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도구상자는 그 분야의 간략한 역사서술과 용어사전이다(새로운 역사서술은 새로운 용어를 요구하며, 새로운 용어는 새로은 시각의 역사서술을 요청한다). 미술사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겠다. 물론 현장에서 미술을 '실천'하는 아티스트들의 경우에 이러한 개념적 도구들까지 직접 챙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걸 필요로 하는 건 비평가나 관람자들이다. 혹은 미술 텍스트의 일반 독자들이다.

 

 

 

 

시야를 좀 좁혀서 20세기 현대미술에 대해 이해해보려고 한다면 역시나 필요한 건 이 시기 미술사에 대한 개관이고, 그걸 서술하기 위해 동원되는 개념들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한 필요에 부응하는 책이 새로 출간됐다. <새로운 미술사를 위한 비평용어31>(아트북스, 2006)이 그것이다. 원제는 <미술사를 위한 비평용어들(Critical Terms for Art History, Second Edition)>(2003)이니까 말 그대로 '비평용어사전'이며, 국역본 표제로 보아 그게 31가지인 모양이다. 743쪽의 두께이니까 일단은 듬직하다. 빼먹은 것 없이 다루겠구나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니까.

아직 언론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지라, 알라딘이 소개를 옮겨오면, "'기호'에서 '아방가르드', '몸', '미', '예술의 사회사'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주요 용어 31개를 상세히 분석했다. 재현, 기호, 이미지, 시뮬라크룸, 양식, 문맥, 전용, 몸, 젠더, 미, 추, 응시, 정체성, 시각문화 등 미술사 비평용어에 관해 씌어진 31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공저자의 한 사람인 로버트 S. 넬슨은 "2006년 현재 시카고 대학의 미술사 및 문화사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돼 있는데, 확인해보니 작년에 예일대학교로 자리를 옮겨서 미술사 석좌교수직을 맡고 있다. 시카고나 예일이나 여하튼 명문대학의 미술사 강좌를 엿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이 제공해준다는 의미도 된다.

책의 특징? "미술이론을 비롯 다른 분야에서도 빈번하게 인용되는 비평용어들을 새로운 방향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예컨대 '재현'을 기술하고자 하는 경우, 시각예술에서 논의되는 미학적이고도 예술적인 담론뿐만 아니라 철학적, 인식론적, 존재론적 담론들을 포괄하여 표상, 관념, 존재, 의미, 상징, 기호 등과 연관시켜 설명하는 식이다. 20세기말부터 21세기 초까지 해당 용어에 관한 개략적이고도 세부적인 논의의 역사도 함께 설명한다." 하니, 미술사나 미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필독서가 될 만하다(게임의 규칙을 알아야 게임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적어도 두어 번은 통독해야겠다.


아직 번역본의 실물은 보지 못했지만(역자의 전력상 신뢰할 만한 번역인지에 대해서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원서는 이런 모양새이다. 2003년에 나온 2판인데, "초판(1996)에는 22편의 에세이가 실렸고, 제2판(2003)에는 새로운 미술사의 학문 추세를 반영한 9편이 추가되었다. 추가된 에세이에서는 양식, 퍼포먼스, 정체성, 몸, 기억과 기념비 등의 내용을 다룬다."고 한다. 2판을 찍었다는 건 교재로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는 뜻도 되겠다. 이 분야의 전문가나 미술비평가들의 리뷰를 읽고 싶지만, 당장 눈에 띄지 않기에 자리나 데우는 페이퍼를 미리 써둔다.
 
06.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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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다 2006-08-07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역자의 전력 때문에 기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우려를 저버리지 않았을 듯 합니다. 아직 실물을 보지 못했지만...

로쟈 2006-08-07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업상' 주문은 해놓았는데, 걱정이네요.^^

주니다 2006-08-0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실물을 대충 훑어봤는데, 역자가 대학원생 혹은 졸업생들과 나눠서 번역을 했더군요. 그나마 다행인 듯 싶습니다. 이거 어떻게 된게 학생들보다 못한 선생들 걱정을 해야하니 원...

로쟈 2006-08-0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레쯤 책을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도서관에서 초판을 대출해왔는데, 대조해봐서 번역이 양호하면 다행이고 아니면 2판을 아마존에서 주문해야겠지요. 이중과세...
 

