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으로 캐스파 헨더슨의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행나무, 2015)을 고른다. 미처 예기치 않은, 상상하지 못한 책이다. 현재로선 '공존하려는 인간에게만 보이는 것들'이란 부제만 떠 있어서 실제로 어떤 책인지도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같이 꽂아둘 만한 책들은 떠오르는데, 알베르토 망겔의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궁리, 2013),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열린책들, 2011) 등이다. 차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을 다룬 책이 아닐까, 라는 것. 나머지 두 책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의 상상(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공간과 영감을 제시해놓은 것과 대비되겠다. 하지만 이 역시 제목에 비추어 상상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책이 대체 무엇에 관한 것이고, 어째서 묵직한 분량을 자랑하는지는 실물을 봐야 알 수 있겠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해 상상해보는 것만으로 최소한 하루의 반나절은 의미심장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서가에 빈자리를 미리 마련해두면서...

 

15.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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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제 말고는 위장약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나이 탓인지 스트레스 탓인지 두 주째 약을 먹고 있다. 그 사이에 속이 타들어간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도 알게 됐으니 소득이 없진 않다. 이런 것도 '오후 4시'의 풍경에 속할까. 인생을 하루로 잡았을 때의 오후 4시. 저녁은 아니지만, 햇볕 좋던 시간은 이미 지나가버린 바로 그맘때. '옥상화가' 김미경의 <서촌 오후 4시>(마음한책, 2015)의 느낌도 그러하다. <언니의 독설>의 저자가 아닌 <브루클린 오후 2시>(마음산책, 2010)의 저자다(공저로는 <왓더북?!>도 있다).

 

 

첫번째 책과 두번째 책 사이에 두 가지 이동이 있었다. 공간적으로는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서울 서촌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는 오후 2시에서 오후 4시로. 덧붙여 저자의 나이는 쉰 살에서 쉰 다섯으로. 그러한 변화를 저자 자신이 의식하고 있다. 새책의 머리말이 '브루클린 오후 2시, 서촌 오후 4시'란 제목을 갖고 있으니까. 아직 좋았던 시절에 대한 느낌을 <브루클린 오후 2시>에서는 이렇게 적는다.

하루로 친다면 내 인생은 막 오후 2시쯤에 온 게 아닐까 싶다. 하루 중 '가장 뜨겁고 화려한' 오후 2시. 겉으로는 초라하지만 속으로는 가장 뜨겁고 풍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브루클린 오후 2시>다.

그렇게 뜨겁고 화려한 시간이지만, 오후 2시는 이제 해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2년 뒤 저자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다시 3년 뒤에는 옥상에서 서촌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5년 전에는 '1억년 후 나는 화가다'라고 호기롭게 예언했지만 턱없이 빗나갔다. 그 사이에 1억년이 흐른 게 아니므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책은 그 일에 대한 기록이고 보고다.

 

이 책은 도대체 그 화학작용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왜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우리 나이로 쉰여섯 살인 내가 왜 회사를 뛰쳐나와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어진 것인지, 길거리에서, 옥상에서 그림 그리며 나는 어떤 세상을 만나고 있는지, 내가 그리는 서촌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어떻게 한 발짝 한 발짝 화가가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변화를 기록하고 있어서인지 서촌의 풍경을 정물화처럼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이내믹하다. 오후 4시의 리듬, 혹은 오후 4시의 율동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으니 1억년 뒤에도 화가가 될 리 만무하다고 생각하지만, 위장의 오후 4시를 맞이하여,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슬쩍 해본다. 속쓰림을 달래려면 생활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의사의 충고에 따르더라도 이대로는 안 되겠기에. 익숙한 것과의 결별? 하루에 몇 잔씩 마시던 아메리카노와 결별한 지도 이주째로군. 오후 4시는 담담하게 허전하다...

 

15.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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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대학 신입생들의 독서토론 시간에 추천할 만한 책이 없는냐는 질문을 받고 떠올린 책의 하나는 '채현국이 구술하고 정운현이 기록한' <쓴맛이 사는 맛>(비아북, 2015)이다. 채현국 선생은 지난해 1월초 한겨레신문의 인터뷰에서 노인세대에 대한 일갈을 서슴지 않아 크게 화제가 되었던 분이다(기사를 찾아보니 작년에 한 잡지에서는 '올해의 인물'로도 꼽았군).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란 제목으로 나왔던 인터뷰 기사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8266.html 참조. <쓴맛이 사는 맛>은 그 기사가 계기가 돼 선생을 찾아간 언론인의 '채현국 보고서'다.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의 제목이 '너희들은 저렇게 되지 마라'이다.

 

 

기록자는 존경받는 어른이 드문 시대에 그가 '제대로 늙은 어른'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었다고 평한다. '꼰대'나 '어버이연합'만 떠올리다가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쓴맛이 사는 맛"이란, 제대로 된 말씀을 들으니 경탄과 환호가 저절로 이어졌었다. 김주완의 <풍운아 채현국>(피플파워, 2015)에 뒤이어 나온 <쓴맛이 사는 맛>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책이다. 인터뷰 기사의 확장판으로 읽어도 되겠다.

