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 크래커스
한나 틴티 지음, 권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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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우와 퍼스리샤 하이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섬뜩함을 묘사하는 타고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 감각은 상황을 반전시키고 우리의 삶을 수수께끼로 가득 찬 것으로 묘사한다. - 타임아웃 뉴욕’ 뒤표지에 보면 이런 말이 쓰여 있고 띠지에도 언급하고 있다. 뭐, 섬뜩함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이렇게 쓰면 작가가 포우와 하이스미스의 계보를 잇는 작가로 인식될 수 있다. 그건 아니지 않나 싶은데...

 

<애니멀 크래커스>는 한남자의 절망에 대한 이야기이자 동물이 주는 메시지, 즉 경고를 알리는 작품이다. 그리고 요즘 한창 유럽을 비롯한 나라들에서 불고 있는 ‘부성애 있는 남편에게 양육권을’이라는 표제를 달고 싶은 작품이다. 불륜과 폭력이라는 것이 맞물려 부유하고 있다. 주인공과 코끼리가 등장한다. 코끼리는 기억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남자가 절대 망각할 수 없는 것을 일깨워주는...

 

<홈 스위트 홈>, <갈루스, 갈루스>은 이해하기 간단한 작품이었다. 작가가 어떤 방향으로 작품을 써야 할지 아직은 실험단계인 것 같은데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간단하고 알아듣기 쉽게 하는 게 제일 좋다. 부부의 관계와 사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일방적 헌신이나 소통하지 못하는 이들의 함께 하는 생활의 공허함이 내 일임에도 불구하고 유리창 너머 남의 일 보듯 하게 만든다. 개와 닭이라... 인간에게 복종의 상징이며 가족애에 꼭 필요한 마지막 하나의 그림인 개는 <홈 스위트 홈>에서 주인공들이 바라던 것을 이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끔 물어야 개라는 걸 알 수 있다는 듯 이기적인 인간을 보여주고 있다. <갈루스, 갈루스>에 등장하는 닭은 싸움닭으로 기사회생해서 애완닭이 되었다. 인간의 모성애에 기대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측은하다. 닭보다 못한 인간들의 모습이라니...

 

<타당한 조건들>처럼 유머러스한 면을 선보이는 것도 좋다. 기린의 단식 농성은 사실 재미있게 볼 수 없다. 인간의 무자비함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잔인함에 대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인간의 죄는 점점 늘어만 가고 자신들만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처럼 느껴진다.

 

<보존>은 아버지의 무게가 주는 중압감에 평생 시달린 여자가 예전에 자신이 바라던 것을 꿈꾸는 것이 내면에서 흘러나와 현실까지 드러나고 있다. 그것을 못 받았던 사랑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남아 있는 미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상상만이 아닌 그 이상이 있었다면 더한 공포를 전달할 수 있었는데 조금 아쉽다. 고릴라라... 그 커다란 고릴라가 부서지려 한다. 아버지 같은 고릴라가 자신의 뒤를 따라온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과거의 슬픔이 박제되어 쌓이고 그것이 커져 자신을 찾는다. 우리의 슬픔은 아마도 벽과 벽 사이에 갇힌 것 같은 암담함이리라.

 

<슬림의 마지막 비행>과 <토크 터키>, <폭력의 집>은 같이 봐야 할 것 같은 작품들이다. 현대 사회 가정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들은 무조건 감싸기, 방치, 폭력성을 비정상적으로 드러내는 아이 앞에서 무력해지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며 비틀린 그 상황들을 묘사하고 있다. <토크 터키>가 제일 신경 쓰였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지... 토끼 하나 전해주고 떠난 아버지, 칠면조와 말하며 소통하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아이, 고양이의 울음... 이 모든 것은 부제와 차별과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고민해야 하는 단편들이 이들이 아닐까 싶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이고 현재 속 미래의 걱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해의 히트맨>과 <당신 삶의 뱀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방법>, <미스 월드론의 붉은 콜로부스 원숭이>는 서로 다른 작품으로 볼 수 있지만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인생도 일방통행인 인생은 없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은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일지라도. 버팔로처럼 들이 받기만 한 남자의 짧은 인생은 정해지고 예견된 것이었다. 버팔로는 버팔로와 함께 살다 가야 한다. 뱀은 자기 안의 분노다. 자기에게, 또는 타인에게 그 분노를 참지 않고 제대로 터트리는 것은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마음에 뱀 한 마리씩 키우고 있다. 억제할 때와 드러낼 때를 알아가는 것이 어쩌면 사는 것인지도... 지금은 멸종된 붉은 콜로부스 원숭이와 지금은 멸종된 관습에 대한 이야기다. 멸종은 멸종시킨 자들의 탓이다. 지금도 깨닫지 못한 인간들에게 무슨 소용일까 싶다.