경향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21세기. 고전읽기'에서 이번주에 다룬 것은 작가 최명희(1947-1998)의 <혼불>(한길사)이다. 흔히 박경리의 <토지>에 비견되기도 하지만 문학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대하 장편소설에 지극히 취약한지라 내가 작품을 읽게 될 날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작품에 대한 '상식' 정도는 알아두는 게 자신의 혼을 불살라 작품을 쓴 한 작가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경향신문(06. 08. 05) “제 앞길, 제 혼불로 밝히라” 말한다

-일제 강점기, 종부(宗婦) 3대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다양한 사랑과 욕망의 드라마를 담고 있는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은 여러모로 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적 성망은 낮지 않으나 완독한 독자를 만나기 쉽지 않고, 문장의 호흡이 독자로 하여금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하는 반면 서사의 진행은 한없이 지루하다.

-그런 면에서 <혼불>은 처음부터 ‘사랑’의 대상이었다기보다 ‘경외 어린 소문’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일평생 작가가 독신으로 <혼불> 집필에만 매달렸다는 사실, 혼불 10권 발간 직후 안타깝게 들려온 투병 소식으로부터 사몰(死沒)에 이르기까지…. ‘혼불’은 책의 제목인 동시에 한 예술가의 목숨의 불로 여겨졌다.



-<혼불>은 이미 25년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하지만 <혼불>이 각광을 받은 것은 길게 잡아야 10년 남짓이다. 이를 부박한 독서 풍토 탓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주목을 받지 못하는 데에도, 새삼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1980년대와 90년대의 경계, 혹은 20세기와 21세기의 경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5·18과 6·10 등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88 올림픽과 2002 월드컵 사이의 간극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시기, 즉 격심한 이행기에 비로소 ‘혼불’은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 원인을 단순히 ‘현재는 불안정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니 과거를 돌아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 이 같은 평가는 <장길산>이나 <토지> 같은 역동적인 서사 작품에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작가 최명희는 만년필로 원고지에 ‘혼불’을 써내려갔다. 그의 글쓰기는 “원고지에 글씨를 써넣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끌로 피를 묻혀가며 새겨넣는 작업”(시인 고은)이었다.

-10권 작품의 말미까지 끊임없이 언급되는 청암부인은 3권 초입에 이미 널길에 들어섰는데도 다시 나타나고 또 나타난다. <혼불> 마니아층에게마저 악명 높은(?) ‘사천왕’ 대목은 또 어떤가. 마치 전향적(前向的) 시간관에 역행하려는 사명이라도 타고 난 것처럼, ‘혼불’은 반복과 지연의 서사 전략을 고집하고 있다. 남원에서 시작된 강모의 방황은 전주에서도, 만주에서도 변함없이 계속된다.

-작품 초기에 효원이 보여줬던 역동성은 청암부인의 ‘혼불’을 흡습(吸襲)하는 순간부터 마치 과부하에 걸린 것처럼 둔중해진다. 강실이는 그야말로 동구 밖으로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춘복이의 ‘변동천하’ 역시 당시 시대상을 표상할 뿐, 작품 내의 서사 동력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불>은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이 되었을까?

-그동안 많이 지적된 원인으로는 <혼불>에서 보여주는 유려한 문체나 심도 있고 다채로운 민속학적 고증을 들 수 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고 했던 생전 작가의 말처럼, 최명희는 ‘아슴찬’ 모국어 사랑을 실천한 작가였다. 일부 지역 사람들에게는 생소하던 단어 ‘혼불’을 국어사전에 등재하게끔 만든 일이나, 밤과 새벽 사이 그 희뿌연 시간을 표현할 만한 단어 ‘삭연하다’를 찾기 위해 사흘 밤낮 꼼짝도 않고 먼 산바래기만 했다는 일화, 그리고 전주 ‘최명희 문학관’에 가면 직접 볼 수 있는 그 꼼꼼한 수공(手工)의 흔적들…. 민속학적 고증 또한 마찬가지이다. <혼불>을 텍스트로 하여 조선의 복식을 연구한 박사 논문이 나올 만큼 작가 최명희는 고증에 철두철미했다.



