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불문학자 정명환 선생의 신간이 출간됐다. <현대의 위기와 인간>(민음사, 2006)이 그것인데, 아직 실물은 보지 못하고 '새로나온 책'에서 책소개만을 읽었다. 다행히도 한국일보에 자세한 리뷰가 올라와 있어서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론 (박이문 선생과 함께) 정명환 선생에게서 나는 (대학시절의 영웅이었던) 사르트르의 문학론과 철학에 대해 배웠다. 그러니 내가 알고 이해하는 사르트르는 그 두 사람의 사르트르이기도 하다. 이 원로 학자의 노작은 그 듬직한 무게와 은은한 성찰의 향기로 이번에도 우리를 격려하고 매혹시켜줄 듯하다.

-전화 통화에서 저자는, 불을 뿜는 베수비오 화산으로 교대근무를 떠나며 ‘이것이 나의 명예’라고 말했다는 한 로마 병사의 ‘의연한 체념’을 이야기했다. “그 정신이야말로 물화ㆍ속화해야만 살 수 있는 이 현실 속의 사회적 자아와, 인간적 가치 초월적 가치를 찾아가는 내면의 자아를 함께 지탱하는 힘의 바탕일 것”이라 말했다.

한국일보(06. 08. 12) 현대의 위기와 인간… '체념과 희망' 자아의 모순을 견뎌라

-원로 인문학자 정명환(77ㆍ전 서울대 불문과 교수) 선생의 책 <현대의 위기와 인간>(민음사, 2006)은, 그 자체로 한국 인문학이 도달한 아득한 성취라 해도 좋을 것이다. 책 속에 녹여낸 지식(철학과 문학)의 폭과 깊이 때문이 아니라 그 지식을 저민 문장의 격조가 그렇다는 것이고, 단아하고 지적인 문장을 통해 은근히 드러내는 높고 원숙한 정신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물질문명의 악력과 거기 묶여 신음하는 인간 정신에 대한 ‘의연한 체념’(현실주의자의 소극적 체념이 아닌)과, '가냘픈 희망'(관념주의자의 이상론이나 당위론이 아닌)의 방법론을 전한다. 그 논의의 출발점이자 토대라 할 현대 위기의 실체를 그는 노동의 현실에서 찾으며 생텍쥐페리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파일럿이었던 생텍쥐페리는 1920년대 항공기 조종은 “엄청난 장애물과 대치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위대성을 발견하고 자기 실현을 이루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대지>를 출간하던 39년의 그는 이미 실험실에 갇혀버렸다고 자탄한다. “이제 바늘의 움직임에 복종하는 것이지 천지의 변화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21세기의 기계화ㆍ획일화의 노동 현실에서 “창조, 인간의 존엄성, 연대의식, 죽음의 의미, 자연과 투쟁과 교감 따위의 가치”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적었다.

-저자는, 이 로봇 테크놀러지의 시대가 여가마저 노동의 논리 속에 포섭해, “여가가 노동의 원활한 운영을 방해하지 않도록” 강제한다고 썼다. 현대인의 여가의 공통성은 “수동성에 의해서건(TV연속극을 보는 경우), 열광에 의해서건(가령 광란적 음악 속에 빠져드는 경우) 간에, 인간의 존재에 관한 귀찮은 반성이 들어앉을 내면적 공간을 소거하는 데 있다.”(22쪽)

-이 현실에서 예술이 존중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예술은 지배 계급의 존재를 위한 필수 조건인 인간소외에 항거하는 초월과 새로운 시각과 이의제기를 그 본질적 기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28쪽) 그는 이 아이러니의 참혹한 현실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핀다.

-경제적ㆍ기술적ㆍ문화적 세계화와 동질화(미국화), 기능적 언어의 위세 앞에 왜소해져 가는 예술적 언어의 고뇌, 진실을 둘러싼 철학과 문학의 알력 등…. 그러면서 그는 개인ㆍ국가의 생존전략, 곧 기계화한 노동 메커니즘의 수용이나 세계화 추세에의 편승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수긍한다. 요컨대 ‘의연한 체념’이다.

-하지만 그는 체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다. 그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자아를 응시하면서, 반성하는 주체적 자아ㆍ내면의 자아를 지켜나가자고, 고통스럽더라도 그 이중적 자아를 지니자고 고언한다. 그 모순의 상황을 견디고, 그 위에서 희망을 찾자고, 그 힘든 삶에 문학이 힘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매력은 저자의 전언 자체보다, 당대의 사상가와 작가들을 비평적으로 살피면서 그 전언을 끌어가는 과정에 있다. 이 우람한 노 학자는 절망의 현실 앞에서도 의연하고, 실낱 같은 희망 앞에서도 여유롭다. 문장의 힘이고 인문학과 인문학 정신의 힘이며, 문학의 힘이다.(최윤필 기자)

 

 

 

 

06. 08. 12.

