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960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내주에 연휴가 껴서 합본호로 나왔다. 다룬 책은 김용진의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개마고원, 2012). '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 대한민국의 알몸'이란 부제가 내용을 말해주며 이미 마이리스트로 만들어놓은 바 있다. 결코 행복한 독서경험은 아니었지만, '의무감'으로 읽은 책이다. 우리가 더 많이 알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저들 또한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주간경향(12. 01. 31) 위키리크스가 벗긴 대한민국의 알몸

 

“역사가에게는 꿈이고 외교관에게는 악몽이다.”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대한 영국 역사학자의 평이다. 2010년 4월 5일 미군 아파치 헬기가 아프간 민간인을 살상한 장면이 담긴 비디오를 공개함으로써 시작된 위키리크스의 충격적인 폭로는 그해 가을 미국 국무부가 해외공관과 주고받은 비밀문서 공개를 통해 절정에 도달했다. 이 외교문서 전문 25만1287건이 2011년 9월 1일까지 모두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졌다. 특정기간에 생산된 미국 외교전문에 한정된 것이라도 거의 완벽한 정보 민주화를 이뤘다는 평가다. 위키리크스가 제공한 이 ‘정보 대홍수’가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정보를 건질 수 있을까.


막상 공개는 됐지만 너무도 방대한 분량인지라 어떤 정보가 얼마만큼 공개돼 있는지 파악하는 데만도 전문가적 손길이 필요한데, KBS의 탐사보도팀장을 역임한 김용진 기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개마고원, 2012)은 미국 외교전문에 나타난 대한민국의 실상과 치부를 고스란히 까발려주는 그 탐사 보고서다. 먼저 현황이다. 위키리크스 공개문서 가운데 ‘KOREA’라는 단어가 한번이라도 들어간 문서는 모두 1만4165건이고, 주한 미대사관의 전문은 주로 2006년부터 2011년 사이에 작성된 1980건이다. 미 국무부의 부처간 정보공유 네트워크에 올라온 문서였는지라 이 1980건에 1급비밀은 들어 있지 않지만 2급비밀 123건, 3급비밀 971건이 포함돼 있다.   


이미 일부내용은 국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촛불시위 당시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이 미국대사관측에 도움을 청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 친일”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미국 쪽의 시각은 어땠을까? 2008년 2월 당시 버시바우 대사가 방한을 앞둔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는 “본능적으로 미국에 이끌리는 대통령과 행정부”란 표현이 등장한다. 다른 문서에서도 “청와대에 있는 친미 대통령”이란 문구처럼 ‘친미적인’이란 수식어가 여러 차례 나오며, 심지어는 “매우 친미적인 대통령”이라고도 지칭된다. 저자의 검색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 세계 미국 대사관에서 작성한 수십만 건의 외교전문에서 “매우 친미적인 대통령”이라고 표현된 유일한 이가 이명박이다. 외교수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최고의 대우를 받은 셈인데, 물론 이런 호의적인 평가가 근거 없이 나온 것은 아니다. 2008년 때는 쇠고기 시장을 개방했고,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의 환대를 받고 와서는 한미FTA를 날치기로 강행 처리했다. 미국으로선 “매우 친미적인 대통령”에 대한 ‘융숭한’ 대접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국의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의 친미적 태도가 혹 우리의 국익을 고려한 의도적인 전략의 산물은 아닐까. 국민으로선 나라의 위신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믿고 싶지만, 한미동맹의 파트너인 미국의 시각과 판단은 냉정하다. MB에 대한 지지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보면서 2009년 11월 스티븐스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런 전문을 보냈다. “이 대통령은 본능적으로 미국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이슈에 대해서 미국을 지지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요구를 단순히 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려 한다.” 좀 특이한가? 미국대사관의 판단도 그런 듯하다. 2008년 SMA(한미방위비분담협정)에 앞서 미국 국방장관에게 보낸 정세보고서에서는 “우리는 미국의 이익에 너무 부응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을 정치적으로 겁내는 친미 정권을 상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가 미국 입장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겉으로는 그렇게 내비치길 원하지 않으므로 그런 사정을 잘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협상 대표들이 협상장에서는 미국의 압력에 대해서 맞서는 듯한 포즈를 취하지만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쇼를 위한 것”이란 점을 미국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한미FTA 재협상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에도 한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재협상 불가’였지만 그 이면에서는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인상만 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한국 정부의 주문이었다. 이런 것이 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 ‘대한민국의 알몸’이라면 악몽은 외교관들만의 것이 아니다.

