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중앙선데이에 실은 '로쟈의 문학을 낳은 문학'을 옮겨놓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카뮈의 <전락>을 다뤘다. 화자의 장광설이라는 형식과 봉변(결투)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었다.

 

 

중앙선데이(14. 06. 14) 설령 불행을 가져와도 …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 의식

 

“어디부터가 고백이며 어디부터가 남들에 대한 고발일까?” 작가 스스로 그렇게 묻고 있는 카뮈의 『전락』(1956)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난해하면서 동시에 가장 독특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전직 변호사 클라망스의 냉소적인 장광설로 일관하고 있는 형식만 그런 게 아니다. 클라망스가 죽치고 있는 물의 도시 암스테르담도 카뮈의 여느 소설과는 배경이 다르다. 비가 많이 내리고 안개가 자주 끼는 도시는 이 ‘태양의 작가’에게 분명 이례적인 공간이다. 카뮈답지 않은 형식과 배경, 그리고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특이성 때문에 이 작품에 영향을 준 원천에 대해 궁금해지는데, 바로 카뮈가 오랫동안 사숙한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작가들이 마흔세 살에 발표한 소설들이며, 무엇보다 ‘말 없는 상대방과 나누는 혼자만의 대화’라는 드문 형식이 두 작품 간의 영향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형식상의 공통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창작 배경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는 동시대 비평가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1863)에 대한 문학적 응전이었으며, 『전락』은 사르트르와의 논쟁에 대한 응답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배경이 철저히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두 작가의 목소리는 화자의 목소리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않는다. 배경이 된 논쟁은 문학적으로 승화돼 있으며 상징적·비유적 장치들을 통해서만 암시된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는 ‘지하’라는 공간부터가 상징적이다. 그것은 우리 의식의 지하 혹은 이면을 가리킨다. 자신이 병든 인간이자 심술궂은 인간이라는 걸 자인하면서 기나긴 고백을 시작하는 중년 화자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며 과학과 상식에 따라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당대의 지배적인 사상에 조롱과 야유를 퍼붓는다. 인간은 개미가 아니며 ‘2×2=4’와 같은 수학적 정식으로 이해될 수도, 조종될 수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반면에 그가 옹호하는 것은 자신의 변덕스러운 욕망과 자의식이다. “의식은 예컨대 2×2보다 무한히 더 높은 것이다.”

이 ‘지하 인간’은 비록 의식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줄지라도 그 어떤 것과도 맞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설사 치통일지라도 ‘나’의 고통은 나의 존재를 입증해 주기에 자부심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생각의 소유자가 타인의 말과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일례로 젊은 시절에 주인공은 당구장에서 한 장교가 지나가면서 길을 막고 있던 자신의 어깨를 거머쥐고 마치 물건처럼 옮겨놓는 일이 벌어지자 모욕감을 느낀다. 하지만 상대의 덩치가 너무 컸기에 실제로는 속으로만 성질을 부리다 꽁무니를 뺀다. 굴욕감에 괴로워하던 그는 결국 결투를 단행한다. “물론 그가 힘이 더 셌기 때문에 내가 좀 더 아프긴 했지만, 그런 건 문제도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목적을 달성했고 자긍심을 지켰으며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음으로써 대중 앞에서 나 자신을 그와 대등한 지위에 세웠다는 데 있다.”

『전락』의 화자 클라망스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남들과 대등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그들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고자 한다. “나는 사실 높이 위치한 곳이 아니면 도무지 편치가 않았어요. 삶의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내겐 높은 곳에 있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나는 지하철보다는 버스가, 택시보다는 마차가, 반지하층보다는 테라스가 더 좋았어요.”

클라망스는 그런 위치에서 마치 초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우쭐대며 살아가던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신호 대기 중이었는데, 앞에 있던 오토바이가 엔진이 꺼져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자 클라망스는 옆으로 지나가게 비켜달라고 말했지만 작달막한 오토바이 사내는 도리어 욕지거리를 했다. 화가 난 클라망스가 따귀나 한 대 올려붙이겠다는 심정으로 차에서 내린 순간, 몰려든 군중으로 경황이 없는 중에 오히려 귀싸대기만 호되게 얻어맞는다. 정신을 차리자 오토바이는 달아나버린 뒤였다. 카뮈 판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클라망스의 경험은 ‘지하 인간’보다 더 어이없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까? 클라망스는 상대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고 근육도 쓸 만했지만 주먹다짐은커녕 예기치 못한 봉변만 당한 꼴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반항(혁명)을 부정하는 『반항하는 인간』(1951)이 출간됐을 때 사르트르 진영에서는 신출내기 장송을 내세워 카뮈의 사상이 순진하다고 비판했다. 카뮈는 장송을 제쳐두고 곧장 사르트르에게 반론을 제기했고, 사르트르는 추가적인 반론을 봉쇄하면서 카뮈와의 오랜 우정을 버리고 사상적 결별을 선언한다. 사르트르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던’ 카뮈지만 논쟁은 그에게 상처만 남긴다. 그 후 수년의 침묵 끝에 발표한 『전락』에서 사르트르와 자신의 모습을 모두 투사한 ‘재판관 겸 참회자’ 클라망스의 형상은 카뮈에게서 일종의 출구전략이었다. 1960년 교통사고로 카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르트르는 추도사에서 『전락』을 카뮈의 최고작으로 치켜세웠다. 이 작품의 속내가 사르트르에게는 제대로 전달됐던 것이 아닐까.

