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겨레에 실은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지난달 말에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에 대해서 영화와 함께 강의를 진행했고 요지를 간추렸다(분량상 자세히 적지는 않았다). 내게는 법과 문학의 관계를 성찰하게끔 해주는 탁월한 사례로 읽히는 작품이다. 
















한겨레(19. 08. 02) 판사는 삶을 어디까지 인도할 수 있는가


‘법과 문학'은 대학의 교양과목으로 개설되기도 하는 주제다. 상징적 의미에서건 실제적 의미에서건 법은 우리 삶의 많은 일에 관여하며 개입한다. 동시에 우리는 법에 의해서 신분과 권리를 보장받는다. 당연하게도 법의 문제를 다룬 문학작품이 적지 않은데 최근에 읽은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이언 매큐언의 소설 <칠드런 액트>다. 수년 전에 번역돼 나왔지만 에마 톰슨 주연의 영화가 개봉되면서 뒤늦게 손에 들었다.


소설은 제목부터 법의 문제를 작심하고 다루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읽게 한다. ‘칠드런 액트'가 ‘아동법'을 뜻하기 때문인데, 여기서 ‘아동'이란 말은 18살 미만의 미성년자를 가리키기에 우리식으로는 ‘아동청소년법'에 해당한다. 작가는 아동법의 핵심 조항을 제사(題詞)로 삼았다. “아동의 양육과 관련한 사안을 판단할 때 (…) 법정은 아동의 복지를 무엇보다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핵심은 ‘아동의 복지'에 있다. 그 복지를 최우선적 가치로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동법의 목적이고 역할이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국 고등법원의 판사 피오나 메이는 아동법의 대역이고 화신이다. 법정에서 그녀의 판결은 곧바로 구속력을 갖는다. 그녀는 가정사의 온갖 법적 분쟁을 조정하는데, 이는 부모의 의사에 반해서 샴쌍둥이 분리수술을 명령하는 일도 포함한다. 독실한 신자인 부모는 두 아이 모두 죽게 놔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피오나는 비록 한 아이를 죽이는 것이 될지라도 자생능력이 있는 다른 아이를 살리는 것이 차악의 선택이라고 본다. 아동의 복지를 우선 고려한다는 아동법에 따른 판단이다.


공인으로서 피오나는 유능한 판사이고 그녀의 유려한 판결문에 대해서는 대법원장도 경탄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경력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피오나는 아이들을 갖지 않았고 오랜 기간 신뢰해온 남편과 관계도 소홀하게 된다. 급기야는 대학교수인 남편이 피오나의 무관심을 지적하며 공개적인 외도를 선언하고 집을 나간다. 가정이 위기에 봉착했지만 피오나는 또 다른 긴급한 재판에 내몰린다. 백혈병 환자인 한 청년이 종교적 신앙을 이유로 수혈을 거부해서, 병원이 강제치료를 허용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피오나는 이례적으로 직접 병원을 찾아가 청년과 대화를 나누고 갓 바이올린을 배운 그의 연주에 맞춰 노래까지 부른다(영화에서는 바이올린이 기타로 바뀌었다). 이후에 피오나는 청년이 부모와 교회는 물론 그 자신으로부터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결한다. 그의 존엄성보다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근거에서다.


판결에 따라 청년은 강제수혈을 받고서 생명을 건진다.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진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청년은 은인인 피오나를 마치 신처럼 숭배한다. 자신이 쓴 시와 일기를 편지로 보내고 애정을 고백한다. 예순의 문턱에 있는 피오나로서는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행동이다. 발단은 피오나가 이례적으로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법원은 미성년자의 수혈거부에 대해서 병원 편에 선다. 피오나가 병원에 가보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같은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즉 피오나의 행동은 일시적으로 법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며 최소한 청년은 그렇게 받아들인다. 결국 둘의 이야기는 슬픈 결말로 이어진다.


아동법이 아동의 복지를 고려한다지만 그 복지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청년에게 새 삶을 살도록 해주었지만 피오나는 그의 삶을 어디까지 더 인도할 수 있는가. 작가 매큐언이 문학의 이름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19.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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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이륙할 때 시도 이륙하는가
시의 언어는 이제 공중의 언어
바퀴가 끌리는 소리로 나는 알았다
때로는 이륙을 거부하는 말들도 있다는 것을

나는 공중의 시를 완성해야 한다
두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자세로 앉아
이 순간이 아니면 가 닿을 수 없는 세계를
공중의 언어로 노래해야 한다

안전벨트를 매고 부르는 무언의 노래
공중의 모든 것은 기류가 결정한다
기체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조성을 바꾼다
기체와 함께 흔들리는 음표들도 익숙한 표정이다

공중의 시는 구름 위에서 쓰는 시
어떤 작시법에 따라야 할지 나는 배우지 못했다
등받이 인쇄물 비치용 칸에는
기내 면세품 예약주문서가 비치돼 있을 뿐

프로스트라면 아직 수천 마일을 더 가야 한다고 했을까
아직은 어둠이 내리기 전
하지만 지연 출발한 비행기는 야경을 내려다보며
활주로 조명등의 착륙 안내를 받을 것이다

공중의 삶은 짧은 생애
수천 마일의 거리도 이제는 수 시간의 비행
수십 년을 살았지만 한순간이었다
이륙에 전혀 지장이 없는 세월의 무게

공중의 시는 무거운 마음으로 쓸 수 없는 시
공중의 언어는 쓰라림을 알지 못한다
공중에서는 스낵만 제공된다
비상구 좌석 뒷자리도 예외는 아니다

지상의 노래가 가 닿을 수 없던 세계는
공중의 시로도 미치지 못한다
저 대기권 바깥으로 나가는 자는 누구인가
공중의 언어로도 붙잡을 수 없는 마음이여

아직 착륙까지는 두 시간
나는 마음을 비운다
공중의 시는 허공의 시
텅빈 마음으로 구름을 가로지르는 시

아직 수 마일을 더 가야 하지만
나는 이미 수천 마일을 지나왔다
두 발이 땅에 닿으면 나는 마저 수 마일을 걸어가리라
때로는 착륙을 거부하는 말들도 있다는 것을 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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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8-0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십 년의 세월은 한순간인라할만큼
이륙에도 지장이 없는 무게건만
한발 들어 올리기도 벅찬 하루에 붙박힌 자에게
공중의 시는
너무 멀리 있네요.

