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과 칸트를 다룬 <실재의 윤리>(도서출판b, 2004)와 독창적인 니체론 <정오의 그림자>(도서출판b, 2005)로 우리에게도 소개된 슬로베니아의 여성 철학자 알렌카 주판치치의 베르그송론을 옮겨놓는다(출처는 http://www.cinestatic.com/infinitethought/2006/03/zupancic-lecture.asp.) 보다 정확하게는 강연내용의 정리이다. 지난 봄(06. 03. 06) 강연으로 돼 있는데, 베르그송의 <웃음>을 다루고 있다. 이 <웃음>(1900)은 종로서적판(1989)과 세계사판(1992)로 두 차례 번역/출간된 바 있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모두 품절상태인 듯하다. 베르그송 입문서로 가장 얇은, 그렇기에/하지만 가장 쉬운/좋은 책이다.



Alenka Zupancic on Bergson and the Comic, March 2nd 2006

Bergson's "formula" of the comic, namely 'something mechanical encrusted on the living' gives a clear indication of the division at the heart of his conception of comedy: the separation of life (flexible, elastic, light, novel) and the machinic (the automated, the repetitious, the inert, the rigid). Zupancic began with this phrase, arguing that this division formed the core of all the other dyads in Bergson. I argued in questions that it was perhaps rather the opposition soul/matter that was more fundamental, and that any Lacanian re-reading of the comic through a perversely redemptive reading of Bergson's concepts such as 'life' would be in danger of falling into more or less the same theologically 'redemptive' structure as in Bergson's original argument:



(Long quote from Bergson's essay) 'Our starting-point is again "something mechanical encrusted upon the living." Where did the comic come from in this case? It came from the fact that the living body became rigid, like a machine. Accordingly, it seemed to us that the living body ought to be the perfection of suppleness, the ever-alert activity of a principle always at work. But this activity would really belong to the soul rather than to the body. It would be the very flame of life, kindled within us by a higher principle and perceived through the body, as if through a glass. When we see only gracefulness and suppleness in the living body, it is because we disregard in it the elements of weight, of resistance, and, in a word, of matter; we forget its materiality and think only of its vitality, a vitality which we regard as derived from the very principle of intellectual and moral life, Let us suppose, however, that our attention is drawn to this material side of the body; that, so far from sharing in the lightness and subtlety of the principle with which it is animated, the body is no more in our eyes than a heavy and cumbersome vesture, a kind of irksome ballast which holds down to earth a soul eager to rise aloft.'

Anyway, Zupancic pointed to a fundamental weakness in Bergson's formula that, whilst seemingly specific, is nevertheless too general - in a different vein, the same formula of the 'mechanical encrusted on the living' could easily be applied to the uncanny, for example, the living dead, for example, do they not precisely demonstrate this comedic formula, only in a horrific mode? Are zombies funny? Sometimes...



Bergson's further argument that laughter serves as a 'social corrective' simultaneously reduces the affirmatory elements of comedy (as Hegel argues) to mere forms of scorn and mockery. (Just a banal consequence of Bergson's empirically-driven social conservatism, I would argue, not to mention his ridiculous racism (from 'On Laughter', again): 'why does one laugh at a negro?...I rather fancy the correct answer was suggested to me one day in the street by an ordinary cabby, who applied the expression "unwashed" to the negro fare he was driving. Unwashed! Does not this mean that a black face, in our imagination, is one daubed over with ink or soot? If so, then a red nose can only be one which has received a coating of vermilion. And so we see that the notion of disguise has passed on something of its comic quality to instances in which there is actually no disguise, though there might be').

Bergson overlooks, she argued, the possibility that this formula could instead be the retroactive (and reactionary) effect of comedy itself - alternatively put, is not the mechanical rather constitutive of life itself? If we remove the mechanical do we really get pure liveliness/spirit? No! Life is already an imitation of life - repetition (in language/personality) does not persist purely on one side (the 'bad', heavy side) of the comedic/non-comedic division. Comedy plays not with the mechanism/life opposition, Zupancic continued, but with the inconsistency of the one (as subject) - the fact that the two elements identified by Bergson function in fact 'in a most intimate bond', rather than a disjunctive one, and that it is ultimately impossible to separate the two terms because of the 'insistence' of the one qua (incomplete) subject - traversed by language, not prey to the discrepancies between the spirit and the letter, exactly, but rather the way in which the spirit emerges out of the mechanical letter...slips of the tongue, the way language itself is productive of thought...

Zupancic quoted Groucho Marx (Driftwood) and Mrs Claypool from Night of the Opera so as to demonstrate the effect of comic imitation at the very heart of 'personality':

'That woman?
Do you know why I sat with her?

Because she reminded me of you.

- Really?
- Of course.

That's why I'm here with you,
because you remind me of you.

Your eyes, your throat, your lips...
Everything about you reminds me of you...

except you.'




Is the mechanical thus an essential feature of life, rather than its comedic antonym? Zupancic briefly turned to a discussion of 'drive' in Lacan, though this was (unfortunately) not really cashed out. Questions drew upon the relationship between Freud and Bergson (and why it was that the former's book on jokes was so unfunny), what the relationship between life and theatre was, if we are already 'playing' at life, so to speak. Also, didn't we also need to understand what the temporality of laughter was in order to understand comedy (comic timing, etc.); what were the cultural/historical dimensions of mechanism, and didn't we really need to be aware of them in order to put Bergson's claims about machines etc. into context?

Zupancic concluded that we needed to read Bergson's own examples against him: to examine the real structure at work in them and show how vivacity emerges, not against, but from within repetition.

06. 08. 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문 인터뷰어란 직업이 생겨난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명함에 '인터뷰어'라고 돼 있을까?) 인터뷰집이 책으로 출간된 건 오래되지 않아 보인다. '대담집'이 아닌 '인터뷰집'이란 타이틀을 건 책들 말이다. 그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이로 단연 첫손가락에 꼽아야 하는 이가 지승호씨일 것이다. 비록 그의 책들을 두루 읽어보지 않았지만 주변의 소문이 그러하다.

 

 

 

 

그가 처음 낸 책은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인물과사상사, 2002)인데, 이후로 그는 (단독 단행본만 따져서) 거의 매년 두 권 꼴로 우리 사회의 비판적 지식인들, 예술가들과의 인터뷰집을 내왔다. 내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인물과사상사, 2003)의 출간 때부터이지만, '전문 인터뷰어'란 말이 아직은 생소하던 때였다. 나는 그 책을 미처 다 읽기 전에 이듬해 러시아로 떠났었고, 되돌아와서는 구내서점에서 2,000원에 할인판매하길래 '이런 좋은 책이!' 하며 또 사들었다(물론 10분도 되지 않아서 이전에 사둔 걸 기억해냈지만).