-하지만 필자 생각에 <혼불>이 감동을 이끈 요인은 다른 데 있다. “나 홀로 내 뼈를 일으켜 세우리라.” 이는 작품 속에서 청암부인이 몇 번씩이고 되뇌는 말이다. 종부로서의 의무감만으로 청암부인이 어찌 청상의 재 같은 세월을 견딜 수 있었겠는가. 같은 처지인 인월댁과 옹구네를 보면 이는 보다 확연해진다. 무위와 자기 소모, 어두운 열정이 불러오는 파괴성….

-결국 ‘나’는 내가 만든다. 나를 끌어올리는 것도, 내동댕이치는 것도 바로 ‘나’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삶은 어렵다. 누군가 얼만큼 내 몫의 짐을 대신 부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 허망하지만 그게 인지상정이다. 독자들이 ‘혼불’을 통해 읽는 것은 바로 청암부인, 인월댁, 강모, 강실, 강호, 강태, 오유끼, 옹구네, 춘복, 비오리, 백단이의 ‘삶’이다. 그 사람의 욕망이, 사랑이 자신을 수렁에 빠트리기도 하고, 자신을 도약시키기도 한다. 그야말로 내가 내 뼈를 세우고 내 살을 깎는다.

-결국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남의 생이 궁금하다. <혼불>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대개의 소설에서는 인물의 성격이 선조(線條)적으로 변화한다. 이를테면 인물의 변화와 사건의 진행이 일치되는 경우다. <혼불>은 이와 같은 소설 공식에 반한다. 오직 각 개인의 ‘혼불’에만 무섭도록 집중한다. 자신의 불을 다스리는 사람, 휘황한 불기에 그만 넋이 빠진 사람, 자신의 심화로 자신을 태우는 사람….

-나는 지금 어디 있고, 어디로 가는가. “앞길이 어둡거든 내 안의 불을 보라.” <혼불>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요즘과 같은 폭염에 더 새겨둘 만하다. 이열치열의 혼!). 정말 중요한 충고란 것이 대개는 가장 평범한 원칙을 재삼 일깨워주는 것이다.(김병용|소설가·전주교대 겸임교수)

06.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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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8-0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이번에 확인해보니 그렇더군요. 일시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출판사의 '혼불'에 기대를 걸어봐야겠네요...
 

개인적으로 판타지 문학에 별다른 흥미를 갖고 있지 않다. 사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이담(the marvellous)', 즉 초자연적/마술적인 이야기들에 별로 끌리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판타지(환상문학)에 대한 시학을 최초로 정립한 토도로프에 따르면, 환상(the fantasy)은 초자연적 논리에 근거한 경이담과 자연적/현실적 논리에 근거한 기괴담(the uncanny) 사이에 놓이며, 거기서 긴가민가 망설이게 하는 이야기들을 가리킨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도스토예프스키가 격찬한 바 있는, 푸슈킨의 <스페이드 여왕>이다. 하지만, 근래에 '판타지'란 말은 용례상 경이담을 포함하는 듯하며, 거기서 더 나아가 경이담과 동일시되는 듯하다(가령 대표적인 판타지 <반지의 제왕>의 이야기들을 누가 '현실'과 혼동하겠는가?). 그런 판타지를 즐기기에는 현실 자체가 너무 판타스틱한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어슐러 르 귄의 판타지 소설 <어스시 전집>(황금가지, 2006)이 출간된 것은 반갑다. 특별히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소위 '세계 3대 판타지 대작'이 모두 완역되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이른바 비로소 짝이 다 맞게 된 것 아닌가. 그리고 그런 게 옆에서 보기에도 좋은 법이다. 당장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지만, 판타지 컬렉션이라도 차릴 수 있을지 모르고 요즘 <오즈의 마법사>를 읽는 딸아이가 '나니아'나 '어시스'를 찾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해서, 미리 손을 써두도록 한다. 어스시 시리즈와 곧 개봉될 영화에 대한 소개 기사들을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6. 08. 04) 어스시 시리즈, 마법 통해 자아 찾는 성장소설

-팬터지 소설인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는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들 작품과 함께 세계 3대 팬터지 대작으로 꼽히는 <어스시> 전집도 마찬가지다. 미국 여성작가 어슐러 르 귄은 이 작품을 청소년용으로 썼지만, 어른들도 함께 열광했다.



