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독서>(웅진지식하우스, 2013)가 나온 지 한달 보름이 돼 간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책 소개도 하고 강의도 진행중인데, 가끔씩 긍정적인 독서 경험을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반갑다. 한 기업 사보에서는 이 책을 서평도서로 다뤄주기도 했는데, 직장인 서평단에서 이 책을 읽고 질문한 내용에 붙인 대답을 여기에 옮겨놓는다(지면에는 아마 조금 축약돼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주로 고전과 독서에 관한 질문들이다.

 

 

 

1. 살면서 돌아보니 어느 순간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만 읽게 됩니다. 회사의 허리를 책임지는 40대 직장인에게 좋은 책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세요.


-> ‘40대’ 인구가 많아지고 유력한 독자층으로 부상하면서 출판계에서는 아예 40대를 겨냥한 책들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제목에 ‘마흔’을 달고 있는 책들이 부쩍 늘어났지요. 40대의 관심사와 고민을 염두에 둔 책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책만 읽을 필요는 없겠죠. 40대는 ‘회사의 허리를 책임지는’ 나이이지만 동시에 각자의 인생을 중간결산해보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뭔가 새로운 인생을 살기에 아주 뒤늦은 나이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그러기도 쉽지 않은 나이. 좋은 책을 많이 찾아서 읽는 것도 좋겠지만 어떤 책을 깊이 읽는 게 필요한 때 같습니다. 저의 지론이지만 우리가 인생을 두 번 살 수는 없어도 책은 두 번 읽을 수 있습니다. 좋은 책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읽은 책을 나에게 좋은 책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다면 무의미하지요. 좋은 책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2. 아이들과 함께 고전을 읽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합니다. 즐겁게 고전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어떤 고전을 추천해주는 게 좋을까요?

-> 고전을 억지로 읽는 일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높은 산을 오를 때 분명 힘이 들지만 정상을 오르고 나면 그만한 기쁨을 보상으로 받을 수는 있지요. 하지만 독서는 결과보다 과정 자체가 중요하기에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는 것에서만 독서의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어떤 책이건 간에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책은 우리가 뭔가 발견하거나 깨닫게 하는 책입니다.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고 뭔가 성장했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책들이지요.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범위를 고전으로 확장해나가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가 고전을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고, 그런 즐거움을 아는 아이라면 자연스레 고전으로도 손길이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3. 작가님은 이미 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독서를 하시기에 작가의 창작의도까지 꿰뚫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독자들은 지식을 많이 갖추지 못할 수도 있는데요. 이런 대중이라면 어떤 기준으로 독서의 방향을 잡아야 할까요?

-> 독서는 매우 정직한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만큼 많이 읽고, 얼마만큼 즐겁게 읽었느냐가 그대로 ‘독서력’이 되니까요. 일차적으로는 기본 독서력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략 150권 안팎의 책을 읽는 게 필요하다고 하네요. 그런 독서량은 우리의 뇌에 독서근육을 만들어줍니다. 어지간한 책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죠. 그 이후엔 다시 읽기나 깊이 읽기가 독서력을 크게 향상시켜줍니다. 또 같은 책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읽는지 비교해보고 내가 놓친 것,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확인해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다시 읽으면 그만큼 자세히 읽게 되고 더 많은 걸 소화할 수 있습니다. 꾸준히 읽어나가면 독서력은 성장하게 되고, 우리에겐 독서를 즐길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4. 해외 고전의 경우, 번역본이기 때문에 이해도가 떨어져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서의 차이도 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고전을 읽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 같은 이유에서 한국영화만 보는 분도 있고, 한국 가요만 듣는 분도 있지요. 혹 해외관광도 그런 이유에서 피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한 가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해외관광도 좋아하고 다른 나라 음식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해외 고전을 읽는 게 힘들기만 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다른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궁금하다면요. 번역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지만, 사실 우리 고전 역시 절대 다수가 번역본입니다. 한문 고전을 한글로 옮긴 것이니까요. 정서의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그 차이 못지않게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떤 보편성입니다. 차이 속에서도 동질성을 발견하게 된다고 할까요. 게다가 실제적인 필요성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세계는 평평하고 ‘우리는 하나’이며 지구촌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면 우리 것에만 관심을 한정하는 것은 한 가지 선택이더라도 어려운 선택입니다.   