 

 

 

 

'당신이 없는 사이에' 그는 <우리가 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도 좋은가>(시와사회, 2003)와 <마주치다 눈뜨다>(그린비, 2004)를 출간했다. 아마도 인터뷰의 노하우를 터특한 때문인지 이듬해에는 <유시민을 만나다>(북라인, 2005)와 그의 '베스트'라는 <7인 7색>(북라인, 2005)을 연거푸 출간했다. 그리고 이번에 낸 것이 한국영화를 이끌어 가고 있는 영화감독 7인과의 인터뷰집 <감독, 열정을 말하다>(수다, 2006)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지만, 이 책은 지승호의 책이면서 동시에 한국영화의 책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인터뷰집들과는 구별될 수도 있다.

 

 

 

 

한국영화감독과의 단행본 인터뷰로 내가 기억하는 것은 정성일이 기획한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현실문화연구, 2003)과 몇 꼭지의 인터뷰를 포함하고 있는 자료집 성격의 감독론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행복한책읽기, 2003) 정도이다(품절중인 이 책을 오늘 동네 CGV에 <괴물>을 보러갔다가 백화점 구내서점에서 구입했다). 거기에 내가 읽은 책을 보태자면 이효인의 <한국의 영화감독 13인>(열린책들, 1994)와 김정룡의 <우리 영화의 미학>(문학과지성사, 1997) 정도가 한국의 영화감독들을 다룬 책들이다. 사실 내가 <감독, 열정을 말하다>를 손에 든다면 지승호의 인터뷰집이라서가 아니라 그러한 독서의 맥락에서이다.

책이 나온 건 몇 주 된 거로 아는데, 의외로 본격적인 리뷰들이 언론에 실리지 않았다. 지난주에 나온 두 개의 리뷰가 너무 소략해서 데일리서프의 저자 인터뷰까지 옮겨놓기로 한다.  

동아일보(06. 08. 12) 인생 흥행을 말하는 감독들

-“난 김기덕이 부러운데….” 영화 <괴물>로 요즘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말이다. 대한민국 최고 흥행사로 부러움을 사는 봉 감독이 흥행 실패로 한국을 떠나려 하는 김기덕 감독이 부럽다고 한다. 이유는? 김기덕은 자본의 눈치 안 보고 영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오늘 <괴물>을 보고 나오면서 든 생각인데, 사실 한국영화에서 '한강'을 본격적으로 다룬 건 김기덕의 데뷔작 <악어>(1996)가 처음 아니었나? 나는 <괴물>에 대한 독해는 그런 연장선상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성일의 <괴물>론을 곧 읽어봐야겠다).

-여기 우리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7인의 솔직한 이야기가 있다. 김지운, 류승완, 변영주, 봉준호, 윤제균, 장준환, 조명남. 한국 영화계에서 자기만의 색깔로 유명한 감독들이 자신의 영화철학에 대해 ‘까놓고’ 말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한 사회담론적인 얘기부터 연봉 200만 원으로 공사판 막노동까지 해야 했던 에피소드까지 영화라는 주제 아래 이야기는 종횡무진 달려간다.

스포츠서울(06. 08. 11) 인터뷰집 '감독, 열정을 말하다'

-<괴물>의 봉준호, <달콤한 인생>의 김지운, <짝패>의 류승완. 영화팬들에게 영화 자체나, 영화속 스타 못지않게 궁금증의 대상이 되는 인기 감독들을 조금 더 촘촘히 만날 수 있는 인터뷰집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만난 신(scene)인류라는 소제목이 붙은 <감독, 열정을 말하다>(수다). 지면이나 매체의 지향성 등에 따라 신문에서 보기 힘든 감독의 가치관이나 영화관 등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만날 수 있는게 이 책의 매력이다.

-지승호가 만난 7인은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을 비롯해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발레교습소>의 변영주, <간 큰 가족>의 조명남, <두사부일체1>의 윤제균 감독 등이다. 카페에서 감독의 집에서 장시간에 걸쳐 인터뷰는 ‘7인7색’등에서 보여준 인터뷰어의 치밀함을 바탕으로 밀도높게 이뤄졌다. 인터뷰어는 최근의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에 대해, 만들었거나 만드는 중인, 혹은 만들 작품에 대해, 감독 데뷔전 영화광을 거쳐 연출부이던 시절에 대해, 제작사나 투자자 그리고 스태프와의 관계 등에 대해 끈질기게 파고들었고 인터뷰에 응한 감독들은 때로 격렬하게, 때로 열정적으로 속내를 드러내며 진솔하게 답했다. FTA와 관련된 묵직한 대화가 있다면 감독들간의 친분이나 배우들과의 얘기 등 가벼워서 더 귀가 솔깃한 ‘수다’도 실렸다.

-책 중 가장 많은 페이지를 차지한 감독은 <괴물> 제작중 시간을 냈던 봉준호. “인간이 모이면 사회이고, 국가이고, 그것을 종적으로 놓으면 역사가 될 텐데, 그런 것에 다가가고 싶은 거죠. 저한테는 그게 영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대목에서는 <괴물> <살인의 추억> 등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봉준호 영화의 바탕이 느껴진다(*봉준호는 상업영화의 틀내에서 어떻게 가장 노골적인 반미영화가 가능한가를 보여주었다. 그는 '영화운동'에 대해서 다시 질문하게 한다).

-“살면서 아름다운 것을 보며 좋아진 것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렇다면 나도 이 세상에 어떤 아름다운 것을 하나 남겨두고 가야 되지 않겠느냐”는 김지운 감독이나 “제 목표는 꾸준하게 다른 데 많이 휘둘리지 않고 솔직한 영화를 꾸준히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장준환 감독의 소박한 바람에서(*<괴물>보다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지구를 지켜라>는 왜 흥행에 참패했을까?) 한국 영화에 대한 희망이 새삼 읽히기도 한다.(성정은 기자)

데일리서프(06. 07. 31) 지승호 “노빠라면 한미FTA-스크린쿼터 반대해야한다”

-인터뷰 전문기자를 인터뷰한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의 인터뷰가 잡힌 후 준비하면 준비할수록 부담은 커져갔다. ‘오히려 내가 인터뷰를 당하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예전에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인터뷰할 때 예외없이 노트북을 이용해 상대방의 말을 곧바로 받아쳤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노트북 없이 녹음기를 사용해봤다. 다행히 지 씨는 인터뷰를 진행한 한 시간 반 동안 하나를 질문하면 열을 대답해주는 세심함으로 기자의 근심을 덜어줬다.

