니당~~~
 

마이클 파렌티의 [카이사르의 죽음]이 부조처럼 카이사르를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배경을 다듬었다면 정작 메인인 카이사르를 감상하기에는 다소 성긴 느낌이 있다. 배경은 열심히 다듬었는데 카이사르를 다듬는 데는 미완성인듯한 아쉬움이 있는 책이다.

 

마르케스가 카이사르를 자신의 작품에서 형상화하고 싶었다던 미완의 꿈(실제는 탐구해보니 생각했던 것을 구현하기 어렵게다는 판단을 하고는 접어버린 프로젝트였는지 모르지만)에 왜 내가 매달리려 하는가. ........

 

 

 

 

 

 

 

 

 

 

 

 

 

 

863페이지의 카이사르 평전. 아, 스바, .... 이거 읽어야해?

아, 스바,....스바....

아드리안 골즈워디는 전쟁사가라네. 흥미가 더욱 당긴다. 책의 부제는 "관용과 카리스마의 지도자"다. 이는 한국판의 부제인듯하다. 원제는 "Caesar : Life of a Colossus"이다. '거상의 삶'. 거대한 동상. 함축적인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단어인듯. 

또한 우리의 부제는 마이클 파렌티가 파악한 카이사르와 가깝게 정의되어 있다. 

관용이 카이사르로 하여금 로마를 더욱 확장시켰고 폭넓은 대중의 지지를 얻게 했지만 그 관용이 베풀어져서는 안되는 상대에게도 베풀어질 때 카이사르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이것이 중요하다.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되는 이들에겐 냉혹해야 한다. 

카리스마는 그가 지닌 자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평생 그것만 팔 수 있는 우물을 찾고 있다.

얕게 이것저것 깨작거리다 여기까지 이르렀다.

어쩐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느낌. 돌아보면 그 얕게 건드렸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 메워져버린 듯. 지나온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물이 나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냥 파다파다 끝나도 좋을 것 같다.

아주 깊게 파내어진 그냥 우물의 동굴이어도 좋잖아.

 

나 오늘, 금정연 '마니아' 됐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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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엔 시저로 알고 있던 자.

일종의 영웅. 그가 왜 위인전에 끼여있는지 썩 이해가 되지 않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잘 모른다.

로마사는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교체되는 시기를 알고 싶었는데 카이사르는 그래서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 됐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또한 알아야 하고.

왜 카이사르는 죽음을 당해야만 했던가, 그를 원로원 회의가 열리는 공회에서 수십여명이 그를 에워싼 채 스물세군데를 난자해서 죽여야만 했던가. 그를 찌른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카이사르를 암살한 그들은 왜 대중에게 나아가 자신들의 행위를 변명하는 웅변을 해야만 했을까. 

왜 대중들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을까. 

암살 주동자들은 사건을 벌이고 시간이 흘러도 대중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자 로마를 떠나야만 했다.  

카이사르는 애도하는 대중의 손에 화장되어 묻혔고, 카이사르를 태운 곳은 신전이 되었다.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되었을 때 북쪽하늘에 혜성이 떴고 사람들은 그 혜성을 카이사르의 영혼이라고 믿었다. 

카이사르는 사람들에게 신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에게 카이사르는 문학으로 창조하고 싶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나는 이걸 어느 트윗에서 봤는데 마르케스가 실제 어느 정도까지 카이사르를 탐구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결국 마르케스는 포기한듯싶다.  카이사르는 인류역사에 있었던 모든 독재자의 짜집기로만 가능했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지나친 권력과 부의 집중을 무너뜨리고 시민에게 토지분배정의와 정치를 돌려준 개혁가인가, 마르케스가 읽었듯이 독재자였던가. 오랫동안 나는 이 판단을 못했던 것 같다.

 

마이클 파렌티의 [카이사르의 죽음 (원제는 카이사르의 암살)](2003) 은 이런 궁금증에 판단근거들을 마련해주는데 저자가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는 ........ 책 스포일러일까?

책을 읽다보면 이건 2천년도 훌쩍 넘는 그 시기가 마치 지금 현실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더군다나 우리의 현실분석서라고 해도 좋을만큼 우리의 지금 상황에 대입해 읽어도 유용한 관점을 얻을 수 있을 정도다. 

문재인과 대부분의 시민이 한편먹고 벌이는 반적폐청산 작업의 시작.

카이사르와 반대편에 선 키케로는 거의 홍준표로 읽힌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카이사르를 경멸하면서 반대했던 카토라는 인물도 있지만, 저자는 카토 보다는 키케로에 집중 포화를 쏟아붓는다. 키케로는 "특권층의 대변인"이라는 것.

