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에 관한 책 몇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중세연구자 박승찬 교수의 <중세의 재발견>(길)과 역시 본래는 중세 전쟁사가 전공분야인 유발 하라리의 <대담한 작전>(프시케의숲), 그리고 하버드대학의 중세학자 C.H. 해스킨스의 <12세기 르네상스>(혜안) 등이다.

<중세의 재발견>은 제목대로 중세의 이미지를 교정하는 데 주안점을 둔 책이다. ˝중세 1,000년의 역사를 전체 6부로 나눈 다음, 24개 장에 걸쳐 저자는 중세가 낯선 문화와 충돌하면서도 새로운 학문을 수용하면서 발전해갔던 시대였음을 조망하고 있다. 특히 중세의 문화가 과거의 연구처럼 서유럽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1,000년 동안 찬란히 꽃피운 비잔틴 문화와의 지속적 교류 속에서 발전했음은 물론, 중세 스콜라 철학은 아랍 문화를 거쳐 다시 소개된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그리스 사상가들의 저작을 받아들임으로써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이런 교정된 이미지의 중세도 이미 상식이 되어가고 있는 터라 특별히 새롭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세목에서 새로운 내용이 있는지는 확인해봐야겠다.

하라리의 책은 ‘서구 중세의 역사를 바꾼 특수작전 이야기‘가 부제. ˝‘요인 구출과 시설 장악, 암살 등을 목표로 하는 특수작전의 연원은 중세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하라리는 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특수작전의 조건과 영향, 한계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매우 특수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12세기 르네상스>는 1927년에 나온 고전적인 저작이다. 90년 전 저작이 지금 소개되는 이유는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있는 책이기 때문.

˝서양 중세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고전 해스킨스(1870~1937)의 <12세기 르네상스>가 번역되어 나왔다.1927년 처음 발표되자마자 단숨에 르네상스 연구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이 책이 이제야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것은 늦어도 한참 늦은 감이 있다. 게다가 이후 수많은 관련 논술들이 쏟아져 나와 있는 지금, 이제 와서 이 책이 갖는 의미에 다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토마스 N. 비슨(하버드대학 사학과 명예교수)이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책은 간행될 당시 필요한 책이었으며, 다른 중요한 저서들과는 다르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하다”, “이 시기 유럽의 전반적인 역사적 상황에 대해 훌륭한 안내서 역할을 하는 해스킨스의 이 책은 오늘날에도 그 가치가 명확하다”고 한 지적이 답이 될 것이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을 읽고 12세기 해석자 혁명에 관심을 갖게 돼 다른 종류의 저자의 <12세기 르네상스>를 구한 적이 있는데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나온 건 고전급의 저작이라니 기대해봐야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의 서프라이즈‘라고 할 만한 책이 출간되었다. 구소련의 SF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대표작 <노변의 피크닉>(현대문학)이 번역돼 나온 것.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스토커>의 원작소설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소비에트 SF 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전설적인 고전. 한국에 형제의 작품이 첫선을 보인 후 거의 30년 만의 사건이다. 이번 한국어판 <노변의 피크닉>은 스탈케르출판사의 2003년판 <스트루가츠키 형제 작품집> 11권 제2쇄(2차 수정본) 원고를 저본으로 삼았다. 

1977년 맥밀런출판사 영역판에 실린 ‘시어도어 스터전 서문‘과 2012년 시카고리뷰프레스 영역판에 실린 ‘어슐러 K. 르 귄 추천사‘, 그리고 2003년 동생 보리스 스트루가츠키가 펴낸 회상록 ‘지난 일들에 관하여‘의 ‘노변의 피크닉‘ 부분 ‘후기‘」를 함께 수록했다.

<노변의 피크닉>은 외계 생명체나 외계 문명과의 첫 접촉을 다루는 ‘퍼스트 콘택트‘ 유의 소설에 속하지만, 통상 이들 작품이 평화적인 혹은 공격적인 외계의 접근 형태를 그리는 것과는 달리 그들로부터의 아무런 의사 표시가 없었다고 상정한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이 작품은 외계인의 지구 ‘방문‘ 이후의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아무래도 영화 <스토커>를 먼저 보고 궁금해 한 원작인데, 이 영화에 대한 제프 다이어의 에세이 <조나> 때문에 다시 생각나기도 했다. 타르코프스키에 대해서 관련서들을 이번 겨울에 자세히 읽어볼 예정이라 더욱 반가운 출간이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와 마찬가지로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봐도 좋겠다. 그런 기회도 마련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식으로 외식을 하고는 (그 이유만은 아닌데) 다시 장이 불편해서 누워 있다(커피도 원인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고도 손에 펴든 책은 이시게 나오미치의 <일본의 식문화사>(어문학사)와 <음식의 문화를 말하다>(컬처그라퍼).

둘다 지난주에 구입한 책이고,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저자는 일본의 문화인류학자로 특히 음식문화 연구의 권위자다. 그리고 이번에 나란히 나온 이 두 권은 저자와 교분이 있는 요리연구가 한복진 교수가 옮겼다.

<일본의 식문화사>는 제목만 봐도 교과서적인데 실제로 불어판과 영어판도 나와 있다 한다(영어판은 저자의 하락 없이 나왔다가 절판돼 현재는 고가의 희귀본이라고).