-김지운, 류승완, 변영주, 봉준호, 윤제균, 장준환, 조명남 등 7명의 감독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감독, 열정을 말하다’라는 자신의 9번째 저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터뷰집을 갓 출간한 그를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앞에서 만났다.

-책은 잘 팔리나. 새 책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 대해 소개해 달라.

“아주 안 나가는 편은 아닌데 아직 이쪽 분야에서 책 내서 먹고 살기는 힘들다. 다른 직업이 있어야 한다. 대중문화에서 음악이 많이 죽은 것에 비해 한국영화가 많이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책은 젊은 감독을 통해 한국영화의 흐름을 살펴보고, 그들이 살아온 삶을 통해 한국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감독 한 명 한 명이 어떤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또 그걸 읽고 나면 한국영화가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새 책이 영화감독, 문화에 대한 얘기이지만 사람들이 책을 덮었을 때 철학책같이 느껴지기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지 씨는 이어 인터뷰를 책으로 내는 것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풍토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인문학이란 게 사람에 대한 학문이니까 동시대 사람의 얘기를 듣고 글로 남기는 것만큼 인문학적인 게 어디 있나. 그런데 대부분의 무언가 있는 사람들은 고상하게 서양의 옛날 이론이나 마르크스, 칸트 이런 것들을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핑크플로이드, 서태지도 시간의 지나면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고 여겨지지 않겠나(*그 전에 '인문학'이나 '고전'이란 말이 없어지지 않을까?). 사회과학도 한 사람 한 사람 모여서 사회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영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도 사회학 영역에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런 것을 폄하하는 풍토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화가 난다”

-어느새 ‘인터뷰 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이 익숙해져버린 지 씨이지만 그에게 인터뷰란 여전히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한 번은 인터뷰 전날 새벽까지 140개가 넘는 질문을 만들어놓고도 ‘이 사람이 날 바보로 보지 않을까’라고 고민하며 한 개의 질문도 던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빠진 적 있다고 그는 고백했다.

-따라서 그의 인터뷰 스타일은 스스로 말하듯 우직하다. 사전에 이루어진 철저한 준비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스타일이다. “일본의 어떤 작가는 인터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쓴 모든 책을 다 읽고 관련 분야의 책을 50권 정도 읽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고 말한 지 씨는 이번에 7명의 감독들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도 한 감독 당 일주일 이상의 준비시간을 보냈다.

“일단 이분들(감독) 영화를 좋아했으니까 기존에 (영화를) 두세 번 본 것도 있고 DVD를 따로 구해서 감독의 코멘트도 보고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체크했다. 내가 만난 감독님들도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집요하게 준비해온 인터뷰어는 처음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인터뷰 스타일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변신을 요구하기도 한다. 따로 기사로 가공하지 않고 문답 형식으로 풀어내는 그의 인터뷰가 너무 길다는 것. 이에 대해 지 씨는 “그것도(인터뷰를 가공하는 것) 필요하다면 다른 식의 텍스트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인터뷰이의 얘기를 충실하게 전달하는데 중점을 둔다”고 대답했다.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은 그런 글에 조금은 거부감이 든다고 밝힌 지 씨는 사람들이 가장 읽기 편한 형태로 인터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내 인터뷰를 칭찬해주는 분들은 마치 옆에서 (인터뷰를) 듣는 것 같다고 한다. 내가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들하고 눈높이가 비슷하기도 하고 대중들이 편하고 좋게 들을 수 있도록 말을 글로 옮기는 연습도 많이 했다. 글을 잘 써서 멋지게 하는 것도 좋지만 인터뷰이를 특별히 미화하거나 띄우려는 노력 없이 글을 읽고 나서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하고 느껴진다면 괜찮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좀 잘해왔지 않나 싶다”(웃음)

-일찍이 정치웹진 서프라이즈에서 '지승호의 인터뷰정치' 코너를 운영하기도 했던 지 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온라인 글쓰기에 조금 뜸해진 이유를 물었다. “정치 쪽에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다고 해서 엄청나게 바뀔 상황도 아닌 것 같고······ 조금 더 긴 전망을 가지고 모색해봐야 할 것 같다”고 지 씨는 말하는 동시에 조금은 아픈 상처를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웹진인 서프라이즈에서 한 때 활동했다는 이유로 정치적인 이유 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무조건 공격하고 비난하는 일부 누리꾼들에 의해 맘고생이 심하다는 것.

“나는 어딜 가나 내 얘기를 해왔다. 서프라이즈가 아닌 다른 사이트에 갔다고 해서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댓글 달리는 거 보면 상처가 된다. 책을 사달라고 했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게 굉장히 정직한 지식노동자로서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책 내서 사달라고 얘기하는 게 왜 잘못됐나”

-지 씨는 이어 “농담처럼 하는 얘기지만 문희준도 32만개 댓글에는 강자가 아니다. 정신병원에 다닐 뻔 했다고 하지 않나. 내가 게시판에 글을 쓰니까 자신들의 어떤 부당한 얘기를 듣더라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면 소통을 안 하게 된다. 댓글을 안 읽거나 무시하게 된다. 소통이 끊어지고 그 다음에는 그런 것에도 상처받지 않는 사이보그들만 글을 쓰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글을 쓰는 다른 사이트에 로그인을 통해서만 댓글을 달게 했더니 아무도 욕을 하지 않더라고 지 씨는 말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씁쓸하기도 하고······ 자기 이름 걸고 얘기도 못하는 분들이 왜 그렇게 뒤에서는 야비하게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그는 “내가 좋아하고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정직하게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분들 때문에 너무 질렸다. 그런 것에 내가 상처받고 소모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작년말 황우석 사태로 시끄러웠던 서프라이즈에 대해 지 씨는 “지금 와서 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경우라고 본다”고 해석했다. 그는 황우석 박사를 더 어렵게 만든 것은 이른바 과격했던 ‘황빠’라고 규정했다.