키케로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진다.

 

그동안 로마사와 카이사르를 다룬 역사서들의 내노라하는 저자들, 플루타르코스, 몸젠, 에드워드 기번 등 이른바 '신사역사가들'은 기득권들의 입장에 서서 로마민중을 폄훼하는 관점을 지녔다고 깐다. 가차없다. 

이들 '신사역사가들'은 카이사르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잘못 기술하고 있다고 마이클 파렌티는 깐다. 

카이사르 시대의 로마의 정치사회경제, 그리고 계급계층, 성문제까지를 다루고, 카이사르의 개혁내용과 한계, 반대세력들의 정체와 그들의 대항방법들.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은 로마의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황제를 꿈꿨던 독재자를 죽였다고 했지만 정작 그들이 탄생시킨 건 로마제국이고 황제였다. 그렇다고 그렇게나 카이사르를 반대하며 공화정 공화정을 외쳤던자들은 그 뒤로 '공화정에 대한 향수를 드러낸 적이 없다.' 그들은 그런 자들이다.

그러니까 이런 싸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는 말이다.

 

카이사르는 결국 암살당했다. 대낮에 공회에서 많은 이들에 둘러싸여 난자당해 죽었다.

 

그의 죽음을 딛고 로마제국을 열어젖힌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양자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죽음으로 그의 목숨도 위태로운 시절을 보내야 했다. 결국 그가 패권을 쥐었을 때 그는 원로원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원로원은 왜 아우구스투스를 용인할 수밖에 없었을까. 아우구스투스는 공화정을 종식시키고 군주정을 확립시켰다.

"치밀한 전제군주는 공화정의 형태로 위장된 절대 군주정을 만들었다." (에드워드 기번)

아우구스투스에 대해서는 존 윌리엄스의 [아우구스투스]를 다시한번 읽어볼까... 싶다. 다시 건질만한 게 있을까.. 시간낭비일까...

 

콜린 매컬로의 로마사 시리즈는 읽어본 게 없어서 어느 수준인지 모르지만 다들 좋다고 하니까. 기대는 해보는데,

소설이라서...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논고](1531)도 읽은지가 까마득하고, 어땠었는지 기록이라도 해뒀는지 모르겠네. 기회되면 다시 읽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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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2017-06-2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다뉴브를 읽고 있는데 유럽의 역사를 모르니 곳곳에서 부딪히는군요...
올리신 책 몇 권 담아갑니다.
존 윌리엄스의 아우구스투스를 읽으면서 카이사르가 궁금하기도 했구요~
올리시는 글들이 참 재밌습니다.ㅋ
읽으신 다음에 카이사르가 누군지 꼭 알려 주세요.

포스트잇 2017-06-20 13:28   좋아요 0 | URL
재밌게 봐주시니 너무 기쁘고, 감사드립니다.ㅎㅎ
다뉴브라는 책, 덕분에 소개받았네요. 읽어보고 싶어요.
카이사르...그가 누군지 알아보려면 견적이 좀 나올거 같습니다..;;;;;;;;

oren 2017-07-01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스트잇 님께서도 ‘카이사르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셨군요. 저도 카이사르의 작품들도 읽어 보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도 두 번, 세 번 읽어봤는데 ‘카이사르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명쾌하게 풀진 못했더랬습니다. 그 후로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론』을 읽어 보니 ‘카이사르가 왜 죽어야만 했던가‘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얻게 되더군요. 그리고 최근에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통해서도 ‘마키아벨리의 관점‘이 옳았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고요.

포스트잇 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카이사르를 암살한 그들은 왜 대중에게 나아가 자신들의 행위를 변명하는 웅변을 해야만 했을까. 왜 대중들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을까.에 대한 해답 또한 셰익스피어의 작품 『줄리어스 시저』에 나타난 ‘안토니우스의 연설‘을 통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듯합니다. ‘키케로의 애매한 행동‘에 대해서도 셰익스피어는 예리하게 포착해 놓은 듯하고요.

아무튼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포스트잇 2017-07-01 19:59   좋아요 0 | URL
전 oren님에 못따라 갑니다;;;;
고작 파렌티의 책 한권 읽은건데요. 로마사논고도 다시 볼 기회가 있겠지요. 셰익스피어의 ‘시저‘는 이성일 역으로된 것만 가지고 있는데 얼른 읽어봐야겠습니다. 길안내 해주시니 좋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