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 - 흔들리는 부모들을 위한 교육학
현병호 지음 / 양철북 / 2013년 12월
절판


인문학적 통찰력을 기르는 데는 무엇보다 책읽기와 글쓰기가 주효하다. 책읽기 능력은 모든 학습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제대로 읽을 줄 알면 웬만한 공부는 혼자서 할 수 있다. 박사학위란 것도 따지고 보면 혼자 공부할 수 있음을 인정받는 것일 따름이다. 굳이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책을 읽어 가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만나게 되면서 관심의 넓이와 깊이가 더해진다. 아름다운 글, 통찰력이 번득이는 글을 읽다보면 글의 힘에 매료되어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생겨난다. 글을 쓰다보면 생각이 정리되면서 사고력이 자란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이해하는 독해력도 커진다. 문장력과 독해력, 사고력은 서로 맞물려 있다.-138쪽

지금 이 땅의 청소년들 대부분이 중고등학교 시절 6년을 오로지 시험공부에 쏟고 있는데, 사실 입시 공부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에너지 낭비이지만 개인적으로도 그렇다.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갖춘 아이라면 대학 입시를 위해서는 2년 정도만 투자하면 충분하다. 진짜 책을 보는 데 익숙한 아이들이라면 교과서는 너무 시시해서 보고 싶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시험을 위해 필요하다면 시간을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아니면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이라도 읽어 본 아이라면, 세계사 교과서가 얼마나 빈약하고 시시한 책인지 알게 된다. 그런 가짜 책을 '진도'라는 이름으로 일 년씩이나 질질 끌면서 보는 일은 고역일 따름이다. 진짜 책을 보면서 진짜 공부를 한 아이들에게 입시 공부는 그다지 어려운 공부가 아니다. 물론 십여 년 동안 입시 준비만 한 아이보다 시험 점수가 좀 낮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웬만한 대학은 충분히 갈 수 있다고 본다. 이후에는 입시 공부만 해온 아이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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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밀리면 일거리가 되기에 빨리 손을 보기로 한다.

 

 

 

1. 문학예술

 

문학예술분야에서 정이현 작가가 고른 책은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문학동네, 2013)다. 이미 지난달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올려놓은 바 있어서 덧붙일 말은 없다. 한달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원서로도 읽어보면 좋겠다. 그 사이에 <런어웨이>(곰, 2013)도 번역돼 나왔다. <디어 라이프>에 대해 정이현 작가는 이렇게 평했다. "이 단편들을 읽고나면, 소설이 한 인간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내면을 뒤흔드는 것은 틀림없이 가능하다고 믿게 된다. 문학이 읽히지 않는 시대, 노벨상 수상작가라는 후광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우리가 이제야 앨리스 먼로라는 이름에 주목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다."

 

 

이왕이면 한국 작가의 소설집도 같이 읽는 게 좋겠다. 이장욱의 <천국보다 낯선>(민음사, 2013), 김숨의 <국수>(창비, 2014), 고종석의 <플루트의 골짜기>(알마, 2013)이 최근에 나온 눈에 띄는 작품집들이다.

 

 

내가 고른 책은 건축분야다. 천장환 교수의 <현대 건축을 바꾼 두 거장>(시공사, 2013). "여기 현대 건축을 바꾼 두 거장이 소개된다.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현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미스 반 데어 로에다. 우리에게 친숙한 구겐하임미술관이 라이트의 작품이고 시그램 빌딩이 미스의 필생의 역작이다. 저자는 두 건축가의 삶과 그들의 철학, 그리고 대표 건축물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하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경우는 자서전을 비롯해서 참고할 만한 책이 몇 권 출간돼 있다.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한국건축으로도 눈길을 돌리면, '목천건축아카이브 한국현대건축의 기록' 시리즈의 첫 두 권으로 <김정식>(마티, 2013)과 <안영배>(마티, 2013)도 건축계 원로들의 구술집인데, "김정식 편에서는 코엑스, 인천국제공항, CGV 등 우리가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건축물이 지어진 과정과 뒷이야기 등을 만날 수 있다. <한국 건축의 외부공간>의 저자로 잘 알려진 안영배 편에서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된 과정이 소상히 밝혀진다." 