P.S. 경향신문의 인터뷰 기사를 보태놓는다.

경향신문(06. 08. 19) “이미 주체성 상실 의연한 체념 필요”

-“현대인은 공적 자아(public self)와 사적 자아(private self)라는 모순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순을 지니고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원로 인문학자 정명환 전 가톨릭대 교수(77)는 최근 펴낸 <현대의 위기와 인간>(민음사)에서 현대 사회와 인간의 위기를 진단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가 보기에 “1980년 전후로부터 전개된 현실은 르네상스 이후로 처음 경험하게 된 대격변”이다. 그는 “이성의 힘과 인간의 주체성, 그리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조직화·기계화되면서 주체성을 상실했다.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다스리려면 사회에서 소외된다는 것. “길을 가다가 가만히 서서 왜 가는지 생각하다간 뒤에서 밀려오는 사람에게 짓밟힙니다. 자신에게 소외되지 않으려면 사회에서 소외되고,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소외되는 모순이 생겨요.”

-그러나 그는 현대 사회가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 생의 여건인 것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 상황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 여기서 그는 ‘의연한 체념’이라는 개념을 끌어낸다. “어찌할 수 없다고 체념해야 하지만 시지프스처럼 돌을 산꼭대기에 밀어올리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건지 모르지만 그 끝을 모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이는 책에 제시되고 있는 인문학자의 네 가지 태도, 즉 ‘자진적 고립’ ‘환상 없는 도덕적 관심’ ‘역사적 내기’ ‘제한된 참여’에 가닿는다. 노(老)학자는 노동과 여가의 관계에서도 현대의 위기를 읽어낸다. 옛 사람들에게 ‘주경(晝耕)’과 ‘야독(夜讀)’은 연속성을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과 여가를 통한 자아 회복은 모순된다. 여가는 “인간의 기계적 조작과 소외에 이바지하도록 소비”된다. 거기에는 “인간의 존재에 관한 귀찮은 반성이 들어앉을 내면적 공간”은 없다. “요즈음은 모두 즉각적이고 짜릿한 걸 원하고 생각하길 귀찮아 합니다. 파스칼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은 농담이 됐어요.”

-오늘날 대학 사회에 ‘변종’이 없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사회의 관례에 발맞추고 시류를 타려고”하고 “모두 규격화(Standardize)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우리 사회는 너무 비이성적입니다. 이성으로 갈 때까지 가보지 않고 처음부터 비이성적으로 반응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그는 현 정부에 대해서도 “세계를 향해 닫으려고만 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E.H. 카는 훌륭한 사회는 자전거와 같다고 했습니다. 한쪽으로 쏠리려면 반대쪽으로 움직여 균형을 잡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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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미술분야의 신간으로 <추상표현주의>(열화당, 2006)이 출간되었길래 눈도장을 찍어두었는데, 알고 보니 이번에 <아르테 포베라>까지 출간됨으로써 열화당이 간행한 '현대미술운동총서'가 완간되었다. '도구상자'란 표현을 이전 페이퍼에서 썼지만 이 총서야말로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조감하기 위한 '도구상자'로서 더 없이 좋은 길잡이가 될 듯하다(내가 몇 권이나 갖고 있나?). 관련기사 두 개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6. 08. 10) 20C 미술사조 쉽게 풀이…현대미술운동총서 완간

-인상파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유럽 미술은 시대마다 하나의 큰 흐름으로 나타났다. 르네상스가 끝난 뒤에는 바로크가, 바로크에 대한 반동으로 로코코 양식이 나타났다. 그러나 인상파가 등장한 이후 몇 세기 동안 지속되던 양식의 시대는 가고 ‘~주의’로 불리는 미술운동이 등장했다. 각종 미술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현대미술의 층위는 다양해지고 이론적으로도 견고해졌다.

 

 

 



-2003년 말 열화당과 영국 현대미술의 본산인 테이트 모던 갤러리가 공동으로 기획한 ‘현대미술운동총서’가 최근 <추상표현주의>와 <아르테 포베라>가 출간되면서 모두 14권으로 완간됐다. 이 시리즈는 후기 인상주의, 큐비즘, 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 20세기의 현대미술 운동 중 주요 사조를 선별해 각 미술운동의 배경과 출현, 주요 개념과 사상, 전개 과정, 이후에 끼친 영향까지 서술한 대중적인 미술 이론서다.

