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발행 월간 '행복한 교육'에 실린 글을 옮겨놓는다. 밀란 쿤데라의 삶과 문학에 대한 소개글을 요청받아 쓴 것이다...
행복한 교육(2023년 9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난 7월 타계한 체코 출신의 프랑스 작가 밀란 쿤데라는 1980년대 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처음 소개된 이래 문학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다. 1984년에 출간된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전 세계 문학독자에게 ‘쿤데라’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베스트셀러로 국내에서도 100만부 이상 판매돼 ‘쿤데라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하듯 2013년에는 전15권의 ‘밀란 쿤데라 전집’이 완간되었다. 체코어와 프랑스어로 쓰인 그의 작품 전집이 프랑스 밖에서는 출간된 것은 처음이었다. 쿤데라의 타계를 계기로 그의 삶과 문학을 되짚어보고 독자로서 그와 함께했던 시간도 같이 떠올려본다.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전기적 이력을 참고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 작가가 쿤데라라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한국어 전집판에 실린 작가소개가 상징적인데 그에 따르면 쿤데라는 1929년 체코에서 출생하여 1975년 프랑스로 이주했다. 독자에게는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쿤데라는 보는 듯싶다. 달리 말하면, 쿤데라는 문학작품을 작가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하며, 작가에 대한 지식을 작품 이해에 불필요한 것으로 배제하고자 한다. 그의 견해에 반드시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쿤데라가 그러한 문학관의 작가라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연스레 던질 수 있는 질문은 그의 문학관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관철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러한 문학관의 전기적 배경도 또다른 관심의 대상이 된다.
쿤데라의 삶에서 결정적인 두 가지 공적 사건은 1948년 공산당의 무혈혁명과 1968년의 민주화운동(‘프라하의 봄’)이다. 1948년의 혁명으로 체코슬로바키아는 사회주의국가로 재탄생하며 이때 청년 쿤데라는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다가 1950년에 당에서 추방당한 이력이 있다. 그의 첫 장편소설이자 초기 대표작 <농담>(1967)에는 여자친구에게 보낸 엽서에 정치적 농담을 적었다가 당과 대학에서 쫓겨나 수형부대에서 강제복무하게 되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청년 쿤데라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이후 쿤데라가 1950년대에 발표한 세권의 시집에는 스탈린주의를 찬양하는 시들도 들어 있었는데, 1956년 재입당을 승인받은 건 그 덕분인지도 모른다(그렇지만 쿤데라는 나중에 이 시집들의 재출간을 금지하고 자신의 저작목록에서도 삭제한다). 1968년의 민주화운동은 체코의 집권 공산당이 시도한 사회주의 개혁운동으로 쿤데라도 이에 적극 가담하지만 탱크를 앞세운 소련의 무력침공으로 좌절된 사건이다. 쿤데라는 1970년 다시 한번 공산당에서 쫓겨나며 집필과 활동에 탄압을 받게 되자 결국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하게 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바로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망명과 함께 체코슬로바키아의 국적을 상실하지만 쿤데라가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것은 1981년 미테랑 정부 때의 일이다. 이미 망명 이전에 <농담>이 프랑스어로 번역돼 크게 환영받은 상황에서 프랑스행을 결정한 것이었지만, 작가로서 그의 언어는 여전히 체코어였다. 그렇지만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프랑스에서의 체류가 길어지면서 그는 자신의 문학어를 체코어에서 프랑스어로 바꾸는 모험을 시도한다. 에세이 <소설의 기술>(1986)이 그가 프랑스어로 발표한 첫 번째 책이며 체코어로 쓴 마지막 장편소설 <불멸>(1988) 이후에는 소설 역시로 불어로 발표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후에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 <느림>(1995)이 그가 프랑스어로 발표한 첫 소설이었다. 이후에 쿤데라는 체코어와 함께 프랑스어 작품을 자신의 정본 작품으로 인정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의 삶을 ‘체코 작가에서 프랑스 작가로의 이행 혹은 변신’으로 요약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흥미롭게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체코와 체코어를 떠났기에 체코 작가가 아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프랑스 작가로 대우받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그는 새로 취득한 프랑스 국적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외국작가’였다. 그렇게 어디에도 소속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쿤데라는 그가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이라고 부르는 '소설'을 ‘조국’이나 ‘민족’ 혹은 ‘개인’을 대신하는 유일한 집착 대상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체코 출신의 프랑스 작가’라는 소개도 쿤데라에 대한 소개로는 핵심을 비껴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정해보자. “실존의 중요한 주제를 끝까지 탐사하는 위대한 산문형식”인 소설을 통해 성찰의 깊이와 묘미를 우리에게 알려준 작가 밀란 쿤데라가 지난달 우리 곁을 떠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