 

 

 

-어스시는 용들이 살아 숨쉬고 마법이 일상생활인 환상의 세계로, 푸른 바다와 수많은 섬들로 이뤄져 있다. 이번에 국내에 번역된 어스시 시리즈는 총 6권 중 4권이다. 나머지 2권도 다음달에 출간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곧 개봉될 일본 애니메이션 <게드 전기: 어스시의 전설>의 원작인 이 시리즈는 팬터지인 동시에 주인공이 마법을 통해 자아를 찾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이다. 제1권 ‘어스시의 마법사’, 제2권 ‘아투안의 무덤’, 제3권 ‘머나먼 바닷가’, 제4권 ‘테하누’로 구성됐다.

 

 

 



-1권은 마법 능력을 가진 주인공 ‘게드’가 실수로 불러낸 그림 자 괴물과 쫓고 쫓기면서 괴물의 이름을 알아낸다는 내용이다. 어스시에서는 등장인물의 고유한 이름을 알아내면 지배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괴물은 게드의 악한 본성을 상징한다.

-2권에서 소녀 ‘테나’는 어스시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 3권에서 어스시 세계를 지탱하던 마법이 효과가 없어지자 소년 왕자 ‘아렌’과 이제는 나이가 든 현자(賢者) 게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게드는 해답 대신 아렌을 죽음의 세계로 인도하고, 아렌은 이 과정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낸다.

-제4권에서 어린 시절 모험을 떠났던 르 알비의 절벽으로 돌아온 게드는 늙은 데다가 마법의 힘을 잃어버린 상태다. 자신의 첫 스승 ‘오지언’의 집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 만났던 테나와 재회하고, 테나와 함께 온 화상 입은 아이 ‘테루’와도 만나 치유와 회복에 힘을 다한다. 사악한 마법사의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을 통해 젊음과 힘을 잃어버린 이들이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어스시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거대한 환상의 세계를 창조했던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의 힘에 근원한 마법을 설정했다는 점이다. 어스시에서 독창적으로 시도된 ‘언령(言靈)마법’은 이후 수많은 팬터지 작품에 전해졌다.

-이 작품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주인공 게드가 백인이 아 니라 갈색 피부를 가진 유색인이라는 점이다. 서양 팬터지의 주 인공이라면 흔히 백인을 연상하는 국내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장재선 기자) 

경향신문(06. 08. 04) 미야자키 VS 스필버그 ‘이름값 승부’

-스티븐 스필버그의 명성을 등에 업은 ‘몬스터 하우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광을 입은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이 오는 10일 나란히 개봉한다. ‘몬스터…’는 스필버그 외에 로버트 제메키스, ‘스튜어트 리틀’의 제작자 제이슨 클라크 등 4명의 제작지휘자가 이름을 올린 여름방학용 기획 애니메이션으로 길 캐넌 감독의 데뷔작이다. ‘게드전기…’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장남인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데뷔작으로 동양사상의 향취가 물씬한 작품이다.
 


-하야오 감독 장남 데뷔작… ‘동양적 세계관’ 물씬-

-‘게드전기’는 판타지 소설의 고전인 어슐러 K 르귄 원작의 ‘어스시의 마법사’ 중 3, 4편을 영상화했다. 이것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숙원사업이었다는 점만 떠올려도 작품 속 세계관을 예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노장사상을 출발점으로 한 동양적 가치가 중용의 미덕, 물아일체, 음양의 균형, 자연과 인간세계의 현명한 조화 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작품 곳곳에 새겨져 있다.

-악의 기운이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태동하고, 역병이 번지고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인간세계. 자신 안의 또다른 자아로 인해 국왕인 아버지를 살해한 아렌 왕자는 궁을 떠나 방랑길에 오른다. 대현자(大賢者) 마법사인 하이타카는 아렌과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난다.
 
 
 
 
 
 
 
 

-‘게드전기’의 시나리오는 원작의 신화적 상상력이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타일에 맞게끔 꽤 적절히 가공된 듯 보인다. 이미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지브리표 작품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는 관객이라면, 화면의 역동성이나 동양적 가치의 미술적 구현 등의 여러 측면에서 실망감을 얻게 된다.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풍부한 상징의 캐릭터들, 긴장감과 여유로움의 절묘한 조화 등 하야오 감독의 전작들이 보여줬던 미덕을 고로 감독은 보여주지 못한 채 아버지의 작품세계를 계승하려 애쓰는 데에 그치고 있다.
 