 

  

 

2. 인문학

 

인문학 분야의 추천도서는 안형주의 <1902년, 조선인 하와이 이민선을 타다>(푸른역사, 2013)와 게르트 기거렌처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살림, 2013)이다. 전자는 제목이 시사하듯 "최초의 하와이 이민자였던 안재창의 삶을 통해 재미 한인들의 생활상과 자강 운동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생각이 직관에 묻다>(추수밭, 2008)의 저자이기도 한 기거렌처는 " 통계와 숫자라면 덮어놓고 믿는 우리의 부주의한 습관에 경종을 울린다. 유방암이나 에이즈 검사 같은 의학의 영역 뿐 아니라 폭력·살인·DNA검사 같은 범죄수사와 재판의 영역, 일기예보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어떻게 속고 살아왔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한해를 시작하는 달이기도 하니까 '처음 읽는' 철학책들을 손에 잡아도 좋겠다. 연말에 <처음 읽는 윤리학>(동녘, 2013)이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과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에 이어서 바로 출간된 바 있다. 이 시리즈가 어떤 주제/분야로 더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독서욕을 부추기는 기획이다. 비록 만만한 난이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다면 전체를 조감하도록 해준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분야의 추천도서는 요차이 벤클러의 <펭귄과 리바이어던>(반비, 2013)과 리치 노튼/나탈리 노튼의 <스튜피드>(미디어윌, 2013)다. 추천사에 따르면, "하버드대학 요차이 벤클러 교수의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이타심과 선의에 기반한 협력의 시스템을 그려내고 있다. 벤클러 교수는 신경과학, 경제학, 사회학, 진화생물학, 정치학, 심리학, 윤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인식이 어떻게 틀렸는지를 입증해 보이고 있다."(왕상한 교수) 그리고 '위대한 성공의 시작 바보 같은 생각의 힘'이라는 부제의 <스튜피드>는 "상식과 달라서 ‘바보 같은 생각’ 혹은 ‘바보짓’이라고 치부되는 것들이 개인의 삶과 조직, 그리고 세상에 얼마나 긍정적인 결과를 만드는지를 알려주고 있다."(전형구 위원)

 

 

거기에 더 얹자면, 좀 묵직하긴 하지만 <공통체>(사월의책, 2014)가 출간된 김에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 3부작'을 읽어보는 것도 충분히 해볼 만한 (무모한) 도전일 듯싶다. 사실 1월이 아니면 맘 먹기 어려운 독서 계획 아닌가.

 

 

 

4. 과학

 

과학분야에선 이한음 위원이 <서민의 기생출 열전>(을유문화사, 2013)을 추천했다. 같은 알라디너로서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서민(마태우스님) 교수의 책은 작년 연말에 '올해의 책'으로 자주 거명되기도 했다. 기생충과 짝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마틴 브룩스의 <초파리>(갈매나무, 2013)도 흥미를 끄는 책.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 진화생물학을 연구한 저자 마틴 브룩스는 이 책에서 생물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인 초파리를 통해 한층 더 흥미로운 생물학과 유전학의 미래를 예측하고자 한다." 한권 더 보태자면 이동환의 <친절한 과학책>(꿈결, 2013). '과학에서 찾은 일상의 기원'이 부제인데, '친절함'은 과학 칼럼니스트인 저자의 솜씨가 발휘된 결과다.

 

 

 

5. 실용일반

 

실용일반 쪽에서는 김형경 작가의 <남자를 위하여>(창비, 2013)가 추천됐다. "여자뿐 아니라 남자 스스로도 몰랐던 남자 이야기를 통해 남녀가 온전히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하경 위원의 추천 이유다. 최광현 교수의 <나는 남자를 버리고 싶다>(부키, 2013)은 제목은 정반대지만, 비슷한 성격의 심리치유서. 남성 우울증을 다룬 책으로 독일인 저자들이 쓴 <남자, 죽기로 결심하다>(시공사, 2013)도 제목은 살벌하지만, '어느 날 문득 삶이 막막해진 남자들을 위한 심리 치유서'이다.   

 

 

 

심리 치유서 내지는 심리 카운슬링 책들이 한때 붐을 탄 적이 있어서 지금도 관련서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랜디 건서의 <사랑이 비틀거릴 때>(웅진지식하우스, 2013),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라는 베르너 바르텐스의 <우리 정말 사랑하긴 했을까?>(중앙북스, 2013), 미국 아마존 장기 베스트셀러라는 매슈 켈리의 <왜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걸까>(소울메이트, 2013) 등이 얼른 골라본 책이다. 이 분야의 독자가 아니어서 나로선 감을 잡을 수 없지만, 당장 어려운 상황에 놓인 독자라면 적당한 저자를 찾아서 조언을 구해보는 것도 좋겠다.

