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날짜 교수신문에 게재됐던 글이다. '평전에서의 비평정신'에 대한 곽차섭 교수의 글로서 제목은 '너와 나 사이의 인간적 공감'. <마키아벨리 평전>을 옮긴 경험에서 나온 통찰을 담고 있어서 음미해볼 만하다(문학비평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제네바학파의 '공감의 비평'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평전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요즘 출간되는 '두툼한' 평전들을 다 챙겨볼 수 없다는 게 유감스럽다. '휴식' 같은 책들일 텐데...

 

교수신문(06. 07. 04) 평전에서의 비평정신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아직 내가 쓴 평전 저작을 가지고 있지도 못한데 이런 원고 청탁은 부담이 된다. 아마 몇 년 전 리돌피 작(作) 마키아벨리 전기를 <마키아벨리 평전>이란 제목으로 옮겼던 일이 이런 식으로 되돌아오는가 보다. 우선은 내가 왜 리돌피의 책에다 하필 ‘평전’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는지, 그것부터 해명해야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알라딘이나 예스24와 같은 대표적인 인터넷 서점에서 ‘평전’이란 단어로 검색해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평전들이 간행되고 있었다. 그 중 몇 종류는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한국의 평전 베스트셀러 상위권은 체 게바라, 전태일, 등소평, 마르크스, 여운형 등 주로 정치적 인물이 차지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정치가 갖는 헤게모니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리라 (거꾸로 이는 사상적·문화적 측면에서 전기를 쓰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런데 ‘평전(評傳)’이란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마도 그것은 근대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비평적 전기’란 뜻일 게다. 알다시피 전기에 해당하는 ‘전(傳)’은 동아시아권에서도 오랜 연원을 가지는 글쓰기의 한 형식이었다. 사마천의 <사기>의 ‘열전’이 효시다. 문학에서도 이 형식을 빌렸다. '전우치 전'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요컨대 동아시아 역사와 문학에서 ‘전(傳)’이란 어떤 특정 주제, 특히 인물에 대한 독특한 글쓰기 형식을 의미했던 것이다. 이것은 서양도 다를 바 없다. 고대 수에토니우스의 '12황제 전'이나 중세 초 이를 모방한 아인하르트의 '샤를마뉴 전'이 그렇고, 중세 내내 넘쳐났던 수많은 ‘성인전’들도 일종의 속류 전기들이다.

 

 

 

 

-오랜 연원을 가진 ‘전’란 말을 두고 굳이 ‘평전’이란 이름을 붙인 데는 역시 객관성, 비판성, 대상과 글쓴이 간의 비평적 거리 같은 것을 중시한 근대정신이 작용했을 것이다. 비평적 거리라는 점에서 그래도 전기가 자서전보다는 나을 게 아닌가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서전을 두고 검증할 수 없는 자의성의 소산이라고만 보는 것은 얕은 발상이다. 자서전에는 실증적 측면과 자기 성찰적 측면이 함께 담겨 있는데, 전자는 검증 대상이 되지만 후자는 해석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카사노바나 첼리니의 자서전은 그 자체가 일종의 문학 작품이며,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말 그대로 자기 회심의 과정이 그리스적 합리주의를 매개로 역사와 종교적 비전 속에 버무려져 있다.

-평전에서 글쓴이는 그 대상이 되는 인물의 삶과 어느 정도로 거리를 두어야 할까? 이는 답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이며 사람마다 다른 답이 나올 개연성이 높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어쩌면 모든 역사 글쓰기가 그렇기는 하겠지만, 평전만큼 사실과 해석 간의 균형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분야도 없다는 것이다. 연구 대상이 다름 아닌 인물이다 보니 글쓰는 이는 어느 덧 그/그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특히 저자는 대상 인물에 호의를 가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더욱 거리두기가 어렵게 된다. 자칫하면 ‘성인전’을 쓰게 될 위험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그 거리가 너무 멀면 대상 인물과의 공감도가 떨어져 생생한 삶의 궤적이 잘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 거리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지 이론화 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보자. 리돌피의 <마키아벨리 평전>은 비평가들로부터 마키아벨리에 관한 최고의 전기라는 평을 받아 왔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사실적 측면에서 가장 정확하고 풍부하다는 것이다. 리돌피는 마키아벨리의 아버지 베르나르도가 남긴 '비망록'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중요 기록들을 이용하는 행운을 누렸고, 또 이를 대단히 조심스럽게 다루었기 때문에, 마키아벨리의 행적과 저작을 둘러싼 각종 논쟁들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었다. 그의 전기 이후 새롭게 발견된 주요 문서는 거의 없다.

-둘째 이유는 그의 문학적 필치에 있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복잡다단한 삶을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면서도 부드럽고 유연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그는 마키아벨 리가 ‘시인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평하였다. 정치라는 냉혹한 현실을 ‘과학적으로’ 관찰하면서도 동시에 언제나 그것을 예술가와 시인의 즉흥성과 이상 속에 녹여내는 묘한 성품의 소유자가 바로 마키아벨리라는 것이다. 이는 평전의 문학성이 곧 대상 인물의 해석과 긴밀히 얽혀 있다는 증좌이다. ‘검증 가능했던’ 사실은 어느 사이에 ‘공감적’ 해석 속에 융합되어 버린 것이다.