 

건조하고 메마른 동물 과자는 현대인을, 아니 비틀린 인간을 상징한다. 그것을 적셔줄 약간의 커피나 우유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이기적인 유전자 탓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더라도 목이 막히니 마실 건 더 준비해야겠다. 다음에는 좀 잘 넘어가는 과자를 구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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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학기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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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논픽션인지 알 수 없는 한 아이의 엄청난 유괴사건 속의 이야기와 그 사건을 평생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었던 작가가 자신을 유괴했던 남자가 출소해서 보낸 한 장의 편지를 받고 쓴 <잔학기>라는 소설은 역시 기리노 나츠오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열 살 때 한 남자에게 유괴되어 1년 이상 감금되었다가 풀려나게 된 게이코는 그 사건으로 자신이 이제는 결코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낀다. 그것은 현실과 분리되어버린 주변 사람들의 상상과 자신의 치유될 수 없는 상상 때문이다.

 

한 아이가 겪은 사건을 보면서 인간의 잔학성은 어디까지 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비단 이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매스컴에 나오는 사건들을 때로는 그 이면까지 집요하게 파헤치는 모습 속에서, 그것을 궁금해 하는 시청자인 내 모습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쯧쯧쯧 거렸던 것 속에 잔인한 엿보기 습성이 숨어 도사리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을 이미 알아버렸기에 게이코는 어린 나이에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부모와 의사, 경찰, 검사, 그 누구도. 그래도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가해자인 겐지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자신과 겐지 사이에서 둘을 가장 잘 이어줄 수 있는 사람은 집요하게 캐물으며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검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것은 갑옷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함을 알고 누군가에게, 그가 가해자이든, 자신을 모욕한 염탐꾼이든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닐까. 현실이 붕괴되고 밤의 꿈만으로 살아가게 되어버린 한 인간의 고통을 너무도 침착하게 보여주고 있어 그것이 더 슬프게 느껴진다.

 

이 작품은 기리노 나츠오의 기존의 작품들과는 형식적인 면에서 약간 다르게 한 명의 여성과 네 명의 남성이 등장하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피해자이면서 주인공인 게이코, 게이코의 일상 속에서 언제나 그녀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심약한 아버지, 그녀를 납치 감금한 겐지, 겐지에게서 자신을 구해줄 거라고 믿고 신처럼 기도를 했던 야타베, 잔인하게 게이코의 내면을 알아내려고 접근하는 검사 미야사카... 이들 네 명은 게이코의 인생에 현실을 없애고 상상만 남기는 커다란 역할 하나씩을 맡아 스스로 사라지기를 결심하게 될 때까지 그녀의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그녀의 사라짐은 이제 현실에 발을 디디고 싶다는 바람은 아니었을까. 그동안 살았던 세계는 하나의 허구였으니까.

 

20쪽에 이런 말이 나온다.