“PD수첩이 역풍 맞아서 폐지될 수 있는 상황까지 갔는데 끝까지 숨통을 조여오니까 반론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얼마 전 진중권 씨 감금사태에서도 보듯이 방법상의 문제가 있다면 ‘그 부분은 우리가 잘못됐다’라는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너희는 매국노이고 우리의 얘기를 듣지 않으면 너희가 잘못된 것이다’라고 주장하다보니 더 소수화 될 수밖에 없고 중립적인 위치를 취한 사람에게는 비판적이 됐다”

-최근 온라인/오프라인에서 모두 최대의 쟁점이 되고 있는 한·미 FTA에 대해서도 지 씨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국내 유명 영화감독을 7명이나 인터뷰한 그가 스크린쿼터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할는지 모른다.

스크린쿼터는 매우 바보같은 짓이다. 우리가 얻을 것은 막연한데 잃은 것은 확실하지 않나. 멕시코의 경우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기 전에는 한국보다 훨씬 더 많이 영화를 만든 나라다. 한국은 80~90편임에 비해 멕시코는 150편 이상이었다. 그런데 멕시코가 작년에 만든 영화는 12편이다. 예전에 영화 쥬라기공원 하나가 내는 수익이 현대차 총수출액보다 많다느니 하는 얘기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상품을 다른 공산품 팔겠다고 반토막 내려한다. 그것 굉장히 미련한 짓이다”

-지 씨는 이어 “이라크 파병 때 노 대통령은 오히려 더 반대해주기를 바랐을지 모르는데 주위 사람들은 노 대통령을 엄호한다는 이유로 찬성을 해버렸다. 지지자들이 노 대통령을 더 어려운 쪽으로 몰고 가지 않았나”라고 말하며 이번 한·미 FTA 관련해서도 노 대통령 지지자라면 더 반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태인 씨 말대로 FTA가 체결되고 나면 다음 정권에서 노 대통령이 청문회에 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당연히 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FTA를 통해 만에 하나 손익분기 플러스가 되고 정권이 넘어가지 않더라도 양극화 등 일부 문제점은 생길 것이고 그러면 그 문제는 전 정권으로 넘어가게 된다. 지금처럼 (노 대통령) 지지율이 낮다면 훗날 청문회 상황도 가능하다고 본다. 진짜 노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비판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새는 (노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지 씨는 ‘인터뷰 전문기자’라는 호칭에 대해 “내가 스스로 그렇게 부른 적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남들이, 출판사에서 책을 팔려고 홍보를 위해 붙인 이름이다. 민망하지만 책을 팔아야 하니까 홍보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고······ 나는 별로 타이틀에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얼추 150~200명 정도를 인터뷰 해왔다는 그는 자신의 인터뷰 철학을 “어떤 사람은 지승호가 인터뷰 하면 목욕탕 벌거벗고 얘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이라고 말하더라”라는 말로 대신 설명했다. 일부 기자들은 특종 욕심 때문에 긴 얘기 중 특별히 하나만 따서 본질을 왜곡시키기도 하지만 자신은 인터뷰이가 오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지 씨는 말했다. 그는 “지승호는 최소한 그런 것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는 것, 그걸로 신용을 얻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은 아직 청소년기도 못 온 것 같다. 유아기는 벗어난 것 같고 소년기 정도가 아닐까” 굳이 산술적으로 얘기하자면 인터뷰집 100권 정도는 내고 싶고 그것으로 나중에 사람들에게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그는 “이번 새 책에 인터뷰를 넣고 싶었던 감독들이 몇 분 더 있었다. 또 지금까지 매년 지식인들을 통해 그 해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왔는데 그런 성격의 책도 올해 내고 싶다”며 남은 2006년 후반기의 포부를 밝혔다(*후반기에 나올 책도 기대해보기로 하자).(백만석 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남진우씨의 새 시집이 출간되었다.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문학과지성사, 2006). 그의 네번째 시집이라고 하는데, 시인으로서는 지난 81년에 등단했으니까 네 권의 시집은 (상당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과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남진우는 첫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민음사, 1990)과 첫 평론집 <바벨탑의 언어>(문학과지성사, 1989)를 펴낸 '젊은 남진우'이다(그의 평론집을 나는 지방의 시립도서관에서 빌려 읽었고 시집은 사서 읽었다. 내 기억에 그는 정현종론으로 등단했으며 초기에 '시운동' 동인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적어놓고 보니까 시인으로서 먼저 등단하고서도 평론집을 먼저 낸 셈인데, 아무튼 군복무 때문에 휴학중이던 한 문학도에게 20대 초반에 시와 평론으로 등단하고 후반에 각각 첫시집과 평론집을 상자한 이 젊은 시인/비평가는 얼마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갓 스물에 쓴 것으로 보이는 그의 데뷔시 제목이 "로트레아몽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이었다. 요즘 같아선 '치기'로 폄하될 수 있겠지만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런 류의 '포즈'는 시인다움의 징표였다. 가령 이런 시를 읽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1
그 겨울 내 슬픈 꿈은 18세기 外套를 걸치고 몇닢 銀錢과 함께 외출하였다. 木造의 찻집에서 코피를 마시며 사랑하지 않는 여인의 흰 살결, 파고드는 快感을 황혼까지 생각하였다. 때로 희미한 등불을 마주 앉아 남몰래 쓴 詩를 태워 버리고 아, 그 겨울 내 슬픔 꿈이 방황하던 거리, 우울한 샹송이 정의하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그 숱한 만남과 이 작은 사랑의 불꽃을 나는 가슴에 안고 걷고 있었다.

2
밤 열시, 시계의 태엽을 감으며 그녀의 살속으로 한없이 下降하는 헝가리언 랍소디. 따스한 체온과 투명한 달빛이 적시는 밤 열시의 고독, 머리맡에 펼쳐진 十二使徒의 눈꺼풀에 主祈禱文이 잠시 머물다 간다.

3
날개를 준비할 것 낢, 혹은 우리의 좌절에 대한 代名詞. 솟아오름으로 가라앉는 변증법적 사랑의 이중성.

4
가로등이 부풀어 오른다. 흐느적거리는 밤공기 사이로 킬킬대는 불빛의 리듬. 안개는 선술집 문앞에 서성이고 바람은 취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걸어나온다. 쉬잇 설레이는 잠의 音階를 밟고 내가 바다에 이르렀을 때, 보았다. 아득히 밀려오는 파도와 살 섞으며 한잎 두잎 지워지는 뱃고동 소리,조용히 모래톱에 속삭이는 잔물결을 깨우며 한 여인이 꽃을 낳는 것을.

