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기대하는 시집은 김광규 시인의 선집 <안개의 나라>(문학과지성사)다. 오래 전에 나온(현재는 개정판도 절판된) 선집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민음사)로 처음 만난 이래로 꾸준히 그의 시집을 읽어오다가 언제쯤부턴가 흐지부지되었는데 이번 선집은 복기의 기회를 제공해줄 듯싶다.

개인적으로는 1970-80년대에 나온 초기시들이 가장 좋았다는 생각이다. ‘어린 게의 죽음‘도 그 가운데 하나.

어미를 따라 붙잡힌
어린 게 한 마리

큰 게들이 새끼줄에 묶여
거품을 뿜으며 헛발질할 때
게장수의 구럭을 빠져 나와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개펄에서 숨바꼭질하던 시절
바다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달려오는 군용 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평이하지만 깊이 있는 시다. 언젠가 마광수도 <상징시학>에서 이 시를 고평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 난해해야지만 시가 깊이를 얻는 건 아니라는 걸 입증하는 좋은 사례다. 아쉬운 일이지만 이런 시들이 생각만큼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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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 가운데 하나는 그레엄 터너의 <셀리브리티>(이매진)다. ‘우리시대 셀럽의 탄생과 소멸에 관하여‘가 부제. 저자는 <대중영화의 이해>(한나래)로 소개된 바 있는 대중문화 연구자다.

˝현대 문화 연구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오스트레일리아 퀸즈랜드 대학교 문화연구학과 그레엄 터너 교수가 대중문화 이론과 연예 산업의 최신 흐름을 바탕으로 셀러브리티란 누구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에서 소비되다가 사라지는지를 살펴본, 셀러브리티 이론과 사례 연구의 결정판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리얼리티 쇼, 오디션 프로그램 등 확장된 온라인 플랫폼을 무대로 광적이라 할 만한 팬덤과 ‘DIY 셀럽’의 시대를 이끄는 셀러브리티를 담론, 산업, 열망의 구조 속에서 분석한 새로운 시도다.˝

‘셀리브리티 이론과 사례 연구의 결정판‘이라는 게 책의 의의인데, 고전적인 책으로는 에드가 모래의 <스타>(문예출판사)도 떠올리게 한다(절판된 지 오래 되었군). 국내서로는 이수형의 <셀러브리티의 시대>(미래의창)이 몇년전에 나왔었다.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셀러브리티 문화의 기원과 거대 산업으로 성장한 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로열 패밀리에서 스포츠 스타, 배우와 가수, 예술인에 이르기까지 10인의 셀러브리티를 통해 오늘날 명성의 탄생과 소비 과정을 탐색한다.˝

이론보다는 사례 제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10인의 셀레브리티 가운데는 ‘벼락부자의 아이콘‘으로 도널드 트럼프도 들어가 있다. 이제는 ‘망언의 아이콘‘으로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실제 권력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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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통상적인 일과의 하나로 새로 나온 책들의 면접을 보다가 다시금 강의와 관련한 책들을 읽는다(페이퍼를 몇개 쓰려다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될 듯하여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내킬 때 하는 수밖에).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헤밍웨이, 그리고 지젝과 하루키. 피츠제럴드와 헤세에 대해서도 보충할 게 있지만 필요한 책이 바로 눈에 띄지 않아서 일단 보류.

하루키에 관한 책 가운데 임경선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마음산책)을 읽다가 재즈카페 주인장으로서 하루키가 했다는 말을 옮긴다. 아마도 에세이 어디에선가 읽은 듯한 말이기도 하다. 가게 단골손님들이 생길라치면 그는 이런 말을 던지고 싶어 했다. ˝이거, 어쩌죠? 정말 죄송하게 되었네요. 실은 저희 곧 이사간답니다.˝

보란듯이 이사를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다만 말로라도 한방 먹여보는 것이겠다. 하루키는 그런 말이 주는 쾌감을 좋아했다고. 이 또한 ‘하루키적인 것‘의 목록에 포함시킬 만한데, 하루키의 독자가 된다는 것은 그런 감정이나 태도에 공감하고 맞장구치는 것이겠다. 그렇게 이사한 가게에까지 여차저차하여 손님이 쫓아온다면? 하루키식 대처법은 이렇다. ˝저도 심기일전해서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테니까 여러분도 심기일전해서 힘내주십시오.˝

문득 떠올린 건 이 서재도 언제까지 유지해야 하는가란 의문이다. 30대에 시작한 일을 50대에 이르도록 못 끊어도 되는 일인가 싶어서다. 독서야 평생의 일이라지만 ‘블로거‘ 노릇은 언제까지 해야 할까. 마땅한 선례가 없어서 판단하기 어렵다. 내년이면 아마 알라딘 창업 20주년이 되는 성싶은데 그것도 하나의 매듭이다. 적당한 시기에 자리를 내주고 새로운 시작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책들이 잔뜩 펼쳐져 있는 식탁에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심리학자‘라는 에바 블로다레크의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당신에게>(문학동네)도 놓여 있다. 독일에서도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인가 보다. 원제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솔직하고 다정하게 내 안의 고독과 만나는 법‘이 부제다.