 

14. 06. 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점심을 먹기 전 막간에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나라 안은 총리 후보자의 망언 때문에 시끄럽고 이라크는 내전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며 브라질에서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월드컵이 개막됐다. 한동안은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타이틀북으로 고른 것이 강준만 교수의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인물과사상사, 2014)다.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의 둘째 권인데, 첫 권은 작년말에 나왔던 <감정독재>(인물과사상사, 2014)였다. 강준만 교수의 새 시리즈라고 해야겠다.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2권. 전편 <감정독재>와 마찬가지로 50개의 “왜?”라는 질문을 다양하게 던지고 여러 분야의 수많은 학자에 의해 논의된 이론과 유사 이론을 끌어들여 답을 하고 있다. 이번 책에서는 전 국민을 비탄과 분노로 몰아간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두번째 책은 기록노동자 '희정'의 르포르타주 <노동자, 쓰러지다>(오월의봄, 2014). '르포, 한 해 2000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기록하다'가 부제로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시리즈의 열일곱 권째 책이다. 열여섯 번째가 <밀양을 살다>(오월의봄, 2014)였다. 소개에 따르면, "조선소와 건설 현장, 코레일과 KT, 우체국과 택배, 퀵서비스와 배달, 자동차 공장과 중소영세업체,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산업 전반의 현장에서 산업재해 문제를 취재했다. 한 해 2,000명씩 일하다 죽는 사회의 구석구석을 들추고 있는 아픈 기록이자 ‘안전’의 자리에 ‘이윤’이 들어선 한국 사회, 탐욕의 재난이 덮친 한국 사회의 이면을 샅샅이 들추는 분노의 기록은 그렇게 책으로 묶였다."

 

 

세번째 책은 마고사키 우케루의 <보수의 공모자들>(메디치미디어, 2014). 제목으로는 국내서여도 무방한데, '일본 아베 정권과 언론의 협작'이 부제다. 외무성 출신의 외교안보 전문가 저자가 쓴 책으로 "보수 정권이 언론의 보수화를 부르며 보수 언론은 정권을 비호하는, 이른바 둘도 없는 ‘공모와 협작’의 관계라고 꼬집는다. 그는 이 책을 쓴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데, 하나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 대형 미디어의 보도’를 의심하고, 다른 하나는 ‘정부라는 존재 자체’를 의심하라는 것이다." 반면교사일 것도 없이 우리의 현실 자체다.

 

네번째 책은 브라질 월드컵을 기념하여 골랐다. 토마스 키스트너의 <피파 마피아>(돌베개, 2014). 저자는 독일의 탐사전문기자. 안 그래도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이 오갔다는 폭로가 나온 시점이라 더 눈길을 끈다. 월드컵 경기를 즐기는 것과는 별개로 피파라는 (부패)조직에 대해서도 좀 알아두어야겠다.

국제스포츠계에서 자행되는 범죄의 실상을 그 누구보다도 환히 아는 토마스 키스트너는 벌써 20년째 피파의 음험한 구석을 취재해온 전문기자다. 모든 것을 지배하면서 어떤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단 한 명의 보스가 군림하는 패밀리! 돈과 더불어 부패의 악취가 진동하는 철권통치 조직, 그 이름이 바로 피파다. 이익조직이 아닌 공익단체라는 명분을 내세워 수조 원을 주무르는 제프 블라터 체제의 실상을 철저하게 파헤친 이 책은 축구 본연의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한 끈질긴 열정의 산물이며, 피파와 국제스포츠계뿐 아니라 각국 스포츠계의 실상이 어떤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탁월한 르포르타주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결산하는 <아마겟돈 레터>(시그마북스, 2014). "이 책의 주인공인 케네디 대통령, 흐루쇼프 서기장, 카스트로 총리는 쿠바 위기를 전후로 전 인류의 종말을 초래했을 아마겟돈(인류 최후의 전쟁)을 막기 위해 43통의 편지와 성명서를 주고받았다. 이 책에는 바로 그 43통의 '아마겟돈 레터'와 미국.소련.쿠바에서 냉전시대 내내 1급 기밀이었던 자료,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총리와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 국방부 장관 등 사건 당시 고위급 관계자들과의 인터뷰와 회의로 밝혀진 추가적인 진실이 담겨 있다." 작년말에 나온 셀던 스턴의 <존 F. 케네디의 13일>(모던타임즈, 2013)과 같이 읽으면 좀더 실감이 나겠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1월 5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4년 06월 14일에 저장

