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한 소나무에서 지금 막 안쪽의 영혼이 벽을 또고 밖으로 나올 준비를 끝낸 나비의 고치를 발견한 적이 있다.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만 흘러갔다. 나는 조급해졌다. 그래서 몸을 굽혀 고치 속의 나비를 향해따듯한 입김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초조하게 계속 입김을 불어나비를 따듯하게 해주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내 눈앞에서 자연이 정한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비가 고치를 찢고 나오기 시작했다. 껍질이 계속 조금씩 열리더니 나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공포를 절대 잊을 수없다. 오그라든 나비의 날개가 펴지지 않았다. 나비는 안간힘을다해 그 작은 몸을 뒤틀고 떨면서 날개를 펴려고 몸부림쳤다. 나도 나비를 도우려고 숨을 불어주며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부질없었다. 제대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참을성 있게 햇빛 아래에서 날개가 펴지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불어 넣은 숨이 나비로 하여금 정해진 시간보다일찍,쪼그라진채미숙아로나오도록강요한것이다.그나비는따가차기전에나와서는절망적으로몸부림치다,얼마견디지못하고내손안에서죽어갔다.
p.21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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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으로 위협을 느끼는 대상 앞에서 어떻게 나 자신을 견고 하게 유지할지 깨달을 때 우리는 성장한다. 성숙함은 대처 능력을 소유한 상태로,예전 같으면 우리의 발목을 잡아 비틀거리게 했을 대상을 가볍게 건너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보다 알차고 충격에 강해져,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어우러지는 능력이 높아진다. 우리는 로마의 희극작가 테렌티우스와 나란히 서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인간이다. 인간의 그 어떤 것도 나에겐 낯설지 않다." 이 명구는자신의 직접적인 경험과 문화로부터 멀리 떨어진 분야와도 개인적으로 공명할 수있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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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중요한 면으로, 세라의 작품은 슬픔을 품위 있게 보여준다. 세부적으로 들어가지 않고, 고통의 구체적 원인을 전혀 분석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슬픔을 웅대하면서도 어디에나 존재하는 감성으로 제시한다. 사실상 작품은 이렇게 말한다. 슬픔을 느낄 때 당신은 존경할 만한 경험에 참여하고 있으며, 나, 즉 이 기념비는 그경험을 위해 헌정되었다. 당신의 상실감과 실망, 날개 꺾인 희망과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비탄은 당신을 진지한 회합의 일원으로 고양시킨다. 그러니 당신의 슬픔을 외면하거나 내버리지 말라.‘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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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하느님 나라의 성장은 제자들의 분주한 활동에 달려 있는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이 지닌 숨은 힘에 달려 있다. p.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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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르타에게 여자의 자리는 시중을 드는 자리라는 것이다. ...
따라서예수님이 많은 일들로 분주한 마르타를 나무란 것은, 남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자와 동일시되는 여자의 직무에 매몰되지 말라는 권고이다. ...
그분은 여자를 남자의 처분과 그의 필요에 따른 수단이나 도구로 여기지 않는다. ... 여자를 종으로 삼으려는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여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온전히 존재하라고 요청한다. ... 당시 사회가 그녀에게 부여하여 결국 혼돈하게 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역할과 자리를 완전히 뛰어넘어 그녀 ‘자신의 몫‘을 갖도록 일깨우시다. 예수님은 여자라는 존재의 ‘가장 좋은 몫‘이라는 이름으로, 마르타를 잘못 만들어진 거짓 자아로부터 지켜 준다.
p.14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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