 

5. <아주 사적인 독서>에 소개된 고전문학 중 원본으로 읽어볼만 한 책을 하나 골라주신다면 어떤 것이며 이유는 무엇인가요?

-> <마담 보바리>는 불어, <파우스트>는 독어, <돈키호테>는 스페인어, <석상손님>은 러시아어로 쓰인 작품이기에 원본으로 읽기에 좀 만만한(?) 작품은 영어로 쓰인 <햄릿>이나 <주홍글자>, <채털리부인의 연인> 등입니다. 분량을 고려하면 가장 얇은 <햄릿>을 권해드려야겠습니다. 다만 두어 종 이상의 번역본과 원문을 대조해가며 읽으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한 대목씩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는다면 고전의 맛과 힘을 경험할 수 있고, 어디 가서 자랑하기에도 좋습니다. “<햄릿>을 읽어보니까 말이야-”

 

6. <아주 사적인 독서>에 소개된 고전 문학 외에 추천해 주실만한 고전 문학을 꼽으신다면? 그리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 책에서 다룬 고전은 극히 일부이고 사실 읽을 만한 고전은 차고 넘칩니다. 따라서 마음에 드는 작가나 작품에서 관심을 확장해나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가령 <햄릿>이 흥미롭다면 셰익스피어의 비극 가운데 나머지 작품들을 마저 읽어볼 수 있고, 괴테의 <파우스트>를 독파했다면 같은 독일 작가인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에도 도전해볼 수 있습니다. 푸슈킨의 <석상손님>이 인상적이었다면 대표작 <예브게니 오네긴>에도 손길이 갈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강의차 카프카의 작품을 읽고 있습니다. <변신> 같은 카프카의 단편들과 <소송> 같은 소설도 필독 고전에 속하는데, 직장생활과 창작을 병행했던 작가의 고뇌가 직장인들에게는 남의 일 같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고전과 나 사이의 사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7. 책을 읽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의 책만 읽어도 될까요? 기본 소양을 키울 수 있는 필독서는 반드시 읽고 난 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요?

-> 각자가 좋아하는 책과 각자에게 좋은 책이 일치하다면 100%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게 일치하지 않는다면, 조정할 필요는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만 먹으면 대개 편식하게 되고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거꾸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어느 정도 읽어나가되 여러 분야의 책들로 관심과 독서 범위를 확장해나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세계는 넓고 읽을 책은 많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읽다 보면 취향도 변화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 독서를 통한 자기발견이 아닐까요.   

 

13. 0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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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이번주는 철학, 역사, 과학 분야의 책들이 경합을 벌이는 형국인데 한동안 뜸했다는 생각에서 과학 쪽으로 핀트를 맞추었다. 타이틀은 영장류 학자 다리오 마에스트리피에리의 <영장류 게임>(책읽는수요일, 2013)에서 가져왔다. 한 소개글에 따르면 "방대한 문헌 수집과 영장류 동물의 관찰을 통해 인간 행동 이론에 대한 견고한 기초를 다지고 복잡한 사회 패턴의 진화적 뿌리를 추적한다."  

 

 

두번째 책은 신경생물학자 마크 챈기지의 <자연모방>(에이도스, 2013)이다.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가늠하기 어려운데, 원제는 표지에 들어가 있다. '언어와 음악은 어떻게 자연을 흉내 내고 유인원을 인간으로 탈바꿈시켰을까?' 언어와 음악이 인간을 진화시킨 중요한 동력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즉 인간이 언어와 음악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거꾸로 언어와 음악이 유인원을 인간으로 탈바꿈시켰다는 것. 주객이 바뀌었다고 할까. 음악과 진화 문제를 다룬 책들이 좀 나와 있는데 <자연모방>은 당분간 그 '종결자' 역할을 할 듯싶다. 세번째 책은 아서 드 배니의 <원시인 다이어트>(백년후, 2013). 나로선 존 앨런의 <미각의 지배>(미디어윌, 2013) 덕분에 로렌 코데인의 <구석기 다이어트>(황금물고기, 2012)를 알게 됐고, 그 연장선상에서 손이 간 책이기도 하다. 로렌 코데인 박사가 평하길 "<원시인 다이어트>는 구석기 다이어트의 핵심 개념을 제대로 담고 있다."