25전 사건. 나는 어째서 그 사건을 은폐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 더 큰 의문이 있다. 나는 어째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인가 하는 것. 그리고 겐지는 대체 어떤 인간이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게이코는 왜 그 사건을 사실 그대로 말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사실 그대로 전달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이야기로 또 한 번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라고 모든 것에 솔직하고 순진한 것은 아니다.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더 벗어나고 싶은 생각과 그곳에서 1년 넘게 살았다는 것에 스스로 자책했을 것이다. 그것을 누가 이해해줄 수 있겠는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현실에 발을 디디지 못한 그녀만의 상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살아가야 할 의미가 필요했을 테니까. 또한 그녀의 마음속에 빗장이 걸려 있던 그 사건에 대한 그녀만이 아는 사실, 혹은 진실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인지 모른다. 처음에는 현실 도피의 수단이었지만 픽션을 통해서라도 아니 마지막 작품은 가장 솔직하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을 써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피의 맹세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겐지는 어쩌면 또 다른 게이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자이지만 자꾸만 그의 어린 시절과 성장과정, 그리고 상상의 상상이 이어지면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게 만들었다. 이 부분이 가장 잔혹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십오년 동안 그녀를 따라다닌 존재의 실체를 그녀는 정말 깨닫지 못한 것일까, 아님 깨닫고 만 것일까...

 

상상은 현실을 멀리하게 만든다. 상상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상상은 자신이 가장 괴로울 때 더 발휘된다. 현실이 고통스럽지 않고 안락한 이가 상상의 방이 필요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런 상상을 하고라도 살게 만들어버린 가정과 이웃,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크다. 이 책 속 어디엔가 우리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잔학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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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7-07-26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훈훈한 리뷰에 댓글이 없다니...
'숙명' 말고 이 책을 먼저 읽기로 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서늘한 즐거움을 줄런지... 왠지 슬플 것 같은...

물만두 2007-10-10 09:48   좋아요 1 | URL
이제 보고 감사^^
 
종신검시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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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이 죽고 그 죽음에 의문점이 생기면 검시를 하게 된다. 검시란 단순히 죽은 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살인이라면 범죄자를 잡으려는 이유만으로 행하는 수사 방식의 하나일 뿐일까? 대부분의 추리소설에서의 검시관이나 법의관이 등장하면 사건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하지만 구라이시학교의 교장으로 불리며 종신검시관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검시로 그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라이시의 검시 방법을 보고 있노라면 검시는 단순한 죽은 이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이 종신검시관인 구라이시는 의사가 아닌 형사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퍼트리샤 콘웰의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와 같은 류로 생각하지 말기를 당부 드린다. 이 작품 속의 구라이시는 의사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의사보다 더 날카롭게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매듭을 살피는 역할을 하는 독특한 탐정이다.

 

<붉은 명함>, <화분의 여자>에서는 후배 검시관으로 하여금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준다. 그것은 단순히 사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야쿠자같은 외모에 날카로움이 더해지면 적어도 교장으로 모시는 선생님에 대한 예의로라도 죽은 이에 대한 마지막 예를 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을 주는 어른이, 그리고 따르려는 젊은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눈앞의 밀실>은 경찰과 신문 기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문 기자가 보는 앞에서 일어난 경찰 간부 부인의 죽음이라는 기막힌 사건 앞에서 경찰과 기자라는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가 밝혀진다.

 

<전별>은 이 단편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요코야마 히데오스러운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 단순히 추리 소설로 머물지 않고 추리 소설적 요소는 다소 2% 부족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그로인해 인간애를 102%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다 읽고 나면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는 따뜻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잔잔히 오래 남게 되는. 퇴임을 앞 둔 상사의 마지막 미스터리를 해결해주며 던지는 구라이시의 한마디는 우리에게도 누군가 꼭 해줬으면 하는 말이다. 구라이시가 있어 그는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후회 없는 끝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상사로서 이런 부하직원을 둔다는 것 또한 행복이겠지만.

 

<목소리>는 미스터리한 한 여자의 인생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모든 사건을, 모든 사람의 인생을 구라이시가 좌우할 수는 없다. 사건을 해결하거나 타살인지 자살인지 결론을 내릴 수는 있어도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것까지 알아낼 수는 없다. 인생이란 어차피 각자의 것이고 각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교장이 신은 아니니까.