-대상에 대한 이러한 공감적 융합은 리돌피가 마키아벨리에 대해 품었던 애정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리돌피의 저작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만의 독특성을 부여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나는 그의 평전이 사랑받는 보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비평가들 중에서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리돌피의 애정이 전기 작가로서는 좀 과도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쓰고자 하는 인물이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아닌 다음에야 그에 대한 인간적 애정 없이, 어떻게 그의 삶과 사상과 고뇌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나아가서는 그것을 글로 재현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가 나에게 평전에서 대상 인물과 어느 정도로 거리를 두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에게 인간적 애정, 적어도 인간적 공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평전을 쓰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이러한 애정과 공감이 사실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전제는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 평전은 사실들 간의 인과관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요체는 너와 나 사이의 인간적 공감이다. 따라서 나는 사실과 해석 간의 균형의식도 산술적 중간이 아니라 공감적 융합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공감의 비평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이는 김현이다. '수정의 메아리'라고 그는 불렀던가?). 

06. 07. 05.

 

 

 

 

P.S.  평전은 올해도 수없이 출간되었다. 가장 최근에 나온 평전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리안느 레스쿠레의 <레비나스 평전>(살림, 2006). 올해가 레비나스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여서 뜻깊다(적당히 제쳐놓은 관심에 다시 불을 당기는군!). 그리고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또다른 평전으로 마이클 화이트의 <평전 마키아벨리>(이룸, 2006)도 올해 나온 책이다. 두 권의 루쉰(노신) 평전과 <민촌 이기영 평전>(심지, 2006)까지 더해도 평전의 트렌드는 다 따라잡을 수 없다. 참고로, 현재 가장 많이 팔린 평전은 여전히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 20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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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라의 운명과 개인의 운명
    from 창조를 위한 검은 잉크의 망치 2011-03-03 12:16 
    리영희 평전을 읽는 것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읽는 것에 다름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한 나라의 운명이 개인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리영희 선생에게는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군부체제를 거쳐 소위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가 그가 거친 체제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아홉 번 연행당하고, 다섯 번 구치소에 가고, 세 번 재판을 받아 총 1012일의
 
 
기인 2006-07-05 09:43   좋아요 0 | URL
평전.. 완전히 문학 연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쓰고 싶은 글의 종류도 평전입니다. 작가론을 쓰다보면, 논문이라는 틀을 벗어나고 싶어서 안달(?)이 납니다. ^^;
김윤식 선생님의 '이광수와 그의 시대' 같은 평전을 쓰고 싶어요 ㅜㅠ

로쟈 2006-07-05 09:56   좋아요 0 | URL
경쟁상대가 <이광수와 그의 시대> 정도라면 앞으로도 굉장히 바쁘실 거 같습니다. 발로 뛰셔야 할 테니까.^^

2006-07-05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6-07-05 10:37   좋아요 0 | URL
아 뭐; <주요한과 그의 시대>는 사실 이광수와 매우 많이 겹쳐서 ^^; (이광수의 충실한 후배였지요. 주요한이 좀 더 과격한 면은 있었지만.) ㅎㅎ 선학들이 많이 자료를 축적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래도 여기저기 걸어다니기는 (뛰는게 싫어서;; ) 하고 있습니다. :)

로쟈 2006-07-05 10:46   좋아요 0 | URL
**님/ 쓰신 책도 흥미롭고 발견하신 책도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저야 여성인물들도 좋아하죠.^^). 그 포스트모던 소설은 번역하시나요?(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인님/ <주요한과 그의 시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의 시대'라고 하기엔 좀 '약한' 듯도 하네요.^^ 전공자께선 섭섭해 할 일이지만...
 

 

 

 

 

오늘 아침 한국일보는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완역한 조형준씨와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안 그래도 지난주 한 모임에서 국역본의 나머지 절반이 나올 때가 됐는데 좀 늦춰지는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었다. 그러던 차에 기대보다는 늦게, 하지만 예상보다는 빠르게 책이 완간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 반갑다. 사실 한두 주 전에 나는 영역본을 주문해놓은 터여서 이 달안으로 책을 받게 될지 모른다. 해서 이젠 그간에 미루어둔 국역본의 구입도 더이상 미룰 수 없을 듯하다(책을 사는 건 어렵지 않다. 책을 꽂아둘 장소가 문제이다!).

참고로, 수잔 벅 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문학동네, 2004), 그램 질로크의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효형출판, 2005), 그리고 할 포스터의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아트북스, 2005)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함께 읽어볼 만한 대표적인 참고문헌이다(초현실주의를 다루고 있는 포스터의 책에서 두 개의 장이 벤야민에 할애돼 있다. 벤야민에게서 초현실주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보야야 할 대목들이다.)

한국일보(06. 07. 04)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완역 조형준씨

-나치를 피해 망명을 시도하다 자살한 비극의 유대인 지식인 발터 벤야민(1892~1940). 구미 지성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그의 필생의 역작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완역됐다. 새물결출판사 조형준(42) 주간이 지난해 1권에 이어 최근 2권을 번역, 3일 출판했다. 2,500여 페이지나 되는 이 책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서사시’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마르크스가 외부에서 X레이로 자본주의를 촬영했다면, 이 책은 내시경을 밀어넣어 자본주의 몸통 내부를 촬영한 것입니다.”

