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판타지 문학에 별다른 흥미를 갖고 있지 않다. 사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이담(the marvellous)', 즉 초자연적/마술적인 이야기들에 별로 끌리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판타지(환상문학)에 대한 시학을 최초로 정립한 토도로프에 따르면, 환상(the fantasy)은 초자연적 논리에 근거한 경이담과 자연적/현실적 논리에 근거한 기괴담(the uncanny) 사이에 놓이며, 거기서 긴가민가 망설이게 하는 이야기들을 가리킨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도스토예프스키가 격찬한 바 있는, 푸슈킨의 <스페이드 여왕>이다. 하지만, 근래에 '판타지'란 말은 용례상 경이담을 포함하는 듯하며, 거기서 더 나아가 경이담과 동일시되는 듯하다(가령 대표적인 판타지 <반지의 제왕>의 이야기들을 누가 '현실'과 혼동하겠는가?). 그런 판타지를 즐기기에는 현실 자체가 너무 판타스틱한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어슐러 르 귄의 판타지 소설 <어스시 전집>(황금가지, 2006)이 출간된 것은 반갑다. 특별히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소위 '세계 3대 판타지 대작'이 모두 완역되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이른바 비로소 짝이 다 맞게 된 것 아닌가. 그리고 그런 게 옆에서 보기에도 좋은 법이다. 당장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지만, 판타지 컬렉션이라도 차릴 수 있을지 모르고 요즘 <오즈의 마법사>를 읽는 딸아이가 '나니아'나 '어시스'를 찾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해서, 미리 손을 써두도록 한다. 어스시 시리즈와 곧 개봉될 영화에 대한 소개 기사들을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6. 08. 04) 어스시 시리즈, 마법 통해 자아 찾는 성장소설

-팬터지 소설인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는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들 작품과 함께 세계 3대 팬터지 대작으로 꼽히는 <어스시> 전집도 마찬가지다. 미국 여성작가 어슐러 르 귄은 이 작품을 청소년용으로 썼지만, 어른들도 함께 열광했다.



 

 

 

-어스시는 용들이 살아 숨쉬고 마법이 일상생활인 환상의 세계로, 푸른 바다와 수많은 섬들로 이뤄져 있다. 이번에 국내에 번역된 어스시 시리즈는 총 6권 중 4권이다. 나머지 2권도 다음달에 출간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곧 개봉될 일본 애니메이션 <게드 전기: 어스시의 전설>의 원작인 이 시리즈는 팬터지인 동시에 주인공이 마법을 통해 자아를 찾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이다. 제1권 ‘어스시의 마법사’, 제2권 ‘아투안의 무덤’, 제3권 ‘머나먼 바닷가’, 제4권 ‘테하누’로 구성됐다.

 

 

 



-1권은 마법 능력을 가진 주인공 ‘게드’가 실수로 불러낸 그림 자 괴물과 쫓고 쫓기면서 괴물의 이름을 알아낸다는 내용이다. 어스시에서는 등장인물의 고유한 이름을 알아내면 지배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괴물은 게드의 악한 본성을 상징한다.

-2권에서 소녀 ‘테나’는 어스시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 3권에서 어스시 세계를 지탱하던 마법이 효과가 없어지자 소년 왕자 ‘아렌’과 이제는 나이가 든 현자(賢者) 게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게드는 해답 대신 아렌을 죽음의 세계로 인도하고, 아렌은 이 과정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낸다.

-제4권에서 어린 시절 모험을 떠났던 르 알비의 절벽으로 돌아온 게드는 늙은 데다가 마법의 힘을 잃어버린 상태다. 자신의 첫 스승 ‘오지언’의 집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 만났던 테나와 재회하고, 테나와 함께 온 화상 입은 아이 ‘테루’와도 만나 치유와 회복에 힘을 다한다. 사악한 마법사의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을 통해 젊음과 힘을 잃어버린 이들이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어스시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거대한 환상의 세계를 창조했던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의 힘에 근원한 마법을 설정했다는 점이다. 어스시에서 독창적으로 시도된 ‘언령(言靈)마법’은 이후 수많은 팬터지 작품에 전해졌다.