노동자, 쓰러지다- 르포, 한 해 2000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를 기록하다
희정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6월
14,800원 → 13,32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양탄자배송
1월 5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4년 06월 14일에 저장

보수의 공모자들- 일본 아베 정권과 언론의 협작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6월
12,500원 → 11,250원(10%할인) / 마일리지 620원(5% 적립)
2014년 06월 14일에 저장
절판

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6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14년 06월 14일에 저장
절판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방에 강의를 다녀오면서 한 주의 강의가 마무리됐다. 주말엔 밀린 원고가 잔뜩이지만 한숨 돌리면서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문학이론서와 비평가론, 그리고 시인 평전이다.

 

 

먼저, 이탈리아 출신의 비교문학자이자 영문학자 프랑코 모레티의 책이 오랜만에 나왔다. <공포의 변증법>(새물결, 2014). 부제로 붙은 '경이로움의 징후들'이 원제다. 한때 모레티의 주저들을 긁어모을 때 구했던 책으로 기억에는 모레티의 첫 저작이다. 형식주의와 진화론을 접목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가 흥미로웠는데, 번역서가 나온 김에 완독해봐야겠다(물론 책이사가 끝나야지 가능한 일이다). 어떤 발상의 책인가.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사랑의 학교>, 셜록 홈스와 <율리시즈>, <프랑켄슈타인>과 <황무지>. 세계문학사의 기적들로 불리며 대문문화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지만 난해하고 이해 불가능한 ‘명작’으로 낙인찍힌 작품들이다. 모레티는 이 ‘세계문학의 기적들’인 실은 좀 더 넓은 문화적-정치적 현실의 징표임을 흥미진진하게 밝혀낸다. 예를 들어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를 통해 19세기의 ‘공포의 계보학’을 분석하면서 이 두 괴물이 19세기의 영국 자본주의의 동향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혀내는 모레티의 노련한 솜씨는 발군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단지 흉측한 괴물에 그치는 반면 드라큘라가 잔혹함과는 거리가 먼 금욕주의적 흡혈귀인 것은 당시 영국 자본주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드라큘라는 독점 자본과 금융 자본주의에의 적응에 실패한 영국의 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자기변호론으로 읽어야 한다는 모레티의 선구안은 대중문학이 ‘대중적으로’, 특히 정치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 날카로운 혜안을 제공해준다.

모레티의 다른 책들도 읽거나 다시 읽어볼 만한데, 이번에 보니 <근대의 서사시>(새물결, 2001)은 품절 상태다. 절판이 아니라면 다시 나오길 기대한다.

 

 

더불어 더 소개되면 좋겠다 싶은 모레티의 책들. <부르주아><멀리서 읽기><유럽소설 지도 1800-1900> 등. 나는 모레티가 가장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동시대 문학사회학자라고 생각한다.

 

 

발터 벤야민 선집(전15권)을 번역중인 독문학자 최성만 교수도 벤야민의 생애와 사상을 갈무리한 책을 펴냈다. <발터 벤야민 기억의 정치학>(길, 2014). 현재 벤야민 선집은 여덟 권이 나와 있기에 절반은 넘어선 셈인데, <기억의 정치학>은 그 중간보고서적인 의미도 갖겠다. "발터 벤야민 선집을 총괄 기획하고 국내 벤야민 연구의 최고 전공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최성만 교수가 벤야민 사상 전반을 전기적 방식이 아닌 저작의 사유 흐름에 초점을 맞춰 서술한 국내 첫 연구 결실이다."

 

 

동시대 '백석파' 시인으로는 맨앞에 설 만한 안도현 시인의 <백석 평전>(다산책방, 2014)이 출간됐다. 시인이 쓴 시인 평전으로는 고은의 <이상 평전>과 최하림의 <김수영 평전> 등이 떠오르는 데 그 계보를 이을 만하다. 백석 평전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기대를 갖는 이유.

