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1926-1956)의 전집이 타계 50주년을 맞아 출간됐다.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예옥, 2006). 오늘자 한겨례의 관련기사들을 읽고 알게 된 것인데, 한국일보의 기사와 함께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6. 08. 12) 센티멘털한 '댄대 보이'는 어데로 갔나 "박인환의 재발견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1926~56)의 문학 전집이 발간됐다. 근현대사 자료 수집가인 문승욱 씨가 타계 50주년을 맞는 시인의 생일(8월 15일)에 맞춰 묶어낸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기존에 출판된 선집 등에는 한 번도 수록된 적 없는 ‘재발굴시’ 7편과 산문 41편이 더해진, 명실상부한 첫 전집이다.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으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박인환(1926~1956)은 김수영과 함께 1950년대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수려한 외모와 낭만적 시풍으로 ‘명동백작’, ‘댄디 보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과도한 감상과 허영의 포즈로 인해 김수영의 그늘에 가려진 채 문학사의 괄시를 받아 왔다. 대중의 사랑과 문단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제대로 된 전집 하나 갖지 못 한 시인의 불운은 문우 김수영마저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다”고 경멸했던, 그 과도한 센티멘털리즘에 기인한다.

-이번에 발간된 전집에는 시 80편, 산문 70편 등 총 150편의 작품이 수록됐다. 특히 새로 발간된 전집에는 ‘언덕’, ‘1950년의 만가’, ‘봄은 왔노라’, ‘봄 이야기’, ‘주말’, ‘3ㆍ1절의 노래’, ‘인제’ 등 시 7편과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한 산문 44편 을 포함, 기존 선집 등에 수록된 적 없는 작품이 새로 발굴ㆍ수록됐다. 1986년 문학세계사에서 <박인환 전집>이 나온 적 있지만 그것은 시를 위주로 해 산문 몇 편을 덧붙인, 사실상 선집의 형태였다(*내가 읽었던 전집이 이 문학세계사판이었던 것으로 기덕된다. 문학평론가 이동하의 평전이 아주 유익했던).

-전집은 무엇보다도 ‘감상적 댄디’의 이미지로 점철된 박인환에 대해 균형 잡힌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제국주의와 자본주의 비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그의 시 몇 편과 영화 비평 등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철 없는 댄디에서 ‘다면적 문화 비평가이자 문명 비평가’로 그의 위상을 새로이 교정하게 한다(*철없는 댄디의 이면에 다면적 문명비평가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댄디즘에 대한 지나치게 협소한 이해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새로 발견, 정리된 시와 산문들의 총목록에 비춰 보면 박인환에 대한 기존 평가는 너무 인색했다”며 “비평적 성격이 강한 일련의 글들과 칼럼 및 잡문 등에 이르는 그의 글쓰기의 다채로움은 김수영이라는 이름에 의해 쉽게 가리어질 수 없는 산문가 박인환의 넓이를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새로 발견/수록된 박인환의 산문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포즈와 겉멋으로서의 '문명비판' 혹은 '자본주의 비판'도 당시에는 유행이지 않았나?).

-흥미롭게도, 이번 전집을 묶는 과정에서 시 ‘센티멘탈 저니’(1954년 월간 ‘신태양’)에 붙어 있던 ‘수영(洙暎)에게’라는 헌사가 1년 뒤 출간된 박인환의 ‘선시집’에선 종적을 감춘 사실도 확인됐다. 자신에게 폭언을 퍼부었던 김수영과 끝내 문우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한 박인환의 속내가 읽히는 50년대 문단의 한 풍경이다(*박인환이냐, 김수영이냐?). 

<1950년대의 만가>

불안한 언덕 위에로
나는 바람에 날려간다
헤아릴 수 없는 참혹한 기억 속으로
나는 죽어간다
아 행복에서 차단된
지폐처럼 더럽힌 여름의 호반
석양처럼 타올랐던 나의 욕망과
예절 있는 숙녀들은 어데로 갔나
불안한 언덕에서
나는 음영처럼 쓰러져간다
무거운 고뇌에서 단순으로
나는 죽어간다
지금은 망각의 시간
서로 위기의 인식과 우애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연대年代를 회상하면서
나는 하나의 모멸의 개념처럼 죽어간다
(1950년 5월 16일, 경향신문)