-이 작품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주인공 게드가 백인이 아 니라 갈색 피부를 가진 유색인이라는 점이다. 서양 팬터지의 주 인공이라면 흔히 백인을 연상하는 국내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장재선 기자) 

경향신문(06. 08. 04) 미야자키 VS 스필버그 ‘이름값 승부’

-스티븐 스필버그의 명성을 등에 업은 ‘몬스터 하우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광을 입은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이 오는 10일 나란히 개봉한다. ‘몬스터…’는 스필버그 외에 로버트 제메키스, ‘스튜어트 리틀’의 제작자 제이슨 클라크 등 4명의 제작지휘자가 이름을 올린 여름방학용 기획 애니메이션으로 길 캐넌 감독의 데뷔작이다. ‘게드전기…’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장남인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데뷔작으로 동양사상의 향취가 물씬한 작품이다.
 


-하야오 감독 장남 데뷔작… ‘동양적 세계관’ 물씬-

-‘게드전기’는 판타지 소설의 고전인 어슐러 K 르귄 원작의 ‘어스시의 마법사’ 중 3, 4편을 영상화했다. 이것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숙원사업이었다는 점만 떠올려도 작품 속 세계관을 예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노장사상을 출발점으로 한 동양적 가치가 중용의 미덕, 물아일체, 음양의 균형, 자연과 인간세계의 현명한 조화 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작품 곳곳에 새겨져 있다.

-악의 기운이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태동하고, 역병이 번지고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인간세계. 자신 안의 또다른 자아로 인해 국왕인 아버지를 살해한 아렌 왕자는 궁을 떠나 방랑길에 오른다. 대현자(大賢者) 마법사인 하이타카는 아렌과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난다.
 
 
 
 
 
 
 
 

-‘게드전기’의 시나리오는 원작의 신화적 상상력이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타일에 맞게끔 꽤 적절히 가공된 듯 보인다. 이미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지브리표 작품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는 관객이라면, 화면의 역동성이나 동양적 가치의 미술적 구현 등의 여러 측면에서 실망감을 얻게 된다.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풍부한 상징의 캐릭터들, 긴장감과 여유로움의 절묘한 조화 등 하야오 감독의 전작들이 보여줬던 미덕을 고로 감독은 보여주지 못한 채 아버지의 작품세계를 계승하려 애쓰는 데에 그치고 있다.
 


-스필버그 제작 참여… 화려한 액션 스펙터클 볼만-

-‘몬스터 하우스’는 ‘폴라 익스프레스’를 제작·감독한 로버트 제메키스의 솜씨가 그대로 이어진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앞마당에 뭔가가 떨어지기만 하면 집어삼켜버리는 괴물 같은 집. 어른들이 보면 움직이지 않고 어린이들 눈에만 살아움직이는 게 보이는 기괴한 집과 맞서 한바탕 대결을 벌이는 어린이들의 모험을 속도감 있게 그렸다. 액션 스펙터클의 압도력이 다름 아닌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실력임을 화면으로 증명하고 있는 ‘몬스터…’는 어린이 관객들의 눈을 고정시키는 힘만큼은 부치지 않아보인다.

-‘게드전기’의 문제가 연출력에 있다면 ‘몬스터…’의 문제는 세계관에서 드러난다. 자유롭게 사는 히피 청년들이 몹쓸 존재, 따라해서는 안되는 어른으로 묘사되면서 설교를 늘어놓는가 하면 ‘어린이는 어린이가 꾸는 꿈을 꾸며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라’는 미국적 보수성을 드러내는 엔딩은 보기에 거슬린다. ‘포레스트 검프’ ‘폴라 익스프레스’에서 드러낸 제메키스식 보수주의의 연장이다. 롯데시네마의 전국 11개 상영점, CJ CGV의 전국 6개 상영점에서는 ‘몬스터…’ 상영관에 3D입체상영 시스템을 도입, 전용 안경을 착용하고 보는 3차원 입체영상으로도 상영할 계획이다.
 
06.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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