-스필버그 제작 참여… 화려한 액션 스펙터클 볼만-

-‘몬스터 하우스’는 ‘폴라 익스프레스’를 제작·감독한 로버트 제메키스의 솜씨가 그대로 이어진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앞마당에 뭔가가 떨어지기만 하면 집어삼켜버리는 괴물 같은 집. 어른들이 보면 움직이지 않고 어린이들 눈에만 살아움직이는 게 보이는 기괴한 집과 맞서 한바탕 대결을 벌이는 어린이들의 모험을 속도감 있게 그렸다. 액션 스펙터클의 압도력이 다름 아닌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실력임을 화면으로 증명하고 있는 ‘몬스터…’는 어린이 관객들의 눈을 고정시키는 힘만큼은 부치지 않아보인다.

-‘게드전기’의 문제가 연출력에 있다면 ‘몬스터…’의 문제는 세계관에서 드러난다. 자유롭게 사는 히피 청년들이 몹쓸 존재, 따라해서는 안되는 어른으로 묘사되면서 설교를 늘어놓는가 하면 ‘어린이는 어린이가 꾸는 꿈을 꾸며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라’는 미국적 보수성을 드러내는 엔딩은 보기에 거슬린다. ‘포레스트 검프’ ‘폴라 익스프레스’에서 드러낸 제메키스식 보수주의의 연장이다. 롯데시네마의 전국 11개 상영점, CJ CGV의 전국 6개 상영점에서는 ‘몬스터…’ 상영관에 3D입체상영 시스템을 도입, 전용 안경을 착용하고 보는 3차원 입체영상으로도 상영할 계획이다.
 
06.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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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책으로 폴 블룸의 <데카르트의 아기>(소소, 2006)는 아마도 '데카르트'란 단어가 표제에 들어간 책들 가운데서는 가장 귀여운, 그리고 가장 읽기 편한 책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가장 실용적인 책일 것도 같다(특히나 새로이 육아의 세계에 뛰어든/걸려든 엄마/아빠에게라면. 육아용품과 함께 선물해봄 직하다). '아기한테 인간의 본성을 묻다'가 부제이니까 사실 제목에서 방점은 '데카르트'가 아니라 '아기'에게 찍혀 있으며 아기 인형이 박혀 있는 표지는 그걸 웅변한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현암사, 1997) 정도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에 관해서는 두 편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6. 08. 04) 종교·도덕·예술의 관념은 유아 시절부터 갖게 된다

-책은 유아를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인간 고유의 특성인 예술과 유머, 믿음, 혐오, 윤리 등에 대해 일반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결과를 제시한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입장을 오가며 아기의 행동을 발달심리학의 입장에서 탐구한 내용을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이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발달심리학과 인지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아이들은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배우는가>로 미국출판협회 우수도서상과 미국심리학회가 ‘발달심리학 분야 최고의 책’에 주는 엘리너 매코비상을 받은 바 있다(*그럼 왜 그 책이 먼저 소개되지 않은 건지?).



-원래 저자의 전공인 발달심리학은 자연적인 본능을 간직한 유아 가 어떻게 해서 문화적인 존재로 서서히 변모해 가는가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진화론적인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화론과 창조론의 입장을 떠나 ‘왜 진짜 예술품이 가짜보다 더 가치 있는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는 광경 을 보면 왜 박수를 치며 깔깔 거릴까’, ‘아이들이 사후의 세계를 믿는 건 언제부터인가’ 등 인간 고유 본성에 대한 질문에 저자가 제시하는 해답은 독자들의 흥미를 돋운다. 창조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창조주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존재는 아니라 할지라도 상당히 어린 나이에 신과 도덕, 예술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가령 아이들은 생후 1~2년 동안은 혐오감을 느끼지 못하다가 생 후 3년이 지나면서 배변훈련을 통해 이를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일종의 오염에서 혐오감을 느낀다. 또 음식을 가려서 먹는 것,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만을 고집하는 것, 여행 갔을 때 새로운 음식 앞에서 주저하는 우리의 모습은 이미 아이 때부터 시작된다. 생후 4년이 될 무렵에는 더욱 까다로워져 혐오 음식에 대해 어른과 상당히 비슷한 직관을 지니게 된다.