시대의 어른 채현국의 삶이 깊어지는 이야기. 채현국은 '거리의 철학자', '파격의 인간', '현대판 임꺽정' 등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아왔다.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2위일 정도의 사업을 일군 거부였으며, 민주화운동가들을 뒤에서 후원했으며, 현재는 효암학원이라는 사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교육자이다. 스펙 쌓기, 취업 전쟁 등으로 지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힐링'이라는 휘황찬란한 말로 포장된 위로가 넘쳐나는 오늘날, 채현국의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는 젊은이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그가 몸으로 직접 겪고 증명한 삶에서 우러나온 조언은 제대로 된 어른을 만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분을 만나본 지가 가물가물하다. 제대로 된 나라,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오늘 대학의 공기를 처음 들여마신 젊은이들이 "너희들은 저렇게 되지 마라"란 선생의 충고를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15. 0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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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치자면 '빅데이터'와 '사회물리학' 모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주제인데, 둘을 한데 묶은 책이 나왔다. 알렉스 펜틀런드의 <창조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와이즈베리, 2015). 원제는 <사회물리학>(2014)이고 '빅데이터와 사회물리학'이 번역본의 부제로 붙었다. 무얼 말하고자 하는가.

 

우리는 주변으로부터 배우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로부터 배운다. 사람들 사이의 아이디어 흐름, 즉 사회적 상호 작용에 주목하는 MIT 미디어랩의 세계적 석학 알렉스 펜틀런드 교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탐험’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참여’가 뛰어난 사람들이 최고의 성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빅데이터를 통해 실증했다. 그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집단의 탐험과 참여 활동을 강화해 아이디어 흐름을 개선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집단 지능을 극대화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물리학의 놀라운 연구 성과를 보여준다.

사회물리학이란 용어는 마크 뷰캐넌의 <사회적 원자>(사이언스북스, 2010)를 통해서 제법 알려지게 됐는데, 뷰캐넌은 복잡성이론과 네트워크 과학에 기반하여 사회현상을 마치 자연현상처럼 다루려고 했다. 개개인을 제목 그대로 '사회적 원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똑같이 '사회물리학'을 표방하고 있지만 펜틀런드가 기대는 것은 정보통신기술과 빅데이터 과학이다. 그는 빅데이터가 인터넷이 초래한 사회변화에 맞먹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 변화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세'답게 빅데이터 관련서는 계속 쏟아지고 있다. 이 분야도 의미 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일단 펜틀런드의 책은 믿어보기로 한다...

 

15. 0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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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에 가기 전에 '이주의 발견'을 고른다. '이주의 이론서'라고 해도 되겠다. 줄리엣 미첼의 <동기간>(도서출판b, 2015). 저자는 영국의 정신분석가이자 사회주의 여성주의자로 소개된다. 정신분석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을 제기했는데, 정신분석과 페미니즘의 관계는 사실 편이 나뉘는 걸로 안다.

 

 

<동기간>은 제목이 시사하듯 초점이 좀 다르다. '수직적 관계의 정신분석에서 수평적 관계의 정신분석으로'라는 표지 문구가 잘 집약하고 있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줄리엣 미첼의 책으로 기본적으로는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적 관점에서, 그동안 배타적으로 중시되어왔던 부모와 자식 간의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동기간이라는 측면 관계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분석하고 있는 저술이다.

희소한 접근방식이므로 정신분석이나 이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손길이 바로 갈 만하다.

 

 

말이 나온 김에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관련서를 찾아봤다. 모두 갖고 있는 책들인데, 절판된 책이 많아졌다. 엘리자베스 라이트가 엮은 <페미니즘과 정신분석학 사전>(한신문화사, 1997)은 기본 '도구'이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아직 품절되지 않았다. 국내 저자들이 쓴 <페미니즘과 정신분석>(여이연, 2003)과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 이론을 통한' 텍스트 읽기를 보여주는 캐런 코우츠의 <아동문학 작품 읽기>(작은씨앗, 2008)은 절판된 상태.

 

 

줄리멧 미첼의 책으론 <여성의 영지>(2015)도 눈에 띄는데, 국내 번역된 <여성의 지위>의 원저인지는 확인해봐야겠다. 예상대로다. 초판은 1971년에 나왔고, 국내엔 <여성해방의 논리>(광민사, 1980)와 <여성의 지위>(동녘, 1984)란 제목으로 두 차례 번역됐었다. <미친 남자와 메두사>(2001)는 히스테리를 재조명한 책으로 돼 있는데, 수직관계 대신에 측면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한 책이라 한다. 근간으로는 <줄리멧 미첼과 수평축>이란 연구서도 나올 예정인데, 역시나 동기간 정신분석을 다룬 책으로 보인다. 한데, 대부분 외동인 한국의 핵가족 현실에서는 동기간 분석의 유효기간이 길어보이진 않는군. 혼자인 아이의 정신분석이 앞으로 개척되어야겠다...

 

15. 0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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