12. 01. 18.

 

 

 

P.S. 위키리크스 관련서로 더 참고하기 위해 <투명성의 시대>(샘터사, 2011)와 <위키리크스, 비밀의 종말>(북폴리오, 2011)을 더 구입했다.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프랑스의 사르코지를 지칭하는 <부자들의 대통령>(프리뷰, 2012)이 '매우 친미적인 대통령'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책이 아닌가 싶다.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2007년 프랑스와 한국에 부자들의 대통령이 탄생했다. 사르코지와 이명박. 두 사람은 후보시절 자국의 국민들에게 부자가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거쳐 간 길로 국민들을 인도해 줄지 모른다는 기대감. 그들의 삶의 맥락이 지니는 유난스런 박진감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박을 걸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한 약속 속에 주어가 분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부자였던 극소수의 사람들이 더 큰 부자가 되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상황은 심각하게 악화되어 간 것이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프랑스와 이런 쪽으로라도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 자부심을 가질 만한가?! 다시 똑같이 대선을 치르게 되는 올해 두 나라 국민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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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거실 벽면을 채울 책장이 들어와서 오후내 책정리를 하고 있다. 재작년 여름 이사올 때만 해도 모든 책을 서가에 꽂을 수 있었지만(박스에 넣어둔 책들 빼고) 그 이후에 또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지금은 방바닥에 나앉은 책이 부지기수다. 도저히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어서 남겨놓았던 벽면 공간을 마저 책장으로 채운 것인데, 대략 6개가 추가로 더 들어가는 모양새가 됐다. 그래봐야 바닥의 책들을 절반도 소화 못할 듯싶지만, 여하튼 '숨통'은 좀 트이게 됐다. 반(半)난장판인 방안에서 간식을 먹다가 데이미언 톰슨의 <책과 집>(오브제, 2011) 생각이 나 기사를 찾아 옮겨놓는다. 오늘은 '책과 집'의 날이라 원고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하긴 전투 대형을 만들어야 전투도 할 수 있는 법이니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 내게 책은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전력이다. 전투병력...

 

 

 

한겨레(12. 01. 07) 책은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이다

 

책은 일종의 그릇. 무엇을 담았는가에 따라 표지, 책등, 글꼴이 다르며 크기, 두께, 색깔, 무게가 차이난다. 책이 모이면 질서가 된다. 서가를 보면 주인의 성격과 관심사를 알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다. 어느 선을 지나면 책은 주인을 배제한 채 스스로 방향을 잡아간다. 내용을 따라 모이는가 하면 모양별로 영역을 만들고 넓혀간다.

<책과 집>은 “돈이 생기면 책을 사고, 그러고도 남으면 음식과 옷을 산다”고 했던 에라스뮈스 같은 이들을 위한 책이다. 사진 위주로 각각의 공간과 취향, 책의 양에 걸맞은 수납방식을 안내한다. 동시에 책에 대한 아름다운 문장과 책을 소개하는 책에 대한 아름다운 에세이이기도 하다. 온갖 다양한 서재와 책꽂이에 대한 안내이며 통로, 계단, 문틀 위, 창틀 사이를 어떻게 책을 위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앉은뱅이 의자, 장식장, 선반 등을 유사책장으로 바꿀 수 있는지 실제 사례를 통해 전해주는 ‘책으로 집꾸미기’ 지침서다. “책이 가구는 아니지만 그만큼 집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 책의 주제다.