-1920년대 유럽은 제국주의, 나치즘, 전쟁 등 자본주의의 폭력적 모습을 목격한다. 마르크스주의, 프랑크프루트학파, 루카치 등이 자본주의의 성격 분석을 시도하지만, 벤야민은 이들과 다른 방식을 취했다. 워즈워드의 시 ‘무지개’의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구절처럼, 광기와 광포함이 극에 달한 ‘어른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자본의 유년기’로 눈길을 던진 것이다(*나는 다른 페이퍼에서 유년기적 마르크스주의'란 표현을 쓴 바 있다). 이때 벤야민이 택한 지역은 19세기의 파리.

-프랑스혁명과 파리코뮌으로 대변되는 혁명의 도시가 바로 파리였다. 벤야민은 도서관에서 13년 동안 아케이드(arcade), 패션, 권태, 박람회, 광고, 매춘, 도박, 회화, 신문, 조명, 철도, 사진, 증권, 광고 등 자본주의 탄생기의 파리 모습을 찾아낸다. 책의 절반이 이런 내용이니, 자본주의의 육아일기로 보아도 무방하다. “벤야민은 자본주의가 사회에 꿈과 환상을 심어주었다가 한 순간 그것을 쓰레기 혹은 물거품으로 만들고 다시 꿈과 환상을 부추기다가 또 다시 쓰레기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케이드만 해도 초기에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석조 건물만 보아온 파리 시민에게, 철과 유리로 만든 아케이드는 산업이 만든 새로운 발명품이자 가스등을 처음 선보인 새 도시, 새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아케이드는 불과 20, 30년 만에 갑자기 폐허가 되고 만다.



-조 주간은 “벤야민이 파악한 자본주의의 동력을 지금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화소 카메라 기능을 갖춘 첨단 휴대폰이 나오면서, 아직 충분히 쓸 수 있는 제품이 쓰레기로 변하는 것 등이 그 보기다. 그는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의 멸망을 점친 마르크스와 달리, 이 책은 자본주의의 내밀한 부분을 가장 깊숙한 곳에서 들여다 본 책이라고 평가한다.

-원서는 1980년 독일에서 나왔는데 절반은 독일어, 절반은 프랑스어로 돼 있었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독일어 프랑스어에도 능한 조 주간은 “분량은 방대했지만 번역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고 했다. 다만 주(註)가 하나도 없어 애를 먹었다..

-예를 들어 “블랑키가 정부 대표로 노동자 대표단을 이끌고 런던 만국박람회에 갔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조 주간은 이를 폭력혁명을 주창한 공산주의자 블랑키(1805~1881, 사진)가, 자본주의의 잔치인 만국박람회에, 그것도 (프랑스) 정부 대표로 갔다는 것으로 해석하고는 매우 난감했다. 하지만 박람회에 간 사람은 그의 형인 제롬 블랑키(1798~1854)였다. 경제학자로 정부 관료를 지낸 형은 동생과 성향이 크게 달랐는데, 원서에는 동생인지 형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초기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지만 딱딱하거나 어렵지는 않다. 조 주간은“책이 두껍다고 독자들이 너무 겁 먹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두꺼운 책을 좋아하는 나로선 겁먹을 일이 아니다. 내게 일차적으로 겁나는 책값이고, 그보다 더 두려운 건 들고다닐 무게이다. 혹 영역본까지 같이 들고다녀야 한다면!).

06. 07. 04. 

P.S. 작년에 나온 1권은 한겨레가 꼽은 '2005 올해의 책 50'에 선정되기도 했다(2권까지였다면 단연 '올해의 책'이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들어본다.

한겨레(05. 12. 16) 현대 미학비평과 문화연구 같은 분야에서 최근 새롭게 조명받는 발터 베냐민(1892~1940)은 일찍이 자본이 만든 인공낙원인 “19세기의 수도” 파리에서 자본과 상품의 화려한 불빛을 뿜어내는 아케이드의 상징에 주목했다. 1927년부터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는 아케이드와 관련한 옛문헌, 인용문, 가십, 인물촌평, 여행 안내서, 박람회 카탈로그 따위를 모으고, 생시몽·보들레르·마르크스의 관련 자료들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방대한 자료에 자신의 생각들을 덧붙인 것이, 이름하여 <아케이드 프로젝트>(새물결 펴냄)다(*'벤야민' 대신에 '베냐민'이란 표기를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 한겨레의 '프라이드'이다. 아마도 '베냐민 지파'의 후손들인 모양이다).

-‘이 책은 나의 모든 투쟁, 나의 모든 사상의 무대’라고 그 스스로 말했다는 이 미완성 자료집은 그동안 여러 해석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국내 독자들한테는 부분 인용되거나 이름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말 완역 출간의 의미는 크다. 이 책에선 베냐민이 근대 자본주의의 ‘모더니티’를 19세기에 이미 찾아나선 발견자의 상상력을 엿보여준다.

