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공부냐 학습이냐

14년 전에 올린 글이다. 실제 글을 쓴 건 그보다 2년 더 전이었겠고 나중에 <로쟈의 인문학 서재>(2009)에 수록했다. 이 책은 내년에 개정판을 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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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2 16: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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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2 16: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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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2 18: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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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반, 더 구체적으로 1810년대 가장 중요한 영국작가는 제인 오스틴과 월터 스콧, 그리고 메리 셸리다.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1818)이라는 예외적인 문제작 덕분에 문학사에 이름이 오르게 된다. 그래도 당대의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는 월터 스콧(1771-1832)이었겠다. 생전에 제인 오스틴은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지도 못했으니 제인 오스틴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독자는 희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월터 스콧은 다른 두 여성작가에 비하면 거의 잊혀진 수준이다. 역사소설의 원조라는 평가에 어울리지 않지만 사실 그대로 말해서 스콧은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작가다(18세기 감상주의 소설의 대가 리처드슨이 읽히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더라도 문학사를 공부하는 독자라면 스콧의 소설을 그대로 지나치기는 어렵다. 다행히 두 권의 대표작은 번역됐었다. 과거형으로 적은 건 현재는 한권만 남아 있어서다.

<웨이벌리>(1814)
<아이반호>(1819)

두권 가운데 현재는 <아이반호>(현대지성사)만 번역본으로 접할 수 있다(절판된 판본으로는 두권 다 갖고 있었지만 강의를 위해서 새 판본을 다시 구입했다).

스콧의 역사소설은 영국 바깥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서(러시아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푸슈킨의 <대위의 딸>과 고골의 <타라스 불바> 같은 소설들) 역사소설의 붐을 가져오기도 했다. 스콧표 역사소설의 특징과 핵심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루카치의 <역사소설론>을 참고해야겠다). 당장의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이룬 성취를 평가하려고 하니 스콧에 대해서 먼저 알아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난 김에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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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서 영국문학 강의를 마치고 귀가중이다. 제인 오스틴부터 토마스 하디까지, 그리고 20세기 작가로는 아일랜드의 제임스 조이스에 이르는 여정. 영국문학 강의는 주로 셰익스피어부터 시작하거나 제인 오스틴부터 시작하곤 했는데 아직까지는 주관심이 19세기와 20세기 문학이어서다.

그런 구간 설정이 자연스럽지만 예외가 영국문학이다. 프랑스문학이라면 18세기보다는 17세기 고전주의가 더 비중이 있고(리신은 강의에서 읽었지만 유독 몰리에르는 아직 다룰 기회가 없었다), 독문학의 18세기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 정도. 러시아문학에서는 라디셰프와 카람진, 폰비진 등을 강의에서 다루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다.

그렇지만 예외적으로 18세기 영국문학은 소설의 발흥과 관련하여 꽤 견적이 나온다. 조너선 스위프트, 대니얼 디포,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 등의 작품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2-3년 내로 일정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사이에 읽어볼 만한 책이 이번주에 나왔다. 18세기 영국 지성사를 총체적으로 다룬 로이 포터의 <근대 세계의 창조>(교유서가). ‘영국 계몽주의의 숨겨진 이야기‘가 부제다.

˝이 책은 인류 사상의 역사에서 돋보이는 영국 계몽주의의 선구적 위상에 주목한다. 저자는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의 사고를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는지 이해하고자 한다. 저자는 영국 계몽주의가 가증스러운 것을 타파하라고 부르짖지도 않았고 혁명을 불러오지도 않았다면서, 영국에는 볼테르가 투옥된 바스티유 감옥이 존재하지 않았고 비국교도는 신앙의 자유를 누렸으며 이단자를 화형시키는 장작단의 불은 진즉에 꺼졌다고 지적한다. 이런 의미에서 18세기 영국 사회는 이미 계몽을 이룩했고, 그렇게 이룩된 체제를 정당화하고 수호하는 작업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저자 로이 포터는 여기에 영국 계몽주의만의 ‘영국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핵심은 영국 계몽주의 덕분에 영국은 프랑스와 같은 대혁명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차이는 곧 영국문학과 프랑스문학과의 차이로 연결되기에 강의에서 자주 언급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차이에 대해서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해주지 않을까 싶다.

단순하게 보자면 영국 계몽주의에 대한 이해는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에 대한 이해로 귀결된다. <프랑스혁명에 대한 성찰>(1790)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 최근 제시 노먼의 평전도 나왔는데 로이 포터의 평설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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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

14년 전에 쓴 글이다. 보이노비치의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문학과지성사)은 재작년(2018)에야 번역돼 나왔다. 그리고 그해 작가 보이노비치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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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타르코프스키 혹은 '천사를 본 사람'

14년 전에 쓴 글이다. 타르코프스키와 그의 영화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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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1-09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며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로쟈 2020-01-09 17:30   좋아요 0 | URL
네 감사. 새해복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