지은이는 거실과 현관은 집안 분위기를 좌우하므로 책을 테마로 바꿔보라고 유혹한다. 단색 책꽂이로 큰 벽을 완전히 채우되 낮은 사다리에다 이동식 전등 등을 갖추면 더할 나위 없다. 단, 다른 벽은 최대한 비울 것. 책벽은 훌륭한 단열재, 흡음재이며 추상회화가 된다. 중요한 것은 상주하는 주인과 가구들과의 조화. 필요와 찾는 빈도에 따라 공간을 정하고 크기와 색깔에 따라 위치를 지정한다. 창, 문, 바닥재와의 조화도 고려사항. 가끔 찾아오는 이들을 위한 눈요기도 필요하다. 계단을 겸한 책꽂이나 물결, 나무 모양을 한 책꽂이는 집안의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지은이는 모양과 크기에 따라 쌓을까 꽂을까부터 결정하라고 권한다. 쌓을 경우 정기적으로 위아래를 바꿔주어야 제본이 망가지지 않는다. 어쩌다 보는 책은 스피커나 전화기 받침으로 쓰면 어떠랴. 색깔별로 정리할 때는 중간색을 중간에 두고 스펙트럼처럼 차가운 색과 따뜻한 색으로 배열하면 보기 편하다고 한다. 책등이 보이도록 하되 서체 디자인이나 그림이 멋진 책은 한두 권 정도 표지나 면지가 보이도록 진열하는 것도 센스.

아예 책의 밑이나 배가 보이도록 쌓아 보라. 가로세로 종잇결과 바랜 정도를 반영하는 채도가 조각을 보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책 한권을 찾자고 모든 책을 꺼내야 하니 강권하지는 않는다. 멋진 서재와 책장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임종업 선임기자)

 

12. 01. 17.

 

P.S. 오늘부터 '마이페이퍼 작성시 유의사항'이 뜬다. 뉴스기사 저작권에 관한 것이다. 그간에 '나의 서재 & 즐겨찾는 서재브리핑에만 노출함' 설정으로 북리뷰 기사를 스크랩해놓곤 했는데, 권고에 따라 앞으론 '인용'으로만 처리하도록 한다. '로쟈의 낚시'도 이제 일거리가 많이 없어질 듯하다. 이 참에 '로쟈의 전투'로 전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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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화제작 <도가니>도 못본 처지이긴 하지만, 새로 개봉한 영화 <부러진 화살>에 대한 호평을 연이어 접하다 보니 이번 설연휴에 시간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영화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김영진의 시네마즉설'이다.

 

 

 

한겨레(12. 01. 16) 관객 쾌감 명중시킨 ‘부러진 화살’

 

정지영 감독이 13년 만에 연출한 장편 <부러진 화살>은 영화인들 사이에 화제였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일정을 끝내고 올라오는 길에 이창동 감독, 김유진 감독, 제작자 이춘연씨를 김해공항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이구동성으로 문제작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이었다. 이 영화의 기자 시사회를 다녀온, 필자와 같은 학교의 교수이기도 한 황규덕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를 볼 때의 흥분을 느꼈다며 꼭 보라고 강권했다.

 