 

 

 



-다양한 미술운동 가운데 리얼리즘, 후기 인상주의, 큐비즘, 미래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요 운동으로 뽑았고 20세기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 모더니즘과 추상미술 편을 따로 뒀다.

-이번에 출간된 <추상표현주의>는 당시 미국 미술가들의 유럽 작가들에 대한 경쟁 심리, 미국 미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등을 통해 추상표현주의를 분석해 나간다. <아르테 포베라>는 반미학적인 재료의 물질성을 탐구하면서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이탈리아의 전위적 미술운동으로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르테 포베라를 소개하는 개론서다.

한국일보(06. 08. 12) 현대미술운동총서 '어려운 현대미술 쉽게 술술'

-현대미술은 어렵다. 고전미술이나 르네상스 등 ‘양식’으로 구분되는 미술보다 100배쯤 어렵고, 낭만파나 인상파 등 ‘경향’으로 나뉘는 미술보다는 10배쯤 어렵다. 인상파 이후의 현대미술은 미학적으로 ‘운동’의 형식ㆍ내용으로 나뉜다. 그 작품들은 대체로 정치 사회 문화의 특정 맥락과 어깨를 겯거나 배척하면서 자기 진영의 가치관과 철학을 이야기한다. 어떤 ‘~이즘’은 문화 엘리트들의 배타적 미학의 성을 구축하고, 또 어떤 것들은 ‘저급한’ 대중문화와 키치를 캔버스 전면에 부각시키기도 한다. 이 넓은 현대미술 운동의 스펙트럼과 그 각각의 색깔을 구성하는 개개 작품의 언어들을 대중이 알기 쉽게 정리한 ‘현대미술운동총서’가 ‘추상표현주의’ ‘아르테 포베라’의 2권을 보태면서 14권으로 완간됐다.

 

 

 

 

-이 시리즈는 ‘20세기 미술운동총서’(전30권)를 출간했던 열화당이 유럽 현대미술의 메카로 불리는 영국 ‘테이트 갤러리’와 공동 기획한, 각권 70쪽 내외의 압축적인 현대미술 안내서다. 전문가들이 현대미술을 14개의 주제(개념)로 분류, 각 진영의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하고 현대미술사의 어떤 맥락에서 태동해 어떻게 전개돼왔는지 설명한다. 큐비즘, 미래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추상미술,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

-마지막 권 <아르테 포베라>는 이 미술운동을 국내에 소개하는 첫 이론서다. 책은 1967년 이탈리아 작가 알리기에로 보에티의 광고 포스터 같은 2개의 작품 ‘마니페스토’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 이 계열의 작품들이 어떻게 이름을 얻고 미술 오브제의 해방 운동, 나아가 현대 미술의 영역을 확장했으며, 궁극적으로 미술 상업주의에 어떻게 대항해왔는지를 여러 작품 도판과 함께 설명한다. 책은 이들 유파의 작가들을 인터뷰해 그들 자신이 미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들려주고 이들 작품에 대한 다양한 비평적 시각도 소개한다.

06. 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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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다 2006-08-13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좋은 시리즈 역시 문제는 '번역'입니다. 책을 다 보진 못했지만, '개념미술'은 그야말로 오역의 범벅입니다. 역자는 아마도 이름만 빌려준 듯 합니다.

로쟈 2006-08-1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쪽도 개념 없는 번역들이 대세인 모양이군요...

주니다 2006-08-13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하나 책의 번역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없는 걸로 봐서는 책들을 안 읽는다고 봐야되는 것인지... 그 많은 미대생들은 도대체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불가사의할 따름입니다.

로쟈 2006-08-13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1926-1956)의 전집이 타계 50주년을 맞아 출간됐다.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예옥, 2006). 오늘자 한겨례의 관련기사들을 읽고 알게 된 것인데, 한국일보의 기사와 함께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6. 08. 12) 센티멘털한 '댄대 보이'는 어데로 갔나 "박인환의 재발견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1926~56)의 문학 전집이 발간됐다. 근현대사 자료 수집가인 문승욱 씨가 타계 50주년을 맞는 시인의 생일(8월 15일)에 맞춰 묶어낸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기존에 출판된 선집 등에는 한 번도 수록된 적 없는 ‘재발굴시’ 7편과 산문 41편이 더해진, 명실상부한 첫 전집이다.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으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박인환(1926~1956)은 김수영과 함께 1950년대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수려한 외모와 낭만적 시풍으로 ‘명동백작’, ‘댄디 보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과도한 감상과 허영의 포즈로 인해 김수영의 그늘에 가려진 채 문학사의 괄시를 받아 왔다. 대중의 사랑과 문단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제대로 된 전집 하나 갖지 못 한 시인의 불운은 문우 김수영마저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다”고 경멸했던, 그 과도한 센티멘털리즘에 기인한다.