한겨레(06. 08. 11) ‘시인은 가도 작품은 남는 것’ 박인환 전집 처음 나왔다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의 시인 박인환의 시와 산문을 한데 모은 전집이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책 수집가 문승묵(50)씨가 엮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예옥)이 그것이다.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에 태어나 서른 살인 56년 3월 20일에 타계한 시인. 올해는 그의 탄생 80돌이자 서거 5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시의 대중적 인기와 그가 차지하는 문단사적 비중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제대로 된 박인환 전집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86년에 <박인환 전집>(문학세계사)이라는 이름의 책이 나왔지만 시를 위주로 하고 산문 몇 편을 덧붙인 ‘선집’ 성격의 책이었다. <목마와 숙녀>(근역서재, 1976) <세월이 가면>(근역서재, 1982) <한국대표시인 101인 선집 - 박인환>(문학사상사, 2005) 등 박인환의 작품집으로 간행된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 80편과 산문 67편이 수습된 이번 전집에서는 기존의 책들에는 묶이지 않은 ‘발굴성’ 시 7편이 더해졌으며, 산문도 40여 편이 새 얼굴이다. 미확인 작품을 최소화한 명실상부한 ‘전집’이 출현하면서 박인환의 문학 세계에 대한 총체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평가가 비로소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동안 박인환은 포즈와 엄살로 무장한 ‘감상적 댄디’ 정도로 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이라는,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시 두 편이 그런 선입견 형성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그의 현실 비판 및 반제국주의적 시편들을 근거로 그를 사실주의의 관점에서 재평가하는 논의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미군정기에 씌어진 <인천항>과 <남풍>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등에서 들리는 반제국주의적 목소리, 그리고 <자본가에게>와 같은 시에서 보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날선 비판은 박인환의 ‘낯선’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이전 시집들에도 실려 있던 시편들 아닌가?).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 주둔소의 네온사인은 붉고/ 정크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언잭이 날리던/ 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아간다// 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아간다”(<인천항> 부분)

“나는 너희들의 마니페스토의 결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모든 자본이 붕괴한 다음/ 태풍처럼 너희들을 휩쓸어갈/ 위험성이/ 태풍처럼 가까워진다는 것도”(시 <자본가에게> 부분)

-새롭게 발굴되어 이번 전집에 처음으로 실린 시들 중에서는 <1950년의 만가>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전쟁이 터지기 불과 한 달여 전인 1950년 5월 16일치 <경향신문>에 발표된 이 작품은 “불안한 언덕 위에로/ 나는 바람에 날려간다/ 헤아릴 수 없는 참혹한 기억 속으로/ 나는 죽어간다/ (…)/ 지금은 망각의 시간/ 서로 위기의 인식과 우애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연대를 회상하면서/ 나는 하나의 모멸의 개념처럼 죽어간다”고 하여 마치 미구에 닥쳐올 동란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하다(*하지만 그러한 '예견'이전에 수준이 좀 떨어지는 시 아닌가?).

-한편 평론가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씨는 전집 뒤에 붙인 해설에서 10여 편의 문학평론과 20편이 넘는 영화평론, 기타 연극 및 사진평론 분야 글의 분량과 수준에 주목하면서 평론가로서의 박인환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6. 08. 11.

P.S. 우리 시문학의 유산을 정리한다는 의미에서도 전집 출간은 의미있는 것이지만, '박인환의 재발견' 운운은 다소 호들갑스러워 보인다. '감상적 댄디'란 이미지를 각인시켜준 시편들이 사실 박인환의 가장 좋은 작품들이다. 시상의 전개가 빈약하지만 부분적으론 절창이며 또 가장 박인환다운 작품들이기에 그렇다. 프로파간다의 언어로 씌어진 '문명비판'(이 또한 댄디적 요소이다) 가지고 '재발견'을 논한다는 것은 오히려 고인을 욕되게 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망각의 시간/ 서로 위기의 인식과 우애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연대를 회상하면서/ 나는 하나의 모멸의 개념처럼 죽어간다” 같은 시구는 그냥 아마추어리즘에 속한다. 그러니 "그는 비록 감상적이고 댄디적인 시들도 썼지만-"이 아니다. 우리시사에 그만한 댄디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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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6-08-11 20:13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마지막 덧붙임에 공감...공감...

시에는 무뇌한^^이지만 "목마와 숙녀" "마로니에" 등은 사춘기 소녀시절 책받침이나 연습장 표지 등등에서 접하고 감동했던 기억이...

댄디즘이니 센티멘털리즘이니...뭐 그런건 잘 모르겠지만...목마와 숙녀는...뭔가 이국적이고 신비스럽고...거의 초현실적인 어떤 세계로 인도해줄것같은 설레임을 주는 시인듯...

문학비평은 제게는 시보다도 더 낯선 세계인데...로쟈님 글을 보니...상당히 경직되어있는 세계인듯 합니다.

마지막 구절이 압권입니다.

"우리시사에 그만한 댄디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로쟈 2006-08-11 23:40   좋아요 0 | UR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가장 옷 잘 입고 미남이었던 시인으로 기억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것 아닐까요? 거기에 무슨 '의식있는' 시인이었다고 포장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기자들이 작가의 초상에 간혹 개칠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여 불평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