 

<한밤중의 조서>는 구라이시의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구라이시의 백전백승을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의 신화를 그저 그런 사람들의 우상화정도로 여기는. 그래서 <화분의 여자>에서와 같은 의심하고 시험하려는 동료, 상사, 후배들이 생긴다. 그 점은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실책>은 구라이시가 자신이 데리고 있던 부하직원을 위해 일부러 실책을 감행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라도 부하직원에 대한 마지막 예를 다하는 모습은 책임전가와 아랫사람에게만 사고가 나면 뒤집어씌우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윗사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그가 괜히 구라이시학교의 교장이 아닌 것이다.

 

<17년 매미>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인연의 소중함과 덧없음을 함께 느끼게 된다. 누군가는 하나의 작은 인연도 소중히 간직하는 반면 누군가는 대단한 인연도 간단하게 뿌리치고 나 몰라라 할 수 있다는 것이 제목에서 16년을 기다렸다 번식을 위해 17년째 힘차게 모이는 매미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는 말은 다 어디로 가고 인내 없이 열매만 따려는 몰염치만 남았는지...

 

단편 하나에 사건이 하나일 때도 있고 여러 사건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변함없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구라이시를 통해, 이 단편들을 통해 간단한 인생의 이치를 알지 못한다면 산다는 게 참 고단할 거 같다. 옆에 구라이시 같은 어른이 없다고 해도 책 속에서나마 만나 가르침을 받았으니 나도 구라이시학교 학생이라고 말해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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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2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해도 되요. 장소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 ^.

물만두 2007-05-23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그럼 저 구라이시학교 학생할래요^^

chika 2007-05-2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사서 읽으까? ;;;;;;

물만두 2007-05-23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 내가 이작가를 편애하는 편인데 좋아!!!

moonnight 2007-05-23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로 구성된 단편집인가요? 독특하고 재밌을 거 같네요. 저도 보관함으로. ^^

물만두 2007-05-23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단편집이고 독특합니다^^
 
벌집에 키스하기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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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소설이 안 써지게 되어 버린 샘은 서점 사인회에서 베로니카라는 여자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 살던 동네 크레인스뷰에 들르게 되고 거기서 기가 막힌 소재를 찾아낸다. 그것은 자신이 어린 시절 동경하던 대상이었던 폴린의 사체를 발견하게 된 사연이다. 그녀는 살해당하고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녀를 살해한 죄를 인정하고 감옥에서 자살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경찰 서장이 된 친구가 어쩌면 범인은 따로 있을지 모른다고 얘기한다. 샘은 그 사건을 파헤치기로 한다. 그때부터 진짜 범인이 나타난 것인지 살인이 다시 시작되고 미지의 범인은 그에게 책 쓰기를 강요한다. 또한 폴린이 환생한 것은 아닌지 생각되어지는 베로니카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져서 샘은 폴린과 베로니카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게 된다.

 

제목부터가 눈길을 끈다. 벌집에 키스하기라... 벌집에 키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벌집인 줄 몰랐거나 알지만 그 안에 너무도 달콤한 꿀이 가득하다는 유혹에 져서 키스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서 벌집은 폴린을 의미한다. 도대체 어떤 여자가 벌집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벌집에 기꺼이 키스하려는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하나의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추리소설인 동시에 한 여자, 아니 두 여자의 사랑에 대한 로맨스 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한마디로 추억에 키스하기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인생에 키스하기이기도 하다.

 

지나고 나면 그 시절은 미화된다. 누구나 한가지쯤 어린 시절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그렇게 가슴속에만 간직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꺼내서 들춰내는 순간, 미화된 것의 진실 혹은 사실을 파헤치려 하는 순간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벌집을 건드린 것과 같이 끔찍한 벌에 쏘이게 된다. 물론 지난날이 그러하듯 인생 자체도 마찬가지다. 늘 살면서 지뢰를 피해 다니고 싶어 하지만 지뢰를 피했나 싶으면 벌집을 건드렸다는 걸 깨닫게 되고 따라오는 벌들을 피해 도망 다니기 급급한 것이 어쩌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른다. 러시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진실은 벌과도 같다. - 곧바로 눈을 향해 덤벼든다.’ 그러니 진실과 거짓, 추억과 현실, 사실과 환상이 난무하는 가운데 어떤 것이 내 눈을 찌를 벌인지 어떻게 알 것이며 찔린 뒤에 후회 혹은 깨달았다한 들 무슨 소용일까 싶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작가의 작품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마치 ‘지금까지의 내용은 모두 소설 속의 이야기였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허구 안에서 진실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튼 크레인스뷰 3부작에 대한 기대치가 커지고 있다.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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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7-05-2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크레인스뷰 삼부작이 궁금하던 거였는데
기대를 걸어도 좋겠군요!

