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독서인'에 실은 '독서카페'를 옮겨놓는다. 한 권에 책을 소재로 한 독서 에세이 연재인데, 이달에 다룬 건 요시미 순야의 <대학이란 무엇인가>(글항아리, 2014)이다. 대학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어서(저자는 대학을 하나의 미디어로 본다) 유익하게 읽은 책이다. 이광주 교수의 <대학의 역사>(살림, 2008)와 비교해봐도 저자의 독창성이 두드러진다.

 

 

 

독서인(14년 6월호) 대학이란 무엇인가

 

한국사회를 가리키는 많은 별칭 가운데 하나는 ‘대졸자 주류 사회’다.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학진학자 수가 고교 졸업생 수의 80%가 넘어섰고, 이 수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90년대 초반 40%에도 이르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렇듯 유례없는 ‘고학력 사회’가 결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저성장기조의 장기화와 산업구조 변화로 대졸 취업난 역시 해결의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대학 등록금만 꾸준히 인상돼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이 늘어났고 ‘반값 등록금’이 정치적 이슈로 부각됐다. 반면에 오늘의 대학이 과연 학생들의 요구와 사회적 수요에 걸맞은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는 깊어졌고 대학 무용론까지 터져 나왔다.

 

대학 교육의 위기 상황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지난 2010년에는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예슬 학생이 자발적 자퇴 선언을 하기도 했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의 표현을 빌면, ‘저질 대졸자 주류 사회’의 풍경이다. 김 교수는 대학 교육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창조적이지도 않고 상상력도 고갈시키는 비싼 대학교육”은 필요 없다고 일갈한다.

 

질문은 언제나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지금 대학의 의미와 역할을 우리가 다시 묻는다면 그 질문의 배후에는 대학이 처한 현재의 위기가 놓여 있다. 시야를 확장하면 이 위기는 비단 한국 사회만의 것이 아니다. 일본 도쿄대 교수 요시미 순야의 <대학이란 무엇인가>(글항아리)에 따르면 일본의 대학 역시 ‘대학이란 무엇인가’를 근원에서 다시 질문해야 할 만큼 위기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위기의 진단과 처방이 그간에 없었던 건 아니지만, 요시미 교수의 입론이 눈길을 끄는 것은 ‘대학’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문제의식 때문이다. 대학을 다시 정의하기 위해서 저자는 먼저 대학은 무엇이었던가를 회고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대학이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태와 기능을 가졌던 건 아니다. 대학의 역사에 대한 회고는 대학의 현재를 더 잘 이해하고 그 미래를 조감하는 데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해줄지 모른다.

 

요시미 교수에 따르면 대학의 역사는 단선적인 발전사가 아니다. 적어도 “두 번의 탄생과 한 번의 죽음”을 겪었기에 그러한데, 오늘의 위기 상황과 관련하여 주목하게 되는 것은 ‘대학의 죽음’이다. 많이 알려진 대로 대학은 12세기 중세 유럽에서 탄생했다. ‘도시의 자유’를 기반으로 탄생한 중세의 대학은 교황권력과 황제권력의 대립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전 유럽으로 증식해갔다. 15세기가 중세 대학의 전성기였다면, 16세기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도래한 근대로의 이행기에 대학은 사회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거의 죽음을 맞는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으로 서구 문명은 필사문화에서 활자문화로 이행한다. 인쇄혁명은 종교개혁과 근대과학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고, 새로운 출판문화를 새로운 지식의 담당자, 즉 저자를 출현시켰다. 중세의 지식인들은 교회와 대학이라고 하는 두 가지 ‘미디어’를 통해서 ‘신의 말씀’과 ‘이성의 언어’의 매개자 역할을 해왔지만, 출판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도전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했다. 즉 중세 대학은 “출판 유통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미디어 상황과 그 속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기 위한 민감한 대응”을 결여했다. 이러한 대응력을 갖췄던 이들은 대학의 지식인이 아니라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과 계몽기의 백과전서파 같은 새로운 지식인과 예술가들이었다. 반대로 대학은 근대적 지식의 주체가 아니었다. 이는 데카르트, 파스칼, 로크,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과 같은 근대의 지적 거인들은 모두 대학교수직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렇게 오랜 기간 가사(假死) 상태에 놓여 있던 대학은 19세기 민족주의의 대두와 함께 다시금 ‘제2의 탄생’을 맞는다. 직접적인 계기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에 맞선 프로이센군의 패배였다. 정치적, 군사적으로 프랑스의 압력 하에 놓인 독일은 새로운 근대 대학의 설립을 통해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빌헬름 훔볼트의 대학개혁안에 따라 베를린대학이 탄생한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독일의 대학이 표본적으로 보여주듯 근대 대학은 국민국가, 더 나아가서는 제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다시금 종합적인 고등교육 및 연구기관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문제는 이러한 근대 대학의 모델이 국민국가가 점차 쇠퇴해가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디지털화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마치 16세기처럼 지식의 창출과 유통에서 새로운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은 대학에 또 다른 도전이다. 근대 국민국가와 같이 성장해온 근대 대학이 당장 종언을 고하지는 않겠지만 분명 새로운 변화의 입구에 서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미디어와 지식의 새로운 관계에 대응하는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다면 대학의 기능 부전은 만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대학의 변신 혹은 혁신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대졸자 주류 사회’의 장래 또한 낙관하기 어려워 보인다.

14.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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