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자기들이 하는 기도가 어떤 종류인지 분석하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느끼는 감미로움과 몰입을 행여 놓칠세라, 몸을 놀리거나 잠깐이라도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합일에 도달하는 길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봅니다. 그들은 만사가 기도에 달린 줄로 압니다. 자매들이여, 절대로 그렇지않습니다. 주께서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일하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환자를 보거든 위에서 말한 몰입 따위를잃을까 염려할 것 없이 그를 도우십시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고통을 느끼고, 필요하다면 음식을 그에게 주고 여러분은 굶으십시오. 이웃만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뜻과 하나가 되는 참된 합일입니다. [내면의 성] 5.3.11 - P146
카시아누스는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기도하기 전부터 애써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카시아누스와 마찬가지로 테레사에게도 기도 생활과 ‘보통의 일상생활‘은 근본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실제로 현대의 불교 스승인 미국인 잭 콘필드와 베트남인 틱낫한 스님같은 분들은 일상생활에서 분리된 기도 생활을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만일 일상생활의 힘겨운 일들로부터 회피하거나 다른 데로 숨는 수단으로 기도, 묵상, 마음챙김을 이용한다면 결국 좌절하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기도와 묵상의 효율성을 가장 잘 시험하는 길은 아마도 거칠고 뒤죽박죽인 일상생활 속에서 매일 사는 일일 것이다. - P115
"나는누구를 위해 이것을 하고 있는가?" 만일 나 자신의 즐거움, 만족, 기쁨만을위해 영적 여정을 가고 있다면 그것은 시작할 때부터 실패할 운명이다. - P118
아. 영혼들이여, 산만해지지 않고 이해하는 대화를 오래 할 수 없거나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은 그것에 익숙해지세요! 익숙해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압니다. 한 가지 일에 마음을 평화롭게 놓아둘 수 없는 시련을 나 자신도 여러해 동안 견뎠습니다. 그것은 여간 큰 고생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겸손하게 주님께 다가가면 주님은 우리를 내버려두시지 않고 우리와 함께 있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얻지 못한 채 한 해가 다지나간다면 더 오랫동안 해봅시다. 거듭하는 말입니다마는, 해보면 될 것이니 힘써 진실한 스승님을 곁에 니시며 살아봅시다. ([완덕의 길] 262) - P124
내가 여기서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을 골똘히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숱한 관념을 형성하라는 것도 아니고, 거창하고 아리송한 묵상을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보고만 있으라는 것뿐입니다. 힘이 모자라서 오랫동안은 못 한다 하더라도 잠깐 동안 영혼의 눈을 주님께 돌리는 것쯤은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P127
물론 그것이 위험한 까닭은 허기진 에고가 자신도 모르는 사랑의 중심 곧하나님이 아닌 형상에 집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처신하기를 원하여 영을 소멸시킨다." 고 말한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미술작품에 대해서 기쁨이나 감미로운 느낌이나 형상에 관심을 두지 말고 그 형상이 일으키는 사랑의 느낌에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가르멜의 산길] 3.13.6).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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