 

 

0. 입시가족

 

내 맘대로 고른 주제는 '입시가족'이다. 한국사회에서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입시'다. 가족사회학이 전공인 김현주의 <입시가족>(새물결, 2013)은 '중산층 가족'의 자화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현실을 재고하게 만든다. 교육잡지 <민들레>의 발행인 현병호의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양철북, 2013)는 '흔들리는 부모들을 위한 교육학'이 부제다. "한국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 스무 살 청년이 된 대안교육에 대한 성찰, 교육 정책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차분하게 말하지만 주장이 합당하며 명료하다. 여성학자 조주은의 <기획된 가족>(서해문집, 2013)은 작년 초에 나온 책인데, <입시가족>과 좋은 짝이 될 듯싶어서 다시 호출했다...

 

14. 01. 04.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1927)를 고른다. <황야의 늑대>로도 번역돼 있는데, '이리'와 '늑대'가 독어로는 구분이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여하튼 <수레바퀴 아래서>나 <데미안>이 '청소년을 위한 헤세'라면 그가 50세에 출간한 <황야의 이리>는 '중년을 위한 헤세'다. 혹 헤세는 젊었을 때나 읽는 작가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편견을 단번에 불식시켜줄 작품이다. 1974년에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막스 폰 시도우 주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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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에서 발행하는 반연간지 <연극>(제6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문장을 일부 바로잡았다). 한스-티즈 레만의 <포스트드라마 연극>을 서평감으로 삼았다. 연극의 새로운 경향과 연극이론의 현재에 대해 조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다.

 

 

 

연극(2013년 겨울) 한스-티즈 레만 <포스트드라마 연극>

 

독일의 연극학자 한스-티즈 레만의 <포스트드라마 연극>(현대미학사, 2013)이 번역돼 나왔다. 20세기 후반 현대 연극의 흐름을 ‘포스트드라마’란 개념으로 명명함으로써 새로운 인식틀을 제공했다고 평가받는 저서다. 원저는 1999년에 출간됐는데, 레만의 기본 개념과 관점을 담은 글 한편이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연극평론가 김기란에 의해 이미 2002년에 <공연과 리뷰>를 통해서 처음 소개된 바 있다고 한다. 역자에 따르면 그때 소개된 글이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예술을 이해하기 위하여」로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미학적 전제를 꼼꼼하게 논증한 글이었다.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초안과도 같은 성격의 이 글에 이어서 역자는 마침내 레만의 대표 저작을 마저 옮긴 셈이 되는데, 저자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영어본이 아닌 독일어 원본을 대본으로 삼았다. “간략하게 편집된 영어본에는 21세기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는 동시대 연극의 내용이 대부분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곧 영어본이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이론적 개요를 중심으로 원저를 절반 가까이 축약한 데 반해서 한국어본은 원저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단 역자의 뚝심과 노고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드라마 연극 개념에 대해선 레만의 책이 번역되기 이전에 이미 국내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고 그중 일부는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미학>(푸른사상, 2011)으로 묶여서 출간되기까지 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원들이 2010년에 진행한 ‘포스트드라마 연극 세미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레만의 문제의식과 이론적 관점이 연극학자나 평론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독일어로 쓰인 원저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언어 장벽 때문에 소수의 전공자만 접근할 수 있었다. 순서를 바로 잡자면 사실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미학>을 읽기 위해서라도 <포스트드라마 연극>에 대한 독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고, 번역본의 출간은 그런 기회를 갖게 해준다.


