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행은 다음으로 미루었고 저녁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서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자료를 읽는 중이다. 보통 이 시간이면 올해의 책을 고르거나(고른다면 진작에 골랐어야) 송년의 감회를 적어야 할 텐데 시간 감각이 무뎌져서(언제부턴가 그렇다) 연휴에 못 읽은 책들에 대한 유감만 가질 따름이다(이런 유감은 질리지도 않고 반복되는군). 연휴라고 해야 내일 하루 더 쉰다는 것뿐이건만,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건만, 사전유감도 유감은 유감이다. 어차피 다 읽지 못할 만큼 쌓아둔 터라.

그렇게 쌓아둔 책의 하나가 마를린 주크의 <섹스, 다이어트 그리고 아파트 원시인>(위즈덤하우스)이다. 원서도 구입한 책인데 원제는 ‘구석기 환상‘이고 ‘섹스와 다이어트,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진화가 우리에게 정말로 말해주는 것‘이 원서의 부제다. 저자는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이고 성선택과 성적 선택에 미친 기생충의 역할이 주 연구주제라고.

˝이 책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구석기 시대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깨주고, 구석기 시대의 생활방식을 현재의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 알려주는 동시에 진화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인간의 섹스, 운동, 가족 문화, 육아 등 인간의 삶을 이루는 모든 영역을 아우르며 진화에 대한 착각을 바로잡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인간 진화의 역사를 명쾌하면서도 논리정연하게 되짚어본다.˝

책은 고른 이유도 정확하게 진화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그렇게 여유가 있지는 않다는 것. 교양과학서 몇권이 같이 쌓여 있는데다가 강의준비로 읽어야 할 책도 한 높이 된다. 마음 먹고 속독하는 것도 한 가지 방책이지만 딴은 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동아시아)도 마저 읽어야 하는데(이 역시 원서를 구입했다. 무려 하드카바로) 시간은 내 편이 아니다. 하기야 내 편이었다면 한해가 이렇게 훌쩍 지나갔을 리가 없다. 시간은 언제나 평범한 진리를 상기시켜준다. ˝인생 짧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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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킹카 2018-01-16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를 넓고 깊게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어 고민중입니다.
찾고 찾다가 이곳까지 왔습니다.
어마어마한 님의 서재에 감탄을 금치 못하네요... 휴~~
독서력을 기를 수 있도록 찬찬히 이곳의 글들을 살펴보려합니다. 감사합니다.

http://blog.hangadac.com
 

오후에는 도서관에 가보려고 하는데, 동네도서관은 사실 책이 있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느낌을 주지 않는 곳이다. 일부러, 자주 가게 되지는 않는 것(특별히 소장도서가 많은 것도 아니기에). 이런 불만을 갖는 건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나무연필)을 보아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눈을 버려놓는 책(세계의 도서관 순례 책들이 대개 그러하다).

이번에 꽂힌 곳은 노르웨이의 베네슬라 도서관이다. 고래의 갈빗대를 형상화했다는데, 언젠가 노르웨이에 가본다면 꼭 들러보고싶다. 동네도서관이라도 기분은 베네슬라에 가는 셈 치고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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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다룬 두 권의 책이 나란히 나왔다(묶어서 주제서평으로 다뤄도 좋겠다). 존 크라카우어의 <미줄라>(원더박스, 2017)와 토르디스 엘바, 톰 스트레인저의 <용서의 나라>(책세상, 2017)다.

 

 

 

먼저 <미줄라>의 저자 존 크라카우어는 에베레스트 산 등반사고를 재구성한 <희박한 공기 속으로>(황금가지, 2007)가 대표작인 논픽션 작가다. 제목의 미줄라는 미국 북서부의 평범한 대학도시로, 몬태나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일련한 강간 사건 때문에 '강간 수도'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나는 처음 들어본다). 책의 부제가 태나 대학교 성폭행 사건과 사법 시스템에 관한 르포르타주'다.

 

"미국 북서부의 평범한 대학도시 미줄라. 2010~2012년 몬태나 대학교를 중심으로 일련의 강간 사건들이 부각되고, 미줄라는 ‘강간 수도’라는 오명을 얻는다. 작가는 그 중심에 있던 세 사건의 처리 과정(대학법원 청문회, 경찰과 검찰 조사, 법원의 배심원 재판 등)을 소개하며, 피해자들이 강간에 대한 사회적 편견 속에서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미줄라>는 <희박한 공기 속으로>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존 크라카우어의 2015년 작품으로, 미국에서 출간 즉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크라카우어는 답답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힘들겠지만 ‘드러내어 말함’으로써 강간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고 독려한다."