 

 

네번째 책은 '인문의학자' 강신익의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페이퍼로드, 2013)다. 과학과 삶과 몸의 문제를 다룬 과학 에세이집. 그리고 마지막 다섯번째 책은 테리 도일의 <뇌과학과 학습혁명>(돋을새김, 2013)이다. 부제는 '뇌과학에서 찾아낸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 뇌과학의 성과가 학습법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 가령 이런 식이다. "인간의 뇌에 관한 연구업적 중 교육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뇌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다. 신경가소성이란, 지식이나 경험이 쌓이면 새로운 신경이 성장하고 새로운 신경 연결망이 더해짐으로써 변화하는 인간 뇌의 능력을 일컫는다. 이는 ‘실제로 공부를 하는 사람이 배움을 얻는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이렇게 신경의 연결과 새로운 뉴런이 증가해야 우리가 더 똑똑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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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게임- 어떻게 최소의 위험과 비용으로 목적을 이룰 것인가?
다리오 마에스트리피에리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3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2013년 03월 23일에 저장
절판
자연 모방- 언어와 음악은 어떻게 자연을 흉내 내고 유인원을 인간으로 탈바꿈시켰을까?
마크 챈기지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3년 3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2013년 03월 23일에 저장
절판

원시인 다이어트- 구석기인들이 먹었던 음식을 먹어라
아서 드 배니 지음, 장호연 옮김 / 백년후 / 2013년 3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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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
강신익 지음 / 페이퍼로드 / 2013년 3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03월 2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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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묵직한 주제의 한국사 연구서가 나왔다. 존 B. 던컨의 <조선왕조의 기원>(너머북스, 2013). 저자는 1945년생으로 현재는 UCLA의 아시아언어문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다. 영어권의 가장 대표적인 한국사 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옮긴이에 따르면 "저자는 타계하신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와 제임스 팔레 교수를 이어 현재 해외의 한국사 연구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 학자 중 한 분"이다. 팔레는 저자의 지도교수이기도 한데, 이 책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다. "조선왕조의 본질과 기원에 관련된 기존의 여러 통설을 뒤집은 독창적이고 원숙한 업적이다." 

 

 

이미 에그워드 와그너와 제임스 팔레 교수의 주저가 번역된 데 이어서 또다른 해외 한국사학자의 대표작이 소개됨으로써 한국사를 보는 우리의 시야가 상당히 넓어졌다.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 2013)를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기존 통설에 대해) 매우 도전적인 주장을 펼치는 이들의 공력이 만만치 않으며 이에 버금갈 만한 국내 학자들의 업적으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조선왕조의 기원>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 '조선왕조의 고려적 기원'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인데, 학위논문을 쓰는 데 7-8년, 그리고 그것을 수정해 책으로 내놓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할 만큼 공을 들인 노작이다. 한국어판에 붙인 머리말에서 저자는 그사이에 한국사 연구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토로한다. 

그사이에 신흥 사대부설이 정설로 굳어졌고 한국 역사학계의 젊은 한국사학자들의 주된 관심거리는 고대사와 현대사로 옮겨갔다. 뿐만 아니라 어렵게 썼다고 하는 이 책의 원본은 영어가 비교적 짧다는 한국 전근대사 전공자들에게 읽고 소화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행간을 들여다보자면 저자는 두 가지를 지적한다. 신흥 사대부 조선 건국론에 정면에서 반박하는 게 자신의 핵심 논지이지만 그가 너무 오래 붙들고 있다가 성과를 내놓는 바람에 '신흥 사대부설'이 아예 '정설'로 굳어져버렸다는 것(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논쟁적인 책이 출간된 다음에 사정이 바뀌었느냐면 그것도 아니라는 것. 전공자들이 이 '어려운 책'을 독해를 못해서 한국사학계에 별로 임팩트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한국어판 번역이 의미를 갖게 되는데, 저자는 이런 바람을 덧붙인다.