순서는 그렇더라도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미학>에 실린 서문은 레만의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란 개념과 그 한국적 수용 맥락에 대한 사전 이해를 제공해주기에 참고해볼 만하다. 책의 발간 과정과 내용을 소개하면서 저자들을 대표하여 김형기 교수는 레만의 ‘포스트드라마 연극’을 “약 50년 전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연극에서 발생한 변화의 특질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한 개념으로 설명한다(레만 자신은 고찰 범위를 대략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로 잡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당시 더 일반적으로 쓰이던 ‘포스트모던 연극’을 대체한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란 용어는 단순히 시기적인 관점에서 ‘희곡 이후의 연극’을 가리키는 것을 넘어, 인식론적 관점에서 ‘탈희곡적 연극’을 포함한다”고 덧붙임으로써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번역 용례도 제시한다. 즉 포스트드라마 연극은 ‘희곡 이후의 연극’이자 ‘탈희곡적 연극’을 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희곡이 통상 문학의 한 장르를 가리키기에 ‘희곡 이후’라거나 ‘탈희곡적’이란 표현은 단순하게 ‘희곡 없는 연극’을 의미할 수 있다. ‘드라마 이후의 연극’ 혹은 ‘탈드라마적 연극’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레만 스스로도 진단하듯이 현재의 상황은 연극 담론이 “문학 담론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켰지만, 문학 담론을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형국”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가 문학과 연극이 동일한 길을 걷고 있다고 한 것은 “연극과 문학은 원래 모사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기호적인 것으로 조직된다”는 판단에서다.

 

‘모사적’이란 말은 물론 예술의 미메시스적 성격을 가리킨다. 예술은 외부의 현실을 모방 혹은 재현한다는 것이 예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관점이다. 그런 모방적 성격으로 인해 연극과 문학의 언어는 지시적 기능을 갖는다. 그런데 이 지시적 기능만이 전부가 아니다. 레만이 연극과 문학이 ‘기호적인 것’으로 조직된다고 할 때 그것을 그 언어가 갖는 자기 지시적 기능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겠다.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이 ‘시적 기능’이라고 부른 것 말이다. 비유컨대, 예술이 기호적인 것으로 조직될 때, 즉 자기 지시적인 것으로 채워질 때 예술은 다른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서 존재한다.


여기서 ‘드라마’와 ‘연극’을 각각 모사적인 것과 기호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란 말의 의미가 좀더 구체화된다. ‘포스트드라마’는 그 자체로 드라마와 연극, 두 개념 사이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문제 삼는다. 서양 연극의 전통적 특징이 ‘드라마 연극’이었다고 하면 포스트드라마 연극은 이를 상대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드라마적인 것’과 ‘연극적인 것’이 동일하지 않다면, 이 둘은 서로 결합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서로 분리될 수도 있는 것이 된다. ‘포스트드라마 연극’이 가져오는 개념적 충격은 바로 이러한 사태를 지시하는 데 있다. 김형기 교수의 정리에 따르면, “레만에게서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란 희곡의 우세에서 해방되고, 재현보다 현전, 전달되는 것보다 공유되는 경험, 결과보다 과정, 의미화보다 현실, 정보보다 에너지역학을 강조하는 연극이다.” 다르게 말하면, 포스트드라마는 연극 언어의 지시적 기능에서 해방되어 무대적인 것 자체에 더 주목하도록 하는 연극이다.


여기서 자연스레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개시는 드라마 연극의 종말을 뜻하는가. 사실 <포스트드라마 연극>은 만만찮은 분량에다 연극에 관한 이론적, 철학적 성찰과 현대 연극, 곧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주요 양상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고 있어서 전체를 조감하기 어려운 책이다. 다행스럽게도 길잡이로 삼을 만한 글이 있는데,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미학>에 수록된 파트리스 파비스의 「포스트드라마 연극에 관한 고찰들」이 그것이다. 저명한 연극학자 파비스가 포스트드라마 연극론의 여러 쟁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어서 <포스트드라마 연극>을 읽는 요긴한 참조점이 된다. 길잡이라고 했지만 그냥 무미한 안내만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정반대로 매우 신랄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어서 오히려 더 요긴하다.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있기에 아무래도 쟁점은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란 개념의 유효성일 수밖에 없는데, 파비스는 세 가지를 문제 삼는다. 첫째, ‘포스트’란 말이 시간적인 것인지 아니면 이론적인 것인지 불분명하다. 레만 자신도 책의 기획 의도가 “새로운 연극 영역의 경계를 설정하려는 것”이었다고 말하는데, 사실 그 경계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는 모호하다. 드라마 연극의 시대가 끝나고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면, 그 경계는 언제가 될까.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포스트드라마는 애초부터 드라마 연극과 같이 존재했다는 뜻일까. 레만은 이 두 주장이 모순 없이 공존한다고 주장하지만 파비스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둘째, 레만은 ‘드라마적인 것’을 부정하면서도 이를 다시 취하고 있다. 그는 한편으론 새로운 연극텍스트가 ‘더 이상 드라마가 아닌’ 연극텍스트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단지 연극의 방점이 드라마라는 문학 장르에서 무대로 이동한 것처럼 말한다. 포스트드라마 연극에서 드라마의 지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셋째, 만약 드라마가 연극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게 레만의 문제의식이라면 ‘연극’이란 개념의 안정성도 의심해볼 수 있다. 파비스는 유럽 바깥의 문화적 실천들을 고려하면 그리스적 기원의 연극은 더 이상 독점적 개념이 될 수 없다고 암시한다.