로쟈 2019-08-06 08:55   좋아요 0 | URL
저도 공중에서만 쓸 수 있는, 쓸 생각이 든.~
 

나는 반항아가 되지 못했지
반항아라고 불리지 못했어
말을 타지도 말을 길들이지도 못했네
타고나는 건지도 모르지
열여섯 살이면 집을 떠나야 하는 건지도

나는 전화부스를 부수지도 
자동차 지붕에 올라가지도 못했어
강남대로를 막히게 하지도 않았지
텍사스 출신이 아니었던 거지
나는 얌전한 아이였지
열여섯 살에도 나는 학교에 다녔네

나는 황야를 달려보지 못했어
황야는 어디에 있었을까
텍사스 사막이 아니면 태평양 한가운데?
타고난 반항아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타고난 카우보이는 어디에 숨었을까

모하도 레베르소
나는 반항아가 되지 못했어
나는 숨죽인 말이었지
나는 얌전한 시를 쓴다네
나는 아직도 집으로 돌아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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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8-0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타는 반항아만 있는건 아니지요.
그 시절 법도 의술도 아닌 말(문학 그것도 러시아문학)을 다루겠다고
하는 반항아?도 있었겠지요.ㅎ

로쟈 2019-08-05 23:49   좋아요 0 | URL
소심형.^^
 

괌에서의 마지막날 일정은 아침을 먹고 버스투어를 하는 것이었다. 어제 하려던 일이 인원이 차서 마뤼졌는데 오늘도 아침에는 비가 흩뿌려서 수륙양용 버스는 바다로의 입수가 불허되었다(일본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코스라 한국인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중년의 중국인 커플이 껴 있는 정도였다). 괌의 해변도로를 따라가면서 몇몇 명소를 소개받는 것 정도에서 의미를 찾았는데, 간략한 괌의 역사를 헤드폰을 통해 듣다가 생각난 책이 에릭 울프의 <유럽과 역사 없는 사람들>(뿌리와이파리)이다.

바로 생각난 건 아니고 ‘역사 없는 민족‘을 검색하다가 뜨지 않아서 시간이 좀 걸렸다. 부제가 ‘인류학과 정치경제학으로 본 세계사 1400-1980‘. 제목에서의 대비가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는 책이다. ‘유럽‘ 대 ‘역사 없는 사람들‘. 세계문학, 특히 근대세계문학을 강의하면서 자연스레 ‘(근대)문학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치게 되었고 겸사겸사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다시 보니 품절 상태. 거실 책장에 꽂혀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만약 없다면 낭패스런 일이다.

근대세계 형성사에 관한 지배적인 서사들이 있다. 얼른 떠오르는 건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글항아리)와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21세기북스) 같은 책들이다(물론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도 이 범주에 속한다). 근대란 무엇이고 근대화란 필연적 과정인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근대문학에 대한 해명도 가능하다. 이 주제에 대해 강의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지만 좀더 체계적인 설명을 책으로 써봐야겠다. 감정과 피로감에 시달리지만 않는다면 가능할 텐데, 장담할 수 없는 일이군...

이제 곧 체크아웃을 하고 점심을 먹으면 공항으로 향할 예정이다. 비는 그친 상태고 바다는 내내 같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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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괌은 계속 비. 아침에 제법 내리던 비가 조금 잦아들고 있는데 대략 세 시간 간격으로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는 모양이다. 이곳 우기의 전형적인 날씨 패턴인듯(오래전 기억에 모스크바의 봄날씨가 그랬다. 봄비가 자주 내렸다가 그첬다가). 날씨와 현지사정으로 미리 계획한(내가 계획한 건 아니고) 일정을 계속 변경하고 있는데, 오늘의 일정은 수영이라고 한다. 딱히 내키는 일은 아니어서 나는 먼저 책을 보다가 내려가기로 했다.

오늘 읽을 책이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이다. 강의준비차 다시 읽는 것인데, 사실 나보코프의 소설들 가운데 여러번 읽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이기도 하다. 시와 주석을 왔다갔다하는 과정이 독서의 경로라면 이론적으로는 무한에 가까운 경로의 독서가 가능한 것이 <창백한 불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독서가 장소의존성을 갖는 것은 아니어서 한국에서 읽는 것과 괌에서 읽는 것이 차이날 이유는 없다. 시칠리아에서 읽는 것과 뉴욕에서 읽는 일이 별차이가 없을 것처럼.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날이 개는 중이다. 괌의 와이키키로 불린다는 투몬비치의 전경을 내려다보면서 눈길을 침대 하얀 시트 위에 놓인 <창백한 불꽃>으로 돌린다. 이제 보니 지난봄(4월초)에 강연회를 갖기도 했다. 4개월 만에 다시 손에 드는 셈인데 장소가 괌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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