-이번에 발간된 전집에는 시 80편, 산문 70편 등 총 150편의 작품이 수록됐다. 특히 새로 발간된 전집에는 ‘언덕’, ‘1950년의 만가’, ‘봄은 왔노라’, ‘봄 이야기’, ‘주말’, ‘3ㆍ1절의 노래’, ‘인제’ 등 시 7편과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한 산문 44편 을 포함, 기존 선집 등에 수록된 적 없는 작품이 새로 발굴ㆍ수록됐다. 1986년 문학세계사에서 <박인환 전집>이 나온 적 있지만 그것은 시를 위주로 해 산문 몇 편을 덧붙인, 사실상 선집의 형태였다(*내가 읽었던 전집이 이 문학세계사판이었던 것으로 기덕된다. 문학평론가 이동하의 평전이 아주 유익했던).

-전집은 무엇보다도 ‘감상적 댄디’의 이미지로 점철된 박인환에 대해 균형 잡힌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제국주의와 자본주의 비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그의 시 몇 편과 영화 비평 등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철 없는 댄디에서 ‘다면적 문화 비평가이자 문명 비평가’로 그의 위상을 새로이 교정하게 한다(*철없는 댄디의 이면에 다면적 문명비평가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댄디즘에 대한 지나치게 협소한 이해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새로 발견, 정리된 시와 산문들의 총목록에 비춰 보면 박인환에 대한 기존 평가는 너무 인색했다”며 “비평적 성격이 강한 일련의 글들과 칼럼 및 잡문 등에 이르는 그의 글쓰기의 다채로움은 김수영이라는 이름에 의해 쉽게 가리어질 수 없는 산문가 박인환의 넓이를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새로 발견/수록된 박인환의 산문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포즈와 겉멋으로서의 '문명비판' 혹은 '자본주의 비판'도 당시에는 유행이지 않았나?).

-흥미롭게도, 이번 전집을 묶는 과정에서 시 ‘센티멘탈 저니’(1954년 월간 ‘신태양’)에 붙어 있던 ‘수영(洙暎)에게’라는 헌사가 1년 뒤 출간된 박인환의 ‘선시집’에선 종적을 감춘 사실도 확인됐다. 자신에게 폭언을 퍼부었던 김수영과 끝내 문우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한 박인환의 속내가 읽히는 50년대 문단의 한 풍경이다(*박인환이냐, 김수영이냐?). 

<1950년대의 만가>

불안한 언덕 위에로
나는 바람에 날려간다
헤아릴 수 없는 참혹한 기억 속으로
나는 죽어간다
아 행복에서 차단된
지폐처럼 더럽힌 여름의 호반
석양처럼 타올랐던 나의 욕망과
예절 있는 숙녀들은 어데로 갔나
불안한 언덕에서
나는 음영처럼 쓰러져간다
무거운 고뇌에서 단순으로
나는 죽어간다
지금은 망각의 시간
서로 위기의 인식과 우애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연대年代를 회상하면서
나는 하나의 모멸의 개념처럼 죽어간다
(1950년 5월 16일, 경향신문)

