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 플레밍이 그리고 쓴 <여자라는 문제>(책세상)를 단숨에 읽었다. 단숨에 읽을 만한 분량의 만화여서이기도 하고 그만큼 재미있기도(?) 해서다. ‘교양 있는 남자들의 우아한 여성 혐오의 역사‘를 재미있다고 하는 건 어폐가 있지만, 여성주의 만화상의 유머 부문 수상작이라는 걸 고려하면 이상하진 않다. 우아한(지식이나 논리로 정당화하려 했다는 점에서) 여성 혐오의 역사를 저자는 ‘고급진‘ 유머로 고발하고 비판한다. 여학생의 필독서가 될 만하다.

‘여성학이론‘ 분야의 책들도 책상에 쌓이고 있는데 좀 두께가 있는 편이어서 단숨히 읽기는 어려운 종류다. 사라 아메드의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동녘)는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저자의 인생 이야기다. 이름에서 어림할 수 있는데 파키스탄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유색인이자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이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추가된다. 대학에 재직했었지만 현재는 독립학자이자 활동가로 살아가는 중이라고.

˝여성학에서 이미 그 권위를 인정받은 사라 아메드의 이 책은, 오랜 세월 페미니스트로 살아온 저자가 어떻게 처음 페미니스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그 길목에서 어떤 섬광 같은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어떤 외로움과 소외와 굴곡을 만나게 되었는지 등 소소하게 자신의 일상과 함께 풀어낸다. 또한 여성들에게 페미니스트로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유용한 팁을 알려준다.˝

그리고 제일 두꺼운 책으로 사라 팔루디의 <백래시>(아르테). 원저는 1991년에 나온 페미니즘의 문제작이라 한다. ‘백래시‘가 반격이란 뜻이어서 페미니즘의 반격을 뜻하는 줄 알았지만 거꾸로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 내지 반격을 저자는 ‘백래시‘로 지칭하며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팔루디는 이 책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을 저지하려는 반동의 메커니즘에 ‘백래시(backlash, 반격)’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정치, 사회, 문화적 역풍을 해석하고 그에 맞서려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분석의 도구를 제공했다. 사회 변화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자신의 중요도나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불특정 다수가 강한 정서적 반응과 함께 변화에 반발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이 사회학 용어는, <백래시> 출간 이후 페미니스트 사전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를 잡는다.˝

아마도 백래시는 따로 한국판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미국과의 문화적 시(간)차를 생각하면 최근의 상황과 유사한 면을 많이 발견할 수 있겠다. 타신지석에 해당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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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서 침대에 기어들면서 들고 온 책은 <맥스 테크마크의 라이프 3.0>(동아시아)이다. 이미 출간되자 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화제작으로 알라딘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니 뒷북성 페이퍼다. 그렇지만 모든 책은 읽는 순간에 존재하기 시작하므로 내게는 버젓하게 ‘이주의 과학서‘다.

저자인 맥스 테크마크는 국내에 <맥스 테크마크의 유니버스>(동아시아)로 처음 소개된 물리학자다. 그렇지만 생명의 미래 연구소를 공동설립하여 현재는 인공지능과 생명의 미래에 관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으며 <라이프 3.0>은 그의 문제의식과 함께 인공지능 시대 첨단의 쟁점이 무엇인지 소개하는 책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평했다.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은 인공지능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을 바로잡고 기본적인 용어와 핵심 논쟁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SF 작품을 본 많은 사람이 악당 로봇을 두려워하게 됐지만 저자 맥스 테그마크는 매우 능력이 있는 AI가 개발될 경우 닥칠 예상치 못한 결과가 정말 문제라고 강조한다. AI가 꼭 악하고 로봇에 장착되어야만 엄청난 파괴력을 휘두르는 것은 아니다. 테그마크는 “범용인공지능의 진정한 위험은 악의가 아니라 능력”이라며 “초지능 AI는 자신의 목표를 아주 능숙하게 성취할 수 있을 텐데, 그의 목표가 우리 목표와 정렬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곤경에 빠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요컨대 범용인공지능 시대의 도래 가능성과 그 위험을 경고하는 책으로도 읽힌다. 그 가능성이 증가할수록 그 위험에 대한 대비도 현실적이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내가 책을 손에 든 이유다. 국내서로는 몇달 전에 나온 김재인의 <인공지능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보여준 위력 때문에 비로소 주목하게 된 사실이지만 바야흐로 우리는 ‘라이프 3.0‘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PS. 맥스 테그마크의 구분으로 라이프1.0(생물적 단계)은 생존과 복제가 가능한 단계(하지만 자체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바꾸지는 못한다), 라이프2.0(문화적 단계)은 소프트웨어의 설계가 가능한 단계를 말한다. 하드웨어는 진화의 산물이다. 그리고 라이프3.0(기술적 단계)은 자신의 하드웨어까지 설계가 가능한 단계다.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현재의 인류문명은 그 문턱까지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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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 작품 가운데 강의에서 가장 많이 다룬 작품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다. 이번에 낸 <문학 속의 철학>(책세상)에도 한 꼭지로 다뤄진 작품이다. 주로 열린책들판을 교재로 썼는데 이번주에 문학동네판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젊은 예술가의 여러 초상‘이다.

