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마 모르실 거예요, 스티븐스 씨. 그때 제가 이 집을 떠나는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했었는지. 저한텐 정말 충격적인일이었어요. 감히 말씀드리지만 제가 만약 약간이라도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벌써 오래전에 달링턴 홀에서 나갔을 거예요." - P187

떠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저기 바깥 세상에서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고 관심도 가져 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절감하고 있는 내 모습만 떠올랐어요. 그 수준이에요, 나의 고상한 원칙들을 다 합쳐 본들 그 정도밖에 안 되죠. 나 자신이 너무나 수치스러워요. 하지만 끝내 떠날 수없었어요, 스티븐스 씨.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 P188

어느 정도 자질을 갖춘 집사라면 완전하게 그리고 전적으로 자신의 역할 속에 사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마땅하다. 자신의 역할이 무슨 판토마임 의상이라도 되는 양, 아무 때고 벗어 던졌다가 다시 착용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품위를 중시하는 집사가 역할의 짐을 벗어도 무방하다고 느끼는 상황은 한 가지뿐이며 오직 그 상황에서만 가능한 밥인데 그것은 즉, 그가 온전히 홀로 있을 때이다. 따라서 여러분도 이해가 되겠지만, 내가 나 혼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입장에서는 그다지 무분별한 판단이 아니었던 그때 켄턴 양이 불쑥 들어온 사건의 경우에 원칙의 차원, 아니 품위의 차원에서 중대한 문제가 되는것은 그때 내가 완벽한 본연의 역할 속에 사는 모습이 아니었다는데 있다.
- P208

사실, ‘전환점‘이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내가 그런 순간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돌이켜 볼 때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늘날 그런 상황들을 되돌아보면 내 인생에서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들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물론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와 켄턴 양의 관계에서 엉뚱한것들을 솎아 낼 수 있는 날이, 달이, 해가, 끝없이 남아 있는 줄만 알았다. 이런저런 오해의 결과를 바로잡을 기회는 앞으로도 무한히 많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모든 꿈을 영원히 흩어 놓으리라고 생각할 근거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 P221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전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 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는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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