직접 내 눈으로 본 <부러진 화살>은 솔직히 말해 완성도가 대단히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전개는 투박하고 출연진의 연기 수준도 고르지 않으며 사건을 축조해가는 방식과 주변인물들을 그 사건에 연관 짓는 방식도 낡았다. 이를테면 주인공 김경호를 변호하는 변호인과 김경호를 취재하는 기자 사이를 선후배의 연으로 묶고 플롯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방식이 특히 그랬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관객의 마음에 강력하게 ‘한 방’ 먹이는 게 있었다. 그 한 방에는 누구도 저항하기 힘들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석궁테러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진 이 실화를 영화화하면서 주인공을 영웅화하지 않았다. 안성기가 연기하는 전 대학교수 김경호는 괴짜 수준의 인물이 아니라 속된 말로 ‘진상’으로 부를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주변에 그런 인물이 있으면 아주 피곤할,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인데, 이런 성격의 소유자가 부조리한 법정의 복판에 서자 굉장한 극적 흥분을 만들어낸다.(게다가 이것은 실화이다.) 그는 민사소송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석궁을 쏜 혐의로 형사법정에 서게 됐으면서도 법대로 하라고 판사와 검사를 몰아붙인다.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를 모두 고소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국가권력의 잘못된 전횡에 김경호가 대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배운 사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그가 타고난 유전자의 반제도적인 기운 덕분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그의 돌연변이 행동은 관객에게 쾌감을 준다. 감독은 김경호를 플롯의 주인공으로 삼았을 뿐 영웅화하진 않았는데 도저히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인물을 우리는 좋아하게 된다. 그건 이 인물에 거창한 명분을 갖다 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경호는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죄의 일부를 인정하지만, 실제로 화살을 쏘지 않은 상황에서 화살을 쐈다고 주장하는 반대편 논리의 허점을 주장하는데도 그에 관한 증거를 채택하지 않는 재판부와 검찰을 규탄한다. 캐릭터에 대한 미시적인 집중이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낸다. 캐릭터가 하도 매력적이어서 <부러진 화살>이 좀더 법정 장면에 집중하는 쪽으로 드라마를 만들어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판사 역으로 나온 문성근과 이경영의 존재감도 훌륭했다. 문성근의 유들유들하고 강고한 행동이 어떤 공격에도 상처받지 않는 기득권자들의 우월감을 생생하게 각인시킨다면, 애매한 표정과 망설임으로 일관하지만 자기 태도를 바꿀 의지는 전혀 없는 이경영의 판사 연기도 잊기 힘들 것 같다. 영화는 결국 이런 인상들의 고정점을 남겨주는 데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다. <부러진 화살>은 몇몇 이미지의 잔해를 불타는 채로 관객에게 넘겨주고 생각하게 만든다. 쓰고 보니 내가 애초 매긴 평점보다 훨씬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12. 0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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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벅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문학동네, 2012) 출간 소식을 전한 바 있지만, 책은 그냥 낱권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문총서의 하나로 출간됐다. '엑스쿨투라'가 총서의 타이틀이다. 인문학 전공자로선 이런 총서야 언제든지, 얼마든지 반길 일이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연합뉴스(12. 01. 16) 문학동네 인문총서 '엑스쿨투라' 출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두툼한 인문 서적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인문총서 '엑스쿨투라'는 문화에 대한 무거운 관념의 외투는 벗어버리고 새로운 사유가 가능한 세계로 홀가분하게 지적 여행을 떠나자는 취지에서 출판사 문학동네가 기획한 인문총서다. '엑스콜투라'는 '엑스(Ex)'와 '쿨투라(Cultura)'의 합성어. 쿨투라는 '갈아엎다' '농사짓다'를 뜻하는 라틴어로, 문화를 뜻하는 컬처(culture)의 모태가 되는 단어다.

 

문학동네는 16일 "오늘날 무한정 외연이 커진 '문화'는 다시 질문되어야 하며 기존 학계에서 놓쳤던 낯선 주제, 다가올 날을 예비했던 과거의 명저, 첨예한 논점의 최신 담론까지 다양한 저작이 있어야 한다"며 "문화의 텃밭에서 캐낸 사유, 문화의 교차로에서 찾아낸 미지의 담론으로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총서 발간 배경을 설명했다.

 

문학동네는 총서 1권 '헤겔, 아이티, 보편사'와 2권 '주크박스의 철학-히트곡'을 잇달아 펴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수전 벅모스 코넬대 교수가 쓴 '헤겔, 아이티, 보편사'는 현대 서구철학의 한 축이 된 헤겔 철학과 아이티 노예들이 일으킨 독립혁명의 연관성을 추적한다. 저자는 식민지 노예제에 대한 서구 근대의 의도된 망각을 날카롭게 파헤치면서 특히 식민지 노예제에 대한 헤겔 학계의 침묵이 헤겔 철학을 이어받은 20세기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책을 우리말로 옮긴 김성호 서울여대 교수는 "이 책은 헤겔 철학과 18세기 말의 노예 반란인 아이티 혁명의 관계, 그리고 이 혁명이 담고 있는 보편사적 의의를 다룬다"면서 "이 연결로 인해 헤겔은 물론 그의 사상에 자양분을 제공한 계몽주의 철학, 국가 아이티, 자본주의 발전사, 인류와 인류의 보편성에 관한 우리의 통념은 보기 좋게 전복된다"고 평했다.