-아케이드, 유행품점, 패션, 권태, 오스만식 도시, 철골 건축, 박람회, 광고, 꿈, 매춘·도박, 파노라마, 조명 같은 이름말들은 호기심 많고도 우울한 ‘비판적 관찰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하부구조를 분석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과 다르게 “자본주의에 대한, 자본주의 안에서 하는 전혀 다른 발본적 사유”로서 근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 좋은 텍스트로 꼽히고 있다. 그가 “초현실주의의 어머니”로 부른 아케이드는 왜 베냐민을 그토록 흥분시키고 매혹시켰을까?(*누구더러 답하라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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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클로 2006-07-04 11:12   좋아요 0 | URL
기쁜 일입니다...

palefire 2006-07-04 12:53   좋아요 0 | URL
영역판은 그래도 페이퍼백이 나와서 다행입니다(아마 페이퍼백으로 주문하신 것 같아요). 하드커버 책가방에 들고다니면 볼만하죠. 거기다 노트북까지;;

로쟈 2006-07-04 12:58   좋아요 0 | URL
네, 페이퍼백이 25불 가량이더군요(중고는 12-3불까지도 떨어지던데, 벤야민 얼굴을 봐서 새 책으로 주문했습니다). 그럴리야 없을 테지만, 전4권과 영역본의 무게를 합하면 거의 군장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고 구보까지 해야 한다면?.. 다시 돌아가기 싫은데요.^^

드팀전 2006-07-05 17:34   좋아요 0 | URL
1,2권 합치면 거의 4천페이지군요....저같은 직딩이 읽으려면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도전의식같은게 생기긴하는데....그전에 수잔 벅 모스의< 발터벤야민과 아케이드프로젝트>를 읽어야할 듯....

로쟈 2006-07-05 19:30   좋아요 0 | URL
영역본이 1천쪽이 좀 넘는데, 국역본이 쪽수로는 거의 4배가 되는군요...
 

아침신문들을 읽다가 교수신문에서 독일의 저명한 작가 페터 한트케의 하이네상 수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란을 다룬 기사를 옮겨온다. 필자는 정광진 통신원이며 기사의 타이틀은 "親세르비아 작가는 비난받아야만 하나"이고 부제가 "獨, 페터 한트케의 하이네상 수상을 둘러싼 소동"이다. 그걸 '페터 한트케를 둘러싼 소동'으로 줄였다. 제목과 부제에서 '소동'의 내용을 얼추 짐작해볼 수 있다.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독일 작가로 인정되지만 한트케는 자국의 하이네상 수상자로는 '부적격'하다고 간주되는 모양이다.

-최근 독일에서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페터 한트케의 하이네상 수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은 한트케가 수상을 거절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이 논쟁의 논점은 작가의 정치적 입장과 작품에 대한 평가를 분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독립된 심사위원회가 결정한 것을 시당국이 거부할 수 있는가다. 하이네상은 하인리히 하이네의 고향인 뒤셀도르프시가 1972년부터 뛰어난 업적을 남긴 문화계 인사들에게 수여해온 것인데, 지난 5월 20일 한트케로 수상자가 발표되면서 문단과 언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한트케는 90년대 중반부터 유고연방 해체 와중에서 일어난 발칸반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親세르비아적 내용을 담은 글을 계속 발표해왔고, 지난 3월엔 헤이그에서 전재판을 받던 중 숨을 거둔 前 유고 대통령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연설까지 했는데 그런 작가에게 하이네상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기존 수상자들 상 반납하겠다고 나서
-작가 귄터 쿠네르트는 어떻게 독일의 역사를 경험하고서도 “독재자의 광대”를 칭송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한트케에게 상이 수여된다면 자신이 1985년 수상했던 하이네상을 반납하겠다고 나섰다. 파문이 커지자 하이네상과 뒤셀도르프시의 이미지 훼손을 우려한 시의회가 수상에 대한 승인을 거부하고 올해는 하이네상 수상자를 내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그러자 이에 항의해 심사의원이었던 뢰플러와 르페브르가 심사위원회 탈퇴의사를 밝혔다.

-그들은 “비어만, 옌첸스베르거, 쿠네르트 등 역대 하이네상 수상자들은 정관에 씌어진 대로, ‘사회적·정치적 진보’와 ‘민족간 이해’에 기여해서가 아니라 작품성을 인정받아 수상했다”고 반박했다(*옌첸스베르거는 아동용 도서들로 국내에 더 잘 알려져 있다. 볼프 비어만의 책들은 다 어디로 갔나?). 또 “그는 가장 뛰어난 작가이고, 세상을 의도적으로 달리 보려는 그의 삶의 방식, 창작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고 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옹호했다.

-독일작가협회도 “독립적인 심사위원회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혼란 중에 한트케는 결국  6월 2일 뒤셀도르프 시장에게 편지를 보내 “더 이상 정치인들이 나와 내 작품을 모욕하게 놔둘 수 없다”며 수상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한 매듭이 지어졌다.

-이번 일은 지난 3월엔 프랑스 국립극장 ‘코메디 프랑세즈’가 밀로셰비치 장례식 참석을 이유로 2007년에 예정됐던 그의 작품상연을 취소한다고 밝힌 것과 더불어 작가로서 한트케의 명성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됐다. 한트케는 왜 비난을 무릅쓰면서 고집스럽게 세르비아와 밀로셰비치의 변론자 역할을 떠맡고 있는 걸까. 

 

 

 

 

-한트케는 1942년 옛 유고연방(현재 슬로베니아쪽) 접경지인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캐른텐에서 태어났는데, 모계는 슬로베니아 출신이고 한트케 자신도 어린 시절엔 슬로베니아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했다. 슬로베니아는 몇몇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하지만, 한트케에게 더 중요한 건 슬로베니아의 일부였던 유고슬라비아다.