당대의 많은 시인들을 매료시켰으며, 해방 이후 후대의 시인들에게도 절대적이고 폭넓은 영향을 끼친 백석의 생애를 담은 <백석 평전>. 스무 살 무렵부터 백석을 짝사랑하고, 백석의 시가 "내가 깃들일 거의 완전한 둥지"였으며 어떻게든 "백석을 베끼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안도현 시인은 "그동안 백석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그를 직접 만나는 방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백석의 생애를 복원했다.

안도현 시인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 2004)이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따온 거라는 사실은 한국시 독자라면 상식에 속한다. 평전을 통해서 두 시인의 내밀한 관계도 들여다볼 수 있겠다. 더불어, <백석의 맛>(프로네시스, 2009)의 저자 소래섭 교수의 백석 시 안내서 <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우리학교, 2014)도 이번에 출간됐다. 청소년용이긴 하지만, 백석에 과문한 독자라면 이 책부터 손에 들어도 괜찮겠다...

 

14. 06. 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학 관련서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원래 그랬던 것인지도) 미국의 중국학자 토머스 메츠거의 <곤경의 탈피>(민음사, 2014)도 그 가운데 하나다. '주희.왕양명부터 탕쥔이.펑유란까지 신유학과 중국의 정치 문화'가 부제이고 1977년에 나온 책. 상당히 오래 전 책인 셈인데, 현재적 의의까지는 모르겠지만 학문사적 의의는 있는 책으로 보인다.

 

존 페어뱅크의 1세대 제자로 중국 사상과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했으며 중국어에도 능통했던 메츠거는 이전까지 서구 동양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막스 베버의 부정적 견해에 정면으로 맞선다. 주희.왕양명 등의 송대 이후 신유학 저작들을 파고들어, 중국의 역사를 관통하며 중국 근대화를 이끈 추동력이 중국 문화에 내재된 신유학적 도덕의식에 있었음을 밝힌다.

존 페어뱅크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수로 중국사학계의 태두였던 인물이다.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걸로도 유명한데 토머스 메츠거 역시 그의 문하라는 얘기다. '신유학적 도덕의식'과 '중국 근대화'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지만 여하튼 어떤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펼치는지는 궁금하다.

 

 

한편 역자인 나성 교수는 서양 중국학계의 고전적인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겼는데, 벤저민 슈워츠의 <중국 고대사상의 세계>(살림, 2004)와 앵거스 찰스 그레이엄의 <도의 논쟁자들>(새물결, 2003)이 대표적이다. '중국 고대 철학논쟁'을 다룬 <도의 논쟁자들>은 절판된 상태. 영국 런던 대학 교수였던 그레이엄의 책으론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기도 한 <정명도와 정이천의 철학>(심산, 2011)이 번역돼 있다. 이렇게 소개된다.

<정명도와 정이천의 철학>(원제: Two Chinese Philosophers)은 20세기에 서양의 중국학 연구를 주도하고 중국철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영국의 런던 대학 교수 앵거스 찰스 그레이엄(1919~1991)의 박사 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한 첫 번째 저작이다. 그레이엄은 여타 서양의 동양학 연구자와 달리 중국 사상을 ‘철학’으로 다룬 거의 유일한 학자이다. 그의 연구는 서양과 ‘다른’ 중국적 사유에서 철학적 전망을 발견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정명도와 정이천의 철학>은 이러한 철학적 전망을 반영하고 있으며 비록 분량은 적지만 넓은 시야와 풍부한 통찰력을 내포하고 있어 송대 신유학 사상에 대한 가장 정교하고도 명쾌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14. 06. 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스레터 '독서인'에 실은 '독서카페'를 옮겨놓는다. 한 권에 책을 소재로 한 독서 에세이 연재인데, 이달에 다룬 건 요시미 순야의 <대학이란 무엇인가>(글항아리, 2014)이다. 대학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어서(저자는 대학을 하나의 미디어로 본다) 유익하게 읽은 책이다. 이광주 교수의 <대학의 역사>(살림, 2008)와 비교해봐도 저자의 독창성이 두드러진다.

