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간 소식을 보고 기다리던 책이 나왔다(원저는 미리 구입했다). 판카지 미슈라의 <분노의 시대>(열린책들). ‘현재의 역사‘는 그 부제다. 저자는 인도 출신으로 현재는 영국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중인 공적 지식인이다. 아룬다티 로이와 함께 떠올리게 되는 인물. 그간에 몇 권 소개되었기에 구면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공적 지식인 중 한 명인 판카지 미슈라가 세계가 겪고 있는 위기의 숨은 역사를 파헤치는 책. 촘촘하게 얽힌 오늘날의 세계에서 편집증적 증오의 거대한 물결의 기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 총잡이들과 ISIS에서 트럼프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복수심에 불타는 민족주의에서 인종주의와 여성 혐오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증오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퍼져 나가고 있다. 판카지 미슈라는 이러한 현실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에게 그 해답을 제시한다.˝

나로선 러시아 무정부주의의 유산까지 짚고 있는 장부터 펼쳤다. 미리 구해놓은 원저를 어디에 두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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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한우리 광명지부에서는 다음 달 7월에 4회에 걸쳐서 독일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부터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까지다. 강의는 매주 목요일 오전(10시 10분-12시 10분)에 진행되며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수강문의는 02-897-1235/010-8926-5607).


로쟈와 함께 읽는 독일문학


1강 7월 05일_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2강 7월 12일_ 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



3강 7월 19일_ 헤세, <페터 카멘친트>



4강 7월 26일_ 릴케, <말테의 수기>



18.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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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부터 도스토예프스키(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문학동네)에 대한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라 석영중 교수의 <인간 만세!>(세창출판사)를 손에 들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읽기‘가 부제이기에 작품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유용하게 참고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관심은 인간 본성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적 탐구의 결정판으로 <카라마조프>를 읽으면서 그 현재적 의의를 강조하는 데 있다. 첫 장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관을 간단히 개관하고 있는데(이 주제 자체가 또 다른 한권의 책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논지에 공감한다. 다만 ‘선택하는 존재‘로 보았다는 관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지속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들은 시간 선상에서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법이 없다. 다른 작가들,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 인물들이 ‘성장‘하는 반면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선택‘을 한다˝고 주장하는데, 두 작가의 이러한 대비는 검토를 필요로 한다.

가령 톨스토이의 인물들의 ‘성장‘하는 모습은 주로 <전쟁과 평화>까지의 초기작들에 나타날 따름이다. 저자의 톨스토이론에서 강조된 대로 후기 톨스토이는 좋은 삶과 나쁜 삶이라는 양자택일적 선택지를 제시한다. 이때 좋은 삶의 선택이란 이전까지의 나쁜 삶(기만적인 삶)의 전면적인 부정이란 제스처를 취한다. 성장이냐 선택이냐라는 이분법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을 가르는 유효한 준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은 과연 성장하지 않고 선택하는가. 저자에 따르면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시간을 두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일순간 급변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비커밍‘ 범주에서 벗어난다. 또 그런 점 때문에 그들은 변증법적인 발전의 궤적을 따르지도 않는다. 정과 반이 합의 차원에서 통합되는 변증법적 상황은 도스토옙스키에게서 발견되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의 단언은 미국 연구자의 연구서(<도스토예프스키의 변증법과 죄의 문제>)에서 근거를 가져오고 있는데 나로선 동의하지 않는다. 원 저자가 변증법에 대해서 너무 나이브하게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과 반의 합이라는 건 달리 지양이라고 부르는데 그 지양은 단순한 통합이나 극복을 뜻하는 게 아니라 부정과 보존의 운동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러한 의미의 지양적 구조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다고 본다. 만약 이것이 단순한 양자택일적 선택의 문제라면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윤리적 물음에 대한 해답은 너무도 단순명료해진다. 선과 악, 구원과 파멸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되거나 축소되기 때문이다. 과연 이 양자택일적 선택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대작을 읽어야 하는 것인지.

더구나 이러한 양자택일을 선택하는 존재라는 관점은 저자가 앞서 인간을 ˝이중적이고 완결되지 않고 불합리한 존재˝라고 규정한 것과 충돌한다. 인간이 양자택일적 상황에서 ˝반드시 선택하고 결정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존재라면 그 선택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인간의 본질적 이중성과 비종결성, 불합리성이 다 해소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더 이상 인간이기를 멈추게 되는 것인가?

오히려 이러한 ‘선택하는 인간‘은 후기 톨스토이의 인간학에 더 잘 부합한다(그래서 후기 톨스토이는 예술로서의 문학창작을 부정한다).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문학에 대한 유용한 입문서를 여러 권 펴낸 노고와는 별개로 저자의 견해가 표준적인 게 아니며 이견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노파심에서 적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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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총서를 언급할 기회는 드문데 그래도 세번째 책까지 나왔으니 격려 차원에서라도 적어둔다. 인류학 고전들을 소개하고 있는 ‘황소걸음 학술총서‘다. 에드먼드 리치의 <버마 고산지대의 정치 체계>(2016)가 첫 권이었고 로이 라파포트의 <인류를 만든 의례와 종교>(2017)에 이어서 이번에 빅터 터너의 <인간 사회와 상징 행위>(2018)가 나왔다. 1년에 한권 페이스로 느리지만 묵직하고 우직하다. 말 그대로 황소걸음이다.

터너의 책은 덕분에 원저와 같이 주문했다. 이런 멍석이 아니라면 읽을 엄두를 못 냈을 책이다. 터너의 가장 유명한 책으로 <제의에서 연극으로>(두 종의 번역본이 있다)도 다시 주문했다. 의례와 종교, 문학이 다 연결되는 책이어서 일독해볼 참이다. 중년의 독서는 더 미룰 수 없는 독서라고 한번 적은 듯한데 노년의 독서란 노안과 함께하는 독서라서 기대치를 높게 잡을 수가 없다. 중년에도 이미 건강은 복병이지만 가장 성능이 좋다는 중년의 뇌로 상쇄해가면서 묵묵히 읽을 뿐이다. 황소걸음에는 황소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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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 하이라이트를 보고 나서(호날두의 스페인전 해트트릭 기사로 도배되었길래) 새로 나온 책을 검색하다가(주말의 일거리를 가늠해보다가) 피츠제럴드의 신간들에 눈길이 멎는다. 하반기에는 20세기 미국문학을 다루면서 다시 피츠제럴드를 읽을 예정이어서 반가운 출간 소식이다.

<재즈 시대의 메아리>와 <디어 개츠비>(마음산책), 두 권이 나왔는데 짐작엔 산문을 포함한 피츠제럴드의 유작들이 아닌가 싶다. 아직 책소개가 뜨지 않았다. 단편선집이 여러 종이 나와있는 상황인데, 장편 가운데 데뷔작 <낙원의 이편>(1920)과 세번째 소설 <위대한 개츠비>(1925) 사이의 두번째 소설 <아름다운 자들과 저주받은 자들>(1922)이 아직 번역되지 않은 정도다. <밤은 부드러워라>가 재번역되고 유작 <라스트 타이쿤>도 나와있으니 피츠제럴드에 관해서라면 ‘이게 다예요‘라고 말하는 게 가능하다.

아쉽다면 아직 변변한 평전이 없다는 점인데 동시대 작가로 헤밍웨이와 포크너에 견주면 부당하게 느껴진다. 한 작가의 평전이면서 재즈 시대의 초상이 될 터인데 말이다. 아, 절판된 듀오그라피로서 <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가 나와 있긴 하군. 그걸로 충분하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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