이 책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통설인 신흥 사대부설에 정면 도전하는 연구로서 한국어판의 출간이 다시 여말-선초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조금이라도 불러일으켜 이 중요한 역사적 전환기에 대해 더 좋은 해석이 나오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하겠다.  

이것은 비단 저자만의 바람이 아니라 나 같은 일개 독자도 갖게 되는 기대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출판사의 책소개를 참고할 수 있기에 여기서 길게 늘어놓지 않는다. 다만 핵심만 간추리면 이렇다.

이 책의 고려-조선왕조 교체에 대한 핵심요지는 고려전기부터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의 완성으로, 고려의 중앙관료귀족이 지방의 귀족인 향리를 완전히 제압한 기나긴 역사적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던컨 교수는 조선의 건국에 대해 “지방에 근거한 향리 출신의 지배층이 타락한 옛 중앙 귀족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중앙의 관료적 귀족이 지방 자치적이며 향리 중심적인 신라-고려 교체기의 옛 제도에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라 한다.

 

나의 짧은 견문으로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서강대 정두희 교수의 전공분야가 조선 건국사였다. 지난 대선 즈음에 조선 건국사에 관심이 생겨서 구입해 좀 본 책이 <왕조의 얼굴>(서강대출판부, 2010)이었는데, 부제가 '조선왕조의 건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였다. 첫장이 '조선왕조 건국사에 대한 과거의 연구'인 만큼 당연히 던컨 교수의 책도 언급이 된다(국내 학자로서는 드물게도 저자는 영어권의 한국사 연구에 밝다). <한국사회의 유교적 변환>(아카넷, 2003)의 저자 도이힐러(도힐러) 교수를 비롯한 구미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면서(여러 번 언급하지만 절판된 <한국사회의 유교적 변환>은 재출간되기를 기대한다) 이렇게 말한다.

 

미국의 학자들은 고려-조선의 교체를 흔히 당-송의 교체와 비견해보는 경향이 있다. 도힐러 교수도 그러했으며, 던컨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던컨 교수는 사산조 페르샤나 고대 중국의 관료제를 검토한 아이젠슈타트의 The Political Systems of Empires를 크게 참조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중국에 비해 그 지배지역이 무척 좁다는 점, 또 고려나 조선 두 왕조의 지배층이 모두 토지를 소유한 세습귀족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통사회는 중국과는 무척 달랐으며, 이 점이 한국 사회의 특징적 성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겸사겸사 아이젠슈타트의 <제국의 정치 시스템>도 번역되면 좋겠다...

 

13. 0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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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 나온 가장 묵직한 사회과학서는 장 보댕의 <국가에 관한 6권의 책>(아카넷, 2013)이지만(정말 6권이다!) 이건 책을 구하는 일도 만만찮으니 제쳐놓고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1895)에 대해서만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마침 새로 문예출판사판이 나오면서 다섯 권이 채워졌다(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걸로는 그렇다). 저자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1931년 90세의 나이로 사망) 저작권 시효가 진즉에 만료된 '고전'이라서 그런지 번역서가 계속 나오고 있다. 나는 처음 나온 간디서원판을 갖고 있는데, 한두 종을 더 구해서 같이 읽어봐야겠다. SNS시대에 읽는 <군중심리>라면 생각할 거리가 또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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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
귀스타브 르 봉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3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13년 03월 22일에 저장
구판절판
군중심리
귀스타브 르 봉 지음, 이상률 옮김 / 지도리출판사 / 2012년 10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3년 03월 22일에 저장
절판
군중심리
귀스타브 르 봉 지음, 김성균 옮김 / 이레미디어 / 2008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3년 03월 22일에 저장