-아이들에게 우연히 제작된 이미지와 의도를 가지고 제작된 이미 지를 보여줬을 때, 의도를 갖고 만든 이미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데서 아이들도 창작자의 의도를 예술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체의 소멸은 받아들이면서도 영혼은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후 세계에 대한 개념도 아주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마이티 베이비!). 인간이 경험하는 직관과는 반대되는 특성을 지니는 신의 존재도 아이들은 잘 받아들인다.

-심리학은 물론, 시와 소설, 영화, 미술, 신화, 종교, 철학 등의 분야를 종횡무진 누비며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간 존재 를 탐색하는 무거운 주제를 전혀 딱딱하지 않게 전달하는 저자의 글솜씨가 돋보인다.(최영창 기자)

서울신문(06. 08. 05) 동심을 통해 인간본성을 보다

-사람들은 흔히 인간 존재가 처음부터 모든 동물들에 비해 특별히 탁월하다고 믿고, 성인이 아이들에 비해 특별히 탁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특별히 탁월한 것이 가장 정상적이라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은 이러한 믿음을 뿌리에서부터 흔들면서 붕괴시킨다. 인간이란 원시 생물체에서부터 환경과의 충돌에 의거해 지난하게 진화해 온 결과이고, 따라서 다른 동물들에 비해 특정할지는 몰라도 무조건 특별히 탁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 진화론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화론의 주장을 검토할 수 있는 묘한 학문 영역이 있다. 발달심리학이 그것이다. 발달 심리학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유아들의 행동과 그 속에 스며 있는 의식·무의식을 탐색함으로써 성인들의 세계에서 발휘되는 언어생활, 각종 지성적인 활동, 예술 작업, 종교 활동 등의 원시적인 형태들을 추적한다.

-<데카르트의 아기>는 진화론을 바탕으로 발달 심리학의 이러한 과제들을 일반 대중들이 실감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쓴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블룸은 현재 예일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다. 그는 미국심리학회에서 ‘발달심리학의 최고의 책’으로 선정한 <아이들은 낱말들의 의미를 어떻게 배우는가>라는 책을 쓴 학자다.

-유아들은 이미 물질적인 존재와 비물질적인 존재를 구분할 줄 안다. 여기에서부터 정신 혹은 영혼의 관념이 생겨난다. 유아들은 원본과 복사본을 구분할 줄 안다. 여기에서 예술적인 가치가 발생한다. 유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공감을 느낀다. 여기에서 도덕심과 도덕이 발생하고 확대된다. 유아들은 혐오스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안다. 여기에서 동정심이 발생한다. 유아들은 자연적인 세계와 인위적인 세계를 구분할 줄 안다. 여기에서부터 신성한 존재를 믿는 종교가 발생한다. 유아들은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암암리에 구분한다. 여기에서 웃음과 유머가 발생한다. 블룸이 이 책을 통해 내리는 결론들이다.

-블룸은 유아들의 행동과 의식에 관한 갖가지 예화와 사실들을, 심리학 분야는 물론이고 시, 소설, 영화, 미술, 신화, 종교, 철학 등의 각종 교양 영역과 연결해서 이러한 결론을 내린다. 블룸이 책 제목에 ‘데카르트’를 삽입했다고 해서 그가 물질·정신 이원론이나 원리상 물질과 분리된 영혼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물질·정신 이원론 혹은 독자적인 영혼의 존재는 인간의 특정한 삶의 방식에서 진화론적으로 발생되어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블룸이 드러내 보이는 유아들의 세계는 대단히 매혹적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인간 존재의 특성들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발생적인 기원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블룸의 문체는 결코 딱딱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을 일단 읽기 시작하면 특별히 긴급한 일이 없는 한 좀처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그런가 하면, 책을 읽는 과정에서 문득 자신이 평소 인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가를 깨닫게 되고, 자신 혹은 나아가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자연스러운 기초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다만 한 가지 부연할 것은 이러한 블룸의 작업은 발생론적인 신경과학 연구와 결합될 때 더욱 더 빛을 발할 것이라는 사실이다.(조광제 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

06. 08. 05.