5
물결치는 시간의 베일을 헤치고 신선한 과일처럼 다디단 그대 입술은 그대 향기로운 육체는 깊은 昏睡로부터 꿈을 길어오른다.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라 박수를 치며
젖은 불꽃의 옷을 벗으라 나의 하아프여.

가만히 촛불을 켜고 기다리자.누군가 휘파람을 불며 地中海의 녹색 문을 열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피어나는 연꽃 속에 눈뜨는 보석을 찾아.

6
子正이 되면 샤갈과 함께 방문하는 러시아의 雪海林. 모닥불 옆에 앉아 우리는 수평선 너머 사라지는 船舶을 그 긴 항해를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는군요. 바람 부는 海岸 푸른 고요 속에 목마른 자 홀로 남아 기도하는 子正의 海岸 그 어둠 속에 눈은 내리고 내리고 幼年의 마을 어디쯤 떠오르는 북두칠성. 地上의 모든 불빛이 고개 숙인다.

7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문학청년으로서의 감수성과 재능 이외에도 이국적 취향과 교양체험 등이 쉽게 감지되는 시인데, 사실 이러한 경향성은 남진우의 시세계를 관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몇몇 리뷰들을 읽다 보니까 문단에서는 기형도와 같은 연배의 시인으로서 '그로테스크'한 시적 경향을 보여준다고 이해되는 듯한데, 기형도의 등단작 '안개'(1985)와 남진우의 '로트레아몽' 사이의 거리는 현실과 환상 사이만큼이나 멀며 뚜렷하다. 그리고 그건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남진우의 시들을 읽어본 지 꽤 됐지만 그의 시에 가난과 실연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던가 의문이다(평론가 김현이 기형도의 유고시집을 해설하면서 지적한 기형도의 심리적 외상이다). 

 

 

 

 

'죽음'에 대한 관심 정도는 공유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경우에도 남진우의 관심은 보다 간접적이고 추상적이다. 비평가로서의 계열을 따지자면 남진우적 비평의 정점에 모리스 블랑쇼가 놓여 있을 것이다. 죽음과 언어, 이 두 가지가 나는 블랑쇼적 비평의 화두라고 생각하며 남진우의 비평의 특장은 죽음과 언어의 치명적인 매혹을 짚어내는 것이지 않나 싶다. 이때 '죽음'을 '신성'으로 '언어'를 '책'으로 바꾸어놓아도 무방하다. 실상 그의 시들 또한 그 두 열쇠어들의 자장 안에 놓인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1996)에서 <타오르는 책>(2000)을 거쳐서 이제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2006)까지. 그러한 시세계를 요약해줄 수 있는 문구로 '신성을 향한 귀족주의'를 고를 수 있을까? 그 귀족주의의 태생과 운명은 사실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노트에 이미 기입돼 있었던 것이다. 시인은 때로 나이를 먹지 않는다... 

동아일보(06. 08. 12) ‘아득히 먼 사막의 길을 걸어 사자 한 마리/ 내 방문 앞까지 왔다/ 내 가슴의 샘에 머리를 처박고/ 긴 밤 물을 마시기 위해// 짧은 잠에서 깨어나 문득 눈을 뜬 깊은 밤/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의 텅 빈 방.’(‘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에서)

이제 남진우(46·사진) 시인은 보이는 것을 노래한다. 앞선 시집들에서 그는 추상적인 것,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시를 썼다. 그러나 네 번째 시집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에는 동물과 도시의 모습 같은, 금세 떠올릴 수 있는 시적 대상으로 가득하다(*'내 방문 앞'까지 찾아온 사자 한 마리를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나?). 표제시 ‘새벽 세 시…’를 포함해 ‘긴 혀를 늘어뜨리고/두 눈에 푸른 별을 켠 개들’(‘저수지의 개들’)이나 ‘갯벌을 건너가는 꽃게 한 마리’(‘종일토록’), ‘해 저물도록 그림엽서를 팔던 소녀’(‘오래된 사원’) 등이 그렇다.

-그는 죽음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적 믿음을 시로 옮기는 데 애써 왔다. 새 시집에서는 그동안 죽음과 어둠의 이미지로만 갇혀 있던 시어들을 풀어 준다. 구원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다. 시 곳곳에서 세속적인 세상을 순례하면서 성스러운 ‘무엇’을 찾아다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이런 목적의식을 더욱 명료하게 한다.

-‘어스름이 내리는 강가/ 기다리는 이는 오지 않고/ 물소 한 마리 느릿느릿 내 곁을 지나간다…뿔이 긴 소를 타고/ 저 물속으로 깊이 자맥질해 들어가면/거기 나를 기다리는 누가 있을까.’ 그러나 시의 마지막까지 ‘기다리는 이’는 오지 않는다.

-평론가 신형철 씨는 “스스로 성스럽지 못한 세상에서 스스로 성스럽지 못한 자의 회한과 동경이 그의 시를 낳았다”고 평한다. 이번 시집의 주제 의식이기도 하다. 상상의 공간에만 머물러 있던 시인이 세상으로 나와 이곳저곳을 다녀 보지만, 어디든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타락한 도시다. 생존경쟁의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시 ‘문 밖에서’의 한 부분.

-‘나는 아주 낡고 더러운 소문의 도시에 살았다…즐비한 술집 앞엔 매일 얼어 죽은 시체가 발견되곤 했다/ 이 도시의 주민들은 일 년 내내 기침을 해댔고/ 검은 안개 속을 허우적거리듯 걸어다녔다/ 거리의 검투사들은 찌르고 찔리며 환호 속에 죽어갔다.’(김지영 기자)

(*)기형도의 '안개'에는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죽었다"란 구절이 나온다. 거기에 비하면 "즐비한 술짚 앞엔 매일 얼어 죽은 시체가 발견된곤 했다"는 구절은 관념 혹은 상징이다. 그 상징의 세계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 나는 그것이 남진우 시의 매혹이면서 아킬레스건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일보(06. 08. 13) 남진우 시의 본적은 묘지다. 때때로 책들의 무덤인 도서관이나 우물, 항아리 속으로 주거를 옮기기도 하지만, 파묻히는 곳이 아니면 가지 않는 그의 시는 한 번도 제 주소를 죽음이라는 본적지에서 전출한 적이 없다(*좋은 지적이다. 문학담당 기자라면 이런 정도의 지적은 해줘야 한다). 문학 평론가이자 시인인 남진우 씨가 네 번째 시집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타오르는 책> 이후 6년 만이다.

