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28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일본계 미국 역사학자로 하버드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인이리에 아키라의 <20세기의 전쟁과 평화>(연암서가)를 찾아 읽고서 적었다. 저자에게 주목한 건 최근에 나온 '하버드 C.H. 베크 세계사' 시리즈의 <1945 이후>(민음사) 책임편집을 맡고 있어서인데, 이리에의 전공 분야가 미국 외교사이고, 인터내셔널 내지 트랜스내셔널한 세계사에 대한 관심은 <20세기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역사가가 보는 현대세계>(연암서가)도 <1945 이후>의 입문격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주간경향(18. 07. 23) 자기파괴와 자기재생, 전쟁의 양면성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아직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려우나 궁극적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가 우리의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해당사국 간의 외교적 대화와 협상만으로 충분한가.


지난 20세기는 양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전례없는 규모의 파괴와 살상으로 얼룩진 전쟁의 세기였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00년에 20억명 정도였던 세계인구는 100년 사이에 3배 이상 증가했다. 전쟁과 내전으로 수천만 명이 희생되었지만 전쟁이 삶에 대한 인류의 희망을 다 꺾지는 못했던 것이다. 다르게 보면 전쟁의 역사는 자기파괴의 경험뿐 아니라 자기재생의 기회도 갖게 해주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양면성이다.

인류의 역사가 전쟁으로 점철돼 있다고 하지만 20세기의 전쟁은 이전의 전쟁과는 다른 성격을 갖고서 출발했다. 20세기의 출발점이 된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짚어보면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 차이다. 1914년 여름 이전에도 발칸반도에서는 1912년과 1913년에 무력충돌이 발생했었다. 그렇지만 이때는 주변 대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이지 않았고 세계대전으로 비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1914년은 달랐다. 당시 대국의 하나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가 세르비아라는 소국의 테러리스트에게 암살됐다. 오스트리아의 동맹국 독일이 개입하자 이 두 국가와 대립하던 러시아와 프랑스가 참전했고, 중립을 지키던 영국까지 독일에 선전포고함으로써 유럽의 대전이 시작되었다.

국지전쟁이 대전으로 발전하는 데 열쇠가 되는 것은 대국이다. 국제관계의 글로벌화가 열강을 낳고 열강들 간의 분쟁이 세계대전으로 번진다. 저자가 보기에 1차 세계대전의 배경이 된 것은 이러한 글로벌화의 진전이다. 교통과 통신수단의 비약적 발전과 무기기술의 발달로 20세기의 글로벌화는 더 가속되며 이것이 1차 세계대전보다도 훨씬 더 규모가 큰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낳았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국지전쟁이 대규모 전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저자는 주목한다. 1920년의 러시아·폴란드 전쟁이나 1935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그리고 1940년대의 중국내전과 1950년대의 한국전쟁, 1960년대의 베트남전쟁 등이 그러했다. 이 전쟁들을 국지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군사력뿐 아니라 국제기구, 세계 각지의 여론 등이 전쟁의 억지력으로 작용해 국경을 초월한 평화운동이 구축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한국전쟁의 의의를 새로운 시각에서 평가한다. 미·소 간 전면전에 이르지 않은 것은 두 나라가 핵전쟁으로의 확전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휴전’은 ‘평화공존’의 다른 말이었다. 이제 휴전체제를 넘어서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된다면 평화를 위한 인류의 희망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될까. ‘20세기의 전쟁’의 교훈을 다시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18.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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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나온 김중식의 두번째 시집 <울지도 못했다>를 5분만에 읽었다(그렇게 읽다가 걸리는 시를 꼼꼼히 읽는다). 그러고는 떠올린 게 ‘웃지도 못했다‘란 제목.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에서 분명 맘에 들어한 시들이 몇편 있었는데 그 ‘김중식‘을 알아보지 못하겠다. 내가 잘못 봤던 것인지. 차라리 처음 기억만을 남겨두는 게 나았을지도.

먼 곳에도 다른 세상 없는데
새 대가리 일념으로 태평양을 종단하는 도요새
산다는 건 마지막이므로
살자,
살아보자,
다시 태어나지 않으리니.
-‘도요새에 관한 명상‘에서

내가 아는 건
가을 숲 불꽃놀이가 끝나더라도
우리가 할 일은 봄에 꽃을 피우는 것
가장 깊은 상처의 도약
가장 뜨거웠던 입의 밎춤
할례당한 사막 고원에 핀 양귀비처럼

언제 파도가 왔다 갔는지
사막에서 바다냄새가 난다
이루지 못할 약속을 할 때
우리는 다가가면서 멀어질지라도
봄에 할 일은
꽃을 피우는 것
-‘물결무늬 사막‘에서

기억의 착오가 아니라면 김중식은 이런 류보다 더 매력적인 시를, 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젊은 시인이었다. 이제는 젊지 않은 나이에 두번째 시집을 들고서 나타났지만 아쉽게도 내가 기대한 모습은 아니다. 시인의 말로는 ˝첫 시집이 고난받는 삶의 형식이있다면, 이번 시집은 인간의 위엄을 기록하는 영혼의 형식이다.˝ 그의 언어는 위엄보다 고난을 기록할 때 더 빛나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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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시인선‘의 세번째 시집으로 나온 송진권의 <거긴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를 펼쳤다가 ‘송홧가루 묻은 풍경‘에서 눈길이 멎었다. ‘화투시‘의 한 장면이다.