 

 

 

 

P.S. 소개해놓고 보니까 블룸의 책이나 브록만의 책이나 오늘 품을 거든 교양과학서들이 모두 소소출판사에 출간된 것이다. 이전에 <시냅스와 자아>란 책을 소개한 기억이 나는데, <데카르트의 아이>는 'new humanist classic'의 6번째 책으로 돼 있는데, 나머지 다섯 권의 면면을 한번 더 들여다보기로 한다(재출간된 <언어본능> 정도가 관심을 끌었을까. 부피와 품에 비해서 대개 소홀하게 대접받고 있는 책들이다). <거짓말쟁이, 연인, 그리고 영웅>이 새로 눈길을 끄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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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2-17 11:31 
    육아 관련서는 관심도서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지만, 지능이나 언어발달 쪽이라면 약간 사정이 다르다. <아이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교양인, 2010)란 신간에 눈길이 가는 이유인데, "영유아 언어 발달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발달심리학자 골린코프와 허시-파섹이 함께 쓴, 초기 언어 발달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이론서이자 실용서"라고 소개되는 책이다. 스티븐 핑커의 추천사는 이렇다. "이 책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 탁

지난주 러시아 관련 기사들 중 눈에 띈 것을 옮겨둔다. 러시아의 유명인사들이 유럽 언론에 대해서 '변화하는 러시아'에 대한 '공정한 보도'를 호소했다는 내용이다.  

문화일보(06. 08. 04) “왜 러시아 변화상 제대로 전달 않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3일 “외국 매스미디어에 보내는 호소”라는 광고가 실렸다. 광고를 실은 이들은 옛 소련과 러시아의 학계와 문화예술계, 스포츠분야 유명인사들 이다. 이들은 신문 지면 4분의1을 차지하는 광고에서 서구 언론들의 ‘반(反) 러시아 보도’를 비판하며 민주화와 경제회복을 비롯한 러시아의 변화상을 제대로 전달해줄 것을 호소했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외국 네티즌들과의 대화 에 나서는 등 러시아 정부가 국가홍보를 강화하고 있는 것과 맞 물려, 명사들의 이례적인 광고가 눈길을 끌고 있다.

-호소문에 서명한 사람은 옛 소련 시절 세계체스챔피언으로 유니세프 홍보대사를 지낸 아나톨리 카르포프, 저명한 경제학자 니콜라이 페트라코프, 러시아 인민예술가인 유명 지휘자 알렉산데르 라자레프, 공훈배우 알렉세이 구스코프 등 10명이다. 옛 소련 붕괴 뒤 마피아적 기업가와 관료들이 설치는 러시아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페트라코프(사진)가 이번에는 러시아를 옹호하는 광고에 이름을 올려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최근 러시아를 범죄와 부패,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이 기승하는 나라로 묘사하는 서방 언론들의 보도가 늘고 있다”며 “그들은 러시아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뿐 아 니라 러시아에 대한 외국인들의 투자까지 막으려고 한다”고 주 장했다. “서방은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정한 변화들을 보려 하지 않는다. 민주화는 이제 러시아에서 멈출 수 없는 대세가 됐고, 시장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러시아 기업들은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러시아가 태어날 것이다.”

-러시아 지식인들이 서방에 보내는 메시지라고도 볼 수 있는 이 글은 또 ‘러시아적 민주화’에 서구인들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에 거부감을 표하면서 문화적 다원성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호소문은 “국제정치 무대로 돌아온 러시아는 민주화를 추진하되 전통적 가치와 결합시키려 애쓰고 있다”면서 “어느 나라든, 어느 민족이든 자기네 삶을 자기네 전통과 경험에 따라 창조적으로 꾸려갈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도 개방과 협력을 원하는데 왜 선진국들은 우리의 과거를 들먹이며 우리의 현재를 비판하느냐”면서 “철의 장막이나 냉전 같은 것을 잘 모르는 신세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스스 로 선택할 수 있고 자유로운 러시아의 미래가 될 새로운 세대에 게 ‘세계를 암흑의 러시아로부터 보호해야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흘러들어간다는 것은 당혹스럽다”고 토로했다. 호소문은 서방에 “냉전시절의 클리셰(상투어)에서 벗어나 객관 적으로 러시아를 바라볼 것”을 촉구하면서, “열린 대화 속에 러시아와 서방의 새로운 관계가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으로 끝 을 맺었다.(구정은 기자)

06.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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