-여러 민족과 종교가 한 국가 깃발 아래 뭉친 유고연방에서 한트케는 자신이 찬미하는 독일작가 슈티프터가 바로 한 세기 전에 꿈꿨던 ‘全세계성’(Allerweltlichkeit)의 구현을 발견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염명인). 유고연방의 해체에 대한 아쉬움은 “내게 있어서 유럽은 유고와 함께 사멸했다”는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신념이 유고연방의 주축이자 동구권의 해체 후에도 연방을 유지하려던 세르비아계를 우호적으로 보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한트케는 서유럽 언론들이 유고슬라비아의 유산을 둘러싼 싸움에서 독립하려는 국가들의 이기주의보다는, 무력을 통해서라도 통합을 유지하려는 세르비아만을 악마적으로 일방적으로 묘사하며 비판했다고 본다. 이것이 그의 도발적 행동의 직접적 원인이다. 한트케는 저널리스트적 획일성과 흑백논리를 배격하고, 언론과는 다른 언어와 표현방식을 선택하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게는 다름 아닌 세르비아와 밀로셰비치가 패배자이자 약자이며, 그래서 “세르비아를 위한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서구언론에 대한 도전은 사실 “창작을 하나의 도전”으로 보는 그의 세계관에서 보면 일관성이 있다. 그는 모든 존재현상들에 대해 이제까지의 모든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 존재의 직접성을 표현하는 것을 창작의 의도로 밝히고 있다. 문학의 정치화는 자명하게 규정된 것,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지배체제의 드라마투르기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며 이런 인식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문학의 과제라고 봤다. “선입견에 대한 도전”, 이것이 그의 도발적 저술작업, 영화제작참여 또는 심지어 정치적 활동 모두를 가장 적절히 설명해주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한트케는 “역사를 새로 쓰려고 한다고 나를 비난하는데, 언론인들은 역사를 써도 되느냐”고 반박한다. 한트케의 튀는 행보는 역사적 진실을 찾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그것의 원인은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향수와 일방적인 서구언론에 대한 반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는 12월에 하이네상을 수상하게 되면 시인의 언어와 저널리즘 언어의 차이에 대해서 연설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이네상을 둘러싼 논쟁에서 한트케의 친 세르비아적 입장 자체를 옹호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대신 보토 스트라우쓰는 브레히트, 칼 슈미트, 하이데거 등을 언급하며 위대한 작가는 실수할 수 있다며 한트케를 옹호했고, 심사위원이었던 뢰플러는 한트케가 독재자 편을 든 게 아니라 사건의 여러 측면을 고려하자고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시의회의 수상취소에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귄터 그라스는 최근 차이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트케의 세르비아, 밀로셰비치에 대한 견해에는 털끝만큼도 동의하지 않지만 문학적 기준을 가지고 심사한 것을 두고 정치적인 이유에서 번복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사실 심사위원 12명 중에 시의회 정치인 5명도 포함돼 있었음에도 시의회가 수상취소를 결정한 것은 언론보도 등을 통해 파문이 커지자 서둘러 차단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번 소동은 한트케가 스스로를 ‘바보’라고 부르면서도 그가 부딪혀 싸우려는 언론의 영향력을 보여 준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한트케의 대표작이 드라마 <관객모독>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06.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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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구내서점에서 본 두툼함 책 하나는 '학문 주체화의 새로운 모색'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우리 안의 보편성>(한울, 2006)이었다. 한동안 '학문의 주체성' 내지는 '우리 학문'이란 말이 학술계의 화두로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신간은 그간의 성과를 집약하고 있는 책인지, 아니면 주기적인 레퍼토리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걸 직접 따져볼 만한 형편은 아니었는데, 얼마간 궁금증을 풀어주는 리뷰가 있길래 옮겨온다. 문화일보 최영창 기자가 쓴 "탈식민적 인식서 나아가 현실에 대한 보편적 독해"란 제하의 리뷰가 그것이다. 참고로, '우리 안의'란 표현은 <우리 안의 파시즘>(삼인, 2000) 이후 최근에 출간된 <우리 안의 과거>(휴머니스트, 2006)에 이르기까지 출판계에 유행하고 있는 하나의 트랜드이다.

 

 

 

 

문화일보(06. 06. 30) 1990년대 중반 미국 서부 남가주대(USC)에 교환교수로 가 있던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세계체제론의 권위자인 지오반니 아기리의 강의를 듣다가 “독재정부가 아닌 민주정부 아래에서 투쟁하는 한국을 포함한 제3세계 신흥공업국의 노동운동의 과제와 방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아기리는 “그것은 나에게 물어야 할 것이 아니라 당신이나 한국의 운동가들이 스스로 대답해야 할 문제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신흥공업국 노동운동의 선봉에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향방이 세계 노동운동에 중요한 전범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국내 인문사회과학자 12명이 서구 학문으로부터의 종속에서 벗어나 우리 학문의 주체적 정립을 모색한 책에서 조희연 교수는 당시 경험을 예로 들며 일생일대의 ‘지적 수치심’을 느꼈던 때라고 밝혔다. 당혹감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 그는 강의가 끝난 뒤 벤치에 한 시간쯤 앉아 국내 학계와 지성계가 우리 현실을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지 수치스러운 마음으로 되돌아보았다고 한다.

-우리 근대학문의 서구 종속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상지대·성공회대·한신대 3개 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민주사회정책연구원에서 기획한 책은 우리의 경험과 현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탈식민적 인식’의 순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 현실에 대한 ‘주체적이고 보편적인 독해’를 통한 실천적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여기서 ‘보편적 독해’란 정신대 문제나 박정희 신드롬, 광주항쟁 같이 우리 사회의 ‘특수성’으로 간주되는 현상들 속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을 읽어내려는 노력을 말한다.