잠시 책을 펼치니 ‘부모 자아‘ ‘어른 자아‘ ‘어린아이 자아‘란 개념이 나온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에릭 번의 개념으로(교류분석 모델의 창시자라 한다), 우리 각자의 자아는 이 세 가지 자아 상태로 구조화돼 있다고. 부모 자아는 다시 비판적 부모 자아와 양육적 부모 자아로 나뉘고, 어른 자아는 객관적, 어린아이 자아는 순응적이다. 오랜 습성을 바꾸려고 할 경우에는 양육적 부모 자아나 객관적 어른 자아의 태도를 가지고 순응적 어린아이 자아를 잘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니 이사 문제도 그러하다. 자립과 분리의 문제도 그렇고. 익숙한 것과 작별하기 위해서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언젠가는 떠나는 날이 올 것이다. ˝여러분도 심기일전해서 힘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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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출판계의 화제작 가운데 하나가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흐름출판)이었다. 예측가능한 베스트셀러가 있고 가능하지 않은 베스트셀러가 있다면 <라틴어 수업>은 단연 후자였다. 나도 사정이 궁금해서 저자에 대해 검색해본 적이 있는데 한국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의 로타 로마나 변호사라는 평범한(?) 이력이 전부였는데(베스트셀러와는 무관하지 않나?) 중세 교회법에 정통하다는 점이 눈에 띄었고 이와 관련해서는 <유럽법의 기원>(문예림)이 나온 게 있어서 구입했었다.

이번주에 <법으로 읽는 유럽사>(글항아리)가 출간되었기에 주저가 나온 것인가 궁금했는데 책장을 열어보니 <유럽법의 기원>의 개정증보판이다. 그리고 <라틴어 수업>보다 먼저 준비하던 책이라 한다. <라틴어 수업>에 대한 들뜬 반응 때문에 ˝일반 독자들이 좀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원고를 조정해달라는 출판사의 부탁˝도 있었다지만 저자는 여의치가 않았다고 고백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라틴어 수업>만큼 ‘읽기 쉬운 대중서‘는 아니다.

<라틴어 수업>은 구입만 하고 읽지 않았다(만져보기는 했다). 설사 읽을 짬이 생겼다 하더라도 <유럽법의 기원>에 먼저 손이 갔을 터이다. 하지만 개정증보판이 나왔으니 나로선 <법으로 읽는 유럽사>가 저자의 첫 책이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덕분에 중세 교회법(근대 유럽법의 기원이 로마법과 교회법이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비로소 제 규모의 책과 만나게 되어 반갑다. 이런 종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날도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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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차 아침에 대구에 내려갔다가 늦은 저녁에야 귀가했다. 한주간의 일정이 그렇게 일단락되었고 나는 녹초가 되었다. 바쁘게 지나갔지만 꽤 길게 느껴진 한 주였다. 그렇게 또 한 고비는 넘겼다 싶지만 이월된 숙제들이 계속 쌓이고 있다. 강의와 관련해서도 보충할 대목이 많다. 마치 어부가 귀항해서는 어망과 어구를 손질해야 하는 것처럼 끝은 끝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진이 빠진 상태라 어제오늘 배송받은 수십 권의 책에 대한 면접을 미뤄둔 채 자리에 누웠다. 페이퍼 거리도 많이 밀려 있지만 간단한 것만 하나 적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유작 <명암>의 새 번역본이 나왔다는 것. 전집판을 포함해 세 종의 번역본을 갖게 된 셈인데, 나는 아무런 주저없이 바로 주문을 넣었다.

재작년에 소세키 전집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면서 당연히 마지막 시간에 <명암>을 읽었는데 기회가 닿으면 이 미완성작을 다시금 음미해보고 싶었다. 내가 꼽기에 <명암>은 <그후>와 함께 소세키 문학의 최대치다. 강의에서는 주로 <산시로>나 <마음>을 다루는데 <산시로>를 건너뛰면 그 다음 작품인 <그후>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고, <마음>은 정확하게 소세키 문학의 의의와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명암>은 마지막 작품이지만 놀랍게도 하나의 세계를 종결짓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새롭게 시작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독서의 흔적도 읽을 수 있는 작품이어서 개인적으로는 더 흥미를 갖게 된다(‘일본문학에서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주제를 다룬 책이 소개되면 좋겠다).

일본문학기행을 이제 열흘 가량 앞두고 있는데 주로 <산시로>와 <마음>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다른 작품도 몇권 다시 읽고 싶다. 강의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작품도 서너 편 되기에 아직 읽을 거리는 많다.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렇지만 소세키의 경우에도 강의에서 다루지 않은(그래서 자세하게 읽지 않은) 작품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된다. 마치 맛있는 딸기타르트가 아직 남아있는 것처럼.

오늘은 비록 기진하여 누워있지만 내일 읽을 책과 내주에 받아볼 책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 것도 불치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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