이러한 이론적 시비들은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개념이 기대만큼 정교화되지 않은 데서 기인하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란 개념에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새로운 연극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정의할 수 있는 범주와 말이 부족하다”는 인식과 그 곤경을 타개하기 위한 시도라는 데 있을 것이다. 즉 뭔가 새로운 연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게 먼저이고, 그에 대한 이론적 개입으로서 레만의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란 용어는 사후적으로 이를 지칭하고자 한 기술적 개념의 성격을 갖는다.

 


다시 파비스의 도움을 빌려 말하자면, 레만은 1970-1980년대에 독일,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보았던 공연들에서 새로운 변화를 인지한다. 로버트 윌슨, 얀 파브르, 아이너 슐레프, 얀 라우어스 등이 고안해낸 새로운 연극 형식은 그에 걸맞은 주목과 이론적 관심을 요구했다. 당시 이러한 새로운 경향은 ‘포스트모던 연극’이라는 말로 통칭됐지만, 레만의 내기는 이것이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란 개념으로 더 잘 포착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사실 포스트담론을 주도했던 ‘포스트모던’이란 말은 너무 많은 것을 지시할 수 있어서, 거꾸로 그 인식적 내용은 의문스러운 개념이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포스트드라마 연극은 드라마적 연극과의 구체적인 차이 속에서 윤곽이 그려지기에 훨씬 더 효용성이 큰 개념이다. 드라마적인 메시지 전달보다 무대에서의 퍼포먼스에 주안점을 두기에 드라마적 연극의 ‘배우’가 포스트드라마 연극에서는 ‘퍼포머’가 된다는 비교가 대표적이다. 드라마적 연극이 ‘극적 환영’을 유도하고자 한다면 포스트드라마 연극에서는 ‘활동적인 퍼포먼스’ 자체가 연극의 목적이 된다.      


드라마적 연극과 포스트드라마 연극 간의 차이를 이렇게 배치할 수 있다면 드라마적 연극에서 포스트드라마 연극으로의 이 이행을 과연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파비스의 근심이기도 한데, 드라마적인 것, 곧 모방적이고 지시적인 기능을 포기할 때 부닥칠 수밖에 없는 궁극적인 난점은 연극과 현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당연한 일이지만, 연극이 그 자체에, 무대에, 퍼포먼스에만 주목하도록 요구할 때, 연극과 사회적 현실은 분리된다. “포스트드라마는 더 이상 이론을 세우고자 애쓰지 않으려고 이러한 난점을 이용하며, 극적인 형식들이 더 이상 커버할 수 없게 된 현실에 관한 모든 관점들을 포착하기를 단념한다.”고 파비스는 지적한다.

 

 


현실을 배제함으로써 현실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은 연극의 독립을 위한 유력한 방책일 수 있다. 어쩌면 그로써 연극이 음악처럼 좀더 높은 순도의 예술로 거듭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대가로 사회적 현실에 대한 발언과 책임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포스트드라마가 과연 연극의 진보인지 아니면 퇴행인지 쉽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를 구성하는 것은 ‘드라마적인 것’과 ‘연극적인 것’이라는 두 항의 관계가 아니라 ‘정치적인 것’까지 포함된 삼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레만의 <포스트드라마 연극> 이후에 포스트드라마 연극과 정치를 주제로 한 책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포스트드라마 연극>은 문제를 정리하고 있다기보다는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극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사고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더 높이 살 수 있을 것이다.      

 

14. 01. 04.

