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예술은 ‘나‘를 내려놓는 일이다. 생각에 지배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생각보다 더 깊은 차원을 발견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곳에 한계를 경험하기 위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있다.
- P24

왜냐하면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 역시 똑같은 기능장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더 미묘하고 순화되긴했지만 여전히 자기를 강화하는 형태이다. 그런 노력 역시도 자신이 관념 속에서 ‘나‘라고 여기는 이미지를 더 크게, 그리고 더 강하게 만들려는 욕망과 아무 차이가 없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자신 안에 있는 좋은 것을 발견하고, 그 좋은 것이 밖으로 나오게 함으로써만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 - P38

새로운 의식이 등장하는 동안 기존 종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은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영성과 종교의 차이를 느끼고 있다. 하나의 믿음 체계를 갖는다고 해서, 즉 자신이 절대적 진리라고 여기는 일련의 생각들을 갖는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을 영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고 있다. 사실 그 생각들, 그 믿음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만들수록 자기 내면의 영적차원으로부터 더 단절된다. ‘종교인‘이라고 불리는 많은 이들이 바로 이 차원에 붙잡혀 있다. 생각을 진리와 동일시하고 그 생각과자신을 완전히 동일화하기 때문에 자신만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무의식 중에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하려고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생각의 한계를 깨닫지 못한다.
- P43

자기의 머릿속 목소리‘가 실은 자신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유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누구인가? 자신은 생각하는 자신을 보고있는 사람이다. 생각 이전의 그 알아차림, 생각이 일어나는 공간이 바로 자신이다. 감정과 감각 지각이 일어나는 공간이.
에고는 형상과의 동일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 형상은 주로 생각의 형태이다. 만약 악이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다면, 사실 악이란 절대적인 실체가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지만, 악에 대한 정의도 이렇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형상을 자기 자신이라고 완전히 믿는것. 물질적인 형상, 생각 형태, 감정 형태와 동일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전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모든 ‘다른 사람‘과 ‘생명의원천‘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연결성에 대한 기억상실, 그것이 원죄이고 고통이며 망상이다. 분리되어 있다는 망상이 내가 하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밑바탕에서 지배할 때 나는 과연 어떤 종류의 세상을 창조하겠는가?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보거나, 역사책을읽거나, 혹은 오늘 밤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된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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