-사자, 여우, 개, 호랑이, 악어떼, 벌, 전갈, 낙타 등이 끊임없이 출몰하며 ‘동물의 왕국’을 이루는 이번 시집에서 화자는 번제에 바쳐진 제물처럼 물어 뜯기고 찢긴다(*'사자'는 이 '왕국'의 왕이자 왕족/귀족이다). “한껏 아가리를 벌린 호랑이는 단숨에 나를 삼켜버리고” (‘먼 산 먼 길’), “책을 펼치면 전갈에 발뒤꿈치를 물린 채 낙타 등 위에 혼곤히 엎드린 내가 보인다” (‘전갈에 물리다).

-그러나 시인은 목 잘린 얼굴, 피눈물을 흘리는 깊게 파인 눈구멍, 절단된 사지가 나뒹구는 이 그로테스크한 세속 도시에서 순교를 앞둔 사도처럼 묵묵하기만 하다. 그가 “아득히 먼 사막의 길을 걸어 사자 한 마리/ 내 방 문 앞까지 왔다/ 내 가슴의 샘에 머리를 처박고/ 긴 밤 물을 마시기 위해”(‘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라고 쓸 때, “밤이면 밤마다 죽은 여인이 다가와/ 네 튼튼한 심장을 먹고 싶다, 조금만 다오 말했네// 두 팔에 안긴 채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내 심장을 먹어가며/ 죽은 여인은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고 쓸 때, 시인은 아픈 몸을 내주며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어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똑딱거리는 심장이 그마저 멈출 날을 기다릴 뿐”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추적자가 문을 두드리는 이 “낡고 더러운 소문의 도시”에 “방주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문 밖에서’)고, “내 인생에 더 이상 반전은 없다” (‘나는 흑색 소설만 읽는다’)는 것을 익히 아는 탓이다.

-이 시인의 시 세계를 구축하는, 성(聖)을 향한 귀족주의는 ‘새벽 세 시…’에서도 여전하다. 세속 도시를 떠나 앙코르와트로, 반얀트리 밑으로, 카타콤으로 순례의 행보를 내디뎌 보지만, “순례자 대신 장사치와 관광객들로 붐비는 거리/ 영혼의 감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자들이 비좁은 계단 사이 어깨를 부딪치며/ 값싼 지폐와 시성을 교환하기 위해 오”가는 이곳에서 그의 시는 홀로 성스럽고자 하는 자의 고독으로 울울할 뿐이다.(‘몽생미셸’)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선지자조차 지쳐 떨어진 밤/ 길가 하수구는 붕글어 터지는 말의 거품들로 가득”하고 (‘겨울일기’), 그는 다만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라던 기형도의 '켤레시인'답게 읊조릴 뿐이다. “흑색 소설을 읽으며 오늘도 나는 확인한다, 모든 길 끝엔 파헤쳐진 무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흑색 소설만을 읽는다’)(박선영 기자)

문화일보(06. 08. 11) 남진우(46)씨의 시집 <새벽 세 시의 사자 한마리>는 한밤에 깨어있는 새벽에 깨어있는 예술가의 고독이 구원을 지향하는 순례자의 언어로 푸른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세속 도시의 타락에 대한 절망을 겉에 묻히고 있 다. 이 때문에 속에 배인 푸른 기운의 유열을 맛보기 위해선 시 인이 구축한 언어의 수도원, 혹은 사원에서 참을성 있게 순례자 의 기도를 들어야 한다. 이런 인내가 오늘날의 시독자들에게 얼마나 있을까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세상의 허무와 맞대응하며 먼 곳의 신성(神性)을 열망하는 시세계는 우리 시문학사에서 드문, 독자적인 영역의 신비로움으로 읽는 이를 매혹한다 .

-1부의 시편들은 여우, 개, 사자, 반달곰, 호랑이 등의 동물들이 나타나 시의 화자가 세속도시에서 느끼는 절망과 갈증을 확장한 다. ‘아득히 먼 사막의 길을 걸어 사자 한 마리/ 내 방 문 앞까 지 왔다/ 내 가슴의 샘에 머리를 쳐박고/ 긴 밤 물을 마시기 위해 ’(표제작 중)

-2부의 작품들은 ‘아주 낡고 더러운 소문의 도시’(‘문밖에서’ 중)에서 삶 자체가 곧 죽음인 모습을 어두운 배경에서 서늘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앙코르와트와 인도의 사원 등을 순례한 후에 씌어진 3부의 시편들은 성소(聖所)를 잃어버린 자의 비애를 노 래하고 있다.

-‘저녁이 머뭇대며 내 주위를 에워싸기까지/ 기다리는 이는 오지 않고/ 조용히 물살을 가르며 내게 다가오는 숲 그림자/ 나는 어 느덧 온몸을 휘감아 오르는 나뭇가지 푸르름에 휩싸여/ 아무도 찾지 못하는 사원이 된다’(‘오래된 사원’ 중).

-숲으로 된 푸른 성벽의 이미지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온 남씨가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시세계를 평하는 글에서 등장한 바 있다. “기형도의 시는 우리 세계에서 모습을 감춰버린 아름답고 신비 로운 성(城)을 찾아가는 언어의 순례이자 그 성을 은폐하고 그 성을 향해 가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좌절시키는 현실에 대한 강 력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남씨는 문우인 요절시인 기형도가 생전에 가다가 멈춰버린, ‘숲으로 된 푸른 성벽’ 너머의 신성을 찾아 순례자의 길을 고독하 게 걸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장재선 기자)

06. 08. 12.

 

 

 

 

P.S. 표제시의 '사자'는 '사자(死者)'이기도 하다는 리뷰도 읽었는데, 일리있는 견해이다. 한편으로 지적하자면, 한국시에서 '사자'는 비교적 드물게 등장하는 동물이다. 우리시에서 가장 많이 애용되는 동물 중의 하나는 '낙타'인데, 개인적으로 '낙타'가 등장하는 시들의 대부분은 그냥 '포즈'라고 생각한다. '열사(熱沙)의 사막' 운운하는 시들이 대개 자기연민적 관념에 빠져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이다. 이러한 시의 대척점에 놓여 있는 것이

김천의료원 6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로 시작하는, 문태준의 '가재미' 같은 시이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 이게 리얼리티의 척도이다. '초원의 사자'나 '사막의 낙타' 같은 시적 언술들이 얼마큼 멀리갔는가를 가늠해주는. 최근 우리시에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동물들의 대표종을 꼽자면 가재미(=현실적 서정주의)와 낙타(=전통적 정신주의)와 사자(=초월적 귀족주의)와 고슴도치(=전위적 미래주의) 정도이다(그러고 보니 '동물의 왕국'이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로 불문학자 정명환 선생의 신간이 출간됐다. <현대의 위기와 인간>(민음사, 2006)이 그것인데, 아직 실물은 보지 못하고 '새로나온 책'에서 책소개만을 읽었다. 다행히도 한국일보에 자세한 리뷰가 올라와 있어서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론 (박이문 선생과 함께) 정명환 선생에게서 나는 (대학시절의 영웅이었던) 사르트르의 문학론과 철학에 대해 배웠다. 그러니 내가 알고 이해하는 사르트르는 그 두 사람의 사르트르이기도 하다. 이 원로 학자의 노작은 그 듬직한 무게와 은은한 성찰의 향기로 이번에도 우리를 격려하고 매혹시켜줄 듯하다.

