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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피렌체 - 건축사 이야기 ㅣ 지식전람회 14
양정무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일컫는) ‘피렌체’는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브루니, 알베르티, 브루넬레스코, 도나텔로, 마사초, 기베리티, 프라 안젤리코, 미켈로초, 우첼로, 델라 프란체스카, 베노초 고촐리, 베로키오, 기를란다요, 다 빈치, 라파엘로가 활동한 그야말로 천재들의 도시였다.
당시 공화제였던 이 도시(국가)는 길드(중요한 길드 6개+중간 길드 5개+덜 중요한 길드 9개)를 기본 단위로 삼고, 건축위원회(길드나 시민들 사이에서 선출된 3~6명의 ‘오페라이’로 구성된, 일명 ‘오페라’), 시뇨리아(선별된 길드에서 선발된 ‘프리오리’로 구성된 행정부와 입법부의 최고기관, 권력의 독점을 방지하는), 권력재벌가(상공업이나 은행업으로 돈을 번 신흥 상호 부호들 = 곤디, 파치, 바르디, 페루치, 피티, 스트로치, 메치디 등의 부르주아 계층)로 체계가 잡혀, 그 구성원들이 만들어낸 제조품과 예술품과 건축물, 그리고 벌어들인 돈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시민정신으로 형성된 피렌체, 이 도시의 ‘도시 건축’에 주목한 저자는 건축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피렌체의 부의 수준, 건축 제도, 건축 인력의 구성, 건축 재료의 조달 방식, 건축 노동자의 삶을 한데 엮어낸다. 도시와 함께 르네상스가 완성되었으며, 그러한 도시들의 대표격으로 건축을 통해 도시라는 정치문화경제의 공간을 이루어낸 피렌체를 들여다본 것이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본 건 ‘피오리노’라는 금화, 권력재벌가의 재산 정도, 권력재벌가의 팔라조(도심용 대저택)와 빌라(전원용 저택), 건축 계약서, 건축 노동자들의 급여 방식과 임금 수준, <피렌체 노동자 임금의 실질구매가치 변동표>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특히 관심을 끈 건 ‘막노동꾼 니콜로의 사망 사건’에 대한 기술이었다.
<산토 스피로토 성당> 공사 일지에는 당시 건설 인부의 작업 상황을 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햇볕이 작열하던 1496년의 한여름인 7월 5일에 막노동꾼 니콜로 디 루카(Niccol’o di Luca)가 기중기에서 떨어져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 공사 현장을 책임지던 대목수가 유품을 수습하여 니콜로 부인에 전달했는데, 니콜로의 소지품에는 지갑과 고기가 들어 있는 주머니, 나무망치, 그리고 자그마한 상자가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갑에 꽤 많은 현금이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발견된 금화 5피오리노와 1리라 6데나리로의 현금은 공사판 인부가 가지고 다닐 만한 정도의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돈이 니콜로 개인의 것인지 의심하기도 했지만 결국 니콜로의 부인에게 전달됩니다. 이 사고를 통해 우리는 니콜로가 당일 아침 자기 먹을 음식과 소도구, 거기에 아마도 자신이 오랫동안 모은 비자금을 소지하고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는 것을 추측해 낼 수 있습니다.(169~170쪽)
‘건축’으로 ‘피렌체’를 읽게 한 즐거움을 안겨준 책이다. 한 주제로 도시를 읽어내는 건 좋은 기획이라는 데 공감한다.
르네상스의 예술 작품으로 가득한 피렌체에서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험”을 한 스탕탈이나 “장엄한 빛 속에서 무릎을 꿇고 감동에 떠는 침묵”의 상태에 빠져든 릴케처럼 그곳에서 한 달만 살아도 좋을 듯하다. 태양의 기운이 가득한 ‘키얀티’의 고장이기도 하니 <냉정과 열정 사이>의 준세이, 네 고장난 자전거로도 지낼 만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