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방강의가 남아있지만 한주간의 일정이 마무리된 터라 커피 한잔 마시며 잠시 숨을 돌린다. 매주 10회 이상 강의를 하다 보니 다루는 작가(작품)가 그만큼이다. 이번주에는 가즈오 이시구로와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플라토노프, 숄로호프, 조세희, 염상섭, 서머싯 모옴을 강의에서 읽었다(도스토예프스키는 두 권. 그리고 모옴은 내일). 내주 강의를 위해서는 또 그만큼의 작가들을 읽어야 하는데 처음 읽는 작품도 들어있다.
이런 강의를 꽤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세계문학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강의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학에서라면 이렇게 다양한 작가들을 다룰 일이 없고 대학바깥에서는 어지간하면 이렇게 많은 강의를 맡을 성싶지 않다. 그래서 아무튼 예외적인 경력을 갖게 되었는데 내년까지 연속적으로 펴내게 될 책들은 그 경력의 중간 결과물이다.
이달말쯤 나올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속의 철학>도 마찬가지다. 최종교정과 서문이 남아있는 상태인데, 애초에 강의를 기획한 건 작고한 박이문 선생의 <문학속의 철학>을 내 식으로 반복하고 싶어서였다. 그 책에서 다뤄진 작품들 가운데 몇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7편의 작품을 골랐고 8강 강의를 진행했다. 7강이 아니라 8강이 된 건 로렌스의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2강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사랑에 빠진 여인들>이 ‘문학속의 철학‘ 강의 기획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번역본이 없어서 박이문 선생의 논의를 눈으로만 따라갔었는데 비로소 실감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 이제 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의 출간을 앞두게 되니 이런저런 만감이 교차한다.
한권의 책을 내는 것은 앞으로 내가 낼 책이 한권 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이를 한살 더 먹는 게 언제까지나 자랑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책을 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더 낼 책이 없을 때쯤 저자로서의 삶 또한 종말을 고하리라. 그게 해방이 될지 허무가 될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당장은 서문을 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