 

 

P.S. 포스팅보단 늦었지만 <연극>이 알라딘에도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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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지난해 마지막 '이주의 책'을 정수복의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로도스, 2013)으로 마무리했으니 올해 시작도 책에 대한 책으로 골랐다. 강명관의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천년의상상, 2014)다.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가 부제. 소개는 이렇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가 다루는 구체적인 질문들은 이것이다. 조선시대의 책의 인쇄와 유통 양상은 어떠했는가? 국가와 사회의 틀을 설계하고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책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지식인이 국가와 사회의 지배층이던 조선시대에는 어떤 방식으로 책이 유통되었는가? 발행하는 책은 어떻게 선별되었는가? 그것을 결정한 사람은 누구인가? 조선시대의 책값은 얼마였을까? 책값은 지식의 확산과 어떤 관계에 있었나? 책을 만드는 종이는 또 어떻게 생산되었는가? 중요한 서적의 탄생과 소멸은 어떠했는가? 즉 조선의 책과 지식생산의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하는 한편, 그 이면에 놓인 '지식'과 '체제'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어간다. 이러한 문화적 탐사를 통해 조선시대 책의 역사를 구성함으로써 조선시대의 역사를 새롭게 읽어내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책에 관한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 책 한 권으로 해결할 수 있다니 미덥고 든든하다. 대답과 함께 새로운 질문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시작을 조선시대에 관한 책으로 끊었으니 나머지 네 권도 조선시대 최근 한달 사이에 나온 관련서로 채운다.

 

두번째 책은 전경목의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휴머니스트, 2013)이다. 책은 두 주 전쯤 나왔지만 조선시대를 다룬 책이기에 이번 주에 같이 다룬다. '케케묵은 고문서 한 장으로 추척하는 조선의 일상사'란 부제가 내용을 어림하게 해주는 책. "저자는 아내의 재혼을 허락하는 남편의 수기 한 장, 노름빚 갚았다는 사실을 증빙해달라는 탄원서 한 장을 실마리 삼아 문서를 작성한 사람, 그가 속한 공동체, 당시 시대상을 추적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치 탐정이 추리를 하듯 관련된 인물과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고문서를 깊이 읽고, 뒤집어 보고, 의심하는 해석 과정은 놀랍고 경이롭다. 이 해석이 찾아낸 이야기는 거대 역사 속에 가려진 조선의 일상을 한 장면 한 장면 복원한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대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겪었던 이혼, 노름, 재산 분배 같은 소소한 일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책을 통한 시간여행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세번째 책은 이덕일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옥당, 2014)다. <불씨잡변>(아카넷, 2013)이 재번역돼 나와서 정도전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게 됐다고 얼마 전에 적었는데, '이덕일의 역사특강' 첫 권이 마침 정도전을 다룬다. "조선 개국의 이념과 조선 왕조 500년의 기틀을 마련한 정도전, 그가 원한 세상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네번째 책은 한국국학진흥원의 교양총서로 나온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글항아리, 2013)이다. "각 분야에서 유교를 연구해온 중진 연구자들이 수차례에 걸쳐 글을 발표하고 토론하고 수정하여 조선사회를 움직인 유교의 공동체 원리를 철학적·역사적·정치사회학적 차원에서 재조명했다." 나는 유교의 힘보다는 한계에 더 관심이 있지만, 유교의 힘을 말하는 행간에서 혹 그 한계를 찾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다섯번째 책은 박희병 교수가 엮은 <선인들의 공부법>(창비, 2013)이다. 1998년에 나온 책의 개정판이 15년만에 나왔다. "멀리 공자로부터 맹자·주자·이이·이황·최한기에 이르기까지 선인들의 깊은 사색과 체험에서 우러나온 공부에 관한 주옥 같은 명구들을 가려 뽑았다. 이 책은 일상생활의 언행,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 독서의 방법, 마음을 다스리는 법, 사물을 궁구하는 방법 등 세계와 우주 내의 모든 일이 공부의 대상이자 공부의 과정임을 조목조목 들려준다." 공부가 새해 결심인 이들에겐 '보감'이 될 만한 책이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1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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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케케묵은 고문서 한 장으로 추척하는 조선의 일상사
전경목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12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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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그의 시대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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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
한형조 외 지음, 한국국학진흥원 기획 / 글항아리 / 2013년 12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54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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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현암사, 2014) 표지 최종판을 옮겨놓는다. 책은 어제 인쇄가 끝났고 오늘 제본에 들어갔을 듯싶다. 서점에서는 다음 주중이나 주말부터 구입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띠지 문구는 편집자가 고른 것이다. 책이 그런 걸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14. 0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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