 

 

 


-한국 학계 전반의 식민성을 점검한 서장에서 조희연 교수는 “지적·학문적 식민주의는 미국적 근대화를 추구했던 주류 우파 학자들뿐 아니라 이에 저항했던 좌파 학자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잉보편화’된 서구적 보편의 특수화와 함께 그동안 주변적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과잉특수화’된 한국적·비서구적 특수의 보편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다만 우리 안의 보편성 발견 노력은 ‘우리 안의 파시즘’을 인식하는 과정과 동시에 진행돼야 ‘국가주의’나 파시즘으로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고 조 교수는 덧붙였다. 화교나 외국인 노동자, 정주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에서 볼 수 있는 무수한 ‘우리 안의 파시즘’적 잠재력을 성찰하고 극복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질 때 현재의 ‘한류’가 문화적 패권주의가 아니라 아시아 동반주의의 새로운 문화적 차원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서장에 이어 독일과 일본, 중국, 남아프리카 등 해외에서 이뤄진 학문 주체화 사례들을 다룬 논문과 내재적발전론·민족경제론, 분단시대론, 민중 등 광복 후 국내 학계에서 학문 주체화를 시도한 대표적 사례들을 살펴본 글, 이병천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의 ‘개발자본주의론’ 처럼 한국사회의 주요 측면들에 대해 최근 새롭게 개념화·이론화에 들어간 작업들을 해당 연구자가 직접 소개하는 논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서구의 근대학문과 우리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지만, 사실 우리 학문의 대외 종속성은 근대나 서구와의 관계로만 한정되지 않고 훨씬 더 뿌리가 올라가고 복잡한 문제다. 따라서 필진으로 참여한 12명의 노력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낯설게 비쳐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가진 의미는 인정받을 가치가 충분하다(*이를 계기로 '우리 학문의 (불)가능성에 대한 보다 진전된 논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06. 07. 03.

P.S. 러시아 사이트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들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한반도 지도 한 장을 옮겨놓는다. 동아시아사에 대한 내용 중 7세기 삼국시대의 한반도 모습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양편으로 황해와 동해가 러시아어로 표기돼 있다. 암튼, 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우리 안의 보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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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퇴전문 2006-07-04 04:37   좋아요 0 | URL
당면한 현실과 문제들을 스스로의 머리로 고민하지 않는 한국적인 무언가를 식민과 냉전-분단 체제 탓으로 결론 짓는 것도 차츰 망설여집니다. 지적인 전통과 토양이란 것에 대해 알면 알아갈수록 답답한 심사도 함께 느네요. 가령 거대 제국이 공급해주는 담론들을 끽 소리 않고 받아들여서 오히려 더 교조적으로 울궈먹는 모습도 조선조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전통인가 싶고, 대전제는 결코 건드리지 않는 안전한 개설서를 주로 내놓는 모습도 당시 유생들이나 지금 교수들이나 뭐가 다를까 싶죠. 때론 한국이 뒷방 구석의 작은 냉장고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통 기한이 지난 수입 식품들을 오롯히 저장해두는.

공부가, 평생 남이 퍼질러 놓은 대변이나 분석하다 끝나는 것이 아닌가.. 그게 나 하나 잘 하고 열심히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곧 죽어도 능력 없다곤 인정 안 하죠;), 가끔씩 서늘해지는 거겠죠. 초면 불구하고 몇자 남깁니다.

로쟈 2006-07-04 07:39   좋아요 0 | URL
'뒷방 구석의 작은 냉장고'란 비유가 절묘하네요.^^ 이게 한 개인의 역량과 무관한 듯싶은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떼로 돌파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됩니다. 누군가 좀 뚫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오늘자 조간신문들의 문학란은 대부분 중국계 프랑스 작가 샨사의 방한기사로 채워져 있다.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방한소식을 기사를 통해 처음 접하고 나는 두번 놀랐다. 나이가 나보다 많이 어리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그럼에도 외모는 나이가 더 들어보인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랐다. '놀랐다'고 적었지만 그냥 '의외였다'고 해야 맞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의외인 것은 이 '중국 여성'이 불어를 배운 지 4년만에 쓰기 시작한 소설들로 프랑스 문단을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 이게 사실은 가장 '놀라운' 일이다! 비록 당분간은 그녀의 소설을 읽을 일이 없을 듯하지만, 안면 정도는 터둔다는 의미에서 관련기사 몇 편을 옮겨둔다(일부 중복되는 내용은 조정했다).   

세계일보(06. 07. 03) "천안문 사태가 내 인생 전환점"

-감각적인 문체와 진중한 서사로 국내에도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한 중국계 프랑스 작가 샨사(34·사진)가 지난 1일 ‘현대문학’ 초청으로 방한했다. 1972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천안문사태를 겪은 후 17세에 파리로 건너가 불어를 배운 지 불과 4년 만에 불어 소설을 집필, <천안문> <바둑 두는 여자> <측천무후> 등을 잇달아 펴내면서 프랑스 고교생들이 선정하는 ‘공쿠르 데 리세앙’상 수상을 비롯해 뜨거운 호응을 얻어낸 작가. 입국 당일 기자와 만난 작가는 일본에서 다양한 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난 직후여서인지 다소 피로한 듯했지만 맑은 눈동자에 빛나는 투지를 담고 있었다.

 

 

 



―불어로 쓴 첫 소설이 <천안문>인데, 천안문사태는 당신에게 어떤 경험이었나?