 

'주크박스의 철학-히트곡'은 히트곡을 통해 자본주의 시대를 미학적, 철학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음악 이론가인 저자 페테르 센디는 히트곡이 생겨나는 철학적 조건과 역사적 맥락을 살피면서 히트곡의 특성과 영향을 분석한다. 고혜선·윤철기 씨가 우리말로 옮겼다.(황윤정기자)

 

12. 01. 16.

 

 

 

P.S. <헤겔, 아이티, 보편사>의 책갈피에는 열권의 근간 목록이 제시돼 있는데, 우리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저자도 있고 생소한 저자도 있다. 문화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의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 작품과 생애>와 피터 백의 <유토피아에서 묵시록으로 - SF와 파국의 정치학> 등이 눈에 띄는, 인문적 식욕을 돋구는 타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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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부터 틈틈이 공을 들이고 있는 독서분야는 인류학과 지구사 쪽이다(덧붙여 조선시대 선비와 당쟁에 관한 책들을 몰래 읽고 있다). 탈식민주의와 탈서구주의란 지향점에서 서로 만나는 분야인데, 그런 관심에서 가장 반가운 책이 이번에 나온 수전 벅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문학동네, 2012)이다.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창비, 2010)을 통해서 처음 존재를 알게 된 책이다. 출판사쪽도 비슷한 듯해서, <헤겔, 아이티, 보편사>의 역자도 지젝의 책을 옮긴 김성호 교수다. 아무튼 반가운 마음에 그제밤에 바로 주문을 넣었지만 당일배송이라던 책은 끝내 소식이 없다. '온다던 책 오지 않고'가 이런 경우다. 휴일에 손가락만 빨고 있자니 기분도 언짢아서 기사를 검색하다가 <지구사의 도전>(서해문집, 2010)의 서평에서 벅모스의 책이 언급된 걸 찾았다. 사실 <지구사의 도전>도 최근에 구입한 터라 내겐 '새책'이다. 재작년 가을의 기사를 '프레시하게' 읽으며 옮겨놓는다.   

 

 

 

한겨레21(10. 10. 08) 세계를 보는 창틀, 지구의 역사로 확대해보자

 

<지구사의 도전: 어떻게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것인가>(서해문집 펴냄)라는 책 제목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거대한 지구가 하나의 대륙에 불과한 유럽에 도전하겠다니 아이러니할 수밖에. 그러나 그 아이러니는 현실이다.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리스·로마 시대와 프랑스혁명, 영국 산업혁명 아래 수없이 쳐놓은 ‘밑줄 쫙 별표 하나’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인식하는 역사의 시공간 한가운데에는 유럽이 자리하고 있다.

 

유럽중심주의는 단순히 유럽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기록한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유럽중심주의를 “근대 세계를 구축한 시각인 동시에 담론이며 자본주의 체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식민지와 전세계에 구도적으로 강요된 출세와 부국강병의 담론이자 지식 체계”이며 “유럽의 역사가 세계 역사 발전의 보편적 방향을 표현한다는 사고”라고 설명한다. 유럽중심주의는 한국을 포함해 지금 지구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의 창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지역·인종을 넘어선 세계관

 

이 창틀은 여전히 단단하고 건재하지만, 탈유럽중심주의는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근대화 이론이 신뢰를 잃고 탈식민지에 관한 논쟁이 빠르게 퍼져나간 20세기 후반부터 있어왔고, 유럽중심주의에 관한 비판과 회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역사학자와 사회과학자 사이에서 ‘지루하다’는 평을 들을 만큼 반복돼왔다. 이 책의 큰 제목이 ‘어떻게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것인가’였다면 이 책 역시 ‘지루한’ 책으로 분류됐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유럽중심주의의 폐기와 극복에 관한 해답이 나온 것은 아니다. 학자들은 유럽중심주의가 없는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이렇다 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대안이 바로 이 책의 큰 제목인 ‘지구사’다.