 

 

미국사회는 올해 성폭행 경험 여성들의 미투(#MeToo) 캠페인이 사회적 운동으로까지 번졌는데(이에 참여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다), <미줄라>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읽는데도 도움이 되겠다. '씨네21' 이다혜 기자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두려움을 안고 읽었다. 많은 강간 사건이 전적으로 신뢰하던 사람들에 의해, 일상적인 환경에서 일어난다. 존 크라카우어는 강간 피해자 관점에서 실제 사건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피해자가 필요로 하는 조치가 무엇인지를,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이 더 많은 강간 생존자들의 용기를 북돋는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미줄라>가 성폭행 사건을 사법 시스템이 어떻게 다루는지, 곧 강간이 어떻게 합리화되는지를 폭로한다면, <용서의 나라>는 주제면에서 대척점에 놓인 책이다. '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의 초점은 가해자에 대한 법적 응징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다.

 

 

"연인이었지만 성폭력의 생존자이자 가해자였던 십 대의 남녀가 16년 후 이국의 땅에서 재회하여 ‘강간의 진실’을 밝힌 실화 에세이. 폭력과 증오의 기억을 화해와 치유의 시간으로 바꿔가는 이 기적의 여정은 2016년 테드 토크에 소개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아이슬란드의 인기 작가 토르디스 엘바와 호주에서 청소년지도사로 살아가는 톰 스트레인저가 아이슬란드와 호주의 중간 지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일주일간 만나 과거의 시간을 돌아본 이 책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전례 없는 책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하고도 영구적인 폭력으로서 강간이 일상화된 오늘의 현실을 아프게 일깨우면서, 남녀 모두가 깨어 있는 의식으로 이 문제에 동참할 것을 뜨거운 체험의 언어로 설득한다."

 

소개에도 있지만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쓴 전례없는 책이자 사례이기에, '강간은 어떻게 용서되는가'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다. 그렇지만 <미줄라>와 함께 읽는다면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갖게 될 듯하다...

 

17.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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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적을 만한 책이 너무 많군) 애덤 호크실드의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갈라파고스)를 고른다. 저자의 책으론 아프리카에 잔혹한 식민지를 건설한 벨기에 국왕 이야기, <레오폴드왕의 유령>이 있다(절판된 상태다).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 앤터니 비버의 걸출한 <스페인 내전>(교양인)이 소개돼 있는데(말하자면 확실한 주전선수가 있는 포지션) 호크실드의 책까지 더해져서 빈틈이 없어졌다. 비버의 책의 전쟁의 전체적인 윤곽과 진행과정을 설명해준다면 호크실드의 책은 이 전재에 참전한 면면들에 초점을 맞춘다

˝무정부주의 민병대로서 전투에 참가한 조지 오웰, 게릴라에 참여하면서 종군기자로 전장을 누빈 헤밍웨이,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바르셀로나의 사회혁명에 환호한 열아홉 살의 열정적인 켄터키 여성, 프랑코와 공화파 양쪽에서 불꽃 튀는 취재 경쟁을 벌인 ‘뉴욕 타임스‘의 두 기자, 히틀러 애호가이자 프랑코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석유를 공급해준 텍사스의 오일맨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자, 전선에서 폭넓게 존경받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남긴 메리먼 부부를 통해 우리는 깨어있던 시민들의 시각으로 스페인 내전을 바라볼 수 있다.˝

요컨대 좀더 근거리에서 스페인 내전의 실상과 접하도록 해준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버의 책과 나란히 꽂아둘 만하다. 오웰과 헤밍웨이의 책도 그 옆에 가지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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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3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혹시 이 책 팔 의향이 있으신가요? 제가 꼭 사고 싶어서요😭
 

오랜만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1년 넘게(확인해봐야 하지만 기분으론 그렇다) 말썽이던 PC를 업그레이드하면서, 그리고 바뀐 환경에 서서히 적응하게 되면서(이건 이삿집에 적응하는 것 비슷하다) 서재일의 여건이 좋아진 덕분이다. 조만간 '이주의 책'도 다시 고르고, 새로운 기획도 시도해보려 한다. 일단은 '이주의 저자'부터.