-전화 통화에서 저자는, 불을 뿜는 베수비오 화산으로 교대근무를 떠나며 ‘이것이 나의 명예’라고 말했다는 한 로마 병사의 ‘의연한 체념’을 이야기했다. “그 정신이야말로 물화ㆍ속화해야만 살 수 있는 이 현실 속의 사회적 자아와, 인간적 가치 초월적 가치를 찾아가는 내면의 자아를 함께 지탱하는 힘의 바탕일 것”이라 말했다.

한국일보(06. 08. 12) 현대의 위기와 인간… '체념과 희망' 자아의 모순을 견뎌라

-원로 인문학자 정명환(77ㆍ전 서울대 불문과 교수) 선생의 책 <현대의 위기와 인간>(민음사, 2006)은, 그 자체로 한국 인문학이 도달한 아득한 성취라 해도 좋을 것이다. 책 속에 녹여낸 지식(철학과 문학)의 폭과 깊이 때문이 아니라 그 지식을 저민 문장의 격조가 그렇다는 것이고, 단아하고 지적인 문장을 통해 은근히 드러내는 높고 원숙한 정신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물질문명의 악력과 거기 묶여 신음하는 인간 정신에 대한 ‘의연한 체념’(현실주의자의 소극적 체념이 아닌)과, '가냘픈 희망'(관념주의자의 이상론이나 당위론이 아닌)의 방법론을 전한다. 그 논의의 출발점이자 토대라 할 현대 위기의 실체를 그는 노동의 현실에서 찾으며 생텍쥐페리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파일럿이었던 생텍쥐페리는 1920년대 항공기 조종은 “엄청난 장애물과 대치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위대성을 발견하고 자기 실현을 이루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대지>를 출간하던 39년의 그는 이미 실험실에 갇혀버렸다고 자탄한다. “이제 바늘의 움직임에 복종하는 것이지 천지의 변화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21세기의 기계화ㆍ획일화의 노동 현실에서 “창조, 인간의 존엄성, 연대의식, 죽음의 의미, 자연과 투쟁과 교감 따위의 가치”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적었다.

-저자는, 이 로봇 테크놀러지의 시대가 여가마저 노동의 논리 속에 포섭해, “여가가 노동의 원활한 운영을 방해하지 않도록” 강제한다고 썼다. 현대인의 여가의 공통성은 “수동성에 의해서건(TV연속극을 보는 경우), 열광에 의해서건(가령 광란적 음악 속에 빠져드는 경우) 간에, 인간의 존재에 관한 귀찮은 반성이 들어앉을 내면적 공간을 소거하는 데 있다.”(22쪽)

-이 현실에서 예술이 존중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예술은 지배 계급의 존재를 위한 필수 조건인 인간소외에 항거하는 초월과 새로운 시각과 이의제기를 그 본질적 기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28쪽) 그는 이 아이러니의 참혹한 현실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핀다.

-경제적ㆍ기술적ㆍ문화적 세계화와 동질화(미국화), 기능적 언어의 위세 앞에 왜소해져 가는 예술적 언어의 고뇌, 진실을 둘러싼 철학과 문학의 알력 등…. 그러면서 그는 개인ㆍ국가의 생존전략, 곧 기계화한 노동 메커니즘의 수용이나 세계화 추세에의 편승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수긍한다. 요컨대 ‘의연한 체념’이다.

-하지만 그는 체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다. 그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자아를 응시하면서, 반성하는 주체적 자아ㆍ내면의 자아를 지켜나가자고, 고통스럽더라도 그 이중적 자아를 지니자고 고언한다. 그 모순의 상황을 견디고, 그 위에서 희망을 찾자고, 그 힘든 삶에 문학이 힘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매력은 저자의 전언 자체보다, 당대의 사상가와 작가들을 비평적으로 살피면서 그 전언을 끌어가는 과정에 있다. 이 우람한 노 학자는 절망의 현실 앞에서도 의연하고, 실낱 같은 희망 앞에서도 여유롭다. 문장의 힘이고 인문학과 인문학 정신의 힘이며, 문학의 힘이다.(최윤필 기자)

 

 

 

 

06. 08. 12.

P.S. 경향신문의 인터뷰 기사를 보태놓는다.

경향신문(06. 08. 19) “이미 주체성 상실 의연한 체념 필요”

-“현대인은 공적 자아(public self)와 사적 자아(private self)라는 모순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순을 지니고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원로 인문학자 정명환 전 가톨릭대 교수(77)는 최근 펴낸 <현대의 위기와 인간>(민음사)에서 현대 사회와 인간의 위기를 진단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가 보기에 “1980년 전후로부터 전개된 현실은 르네상스 이후로 처음 경험하게 된 대격변”이다. 그는 “이성의 힘과 인간의 주체성, 그리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조직화·기계화되면서 주체성을 상실했다.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다스리려면 사회에서 소외된다는 것. “길을 가다가 가만히 서서 왜 가는지 생각하다간 뒤에서 밀려오는 사람에게 짓밟힙니다. 자신에게 소외되지 않으려면 사회에서 소외되고,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소외되는 모순이 생겨요.”