이미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있는 터라 중복번역이지만 더 나은 번역본이 나온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봄학기에 조이스의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함께 읽으려고 하는데 교재로도 맞춤하다. 작품의 하이라이트의 해당하는 대목은 여러 번역본을 비교하며 읽어봐도 좋겠다. 이미 그렇게 비교한 칼럼도 쓴 적이 있어서 나로선 문학동네판만 추가로 확인하면 된다. 참고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1916년작이어서 올해 101세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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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뉴얼 월터스틴의 ‘근대세계체제‘ 시리즈의 넷째권(더 이어지는가?)이 출간되었다. <근대세계체제4>(까치). ‘중도적 자유주의의 승리, 1789-1914년‘이 부제이고, 홉스봄의 시대구분에 따르면 장기 19세기에 정확히 일치한다. 월터스틴의 책을 홉스봄의 3부작과 겹쳐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1974년에 <근대세계체제 1>을 발간하여 세계체제론을 체계화시킨 월러스틴은 3권의 책을 통해서 시기별로 세계체제가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를 상세히 추적해왔다. 이번에 출간된 제4권은 1789년부터 1914년까지, 장기의 19세기 세계를 다룬다. 

프랑스 혁명 이래 유럽과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념으로 부상한 자유주의에 초점을 맞춘 저자는 특히 자유주의가 개인적 자유 향유의 결과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보수주의와 사회경제적 평등을 지향한 사회주의 사이에서 중도적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근대세계문학을 주로 강의하는 입장에서는 많은 작가들이 살았던 시대이면서 동시에 작품의 배경인 시대의 역사인지라 반갑고 친근하게 여겨진다. 월러스틴이 제시하는 건 꼼꼼한 시대 분석과 해부다. 이 참에 프랑스혁명 이후 근대사의 전개과정에 대해서 복기해보아도 좋겠다.

프랑스혁명의 전사로 미국혁명을 다룬 로버트 미틀코프의 <위대한 대의>(시대평론)도 ‘옥스퍼드 미국사 시리즈‘의 첫 권으로 나왔는데, 안 그래도 19세기 미국문학 강의를 내년봄부터 진행하려던 차였기에 반갑다. 물론 반가운 일이 많은 게 재정을 고려하면 반드시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그래도 연말에 누릴 만한 다른 호사가 없는 분들이라면 이런 벽돌책들이 위안이 될 수 있다(<수용소군도>나 <지중해> 같은 책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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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유종호 전집‘으로 나온 <동시대의 시와 진실>(민음사)이다. 이 평론집의 초판은 1982년에 나왔고, 전집판은 1995년에 나왔다. 저자가 35년생이므로 전집은 회갑을 기념하여 나온 게 아닌가 한다. 그조차도 어느덧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계산해보니 82년에 저자의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도 적다(평론집에 실린 글들은 저자가 40대에 쓴 것들이다). 같은 나이대이니 ‘동시대인‘이라고 해도 될까. 학부 때인지 대학원 때인지 저자의 첫 평론집 <비순수의 선언>을 읽고 그 문장과 사유의 원숙함에 놀란 적이 있는데 <동시대의 시와 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여전히 ‘후배‘가 아닌 ‘선배‘로서의 위엄을 자랑한다.

견고한 판단과 정연한 문장으로 여전히 독자를 주눅들게 하지만 그래도 달라진 건 저자와 다른 견해를 나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저자에게 여전히 배울 건 배우면서도 동시에 저자의 노련함을 거리를 두고 관조하게 된 건 순전히 세월의 힘 덕분이다. 근대 세계문학과 한국 근대문학에 대한 나대로의 조망점을 갖고서 이미 앞서서 그런 안목을 내보였던 평론가들을 다시 읽는 건 다르게 읽을 수 있어서다.

모든 걸 앗아간다는 게 세월이지만 독서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읽을 책과 읽을 수 있는 책이 더 많아진다는 게 독서인생의 피곤한(?) 역설이다. 한 세월이 지나 <동시대의 시와 진실>을 다시 마주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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