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에고에 대응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에고를 뛰어넘을 뿐 아니라 인간의 집단적 에고를 소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행동이 에고에서 나온 것이며인간의 집단적 기능장애의 표현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만 그것에 대해 대응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그것이 개인의문제가 아님을 깨달을 때, 마치 그것이 그 사람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대응하려는 충동이 사라진다. 에고에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의 온전한 정신을 끌어내는경우가 종종 있다. 온전한 정신이란 조건 지어진 상태와는 반대인조건 지어지지 않은 의식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뿌리 깊은 무의식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실질적인단계를 취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 경우에도 상대를 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최고의 보호 장치는 깨어 있는 의식을 갖는 일이다. 당신이 에고라는 무의식을 그 개인의 문제로 분류하면 누군가는 적이 된다. 대응하지 않는 것은 허약함이 아니라 강함이다. 대응하지 않는 것의 다른 말이 용서이다. 용서한다는 것은 눈감아 주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에고를 꿰뚫어 모든 인간 존재의 본질인 온전한 정신을 보는 것이다. - P96
다시 말해, 그 원한을 계속 살아있게 하는 생각들을 알아차리고, 그 생각들에 대한 신체적 반응인 감정을 느껴야 한다. 원한을 내려놓으려고 시도하면 안 된다. 원한은 내려놓거나 용서하려고 시도해도 성공하지 못한다. 원한이거짓 자아의식을 강화시켜 에고를 제자리에 유지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음을 당신이 보게 될 때, 용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보는 것이 곧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원수를 용서하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에고가 지배하는주된 구조 중 하나를 해체하라는 의미이다. 과거에게는 당신이 현재의 순간에 머무는 것을 막을 힘이 없다. 오직 과거에 대한 당신의 원한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면 원한이란 무엇인가? 오래된 생각과 감정의 응어리이다. - P100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만큼 에고를 더 강화시켜 주는 것은 없다. 옳다는 것은 하나의 관점, 의견, 판단, 이야기 등과 같은 정신적 입장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옳기 위해서는 당연히 틀린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에고는 옳기 위해 누군가를 틀리게 만들기를 매우 좋아한다. 바꿔 말해, 자신의 더 강한 자아의식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틀리게 만들 필요가 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상황도 불만과 반응을 통해 틀린 것으로만들 수 있다. "이런 일은 일어나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는 주장은, 잘못되거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과상황에 대해 자신을 상상 속에서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올려놓는다. 에고가 갈망하는 것이 그 우월감이며, 그것을 통해 에고는 자신을 강화시킨다. - P102
에고의 정체를 알아차려야 한다. 에고는 집단적 기능장애, 즉 인간 마음의 정신이상 증세이다. 에고의 정체를 알아차리면 더 이상그것을 누군가의 정체성으로 오인하지 않는다. 일단 에고의 정체를 알면, 그것에 반응하지 않는 것도 한결 쉬워진다. 그것을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불만을 품거나 책임을묻거나 비난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누구도 잘못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있는 에고일 뿐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증상이 심할 수 있지만 모두가 똑같은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알면 자비의 마음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에고가 지배하는 인간관계의 드라마에 더 이상기름을 붓지 않는다. 기름은 무엇인가? 대응이다. 에고는 그것을 먹고 번창한다. - P112
유명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 어려운 이유가여기에 있다. 진정한 인간관계는 이미지를 만들거나 자기를 추구하는 에고에 지배되지 않는 관계이다. 진정한 관계에는 상대방을향해 열린 깨어 있는 관심이 있으며, 그 안에는 어떤 바람도 없다. 그 깨어 있는 관심이 ‘현존‘이다. 그것은 모든 진정한 관계에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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