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밀리면 일거리가 되기에 빨리 손을 보기로 한다.


1. 문학예술
문학예술분야에서 정이현 작가가 고른 책은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문학동네, 2013)다. 이미 지난달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올려놓은 바 있어서 덧붙일 말은 없다. 한달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원서로도 읽어보면 좋겠다. 그 사이에 <런어웨이>(곰, 2013)도 번역돼 나왔다. <디어 라이프>에 대해 정이현 작가는 이렇게 평했다. "이 단편들을 읽고나면, 소설이 한 인간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내면을 뒤흔드는 것은 틀림없이 가능하다고 믿게 된다. 문학이 읽히지 않는 시대, 노벨상 수상작가라는 후광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우리가 이제야 앨리스 먼로라는 이름에 주목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다."


이왕이면 한국 작가의 소설집도 같이 읽는 게 좋겠다. 이장욱의 <천국보다 낯선>(민음사, 2013), 김숨의 <국수>(창비, 2014), 고종석의 <플루트의 골짜기>(알마, 2013)이 최근에 나온 눈에 띄는 작품집들이다.


내가 고른 책은 건축분야다. 천장환 교수의 <현대 건축을 바꾼 두 거장>(시공사, 2013). "여기 현대 건축을 바꾼 두 거장이 소개된다.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현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미스 반 데어 로에다. 우리에게 친숙한 구겐하임미술관이 라이트의 작품이고 시그램 빌딩이 미스의 필생의 역작이다. 저자는 두 건축가의 삶과 그들의 철학, 그리고 대표 건축물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하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경우는 자서전을 비롯해서 참고할 만한 책이 몇 권 출간돼 있다.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한국건축으로도 눈길을 돌리면, '목천건축아카이브 한국현대건축의 기록' 시리즈의 첫 두 권으로 <김정식>(마티, 2013)과 <안영배>(마티, 2013)도 건축계 원로들의 구술집인데, "김정식 편에서는 코엑스, 인천국제공항, CGV 등 우리가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건축물이 지어진 과정과 뒷이야기 등을 만날 수 있다. <한국 건축의 외부공간>의 저자로 잘 알려진 안영배 편에서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된 과정이 소상히 밝혀진다."


2. 인문학
인문학 분야의 추천도서는 안형주의 <1902년, 조선인 하와이 이민선을 타다>(푸른역사, 2013)와 게르트 기거렌처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살림, 2013)이다. 전자는 제목이 시사하듯 "최초의 하와이 이민자였던 안재창의 삶을 통해 재미 한인들의 생활상과 자강 운동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생각이 직관에 묻다>(추수밭, 2008)의 저자이기도 한 기거렌처는 " 통계와 숫자라면 덮어놓고 믿는 우리의 부주의한 습관에 경종을 울린다. 유방암이나 에이즈 검사 같은 의학의 영역 뿐 아니라 폭력·살인·DNA검사 같은 범죄수사와 재판의 영역, 일기예보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어떻게 속고 살아왔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한해를 시작하는 달이기도 하니까 '처음 읽는' 철학책들을 손에 잡아도 좋겠다. 연말에 <처음 읽는 윤리학>(동녘, 2013)이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과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에 이어서 바로 출간된 바 있다. 이 시리즈가 어떤 주제/분야로 더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독서욕을 부추기는 기획이다. 비록 만만한 난이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다면 전체를 조감하도록 해준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분야의 추천도서는 요차이 벤클러의 <펭귄과 리바이어던>(반비, 2013)과 리치 노튼/나탈리 노튼의 <스튜피드>(미디어윌, 2013)다. 추천사에 따르면, "하버드대학 요차이 벤클러 교수의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이타심과 선의에 기반한 협력의 시스템을 그려내고 있다. 벤클러 교수는 신경과학, 경제학, 사회학, 진화생물학, 정치학, 심리학, 윤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인식이 어떻게 틀렸는지를 입증해 보이고 있다."(왕상한 교수) 그리고 '위대한 성공의 시작 바보 같은 생각의 힘'이라는 부제의 <스튜피드>는 "상식과 달라서 ‘바보 같은 생각’ 혹은 ‘바보짓’이라고 치부되는 것들이 개인의 삶과 조직, 그리고 세상에 얼마나 긍정적인 결과를 만드는지를 알려주고 있다."(전형구 위원)


거기에 더 얹자면, 좀 묵직하긴 하지만 <공통체>(사월의책, 2014)가 출간된 김에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 3부작'을 읽어보는 것도 충분히 해볼 만한 (무모한) 도전일 듯싶다. 사실 1월이 아니면 맘 먹기 어려운 독서 계획 아닌가.


