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상과 감정이 도움이 되기를 많이 바라지만, 그것들의 도움없이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 있을 때 그것은사라집니다. … 그것이 사라지면 우리는 기도한다는 생각을 버립니다. … 기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채 많은 것이 일어나게 놓아두는 것입니다. 그것을 건드리지 않은 채, 방해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 P191
머튼은 그가 ‘정신 기도mental prayer ‘라고 부르는 것(문자적 의미로, 기도할 때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에 집중하고 발달시키는 것)을 우리가 극복하기를 바란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에게기도란 하나님에 대한(혹은 그 점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어떤 ‘흥미로운 생각‘을얻는 것이 아니다(<새 명상의 씨> 235쪽). 묵상(그는 이 단계에서 기도를 이렇게 부른다)의 진정한 목적은 ‘피조물과 현세의 걱정 근심으로부터 해방되는‘ 법을(<새 명상의 씨> 236쪽)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것은 나중에 그가 <마음의 기도>에서 ‘모름의 앎‘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묵상에서 좌절당 하고 나면 통찰이 시작된다.
묵상이 실패했다고 생각합니까? 그 반대입니다. 이런 당황스러움, 어둠,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대한 고뇌, 이 모든 것이 묵상의 진정한 성취입니다. … 묵상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섰을 때 실제로 우리를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데려가는 것입니다. 묵상은 우리를 더 이상 하나님을 생각할 수도 없는 어둠으로 이끌어 결과적으로 맹목적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찾아 나서게 억지로 떠밀기 때문입니다. ( <새 명상의 씨>, 237-238쪽, 강조는 머튼)
그러므로 마음의 평화와 거둠을 발견하려면 마음의 평화와 거둠에 대한 욕망에서 초연해져야만 한다.
기도하는 즐거움에 대해서도 초연하지 않으면 완전한 기도는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새 명상의 씨> 227쪽) - P172
그것은 우리의 영적 삶에서 ‘건기‘라고 불리는 오랜 기간을 설명해 줍니다. 그때는 기도하고 싶고 책을 읽고 싶지만 무엇을 해도 많은 것을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그것을 계속합니다. 건기에는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고, 때로는 도대체 그런 수고를 할 가치가 있는지 의아스럽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가서 조언을 구하지만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합니다. …설령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그것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 P192
우리가 기도할 때, 기억이 작용한 결과로 우리의 영혼이 기도하기 건에 생각한 것들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이런 까닭에 기도하기 전에 신앙심 깊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P190
"궁극의 근원에서 실재를 직접 순수하게 경험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깊은 욕구" 이므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남으려면 관상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Merron 1981, p.95). 나는 지금 마음챙김운동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에 이런 머튼의 직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전지구적 과학기술 전문가, 대기업, 군사체제(한두 번쯤 머튼의 신랄한 비난의 표적이 되었던 것들)의 지배를 받아 비인간화되고 상품화된 세계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려고 탐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머튼에게 관상과 마음챙김은 모든 실재하는 것 안에서 실재를깨우치게 되는 돌연한 알아차림의 은총‘이다 (<새 명상의 씨> 17쪽), 그리고 그에게 그런 깨우침은 틀림없이 사회적 양심을 일깨운다. - P185
말년의 머튼에게 있어서「새 명상의 씨」의 첫머리에서 강조한 존재에 대한 알아차림을 이루기 위해서는 좌선하는 것만큼이나 마음챙김으로 예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961년에 출간된 다른 책 <논란이 된 질문들ssured Quection>에서 머튼은 예술의 목표는 관상을 고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세상을 보는 방식‘이며예술가의 내면의 아비투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된 세계 안에서안정성, 질서, 통합을 보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천국의 생활만이 진실이며, 지상의 생활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이상주의 철학은 이제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일상생활 속의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일들과 인간적인 문제들 속에서, 지금 여기에서 궁극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 (<선과 맹금>45쪽). 현재 순간을 알아차림하는 것 즉 ‘지금의 힘‘에 의해 보다 넓은 우주적 알아차림이 일어나고 창조 안에 있는 우리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 - P181
관상은 ‘지적이며 영적인 삶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관상은 온전히 깨어 있고, 온전히 활동하고, 살아 있음을 온전히 알아차리는 생명 자체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경이입니다. 생명의 신성함과 존재의 신성함에 대해 저절로 우러나오는 경외입니다. (<새 명상의 씨>15쪽)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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