-그러나 그는 현대 사회가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 생의 여건인 것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 상황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 여기서 그는 ‘의연한 체념’이라는 개념을 끌어낸다. “어찌할 수 없다고 체념해야 하지만 시지프스처럼 돌을 산꼭대기에 밀어올리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건지 모르지만 그 끝을 모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이는 책에 제시되고 있는 인문학자의 네 가지 태도, 즉 ‘자진적 고립’ ‘환상 없는 도덕적 관심’ ‘역사적 내기’ ‘제한된 참여’에 가닿는다. 노(老)학자는 노동과 여가의 관계에서도 현대의 위기를 읽어낸다. 옛 사람들에게 ‘주경(晝耕)’과 ‘야독(夜讀)’은 연속성을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과 여가를 통한 자아 회복은 모순된다. 여가는 “인간의 기계적 조작과 소외에 이바지하도록 소비”된다. 거기에는 “인간의 존재에 관한 귀찮은 반성이 들어앉을 내면적 공간”은 없다. “요즈음은 모두 즉각적이고 짜릿한 걸 원하고 생각하길 귀찮아 합니다. 파스칼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은 농담이 됐어요.”

-오늘날 대학 사회에 ‘변종’이 없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사회의 관례에 발맞추고 시류를 타려고”하고 “모두 규격화(Standardize)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우리 사회는 너무 비이성적입니다. 이성으로 갈 때까지 가보지 않고 처음부터 비이성적으로 반응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그는 현 정부에 대해서도 “세계를 향해 닫으려고만 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E.H. 카는 훌륭한 사회는 자전거와 같다고 했습니다. 한쪽으로 쏠리려면 반대쪽으로 움직여 균형을 잡는 거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주에 미술분야의 신간으로 <추상표현주의>(열화당, 2006)이 출간되었길래 눈도장을 찍어두었는데, 알고 보니 이번에 <아르테 포베라>까지 출간됨으로써 열화당이 간행한 '현대미술운동총서'가 완간되었다. '도구상자'란 표현을 이전 페이퍼에서 썼지만 이 총서야말로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조감하기 위한 '도구상자'로서 더 없이 좋은 길잡이가 될 듯하다(내가 몇 권이나 갖고 있나?). 관련기사 두 개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6. 08. 10) 20C 미술사조 쉽게 풀이…현대미술운동총서 완간

-인상파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유럽 미술은 시대마다 하나의 큰 흐름으로 나타났다. 르네상스가 끝난 뒤에는 바로크가, 바로크에 대한 반동으로 로코코 양식이 나타났다. 그러나 인상파가 등장한 이후 몇 세기 동안 지속되던 양식의 시대는 가고 ‘~주의’로 불리는 미술운동이 등장했다. 각종 미술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현대미술의 층위는 다양해지고 이론적으로도 견고해졌다.

 

 

 



-2003년 말 열화당과 영국 현대미술의 본산인 테이트 모던 갤러리가 공동으로 기획한 ‘현대미술운동총서’가 최근 <추상표현주의>와 <아르테 포베라>가 출간되면서 모두 14권으로 완간됐다. 이 시리즈는 후기 인상주의, 큐비즘, 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 20세기의 현대미술 운동 중 주요 사조를 선별해 각 미술운동의 배경과 출현, 주요 개념과 사상, 전개 과정, 이후에 끼친 영향까지 서술한 대중적인 미술 이론서다.

 

 

 



-다양한 미술운동 가운데 리얼리즘, 후기 인상주의, 큐비즘, 미래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요 운동으로 뽑았고 20세기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 모더니즘과 추상미술 편을 따로 뒀다.

-이번에 출간된 <추상표현주의>는 당시 미국 미술가들의 유럽 작가들에 대한 경쟁 심리, 미국 미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등을 통해 추상표현주의를 분석해 나간다. <아르테 포베라>는 반미학적인 재료의 물질성을 탐구하면서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이탈리아의 전위적 미술운동으로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르테 포베라를 소개하는 개론서다.

한국일보(06. 08. 12) 현대미술운동총서 '어려운 현대미술 쉽게 술술'

-현대미술은 어렵다. 고전미술이나 르네상스 등 ‘양식’으로 구분되는 미술보다 100배쯤 어렵고, 낭만파나 인상파 등 ‘경향’으로 나뉘는 미술보다는 10배쯤 어렵다. 인상파 이후의 현대미술은 미학적으로 ‘운동’의 형식ㆍ내용으로 나뉜다. 그 작품들은 대체로 정치 사회 문화의 특정 맥락과 어깨를 겯거나 배척하면서 자기 진영의 가치관과 철학을 이야기한다. 어떤 ‘~이즘’은 문화 엘리트들의 배타적 미학의 성을 구축하고, 또 어떤 것들은 ‘저급한’ 대중문화와 키치를 캔버스 전면에 부각시키기도 한다. 이 넓은 현대미술 운동의 스펙트럼과 그 각각의 색깔을 구성하는 개개 작품의 언어들을 대중이 알기 쉽게 정리한 ‘현대미술운동총서’가 ‘추상표현주의’ ‘아르테 포베라’의 2권을 보태면서 14권으로 완간됐다.

 

 

 

 

-이 시리즈는 ‘20세기 미술운동총서’(전30권)를 출간했던 열화당이 유럽 현대미술의 메카로 불리는 영국 ‘테이트 갤러리’와 공동 기획한, 각권 70쪽 내외의 압축적인 현대미술 안내서다. 전문가들이 현대미술을 14개의 주제(개념)로 분류, 각 진영의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하고 현대미술사의 어떤 맥락에서 태동해 어떻게 전개돼왔는지 설명한다. 큐비즘, 미래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추상미술,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

-마지막 권 <아르테 포베라>는 이 미술운동을 국내에 소개하는 첫 이론서다. 책은 1967년 이탈리아 작가 알리기에로 보에티의 광고 포스터 같은 2개의 작품 ‘마니페스토’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 이 계열의 작품들이 어떻게 이름을 얻고 미술 오브제의 해방 운동, 나아가 현대 미술의 영역을 확장했으며, 궁극적으로 미술 상업주의에 어떻게 대항해왔는지를 여러 작품 도판과 함께 설명한다. 책은 이들 유파의 작가들을 인터뷰해 그들 자신이 미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들려주고 이들 작품에 대한 다양한 비평적 시각도 소개한다.

06. 08. 12.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니다 2006-08-13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좋은 시리즈 역시 문제는 '번역'입니다. 책을 다 보진 못했지만, '개념미술'은 그야말로 오역의 범벅입니다. 역자는 아마도 이름만 빌려준 듯 합니다.

로쟈 2006-08-1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쪽도 개념 없는 번역들이 대세인 모양이군요...

주니다 2006-08-13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하나 책의 번역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없는 걸로 봐서는 책들을 안 읽는다고 봐야되는 것인지... 그 많은 미대생들은 도대체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불가사의할 따름입니다.

로쟈 2006-08-13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 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