 

 

 

독서인(14년 6월호) 대학이란 무엇인가

 

한국사회를 가리키는 많은 별칭 가운데 하나는 ‘대졸자 주류 사회’다.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학진학자 수가 고교 졸업생 수의 80%가 넘어섰고, 이 수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90년대 초반 40%에도 이르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렇듯 유례없는 ‘고학력 사회’가 결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저성장기조의 장기화와 산업구조 변화로 대졸 취업난 역시 해결의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대학 등록금만 꾸준히 인상돼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이 늘어났고 ‘반값 등록금’이 정치적 이슈로 부각됐다. 반면에 오늘의 대학이 과연 학생들의 요구와 사회적 수요에 걸맞은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는 깊어졌고 대학 무용론까지 터져 나왔다.

 

대학 교육의 위기 상황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지난 2010년에는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예슬 학생이 자발적 자퇴 선언을 하기도 했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의 표현을 빌면, ‘저질 대졸자 주류 사회’의 풍경이다. 김 교수는 대학 교육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창조적이지도 않고 상상력도 고갈시키는 비싼 대학교육”은 필요 없다고 일갈한다.

 

질문은 언제나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지금 대학의 의미와 역할을 우리가 다시 묻는다면 그 질문의 배후에는 대학이 처한 현재의 위기가 놓여 있다. 시야를 확장하면 이 위기는 비단 한국 사회만의 것이 아니다. 일본 도쿄대 교수 요시미 순야의 <대학이란 무엇인가>(글항아리)에 따르면 일본의 대학 역시 ‘대학이란 무엇인가’를 근원에서 다시 질문해야 할 만큼 위기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위기의 진단과 처방이 그간에 없었던 건 아니지만, 요시미 교수의 입론이 눈길을 끄는 것은 ‘대학’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문제의식 때문이다. 대학을 다시 정의하기 위해서 저자는 먼저 대학은 무엇이었던가를 회고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대학이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태와 기능을 가졌던 건 아니다. 대학의 역사에 대한 회고는 대학의 현재를 더 잘 이해하고 그 미래를 조감하는 데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해줄지 모른다.

 

요시미 교수에 따르면 대학의 역사는 단선적인 발전사가 아니다. 적어도 “두 번의 탄생과 한 번의 죽음”을 겪었기에 그러한데, 오늘의 위기 상황과 관련하여 주목하게 되는 것은 ‘대학의 죽음’이다. 많이 알려진 대로 대학은 12세기 중세 유럽에서 탄생했다. ‘도시의 자유’를 기반으로 탄생한 중세의 대학은 교황권력과 황제권력의 대립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전 유럽으로 증식해갔다. 15세기가 중세 대학의 전성기였다면, 16세기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도래한 근대로의 이행기에 대학은 사회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거의 죽음을 맞는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으로 서구 문명은 필사문화에서 활자문화로 이행한다. 인쇄혁명은 종교개혁과 근대과학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고, 새로운 출판문화를 새로운 지식의 담당자, 즉 저자를 출현시켰다. 중세의 지식인들은 교회와 대학이라고 하는 두 가지 ‘미디어’를 통해서 ‘신의 말씀’과 ‘이성의 언어’의 매개자 역할을 해왔지만, 출판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도전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했다. 즉 중세 대학은 “출판 유통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미디어 상황과 그 속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기 위한 민감한 대응”을 결여했다. 이러한 대응력을 갖췄던 이들은 대학의 지식인이 아니라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과 계몽기의 백과전서파 같은 새로운 지식인과 예술가들이었다. 반대로 대학은 근대적 지식의 주체가 아니었다. 이는 데카르트, 파스칼, 로크,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과 같은 근대의 지적 거인들은 모두 대학교수직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렇게 오랜 기간 가사(假死) 상태에 놓여 있던 대학은 19세기 민족주의의 대두와 함께 다시금 ‘제2의 탄생’을 맞는다. 직접적인 계기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에 맞선 프로이센군의 패배였다. 정치적, 군사적으로 프랑스의 압력 하에 놓인 독일은 새로운 근대 대학의 설립을 통해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빌헬름 훔볼트의 대학개혁안에 따라 베를린대학이 탄생한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독일의 대학이 표본적으로 보여주듯 근대 대학은 국민국가, 더 나아가서는 제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다시금 종합적인 고등교육 및 연구기관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문제는 이러한 근대 대학의 모델이 국민국가가 점차 쇠퇴해가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디지털화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마치 16세기처럼 지식의 창출과 유통에서 새로운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은 대학에 또 다른 도전이다. 근대 국민국가와 같이 성장해온 근대 대학이 당장 종언을 고하지는 않겠지만 분명 새로운 변화의 입구에 서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미디어와 지식의 새로운 관계에 대응하는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다면 대학의 기능 부전은 만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대학의 변신 혹은 혁신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대졸자 주류 사회’의 장래 또한 낙관하기 어려워 보인다.

14. 06. 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