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학 강의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다룰 차례라 연보를 보다가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은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문학상 때문에 벌써 두 작가의 이름이 나오는데(나오키 산주고는 작품보다 문학상으로 더 유명한 것 같다) 찾아보니 그런 작가들에 관심을 가질 독자들을 위한 책도 나와 있다. <일본의 문학상이 된 작가들>. 얼마나 많은 일본문학이 국내에 수용되고 있는지 알게 해준다.

에도가와 란포나 나오키 산주고나 모두 일본 장르문학의 대가로 알고 있는데, 작가적 명성만 보자면, 번역작품의 현황도 그렇고, 란포가 압도적이다. 최근에는 세계문학총서판으로도 작품집이 나왔다. <파노라마섬 기담/ 인간 의자>(문학과지성사). 히가시노 게이고를 경유하여 란포까지 손에 들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한편에는 주로 장르문학에 주어지는 상이 있고, 다른 쪽에는 정통문학상으로는 아쿠타가와상이나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등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히 사정이 그러한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오랜만에 소위 장르문학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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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문학 강의를 어제부터 다시 시작했는데(비공개 강의다) 때마침 요긴한 참고가 되는 책이 나왔다. 이광주 교수의 <독일 교양 이데올로기와 비전>(길). 문학강의에서 관심은 독일 근대문학이 영국과 프랑스의 근대문학과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인데, 그에 대한 해명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 교양 내지 교양주의 이념이다. 나는 주로 괴테 문학에서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관심이 있다. 더불어 이탈리아 여행 이후 괴테의 고전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지도 관심사다.

괴테의 고전주의를 이해하고자 할 때 포인트의 하나는 ‘질풍노도‘와의 관계 설정이다. 이번에 독문학자 로이 파스칼의 <질풍노도>(지만지)가 출간되었기에 구입했는데 흔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이 질풍노도 운동의 대표작으로 간주되지만 그 주동자들과 괴테가 정치적 견해를 같이했던 것은 아니다. 다르게 말하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 문학의 핵심이 이니다. 질풍노도기를 거쳐서 고전주의로 이행하는 것처럼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거쳐서 더 성숙한 작가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 여정을 좀더 상세하게 묘사해보는 것이 괴테와 관련하여 내가 요즘 갖고 있는 관심사다. <이탈리아 기행>과 이탈리아 여행을 계기로 완성한 드라마들(<이피게니에>와 <에그몬트> 등)이 그래서 독서거리다. 괴테에만 한정하더라도 일거리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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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진행해온 미국문학 강의를 일단락지었다(지방강의에서는 2월까지 계속되지만). 마지막 작품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였는데, 다음주부터는 '서플먼트' 강의로 더스패서스의 <맨해튼 트랜스퍼>와 리처드 라이트의 <미국의 아들>을 읽을 예정이다. 모든 강의가 끝날 때마다, 아니 매 강의가 끝날 때마다 자료나 책을 구입하여 '보충'을 하거나 다른 강의를 기획하고는 하는데, 이번 강의를 마무리하면서는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를 언젠가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분량상 엄두를 내지 못했던 작품인데, 러시아문학으로 <전쟁과 평화>와 <닥터 지바고> 같은 작품을 연거푸 강의에서 다루다 보니 미국의 대표적인 국민문학이라고 할 만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게 온당해 보인다. 



강의에서 다룬다면 선택지는 두 종의 번역본인데, 안졍효 판(열린책들)과 장왕록 판(동서문화사)이다. 



게다가 물론 빅터 플레밍의 영화로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언 리가 주연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러고 보니 헐리우드판 <전쟁과 평화>(1956)보다 상당히 앞질러 나왔던 영화다. 역으로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안나 카레니나>(1935)보다는 조금 뒤에 나온 영화이고(여배우들의 순번이 그레타 가르보-비비언 리-오드리 헵번 순인가 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언젠가 극장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단체관람이었던가?) 이후에도 TV에서 한두 번은 더 보았을 것 같다. 새삼 작품에 관심을 갖는 건 남과 북의 대립이라는 문제가 미첼의 소설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는 그런 문제에 주목하지 않았었기에 궁금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강의에서 다루게 된다면, 내친 김에 한국 대하소설들도 기회를 보아 강의에서 읽으려고 한다(<토지>나 <태백산맥>을 몇 주에 걸쳐서 다뤄야 할까?). 올해 안에 실현될지는 미지수이지만, 3년 안으로는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강의할 작품들의 목록을 늘리는 것이 나의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재산이 줄어드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 재산이라니, 이건 무슨 계산법일까?..


19.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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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2019-01-04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강의 기대합니다~~^^
마침 TV에서 지난주인가 2주에 걸쳐 방영해준걸 보았는데 강의예고를 보니 더 반갑네요..

로쟈 2019-01-04 13:57   좋아요 0 | URL
아직은 계획일 뿐이고요.~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들을 강의에서 다루다가 같이 읽게 된 작가가 에쿠니 가오리와 함께 묶여서 일본의 3대 여성작가로 불리는 야마다 에이미다. 바나나와 가오리가 ‘여자 하루키‘로 불린다면 에이미는 ‘여자 무라카미 류‘로 비교되기도 한다. 세 작가의 개성이 제각각인데, 작품집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학교 문제를 다룬 에이미의 소설들에 눈길이 간다. 특히 일본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려다 심의에서 문제가 돼 빠졌다는 ‘나는 공부를 못해‘가 인상적이다. 주인공 도키다 히데미의 모습에는 공부를 못했던 작가 에이미 자신의 모습도 투영돼 있는 듯하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작가의 탄생기이다(더불어 그녀는 그때의 담임선생을 만나보고 싶다고 적는다. ˝지금은, 나는 공부를 못해요,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텐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이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다. 물리 시험에서 두 번이나 0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물리 선생이었다.
"댁의 따님은 수업 태도도 나쁘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도 듣지 않고, 수업 중에 소설책이나 보고 있고, 방과 후에는 남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론가 갑니다.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따님처럼 자기 세계에 빠져들어 아무것도 들으려 하지 않는 학생은 나중에 작가라도 되는 게 좋을 성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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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플의 밑줄긋기를 처음 해본다. 서프라이즈! 사진이 텍스트로 이렇게 쉽게 변환되다니. 예전에(10년쯤 전에) 피디에프 파일을 한글파일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을 써본 적은 있지만 사진도 이렇게 쉽게 전환되는 줄은 몰랐다. 아무튼 밑줄긋기 해본 대목은 휘트먼의 ‘나 자신의 노래‘ 가운데 후반부 한 대목이다.

 혹시 있다 해도, 끝나는 지점에서 생명을 막으려 기다리지 않는다.
 죽음은 생명이 나타나는 순간 죽는다.

 모든 것은 앞으로 밖으로 나아가며, 꺾이는 것은 없노라.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죽음은 오히려 복된 것이로다.(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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