한겨레(06. 08. 11) ‘시인은 가도 작품은 남는 것’ 박인환 전집 처음 나왔다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의 시인 박인환의 시와 산문을 한데 모은 전집이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책 수집가 문승묵(50)씨가 엮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예옥)이 그것이다.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에 태어나 서른 살인 56년 3월 20일에 타계한 시인. 올해는 그의 탄생 80돌이자 서거 5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시의 대중적 인기와 그가 차지하는 문단사적 비중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제대로 된 박인환 전집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86년에 <박인환 전집>(문학세계사)이라는 이름의 책이 나왔지만 시를 위주로 하고 산문 몇 편을 덧붙인 ‘선집’ 성격의 책이었다. <목마와 숙녀>(근역서재, 1976) <세월이 가면>(근역서재, 1982) <한국대표시인 101인 선집 - 박인환>(문학사상사, 2005) 등 박인환의 작품집으로 간행된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 80편과 산문 67편이 수습된 이번 전집에서는 기존의 책들에는 묶이지 않은 ‘발굴성’ 시 7편이 더해졌으며, 산문도 40여 편이 새 얼굴이다. 미확인 작품을 최소화한 명실상부한 ‘전집’이 출현하면서 박인환의 문학 세계에 대한 총체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평가가 비로소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동안 박인환은 포즈와 엄살로 무장한 ‘감상적 댄디’ 정도로 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이라는,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시 두 편이 그런 선입견 형성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그의 현실 비판 및 반제국주의적 시편들을 근거로 그를 사실주의의 관점에서 재평가하는 논의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미군정기에 씌어진 <인천항>과 <남풍>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등에서 들리는 반제국주의적 목소리, 그리고 <자본가에게>와 같은 시에서 보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날선 비판은 박인환의 ‘낯선’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이전 시집들에도 실려 있던 시편들 아닌가?).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 주둔소의 네온사인은 붉고/ 정크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언잭이 날리던/ 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아간다// 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아간다”(<인천항> 부분)

“나는 너희들의 마니페스토의 결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모든 자본이 붕괴한 다음/ 태풍처럼 너희들을 휩쓸어갈/ 위험성이/ 태풍처럼 가까워진다는 것도”(시 <자본가에게> 부분)

-새롭게 발굴되어 이번 전집에 처음으로 실린 시들 중에서는 <1950년의 만가>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전쟁이 터지기 불과 한 달여 전인 1950년 5월 16일치 <경향신문>에 발표된 이 작품은 “불안한 언덕 위에로/ 나는 바람에 날려간다/ 헤아릴 수 없는 참혹한 기억 속으로/ 나는 죽어간다/ (…)/ 지금은 망각의 시간/ 서로 위기의 인식과 우애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연대를 회상하면서/ 나는 하나의 모멸의 개념처럼 죽어간다”고 하여 마치 미구에 닥쳐올 동란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하다(*하지만 그러한 '예견'이전에 수준이 좀 떨어지는 시 아닌가?).

-한편 평론가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씨는 전집 뒤에 붙인 해설에서 10여 편의 문학평론과 20편이 넘는 영화평론, 기타 연극 및 사진평론 분야 글의 분량과 수준에 주목하면서 평론가로서의 박인환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6. 08. 11.

P.S. 우리 시문학의 유산을 정리한다는 의미에서도 전집 출간은 의미있는 것이지만, '박인환의 재발견' 운운은 다소 호들갑스러워 보인다. '감상적 댄디'란 이미지를 각인시켜준 시편들이 사실 박인환의 가장 좋은 작품들이다. 시상의 전개가 빈약하지만 부분적으론 절창이며 또 가장 박인환다운 작품들이기에 그렇다. 프로파간다의 언어로 씌어진 '문명비판'(이 또한 댄디적 요소이다) 가지고 '재발견'을 논한다는 것은 오히려 고인을 욕되게 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망각의 시간/ 서로 위기의 인식과 우애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연대를 회상하면서/ 나는 하나의 모멸의 개념처럼 죽어간다” 같은 시구는 그냥 아마추어리즘에 속한다. 그러니 "그는 비록 감상적이고 댄디적인 시들도 썼지만-"이 아니다. 우리시사에 그만한 댄디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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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6-08-11 20:13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마지막 덧붙임에 공감...공감...

시에는 무뇌한^^이지만 "목마와 숙녀" "마로니에" 등은 사춘기 소녀시절 책받침이나 연습장 표지 등등에서 접하고 감동했던 기억이...

댄디즘이니 센티멘털리즘이니...뭐 그런건 잘 모르겠지만...목마와 숙녀는...뭔가 이국적이고 신비스럽고...거의 초현실적인 어떤 세계로 인도해줄것같은 설레임을 주는 시인듯...

문학비평은 제게는 시보다도 더 낯선 세계인데...로쟈님 글을 보니...상당히 경직되어있는 세계인듯 합니다.

마지막 구절이 압권입니다.

"우리시사에 그만한 댄디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로쟈 2006-08-11 23:40   좋아요 0 | UR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가장 옷 잘 입고 미남이었던 시인으로 기억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것 아닐까요? 거기에 무슨 '의식있는' 시인이었다고 포장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기자들이 작가의 초상에 간혹 개칠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여 불평해 보았습니다...
 