당시 고교생이었기에 적극적으로 낄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시위대에게 물을 가져다 주고 여러 가지 물품을 공급하는 정도의 일은 했다. 나는 그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건너갔는데,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는 파리지앵들을 보면서 비극적인 사태로 인한 심리적 내상까지 지니고 있던 나는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듯한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도 천안문사태를 매체를 통해 접했겠지만 고통이란 공유되기 힘든 것이었다.”

―왜 중국어가 아닌 불어로 소설을 썼는가.

“프랑스에 가기 전까지 따로 불어를 배운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틀리건 맞건 간에 ‘쓰겠다’는 용기를 냈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

―독자들이 당신 소설에 열광하는 이유는?

좋은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다른 인터뷰에서도 드러나지만 그녀의 자신감과 도도함은 하늘을 찌른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이란 자기 만족을 위한 에고이스트 소설이 아니라, 보편적인 주제를 통해 감동과 함께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하는 소설이다. 내 소설은 공간이 특별하고 오감을 건드리는 심포닉한 불어를 쓰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당신 소설에서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배경은?

내 소설은 꿈꾸게 하는 소설과 공포나 잔인함, 생의 막다른 골목을 드러내는 소설로 나뉜다. <측천무후>나 <버드나무의 네 번째 삶>이 전자이고, <바둑 두는 여자> <천안문> <음모자들>이 후자일 것이다. 이 두 부류의 작품들을 번갈아 쓰면서 내 안의 균형을 유지하는 편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흔히 성공한 여자들을 ‘악마’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런 여자들이야말로 ‘불꽃 위를 나는 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불꽃을 건너 날아가는 새다.”

-그림도 병행하고 있는 샨사는 소설을 쓸 때는 하루에 15시간씩 매달리며 수도자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단문을 전략적으로 구사하는 그는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해 단칼에 문장을 요리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단어를 사람처럼 대한다는 그는 “단어마다 각기 다른 기질과 관능이 배어 있는데 주방장이 향신료를 적절히 활용해 좋은 요리를 만들어내듯 내가 애정을 가지는 그 단어들로 소설을 완성해낸다”고 말한다.

-프랑스에서 한국인들도 많이 접했다는 샨사는 “한국인은 다이내믹하고 창의적인 민족 같다”며 “한국영화는 셀 수도 없이 많이 봐서 제목조차 기억 못할 정도”라고 한국과의 친연성을 드러냈다. 한국에서는 낭송회(4일 오후 7시 교보문고 잠실점)와 사인회(5일 오후 3시 교보문고 광화문점)를 비롯해 각종 매체와의 바쁜 인터뷰 스케줄로 꽉 차 있다. 1주일 후에는 부모가 사는 베이징으로 날아가 영화 계약을 해야 한다. 이렇게 바쁜 생활 속에서 사랑은 언제 하나.(*소설은 언제 쓰나, 라고 질문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우리 각자의 가장 훌륭한 부분, 서로 만나기로 되어 있는 두 존재의 완전한 융합입니다. 그러나 삶은 그 존재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랑은 짧은 순간들 속에서만 존재합니다.”(글·사진 조용호 기자)

동아일보(06. 07. 03) "‘베이징의 별’…중국계 프랑스인 작가 샨사 내한"

-소녀는 작가가 되리라는 걸 알았다. 여덟 살 때 시를 쓰기 시작해 10대 시절 이미 세 권의 시집을 냈고 ‘베이징의 별’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베이징대 진학을 앞둔 17세에 소녀는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맞는다. 도저히 공부할 상황이 아님을 알고는 프랑스행을 결심했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얀니(閻c)라는 원래의 이름 대신 샨사(山颯)라는 이름을 쓰기로 한다. 아들을 낳으면 이름에 ‘사(颯·바람소리를 뜻함)’를 쓰려고 했다는 아버지의 얘기를 일찍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계 프랑스인 소설가 샨사(34)가 1일 처음 내한했다. 국내에선 2002년 소설 <바둑 두는 여자>가 처음 소개된 뒤 대표작 <측천무후> 한 종만 8만 부가 팔린 인기작가다. <바둑 두는 여자>는 고등학생들이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뽑혀 공쿠르 데 리세앙 상을 받았으며 <측천무후>는 프랑스 출판사 두 곳이 판권을 놓고 법정 분쟁까지 벌였다.

-놀라운 것은 그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는 사실. 그랬던 그가 파리 생활 7년 만인 1997년 프랑스어로 쓴 첫 소설 <천안문의 여자>를 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창작을 감행한 이유를 묻자 샨사는 “나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희열을 느낀다”고 답했다.

-샨사 소설의 문체는 아름답지만 단문으로 쓰여 속도감 있게 읽힌다. 그는 “(소설을 쓸 때) 사전 속 단어를 찾아보면서 ‘언어의 관능’을 느낀다”고 했다. 단어를 정교하게 직조하되 “단칼에 치듯” 문장을 쓴다고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여성이지만 전쟁, 음모 같은 남성적인 주제를 다룬다. 샨사는 “권력, 두뇌의 힘, 사상의 대립과 충돌을 지켜보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로 귀화한 그는 “서양인, 동양인 중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나”라는 물음에 “나는 중국이 벼려내고 서양의 불 속에 담금질된 칼”이라고 답했다.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만큼 질시도 따랐다. 공쿠르상 등 각종 문학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샨사는 중국 스파이’라는 투서가 잇따랐을 정도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얘길 들려줬지만 이내 “거기서 소설 <음모자들>의 모티브를 얻었다”며 웃었다(<음모자들>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중국 스파이와 미국 CIA 요원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다).

