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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 유니버스 ㅣ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18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에 관련된 책이라는 말만 들으면 도망가기 바쁘고 어렵게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상대성 이론이라던가, 양자 역학 같은 얘기가 등장하면 ‘아, 머리 아파...’ 이런 반응이 먼저 나온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지레 겁을 먹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첫 장부터 달랐다. 작가의 아버지 시대의 이야기를 하면서 만약에 전기가 없다면? 이라는 생각을 독자가 하게 만든다.
만약 전기가 없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도 들을 수 없고, 티비도 볼 수 없고, 무엇보다 요즘 가장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인터넷도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전기 회사를 퇴직하셨다. 아버지는 지금은 환경에 대해 많이 생각하시지만 그 당시만 해도 원자력 발전소 문제라던가,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기 없이 살아보라고 해. 요즘 전기 없이 만들어지는 건 하나도 없다구.” 이러셨다. 과자를 먹을 때도 “그거 전기 없으면 못 만든다.” 이러셨다.
이 책을 읽어감에 따라 많은 과학자들이 전기를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재미난 일화들과 함께 전기는, 역시 과학은 인간에게 양날검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가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전기로 인해 전쟁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겨났고, 원자력발전소가 필요해짐에 따라 방사능오염이라는 문제가 생겨났다.
전기는 인간의 뇌에까지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얘기를 들으며 전기 없이는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아기들을 구할 수 없음을 생각했다.
이 책은 재미있다. 지식의 전달만이 목적이 아닌 재미있는 과학사, 과학의 야사를 얘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애플사의 베어 먹은 듯한 사과모양의 로고는 튜링이 자살한 당시의 상황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여기서 처음 알았다. 또한 작가는 와트를 전기 요금 고지서의 수호성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재치만점의 작가다.
그러면서 뒤에 더 깊이 알고 싶은 독자를 위해 따로 장을 마련해서 언급한 사람들의 말년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전기를 배워야 하는 학생들이 그 장을 배우기 전에 읽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재미있게 과학자들에 대해, 그들의 야사를 먼저 읽은 다음 호기심을 가지고 깊이 있게 배우면 전혀 지루해하지 않을 듯싶다.
나는 패러데이가 등장하는 장에서 즉시 패러데이의 법칙을 생각해 냈다. 물론 이건 우리 시대 주입식 교육의 성과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그 법칙이 뭔지 기억할 수는 없었다. 플레밍의 왼손법칙과 착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재미있는 책과 함께 배운다면 과학이 가장 싫어하는 분야가 아닌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분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쉽다면 이런 책이 우리나라 작가에 의해 쓰여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재미있는 책을 출판해서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리 남의 나라 작가의 재미있는 책을 읽는다 해도 한계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부디 다음번에는 우리 작가가 쓴 재미있는 과학 서적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