4. 과학
과학분야에선 이한음 위원이 <서민의 기생출 열전>(을유문화사, 2013)을 추천했다. 같은 알라디너로서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서민(마태우스님) 교수의 책은 작년 연말에 '올해의 책'으로 자주 거명되기도 했다. 기생충과 짝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마틴 브룩스의 <초파리>(갈매나무, 2013)도 흥미를 끄는 책.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 진화생물학을 연구한 저자 마틴 브룩스는 이 책에서 생물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인 초파리를 통해 한층 더 흥미로운 생물학과 유전학의 미래를 예측하고자 한다." 한권 더 보태자면 이동환의 <친절한 과학책>(꿈결, 2013). '과학에서 찾은 일상의 기원'이 부제인데, '친절함'은 과학 칼럼니스트인 저자의 솜씨가 발휘된 결과다.


5. 실용일반
실용일반 쪽에서는 김형경 작가의 <남자를 위하여>(창비, 2013)가 추천됐다. "여자뿐 아니라 남자 스스로도 몰랐던 남자 이야기를 통해 남녀가 온전히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하경 위원의 추천 이유다. 최광현 교수의 <나는 남자를 버리고 싶다>(부키, 2013)은 제목은 정반대지만, 비슷한 성격의 심리치유서. 남성 우울증을 다룬 책으로 독일인 저자들이 쓴 <남자, 죽기로 결심하다>(시공사, 2013)도 제목은 살벌하지만, '어느 날 문득 삶이 막막해진 남자들을 위한 심리 치유서'이다.


심리 치유서 내지는 심리 카운슬링 책들이 한때 붐을 탄 적이 있어서 지금도 관련서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랜디 건서의 <사랑이 비틀거릴 때>(웅진지식하우스, 2013),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라는 베르너 바르텐스의 <우리 정말 사랑하긴 했을까?>(중앙북스, 2013), 미국 아마존 장기 베스트셀러라는 매슈 켈리의 <왜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걸까>(소울메이트, 2013) 등이 얼른 골라본 책이다. 이 분야의 독자가 아니어서 나로선 감을 잡을 수 없지만, 당장 어려운 상황에 놓인 독자라면 적당한 저자를 찾아서 조언을 구해보는 것도 좋겠다.


0. 입시가족
내 맘대로 고른 주제는 '입시가족'이다. 한국사회에서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입시'다. 가족사회학이 전공인 김현주의 <입시가족>(새물결, 2013)은 '중산층 가족'의 자화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현실을 재고하게 만든다. 교육잡지 <민들레>의 발행인 현병호의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양철북, 2013)는 '흔들리는 부모들을 위한 교육학'이 부제다. "한국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 스무 살 청년이 된 대안교육에 대한 성찰, 교육 정책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차분하게 말하지만 주장이 합당하며 명료하다. 여성학자 조주은의 <기획된 가족>(서해문집, 2013)은 작년 초에 나온 책인데, <입시가족>과 좋은 짝이 될 듯싶어서 다시 호출했다...
14. 01. 04.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1927)를 고른다. <황야의 늑대>로도 번역돼 있는데, '이리'와 '늑대'가 독어로는 구분이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여하튼 <수레바퀴 아래서>나 <데미안>이 '청소년을 위한 헤세'라면 그가 50세에 출간한 <황야의 이리>는 '중년을 위한 헤세'다. 혹 헤세는 젊었을 때나 읽는 작가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편견을 단번에 불식시켜줄 작품이다. 1974년에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막스 폰 시도우 주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