최근에 출간된 <새로운 미술사를 위한 비평용어31>(아트북스, 2006)를 어제 받았다. 며칠 전에 내가 도서관에서 대출한 원서는 1992년에 나온 1판으로 22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2개의 비평용어에 대한 에세이들이 묶여 있다. 지난번에 소개한 대로 국역본은 거기에 9개 장이 증보된 2판을 번역한 것이다.

 

 

 

 

국역본 출간소식을 접하고 바로 원서 2판을 아마존에 주문할까 했었지만 번역상태가 의외로 양호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가능성을 핑계로 미루었었다(도서관에는 2판이 들어와 있지 않았다). 본문만 700쪽이 넘는 국역본은 겉보기에 꽤 듬직해보였지만, 몇 쪽 읽어본 바로는 역시나 원서와 대조하지 않으면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수준이란 느낌이다(내가 읽어본 몇 권의 미술이론서에 근거하여 말하자면, 막힘없이 읽을 수 있는 번역이 우리 실정에서는 오히려 '이상한 번역'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책의 경우 미술(사)학 전공자들이 여럿 참여한 공동번역인 만큼 이러한 판단이 무리한 일반화일 수도 있다(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냥 책의 2장 '기호'의 몇 쪽을 들춰보는 정도로 책에 대한 '감식'을 대신하겠다.

이 책에서 '기호'란 말이 뜻하는 것은 물론 '기호로서의 미술작품' 내지는 '기호로서의 오브제'이다. 미술작품은 그냥 '사물'이 아니라 일종의 '기호'로서 작동/기능한다는 게 기본전제이다: "우리가 작품에 부여하는 의미는 문화적인 전통에 의해 성립될 뿐만 아니라 상당 부분 그것에 의해 기능하게 된다. 달리 말해 미술작품은 기호와 같이 작동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54쪽) 여기서 '문화적 전통'은 'cultural convention'을 옮긴 것인데, '문화적 관습'이라고 옮기는 게 상식적이다. 여하튼, 작품의 의미는 '물리적 대상' 자체로부터 우리에게 자발적/직접적으로 현시되는 게 아니라 어떤 관습 혹은 코드에 의해 간접적으로 매개된다. 마치 언어처럼.

이 장의 필자인 알렉스 포츠(Alex Potts)는 그러한 기호성을 탐색하는 데 있어서 소쉬르와 퍼스라는 두 가지 기호학 이론/모델 가운데 퍼스의 것을 택하겠노라고 말한다. 왜? "기호에 관한 근대이론의 두 가지 기초 모델 중 퍼스의 이론은 특히, 시각미술작품이 어떤 것을 의미하게 되는 방식에 대해 오늘날의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모순을 조명하고 있는데, 이는 대체로 그것이 기호에 관한 수많은 근대적인 이해에 만연하고 있는 평이한 인습주의와 반사실주의의 특성에 반하기 때문이다."(55쪽)

대충대충 읽고자 한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문장인데 핀트가 조금씩 안 맞는 것이 아무래도 거슬린다. 원문은 이렇다: "Of the two founding models of the modern theory of signs, Peirce's is particularly illuminating about the discrepancies in our present-day understandings of how works of visual art come to mean something, largely because it goes against the grain of the often easy conventionalism and antirealism that pervade much modern understanding of the sign."(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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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자서전>(우물이있는집, 2006)이 출간된다고 한다. 이관우 교수의 노작이다. 원제가 <시와 진실>인 이 자서전은 연초에 윤용호 교수에 완역본이 출간된 바 있어서 다소 뜻밖이긴 한데, 아마도 각각 독자적으로 번역을 진행한 듯하다. 분량이 각각 830쪽(윤용호판)과 1116쪽(이관우판)이다. 아직 두 권 다 갖고 있지 않아서(내가 갖고 있는 건 예전에 혜원출판사에서 나온 축약본이다) 어느 번역본이 더 나은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역자의 노고만큼은 대등할 듯싶다. <괴테 자서전>에 대한 서평은 아직 올라와 있지 않기에 알라딘의 소개를 잠시 옮겨오며, 윤용호 교수 역 <시와 진실>에 대해선 리뷰 기사 두 편을 옮겨놓는다. 분량상 읽을 시간을 내기가 만만찮지만 소장용 도서 정도로 일단 간주하면 되겠다.

-<괴테 자서전>(독일어판 제목 <내 생애에서: 시와 진실>)의 완역본이 고급 양장본으로 출간되었다. 문학에 대한 괴테의 열정과 노력뿐만 아니라, 그가 성장하면서 품었던 종교, 사상, 과학 등에 대한 방대한 관심과 회의, 철저한 고민이 드러나 있는 책이다. 한 천재 문학가의 전인적인 '교양'이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괴테 자서전>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과 더불어 세계 5대 자서전으로 꼽힌다.