 

 

책은 유럽중심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언어와 논리구조, 역사관으로서의 지구사에 대해 얘기한다.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 조지형 교수와 김용우 연구교수가 엮은 이 책은 지난 4월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가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 지구사로’라는 주제로 개최한 국제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글과 논의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거대사>(데이비드 크리스천 지음)와 <인류 최대의 재앙, 1918년 인플루엔자>(앨프리드 W. 크로스비 지음)에 이은 지구사연구소 총서의 세 번째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학술회의에 참가한 전세계 연구자 11명의 글이 차례로 실렸다. 책은 사학적 관점에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지구사에 관한 쟁점으로 시작해 지구사를 통한 새로운 역사 서술의 가능성을 엿보고, 지구사의 관점과 시선에 관한 설명으로 끝을 맺는다.

 

‘지구사’(Global History)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의 창틀을 지구 전체로 확장한 개념이다. 유럽중심주의뿐 아니라 중국중심주의, 문명의 세계사, 애국적 세계사, 근대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등 모든 ‘중심주의’가 가진 편향된 눈 대신 지구 전체를 고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눈이 지구사다. 조지형 교수는 지구사를 이렇게 정리한다. “지구사는 인류의 존재 조건으로의 지구성(Globality), 하나의 역사 단위로서의 지구, 지구적·지역적 상호연관성과 상호의존성, 역사 행위자의 지구적·지역적 층위 혹은 의미를 연구하는 것이며, 서유럽중심주의와 모더니티를 뛰어넘기 위한 방법론을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아이티 혁명을 통해 지구사와 지구사적인 관점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2년이 지난 1791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생도밍고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흑인 노예들이 일으킨 이 혁명으로 아이티라는 공화국을 세우고 정치적 독립을 이뤄낸다. 오랜 시간 동안 주류 역사에 가려져 있던 아이티 혁명은 최근 그 역사를 복원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연구가 활발하다. 아이티 혁명을 프랑스 혁명의 영향 아래 일어났다고 바라보는 시각은 대표적인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이다. 지구사적인 관점으로 이 혁명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가려진 역사의 복원뿐 아니라 그 혁명이 위치했던 담론과 네트워크를 찾아내는 일이다.

 

 

 

아이티의 노예들은 가혹했던 학대에도 당시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나들던 자유와 평등 등 인간 보편권에 관한 실천 네트워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미국 코넬대학 수잔 벅-모스 교수는 아이티 혁명에 관한 연구에서 헤겔 역시 그 네트워크에 개입했으며, 그가 아이티 혁명에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의 철학적 논의에도 아이티 혁명이 영감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자유와 평등 같은 이념이 ‘문명의 땅’ 유럽에서 ‘역사 없는 땅’으로의 일방통행이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 교류하며 상호작용했던, 그러나 유럽중심주의에 의해 잊혀지고 지워졌던 과정을 찾아내는 역사가 지구사다.

 

유력한 대안인 만큼 의문과 한계 또한 많아

 

지구사에 대한 밝은 기대와 전망에도 이 책에 ‘도전’이라는 단어가 붙은 데에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다. 지구사에 대한 논의가 출발 단계인 만큼 아직까지 지구사에 대해서는 확신보다 의문이 더 많다. 과연 역사가 개인이 지구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가, 지구사가 국가사나 지역사와 충돌하거나 갈등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럽중심주의를 피하려다 다른 중심주의에 편입되지 않을까 등 수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의문에도 여전히 지구사는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손꼽힌다.

 

그 가능성을 얘기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역사가들의 소통 네트워크다. 지구사적 관점에서의 역사 재구성은 지구 곳곳의 여러 역사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역사가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중심주의적 관점으로 사용되는 용어 대신 지구사적 관점의 용어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 역시 중요한 전제다. 이러한 전제만 충족된다면 지구사는 충분히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안인용 기자)

 

12.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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