-그는 아침마다 태극권으로 몸을 단련하고 서예를 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창작에 매진할 때면 하루 15시간씩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그는 개인전을 수차례 연 화가이기도 하다). 일하느라 바빠 연애할 시간이 없다면서도 샨사는 “사랑은 운명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형사>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 영화를 많이 봤으며 임권택 감독을 좋아한다고 했다. 수년 전 임 감독 등 한국 영화 제작진과 우연히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는데 ‘보드카 폭탄주’를 만드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김지영 기자)

한국일보(06. 07. 03) 中 태생 佛작가 샨사 방한 "동서고금 아우른 세계문학 추구"

-"단어는 하나하나가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저는 그 영혼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 존경과 사랑이 단어와 저를 매개합니다." 중국 태생의 프랑스 작가 샨사(34)는 앙가슴이 드러나는 드레스 차림이었다. 그리 크지않은 키에 둥근 몽골리언 골격, 서글서글한 눈매와 푸근한 웃음은 그의 문장이 지닌 섬세한 힘과 언뜻 조화되지 않는 듯했지만, 소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대목에 이르자 측천무후의 위의(威儀)처럼 도도하고 당당했다.

-베이징에서 나서 문학 신동이라 불리며 8살 때부터 시를 썼고, 18살에 프랑스 정부 장학금으로 파리 유학, 7년 만에 불어로 장편소설 <천안문의 여자>(원제 <천안문>)를 써낸 작가. 이후 <바둑 두는 여자> <측천무후'>등 그의 작품은 발표될 때마다 프랑스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미국과 일본에도 번역 출간됐다. 이번 한국 방문은 책 출간 홍보와 <측천무후> 등의 영화 제작 협의차 중국과 일본을 들르는 김에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저는 완벽주의자예요. 문장이 마음에 안 들면 10번이고 20번이고 고쳐 씁니다." 그 노력이 2차 언어로 직조한 그의 문학을 토종 프랑스문학에 꿀리지 않게 한(때로는 압도하게 한) 힘일 것이다.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유러피언의 산문은 복싱입니다. 그만큼 몸과 발과 팔동작이 복잡하다는 의미지요. 반면 저의 글은 검도예요. 머뭇거림 없이 단칼에 내려치는 것이지요." 그는 자신의 문학이 지닌 장점을 "독창적인 문장과 강렬한(강력한) 인물 설정, 그리고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묘사의 힘"이라고 말했다.

-부모는 중국에 있고 매년 한두 차례 고향을 방문한다. 6년 전 중국 국적을 포기하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지만 그의 소설은 다분히 중국적이다. 작품 소재로서의 역사가 그러하고, 문화적 맥락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는 "나의 문학은 세계 문학"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9월쯤 출간될 신작 <알렉산더와 알레스트리아>는 중국 역사와 무관한 작품이죠. 전 보편적인 문학을 추구합니다." 그는 근작의 내용을 잠깐 소개했다.

-"스키타이 일족 가운데 여전사 부족이 있었고, 그 부족 여왕과 알렉산더가 만났다는 기록이 그리스 문헌에 등장합니다. 물론 사료적 근거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그 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알렉산더를 선택했냐는 질문에, 사뭇 진지하게 "알렉산더가 나를 택한 것"이라고 말할 만큼 당당한 이 작가는 독자사인회와 인터뷰 등 일정을 마친 뒤 7일 출국한다.(최윤필기자)

06. 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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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7-03 19:28   좋아요 0 | URL
샨샤의 작품은 몇 개 읽어보았는데, 좀 실망했었습니다. 천안문을 소재적 차원에서만 다룬다는 느낌도 있었고, 오리엔탈리즘을 무기로 혹은 화장으로 공허함을 감추는 것도 같았고요.
하지만, '고통이란 공유되기 힘든 것이었다'라는 말은 가슴에 울리네요...
우리의 박완서나 임철우의 글들이 생각납니다. 망각에 저항하며 상처를 쥐어뜯는 사람들.
퍼갑니다 ;)

로쟈 2006-07-03 20:04   좋아요 0 | URL
<천안문>이 데뷔작이라면 가장 약한 소설일 수도 있을 거 같네요. 프랑스 출판사들이 난리였다는 걸 보면, 그래도 뭔가 '대중적인' 무기를 갖고 있지 않나 싶고. 저는 그녀의 '도도함'이 눈에 띄길래 옮겨왔습니다...

stella.K 2006-07-04 13:05   좋아요 0 | URL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나온 사진하고 지금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살도 많이 찌고. 전 천안문 읽어 봤는데 나름대로 괜찮던데, 그후 읽을 기회를 못 갖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꽤 기대가 되요. 15시간이라...전 좀 더 노력해야겠군요. ㅋㅋ. 가져갑니다.^^

로쟈 2006-07-04 13:06   좋아요 0 | URL
조만간 '광화문'이 나오는 건가요?^^

비자림 2006-07-04 13:19   좋아요 0 | URL
기인님 서재에서 얘기하다 왔어요. 님이 올리신 글이었군요.
앗, 님도 소설을 읽으시나요???? 저는 어려운 책만 읽으시는 줄 알았다는.. 호호

로쟈 2006-07-04 13:3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제 전공이 '문학'인데요(^^;). 샨사의 소설들은 아직 읽은 바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