군중심리
귀스타브 르 봉 지음, 차예진 옮김 / W미디어 / 2008년 4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3년 03월 2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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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캘린더에 오늘이 지젝의 생일이라고 하여(1949년 3월 21일생이다) '지젝'을 검색했다가 읽은 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남진우의 새 평론집에 관한 기사다. 지난주에 구입한 평론집 두 권이기도 한데 각각 시 평론을 묶은 <나사로의 시학>(문학동네, 2013)과 소설 평론을 묶은 <폐허에서 꿈꾸다>(문학동네, 2013)이다. 12년만에 묶었다고 하니까 책이 두 권인 것도, 두꺼운 것도 다 이해할 만하다. 한국일보의 인터뷰 기사에서 요점을 짚어준 두 대목을 옮긴다.

 

 

-정신분석학적 비평이 굉장히 많다.


"원래 내 비평세계의 중심이 이미지 분석, 그 중에서도 바슐라르의 물질적 상상력을 중심으로 한 분석이었는데, 점차 프로이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모두 유년시절을 통해 존재의 뿌리를 찾는데, 바슐라르의 낙관론과는 다른 프로이트의 접근법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라캉, 지젝의 정신분석학이 유행했지만, 아마 문학작품 분석에서 이 정도 규모로 수행해낸 작업은 드문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작업이 비평적 재미, 발견의 재미를 준다."

 

-지난 10여년의 한국소설을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혼재향인 '헤테로토피아'라는 키워드로 분석했는데.

 

"내 비평적 입장을 얘기하자면, 시에서는 바슐라리언이고, 소설에서는 보르헤시언인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본 최근 한국소설의 특징은 유토피아적 상상력의 상대적 퇴조와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만연, 그리고 헤테로토피아적 상상력의 대두로 요약될 수 있다. 기존의 목적론적이고 일직선적인 서사, 현실반영론 같은 틀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쏟아져 나왔다. 책에서 분석한 천운영 편혜영 황정은 최제훈 외에도 박민규 천명관 김연수 김중혁 같은 작가들이다. 이들의 서사를 헤테로토피아라는 키워드로 볼 때 상당히 재미있는 착안점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듬어 보니 내가 읽은 첫 평론집은 저자의 처녀작 <바벨탑의 언어>(문학과지성사, 1989)였다(지금은 절판돼 흔적도 없군). 저자가 아직 20대였고, 나는 갓 스물을 넘기고 매주 시립도서관에 들러 책 두권씩을 대출해서 읽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작은 규모이긴 했지만 도서관에 있던 문학평론집은 모조리 읽어치운 기억이 있다(정독한 것도 있고 책장만 넘긴 것도 있지만).  

 

 

"내 비평세계의 중심이 이미지 분석, 그 중에서도 바슐라르의 물질적 상상력을 중심으로 한 분석"이었다고 하니까 바로 떠오르는 게 <바벨탑의 언어>다. 특히 시운동 동인들과 그 중에서도 안재찬 시인(류시화)에 대한 비평이, 기억엔 아주 긴 분석이 생각난다.

 

 

 

이후에 펴낸 평론집은 기형도론을 제목으로 삼은 <숲으로 된 성벽>(문학동네, 1999)과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문학동네, 2001)이다. 12년만이라는 건 <그리고...> 이후가 그렇다는 계산이겠다. 그 사이에 낀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을 시라고 하였다>(열림원, 2000)는 단평 모음이다. '산문집'으로 분류하던가.

 

 

이 중 <숲으로 된 성벽>과 <올페는...>은 2010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절판된 책으론 <미적 근대성과 순간의 시학>이 있는데, '김종삼과 김수영 시의 시간의식'을 다룬 박사학위논문이다. 인터뷰를 읽다가 기억을 더듬은 게 한 비평가의 약사 비스므리하게 됐다. 요는 12년의 글쓰기를 결산한 책이라면 어떤 종류이건 한번 읽어볼 만하다는 것. 책은 그렇게 세월이 되고 인생이 된다...

 

13.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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