˝일본 식문화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기존의 식생활역사서가 역사 시대 구분에 맞춰온 것에 반해 이 책은 식문화의 시점에서 독자적인 식의 역사를 설명한다. 저자가 적용한 식의 시대 구분은 일본열도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구석기시대부터 조몬시대인 선사시대부터 시작된다. 조리도구나 먹거리 갖춰지기 전 인류는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검증된 자료와 함께 설명한다.˝

그렇게 전체적인 식문화사를 다른 것 치고는 분량이 많지 않은 편이다. 일본의 음식문화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기에 나로선 그냥 넘겨볼 뿐. 원저가 그런 것 같지만 이미지 자료가 좀 부족한 게 아쉽다. 불어판을 보면(일식이 거기서도 유행하면서 책이 나왔다 한다) 왠지 화려해보여서.

그러고 보니 음식을 다룬 책은 하나 더 있었다. 카라 니콜레티의 <문학을 홀린 음식들>(뮤진트리). ‘굶주린 독서가가 책 속의 음식을 요리하다‘가 부제다.

˝문학을 사랑하는 푸주한의 매력적이고 짜릿하며 군침이 도는 책과 음식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푸줏간에서 책을 읽던 책벌레 카라 니콜레티는 책과 음식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지를 일찍이 깨달았다. 뉴욕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푸주한이자 요리사이며 작가가 된 그녀는 문학 속의 음식을 포착해서, 음식과 책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그 모든 마법적이고 유혹적인 방법들을 잡아낸다.˝

문학 독자들에게는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음식책이다. 전에 이와 비슷한 (음식)사진책이 있었는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의 책‘이나 ‘이주의 저자‘를 꼽는 일에 손을 놓고 있어서(PC상태가 나빠지면서 없는 여력에다가 의욕마저 고갈돼서다) 서재일이 많이 줄었다(PC는 오늘로써 완전 정상화. 다만 날씨가 차다). 군대로 치면 고참 내무반 생활 같은 것(요즘은 다른가?).

그렇더라도 ‘이주의 발견‘ 정도는 눈에 띄는 대로 적는 편인데, 이번주에는 다카다 리에코의 <문학가라는 병>(이마)이 정말 구미에 딱 맞는 책이다. 내 입맛에만 맞는 것인지 거의 노출이 되지 않았는데 나도 엊그제인가 우연히 발견했다.

책은 손에 든 게 아니고 주문상태라서 내가 적을 수 있는 건 기대평뿐. 처음 소개되는 저자는 일본의 여성 독문학자. 책의 부제는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엘리트들의 체제 순응과 남성 동맹‘이다. 부제만 보더라도 대략 여성주의적 시각의 연구자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전시 체제 아래 일본 문학 엘리트들의 전쟁 협력 문제나 근대화 이후 외국 문학(특히 독일 문학) 수용이 일본의 제국주의화에 미친 영향에 그치지 않고, 그 주역인 남성 엘리트 문화인들과 그들의 활동 배경인 대학(주로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매체, 관변단체 등에 두루 나타나는 ‘이류’의 정신성과 남성 동맹(homosociality), 여성 혐오(misogyny) 등을 분석한다.

세속의 기준으로는 일류 엘리트 지식인이지만 입신출세의 길과 무관한 ‘문학’을 택했고, 제도(학교 등. 이 책에서는 ‘문학부’로 상징된다)에 편입되지 못함/않음으로써 ‘문학’의 편에 서서 열심히 일한다는 자기 특권화가 어떻게 ‘이류’ 문학인을 탄생시켰는지, 또 순수한 문학청년을 표방하던 그들이 왜 전시 체제에 영합하는 모순을 낳았는지를 파헤친다.˝

일본근대문학에 수용된 독일문학(특히 헤세와 카프카)에 대해 다룬다는 점이 더욱 흥미를 끄는데 나쓰메 소세키를 비롯한 도쿄제대 문학부 출신들에 대한 비판도 관심거리다. 나로선 책값이 두 배더라도 구해볼 수밖에 없는 책이다. 이런 경우가 아니면 ‘발견‘이란 말을 언제 쓰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힘겹게 한주를 보낸 터라 어제오늘은 요양 모드로 지내고 있는데(지금도 점심을 먹자마자 일단 이불을 뒤집어 썼다) 그런다고 당면한 일정들이 자가삭제되는 건 아니어서 곧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래도 아직은 이불속이니 허황된 생각도 해본다. 이리저리 서핑하다 본 얀 마텔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작가정신)을 읽어볼까 하는 것. 현재로선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실제로 가보는 것 만큼이나 불가능하지만 상상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니.

<파이 이야기>도 그렇지만 대체 제목만 보면 어떤 이야기인지 가늠할 수 없다. 작가도 마찬가지인데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작가를 이름만 보고 캐나다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면 포르투갈이 배경이긴 한 건가? 캐나다 작가라고 하지만 얀 마텔은 ‘캐나다문학‘ 작가인가? 실상 그런 범주는 별 의미가 없는 듯하니 무국적 문학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주로 근대 국민문학에 속하는 작가와 작품 들을 읽고 강의에서 다루다 보니 무국적(성) 문학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예외적인 경우가 남미문학. 국가보다는 언어와 지역이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이기에. 콜럼비아나 페루 같은 국적은 마르케스나 요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얀 마텔과 캐나다의 관계도 그러하지 않을까. 내게 얀 마텔 읽기는 적당한 분류 범주를 찾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당장은 ‘남의 산‘일 뿐이고 나는 그저 이불속에서 표지의 봉우리만 바라볼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