 

 

 



-괴테를 안다는 것은 18세기의 유럽문화를 읽는 것과 같다. 괴테는 어린 시절 겪은 7년전쟁으로 인한 시야의 확대, 화려하기 그지없는 요제프 2세의 대관식, 경건파를 통한 열렬한 종교적 체험 등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당시의 풍속을 엿보게 해준다. 또한 수많은 추종자와 모방작을 탄생시킨 대표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작품이 발표될 당시의 시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게 한다.

-루소, 하만, 셰익스피어라는 쟁쟁한 작가들에게서 받은 영향, 그리고 하만의 제자인 헤르더와의 교류를 통해 괴테가 질풍노도운동을 이끌게 된 과정도 상세히 기술돼 있다. 질풍노도운동의 태동과 전개 과정은 당시 젊은이들이 어떤 것에 환멸을 느꼈고, 어떻게 합리주의 계몽 숭배를 뒤엎고 탈출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괴테 전집의 결정판으로 불리는 함부르크판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3년 여의 번역과 편집 작업을 거쳤으며, 그간 우리나라에서 중역되어 나오거나, 부실한 판본을 번역하면서 생긴 오류들을 바로잡았다. 표지는 가죽과 종이로 제작하였고, 커버 양쪽에는 자석을 붙였다. 

한국일보(06. 01. 18) 젊은 괴테는 슬펐을까?

-대 문호 괴테(1749~1832)의 자서전(혹은 자전적 소설) <시와 진실>이 고려대 윤용호 교수에 의해 완역됐다. 기왕의 판본이 없지는 않으나 일어판 중역본이거나 중략본이었고, 그나마도 절판 상태였다. 환갑의 괴테(1809년 집필)는 이 책에서 자신의 출생과 청년시절을 대화체 등을 써가며 소설적 기법으로 요약했다. 정확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마인 강변에서 태어나서 바이마르공국으로 이주하기까지의 26년간(~1775년)이다.



 

 

 

-이 시점은 법조인으로 양육돼 고향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지만 단 한 건의 수임 실적도 올리지 못하던 청년 괴테가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일약 스타 작가로 부상하면서 유년의 꿈이던 문학으로 인생 항로를 되잡던 시기이며, 외가의 전통을 이어 정치가로서의 야심을 막 펼치려던 때였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올해만 6종의 번역본이 새로 더 나왔다. 카피본도 적지 않을 듯한데, 번역 비판이 시급하게 요청되는 책 중의 하나이다).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기까지의 ‘괴테 인생1기’의 기록이자, 지식인으로서 그가 이룩한 웅장한 이력의 뿌리를 드러낸 내면의 고백인 셈이다. 책의 분량은 무려 819쪽에 이른다.

-26살에 초고본 집필을 시작해 82세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다듬었던 역작 <파우스트>가 그의 유년시절 본 인형극이 모태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책에는 어린 괴테를 매료시켰던 그 인형극 이야기가 등장한다. “(할머니는) 낡은 집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면서 최상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24쪽)

-귀족이었던 외할아버지와 평민 출신의 아버지가 ‘7년전쟁’을 두고 각각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을 편들며 불화하던 모습, 아버지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종교관 등이 그에게 미친 영향, 연애시나 결혼축시 조시 등을 써주고 돈을 벌던 이야기며, 첫 사랑 소녀(그레첸)와의 이별과 상처, 대학 생활의 권태로움, 독일낭만주의(질풍노도) 문학의 선구자 ‘헤르더’와의 만남, ‘베르테르’에 얽힌 뒷얘기 등도 흥미진진하다.

-짐작컨대 그는 ‘26살 이후’의 자서전 계획이 없었던 듯하다. 이는 그가 책의 4부를 만년(1831년)에 쓴 데서도 엿보인다. 그의 문학이 철저한 체험에 근거한 것이라는 후세 학자들의 평가처럼, 이후의 삶은 작품 속에 충실히 녹여넣었기 때문일 수 있다. 그 체험이 곧 ‘시’(내면의 진실)와 체험적 ‘진실’일 것이다.(최윤필 기자)

파이낸셜뉴스(06. 02. 01) 괴테가 말하는 ‘괴테 이야기’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며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고 또한 나의 삶에서 후회로 남는 것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기 삶의 어느 일정한 시점이 되면 가던 길을 멈추고 한번쯤은 자기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고 자기 내면과 조용히 대화를 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살아온 날의 회한과 반성은 찻잔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다 사라져 버리는 김과 마찬가지이지만 작업을 하는 자의 회고는 자기의 독특한 방법과 형식을 통해 세상에 남겨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자서전’이고 위대한 사람의 자기 회상은 누구나 한번 경험해 보고 싶어 한다.