물만두 2007-05-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저도 기대가 큽니다^^
 

“딸깍…….”
소리와 함께 품위 있는 요리사 네스터는 영하 30도의 칠흑 같은 냉동고에 갇히고 만다.
새벽 4시. 파티는 끝났고 손님들은 모두 떠났다. 근사한 주말 파티였고 네스터의 요리도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이 시간에 그는 인적 드문 시골 별장 냉동고에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생각해보자. 부디 생각해내자. 누가 남아 있지? 누구를 불러야 하지? 아니 누가 이 시간에 깨어 있을까? 그런데 참, 도대체 날 죽이려는 놈은 누구지?’
하지만 별장에는 사실, 온통 네스터를 경계하는 사람들뿐이다. 점잖고 위엄 있으며 위생과 청결, 순수함을 목숨보다 중요시하는 요리사지만, 사실 그는 수십 년 간 출장요리를 다니면서 무수한 사람들의 치명적인 비밀을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 중 누가 범인인가. 아르헨티나 군부와 은밀한 거래를 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방조했던 별장 주인? 여동생 남편과의 불륜으로 여동생을 자살하게 만든 고고한 귀부인? 아니면 백발의 나이에 아직도 소아성애의 욕망을 버리지 못한 존경받는 판사? 그들 중 네스터를 죽인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죽였다면 누가 왜, 그를 죽여야 했을까?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리하는 오랜만에 보는 본격추리소설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식의 추리소설이라고 할까...
자, 우리 모두 미스 마플이 되어서 추리해보자.
누가 네스터를 죽인 범인일지...
 
 
에밀 아자르, 혹은 로맹 가리 두 인물로 살았던 작가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가면은 허구와 거짓의 상징이다.
제목은 허구의 생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것 어떤 삶을 말하는 것일까?
자신이 진정 살아보려 했지만 살지 못한 삶을 말하는 건 아닐까?
작가의 독특한 삶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이곳에 들어온 자, 결코 살아서는 돌아가지 못하리라!
파리의 공동묘지, 모스크바의 핵시설...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그들은 도시의 악몽 속을 탐사하고 있다!
2006년 브램 스토커상 수상작!
불길하다.
버려진 곳을 탐험하는 크래퍼들이 결코 들여놔서는 안되는 곳에 발을 들이민다.
결과는 책임 못진다.
공포와 스릴이 혼합된 것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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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7-05-22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면의 생...궁금한데요~

hnine 2007-05-2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면의 생'은 예전에 출판되었던 책인데...다시 나오나봐요?
위의 '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한다.'는 저자가 누구인지.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영하30도면 몇분 혹은 몇시간이나 버틸수 있을까요. 밤 10시 넘어 4도 냉동실에 30분 정도 갖혀본적이 실제로 있는데 정말 오싹했답니다 추위보다 공포에...

물만두 2007-05-2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저두요.
에치나인님 나왔던 작품이군요. 저런... 정말 무서우셨겠어요. 저도 저 작품 기대하고 있습니다. 카르멘 포사다스 Carmen Posadas라는 작가 작품이라고 합니다.

액체 2007-05-30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하시다고요? 제가 근래에 <<가면의 생>>을 읽었습니다. 이왕 읽은 김에 서평을 달아보겠습니다.

물만두 2007-05-30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액체님 감사합니다^^

액체 2007-05-30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고! 정말 빠르시군요. 별말씀을요. 몇 년 만에 쓰느라 손이 다 떨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