청단 홍단을 깨고
비약 풍약을 깨며
파투 난 화투 파투 난 인생을
착착 다시 손에 접어 치며
패를 돌리는 십 원짜리 민화투
다음 판엔 초단이라도 하겠다며
늙은이들 웃음소리도 송홧가루 묻어
뻐꾸기 울음소리에 뭉쳐들지요

시인선의 다른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송진권 시인도 내게는 낯선 이름이다. 하기야 새로 시집을 낸 젊은 시인들 대다수가 내게는 그렇다(짐작에 우리는 최다 시인 보유국이다). 이 대목에 눈길이 멎은 건 오래 전에 가방에 넣고 다녔던 시가 생각나서다. ˝숙아, 인생은 그날이 꽃과 같아˝라는 구절은 포함한 시인데, 제목도 시인도 기억날 듯하면서 기억나지 않는다(문지시인선의 목록을 보면 떠올릴지도). 벌써 2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그렇게 시들은 복사해서 가방에 넣고 다니고 때로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던 것 같다. 그게 나였던가, 적잖이 놀란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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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18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들을 복사해서 가방에 넣고 다니는
국문학과 다니는 오빠
아니고 노문학과 다니는 오빠야~셨구요.
미대 다니는 오빠와 문학과 다니는 오빠중에
누가 더 인기가 많을까요?ㅋ

로쟈 2018-07-18 23:45   좋아요 0 | URL
미대 다니는 오빠는 제가 모르는 사정이라..

모맘 2018-07-19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아, 는 찾으셨는지요?
궁금한 시네요

모맘 2018-07-19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한 선배의 시들을 타이핑했던 기억이 나네요 선배의 친구가 감수를 했다고 복사집 표지에 적어둔것도 아! 하고 떠오릅니다 한 부를 갖고있었는데 찾아봐야겠네요ㅋ

로쟈 2018-07-1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성호의 ‘고향집, 폐허‘라는 시예요.~

모맘 2018-07-1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모맘 2018-07-20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8 7월 함성호의 시집을 검색하다가
로자쌤이 서른여덟에 올린 1998스물들에게 쓴 서른의 글을
읽었어요(복잡하지만 아시죠?)ㅎㅎ 로자쌤의 글속에는 그보다 10년전인 1987년도도 있고요 대한민국 땅 이곳저곳에서
살아야할 이유를 찾고 있었던 스물들을 떠올려봤습니다 참 따뜻한(?) 글이었습니다 1987
1998 2018 뭔가 있어보이네요ㅋ

로쟈 2018-07-20 17:57   좋아요 0 | URL
네 조교할때 쓴게 벌써 20년전이네요.^^
 

아침에 사과 반쪽을 먹었어
감자도 뽐므지만 사과가 뽐므
너의 얼굴 반쪽을 먹었네
반쪽이 된 네 얼굴
레이스를 뜨는 뽐므
너를 보았던 그해 여름
아직 주근깨가 남아있던 뽐므
울지 않았던 뽐므
나는 제대를 앞두고 있었네
자기 앞의 생과 함께
레이스 뜨는 여자를 읽었네
그녀의 이름은 잊었네
뽐므만 책장에 남았네
그렇게 지나간 일이 되었다는 걸
사과 반쪽을 먹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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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7-17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취향인 책-책 읽어주는 남자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내 취향아니어서 사지 않은 책
-책 읽어주는 여자
레이스 뜨는 여자

남들은 다 좋다는데 내 취향 아니어서
읽다 만 책-자기 앞의 생

사과는 뽐므
감자는 뽐므 드 떼르(땅의 사과)
여자는 팜므

로쟈 2018-07-17 23:14   좋아요 0 | URL
네 각자 취향이 있는 법이죠.
 

로나는 괜찮아
로나, 알로나, 알료나 모두
일로나도 괜찮겠어
로라, 슬픈 로라가 있었지
우리에겐 저마다 로라가 있었어
일로브나도 좋아
이리나와 같이 친구할까
하지만 로리타는 안돼
로리도 물론이야
그건 금지구역이야
로나로 가
로나가 가르쳐줄 거야
로나를 믿기로 해
로리는 안돼
왜 자꾸 로라가 생각날까
로라는 눈물나게 해
로라를 기억해
아니 로라는
이제 그만 놓아주자
로나로 가
로나를 사랑해야 해
로나는 괜찮아
로나 곁에 있어야 해
로나가
로라
자꾸 슬퍼지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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