-이번에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자서전적 소설인 <시와 진실>(윤용호 옮김)이 완역되어 출간되었다. 괴테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할 필요도 없이 <파우스트>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의 작품을 통해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진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문호다. <시와 진실>은 작자의 나이 예순이 되던 해에 쓰기 시작하여 3/4은 몇 년 후에 출간되었지만 마지막 부분은 죽기 일 년 전에 써내려가 사후에 빛을 보게 되었다.

 

 

 

 

-<시와 진실>은 괴테의 자서전일 뿐만 아니라 소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자서전을 염두에 두고 읽다보면 소설로 읽히고, 소설로 읽다보면 자서전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이 작품을 ‘자서전적 소설’이라고 명명하는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 작품이 200여 년 전에 한 독일작가에 의해 시작된 현대적 의미의 자서전이라는 점에 있다. 뿐만 아니라 괴테 문학 전반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욕구가 발동하는 독자에게는 저자와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작가 개인의 주변상황뿐만 아니라 작가가 ‘하려고 했고 해야만 했던’ 문학 전반에 관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괴테는 “작품들이 확고한 교양의 정도가 빛을 발하고 있으며, 도덕과 미학의 원리와 신념이 어느 정도 들어있기는 하지만 작품을 연대순으로 배열하고 작품의 소재가 되었던 생활환경과 감정상태, 그리고 영향을 끼쳤던 실례들을 일정한 연관 속에서 제시해 주었으면 한다”는 한 친구의 편지 한통이 <시와 진실>을 집필하게 된 동기라고 밝히고 있다. “만일에 위대한 작가가 이런 수고를 해준다면, 보다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도 편리하고 유익한 그 무엇이 나오게 될 것이고 자신에게 애착을 느끼는 사람들과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친구는 부탁하고 있다.

-괴테는 원래 책의 제목을 <진실과 시>로 정했다가 어조상 마음에 들지 않아 <시와 진실>로 바꾸었다고 밝히고 있다. 머리말의 ‘나의 인생에서. 시와 진실’이라는 제목이 보여 주듯이 괴테는 자기가 살아온 개별적인 상황을 진실로 설정했고 평생의 문학적 작업과 결과를 시로 서술했다. 총 4부20책으로 구성되어 있는 ‘시와 진실’은 제1부는 ‘벌 없는 교육은 없다’, 제2부는 ‘젊은 시절에 소망했던 것은 노년에 풍족히 이루어진다’, 제3부는 ‘나무들은 하늘까지 자라지 않도록 되어있다’, 제4부는 ‘신을 제외하고는 신에 맞설 자 없다’를 제목으로 하고 있다. 이 번역본을 읽은 독자들은 이 번역서가 국내와 외국에서 정통 코스를 밟은 한 독문학 학문세대 및 번역세대에 의해 완역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서장원 고려대 연구교수)

06. 08. 11.

P.S. '괴테가 말하는 괴테'란 제목으로 놓칠 수 없는 책은 에커만과의 만년의 대화록 <괴테와의 대화>(푸른숲, 2000)이다. 이 책 또한 국내에 여러 판본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현재 남아있는 건 푸른숲본이 전부인 듯하다. 

 

 

 

 

 

한편, 내가 갖고 있는 박스도서 가운데 두툼한 괴테 자서전이 <시와 진실>인지 <대화>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국역본이 더 출간됐다). 그나마 기억하는 건 이 <대화>의 러시아어본을 재작년 모스크바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사실이다(아래는 러시아판 <대화>와 <시와 진실>). 언제나 손에 들게 될는지는 기약할 수 없지만...

Эккерман И.П. Разговоры с ГетеИоганн Вольфганг Гете Поэзия и правда. Из моей жизн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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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커만의 중에서
    from 하민혁의 민주통신 2009-03-03 01:3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 세상 사람들은 나를 특별한 행운아라고 말한다. 나 역시 거기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지나온 행로를 불평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고난과 노력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었다. 75년 동안의 내 삶을 통해 진정으로 즐거웠던 때는 단 한 달도 없었다. 이것은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 나를 지탱하게 했던 것은 바위를 끊임없이 굴려서 계속하여 밀어 올리려는 시도였다. 1. 우수한 사람이면서도 무슨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