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눈이되 시력이 없으면 눈이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듯이, 영혼이 없어도 겉으로는 사람으로 보이겠으나 진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렇게 영혼은 인간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의 이유다. 그러나 영혼 없는 인간도 있다. - P35
인격을 상거래의 대상으로 다루며 계약과 재판과 판결이 이어지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의 코미디 《베니스 상인》(1596~1598)에서 불쑥 음악이 흐르면서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내면에 음악이 없는 자, 감미로운 음의 조화에 감동하지 못하는 자, 협잡과 음해와 노략질만 그에게 어울린다. 그런 자의 정신은 밤처럼무디고, 그런 자의 정서는 지옥처럼 캄캄하다. 그런 사람을 믿지 마라. 음악에 귀를 기울이라." 이 대사에서 음악은 예술을 뜻한다. - P37
세상의 어떤 슬픔도, 어떤 아픔도 말로 풀어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견딜 만한 일이다. 그림 (두 자매)에 흐르는 침묵. 어린 나이에고아가 되어 흩어진 두 자매가 맞닥뜨린 모진 세상.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이야말로 진짜 고통이다. 그림도 음악도 시도 영화도, 예술작품은 일상의 언어로 완벽하게옮길 수 없다. 예술은 관습 언어로 짜인 기성 논리의 차원에 머물지않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세계에 있다. 세상에는 창의성과 상상력이 나오는, 끊임없이 사유해야 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 P39
상상력과 창의성 역시 미래를 연다는 뜻의 단어다. 상상하고 창조는 일이 예술의 근본이니, 예술 또한 미래와 밀접하다. 기존 관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은 피로한 것으로때로는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20세기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마르셀 뒤상 Marcel Dutchamp(1887~1968)의 <샘> 역시 변기를예술품이라고 내놓았으니 사람들은 처음에 황당하고 모욕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비난을 도리어 예술적으로반갑게 여겼다. 예술은 혁신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이러한 거부감이 예술을 규정하는 명칭에 스며들기도 한다. 고딕gothic이라는 명칭이 그랬고, 매너리즘mannerism과 바로크 baroque도 당시사람들의 거부감이 담긴 이름이다. 예술의 고딕 양식은 중세 초로마로 밀고 들어온 북방의 고트족Goth族과는 상관없는데도 문명을 침범한 야만족과 같이 상스럽고 무례하다는 의미로 쓰인 명칭이다. 그러나 고딕 예술은 중세를 대표하는 건축과 조각뿐 아니라 회화 - P54
의 양식이며 스테인드글라스를 이용해 숭고한 표현법을 만들어냈다. 매너리즘은 지금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틀에 박했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는 어휘지만 라파엘로 NafuelloSanzio(1483~1520)와, 장에서 좀더 깊이 다룰 엘 그레코 등이 구현한 뛰어난 표현법으로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준 예술을 칭했다. 바로크는 고딕보다 더 심한 야만의 뜻으로 일그러진 진주를 가리키는 포르투갈어 바로코barocco에서 나와 기이하고 괴상한 기형을 말하지만 회화의 카라바조Caravaggio(15712~1610), 루벤스(Peter Paul Rubens(1577~1640),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리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와 헨델icorg Friedrich Hindel(1685~1759)을 포함하고 있다. 생소한 것을 야만이라고 비난하는 태도는 자신은 문명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낯선 것을 거절하며 자기 규범 안에 갇힌 모습이다. 지금 가장 인기 있는 그림들인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회화도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광인들의 미친 짓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언론에는심지어 임산부에게 위험한 그림이라는 글이 실리며 전시회를 찾는발걸음을 막았을 정도였다. 불안한 시절일수록 예술이 더 발달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이를통해 존재의 불안을 해소하고 극복하려는 희망이 예술 활동을 절실하게 원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미래를 맞는 사람들은 앞날을 미리 아는 예지를 간절히 바란다. 상상력은 미래를 연다. - P55
클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예술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의미를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새소리가 그려진 이 그림을통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청각의 시각화, 여기에는 상상력이 작동한다. 사람은 누구나 상심력을 지니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실체를 지닌 현실이라고 생기하며 산다고 해도 상상력이 구축하는 세계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한실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보이는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자연도 사람의 상상력을 통해서 인류의 삶으로 들어왔다. - P78
여기서 예술과 기술이 단순히 기교나 솜씨를 뜻하지는 않는다. 가수가 옛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부를 때 가끔 듣기 불편한 경우가있다. 편곡 재주에는 놀라면서도 덧붙인 장식이 감동보다 얕은 김을 출 때 그렇다. 원곡을 지나치게 꾸며서 노래를 부르기나 연주를하면 도리어 감정의 흐름을 흩어버린다. 꾸밈음이 거슬리는 탓인데, 지나치게 감상적인 표현이 도리어 감수성을 해치는 것이다. 예술은 치장하고 꾸미는 장식과 다르다. 드물게 장식을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데코레이션은 덧붙이로 시각적인 자극은 줄지몰라도 진정한 의미의 예술 활동을 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예술은 테크놀로지로서 사람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지만, 장식은 모자란 부분을 숨긴다. 금은보석으로 꾸며 만든 시계는시간을 알려주기보다는 장신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 화려할지는 몰라도 꾸밈은 말 그대로 미화할 뿐이다. 때로 장식은 인간을 홀려 영혼의 자유를 빼앗기까지 한다. 그러나 감춘 것은 결국은 드러나기마련이라서 어색할 따름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꾸밈과는 거리가 멀다.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꽃을 보더라도 그 아름다움은 꽃의 입장에서는 존재하기 위해 꼭필요한 모양이다. 어떠한 꽃에도 장식은 없다. 동물도 마찬가지인데, 반드시 필요한 기관이 아닌 부분은 생존을 방해하기 때문에 퇴화해버린다. 고래는 폐호흡을 하는 포유류지만 바다에서 살기 위해 앞다. 리는 지느러미로 변했고 뒷다리는 없어졌다. 하늘다람쥐는 지상의위협을 피하기 위해서 피부를 늘려 만든 비막을 날개처럼 사용한다. - P82
스페인의 안토니 가우디 Antoni Gaudi(1852~1926)는 예술과 장식의 관계를 크게 고민한 건축가였다. 건축물이 조형예술이어야 한다고 여긴가우디는 바르셀로나 건축학교를 졸업하던 해 여름, 장식에 관한 사유를 적은 메모를 작성했다.
형태가 완벽할 때, 형태는 모습 그대로 이해되기 때문에 장식이 필요없다. 장식은 독창적이지 않은 양식들, 곧 다른 데서 파생한 형식에서나중요하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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