 

 

연말에 책을 낸 국내 저자들 가운데 3인을 골랐다. 먼저 부산대 한문학과의 강명관 교수. 느낌으론 오랜만에 새 책을 펴냈다. <허생의 섬, 연암의 아나키즘>(휴머니스트, 2017)이다. 제목대로 연암의 <허생>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 책이다.

 

"가난한 선비 허생이 과일과 말총을 사재기하여 큰돈을 버는 이야기. 연암 박지원의 <허생>은 누구나 줄거리를 알 정도로 유명한 소설로, 당시 조선의 취약한 경제를 폭로하고 실학적 관점에서 북학과 상업주의를 지지한 작품이라고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허생>의 의미를 산산이 깨뜨리는 파격적인 해석을 담았다. 저자 강명관 교수는 <허생>이 실린 <옥갑야화>의 모든 작품을 꼼꼼하고 면밀하게 읽는 동시에 연암의 방대한 사유와 <열하일기>의 전체 맥락 속에서 <허생>이 무엇을 말하는지 분석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허생>을 만나게 된다."

 

<허생> 혹은 <허생전>은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는(있었던) 만큼 우리에게 친숙하다(읽은 지는 오래 됐군). 이 참에 작품도 다시 읽고, 새로운 해석도 음미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열하일기>도 소장본으로 마련하고.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의 서영채 교수도 새책을 펴냈다. <죄의식과 부끄러움>(나무,나무. 2017). '현대소설 백년, 한국인의 마음을 본다'가 부제. 부제에서 알 수 있지만, 한국현대소설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책이다.

 

"근 10여 년 동안 저자 서영채를 사로잡은 화두는, '한국인'이라는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였다. 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나쓰메 소세키와 이광수의 소설들이다. 식민지 모국(비록 일본도 근대화가 이식된 나라이지만)의 작가 소세키와 식민지의 작가 이광수가 인물을 형상화해낸 방식이 왜 그렇게 서로 다른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 아래에서 근현대 한국소설들을 다시 해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식민지)근대성'과 '주체 형성'이라는 짝을 도출하게 된다. 이 주제를 가지고 2011년 이후 발표한 글들을 저본으로 하여, 이론적.학문적인 곳을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풀어 쓴 것이 <죄의식과 부끄러움>이다."

 

식민지 근대성과 주체 형성은 나도 관심을 갖는 주제여서 곧바로 손에 들었다. 이광수와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비교 등은 내달 일본문학기행 전까지는 읽어볼 참이다. 강의에서 종종 다루는 <광장>과 <당신들의 천국>에 대한 해설도 유익한 참고가 될 듯싶다.  

 

 

 

서양사학자로 특히 19세기 영국의 사회사, 노동사 등에 관한 독보적인 성과들을 내놓고 있는 광주대 이영석 교수도 신간을 펴냈다. <삶으로서의 역사>(아카넷, 2017). '나의 서양사 편력기'란 부제가 알려주듯, 역사가로서의 삶과 연구의 궤적을 회고한 책이다(저자가 정년을 1년 앞두고 있다고). 작년 겨울에 나왔던 임지현 교수의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소나무, 2016)와 비슷한 성격의 책으로 이해된다.  

 

"이영석의 <삶으로서의 역사>. 어느 서양사학자의 생애사이자 역사가로서의 연구 궤적을 보여주는 지성사다. 자신이 고민하고 방향 전환하고 몰두했던 연구대상과 자신의 탐구의 열망을 젊은 연구자와 일반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진솔하고 촘촘하게 배어 있다. 특히 젊은 시절부터 자신이 처한 시대상황이 어떻게 연구 대상의 선택과 집중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탐색하는 과정이 치밀하다. 저자는 이 책을 가리켜 메타-역사서술이라 부른다."

 

일단 역사학도나 역사학 전공 지망 학생들이 귀감으로 읽어볼 만하고, 일반 독자도 '한 서양학사학자의 생애사'를 흥미롭게 따라가봄 직하다. 저자의 몇몇 주저들이 어떤 고민의 과정을 거쳐서 나오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역사서 독자들의 공부가 되겠다...

 

17.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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