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정보다. 명품극단의 '죄와 벌' 시리즈 가운데 네번째 작품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5월 7일부터 18일까지 공연된다. 인물과 모티브는 가져왔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아니다.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제목으로 삼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새로운 해석 혹은 각색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번 관람해보시길.  

 

 

14. 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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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테드 W. 제닝스의 <데리다를 읽는다/바울을 생각한다>(그린비, 2014)를 고른다. '이주의 발견'은 두 권까지 책이 나온 저자들 가운데 고르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제닝스의 경우엔 <예수가 사랑한 남자>(동연, 2011)가 먼저 소개된 바 있다(저자명이 '테오도르 W. 제닝스'로 표기됐다).

 

 

신학자인 저자는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퀴어신학자로 명성을 얻고 있다는데, <예수가 사랑한 남자>가 그와 관련된 책이다. <데리다를 읽는다/바울을 생각한다>는 철학계에서 바울의 사상이 중요한 주제로 부상할 때(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을 보라), 같이 거명되곤 했던 책이다.  

스무 세기에 가까운 시간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성을 띤 사유의 마주침을 보여 주는 사상가로서 데리다와 바울을 ‘새롭게’ 소개한다. 데리다와 바울의 마주침을 주선하기 위해, 저자는 이들의 사유로부터 ‘(율)법’과 ‘정의’라는 주제를 소환해 내며, 이들을 (율)법 ‘너머’의 정의를 사유한 사상가로서 그려 낸다.

그래서 부제가 '정의에 대하여'다. 면밀하게 읽어내려면 한달은 족히 걸릴 만한 책이지만, 여하튼 데리다의 독자나, 신약성서의 독자들에게 지적 자극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줄 듯싶다.

 

 

말이 나온 김에 '두 권의 저자'로는 푸코 연구자 프레데리크 그로도 꼽을 수 있다.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 편집자로도 유명한 그로의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책세상, 2014)이 최근에 나왔는데, 공저이긴 하지만 <미셸 푸코 진실이 용기>(길, 2006)가 먼저 나온 바 있다(하지만 절판된 모양이다).

프랑스 파리12대학 철학 교수이자 미셸 푸코 연구자로 잘 알려진 프레데리크 그로는 ‘걷기’라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보여준다. 그는 걷기를 철학적 행위이자 정신적 경험이라고 보고, 걷기가 우리 몸과 마음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우리 삶에 얼마나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걸으려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을 취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고찰해나간다.

 

한편, 일본의 푸코 연구자 사토 요시유키의 책도 <권력과 저항>(난장, 2012)에 이어서 이번에 한권 더 나왔다(저자는 푸코의 <말과 글> 일어판 공역자로 참여했고 주디스 버틀러의 <윤리적 폭력 비판>을 일어로 옮겼다 한다). <신자유주의와 권력>(후마니타스, 2014). '자기-경영적 주체의 탄생과 소수자-되기'가 부제다. 어떤 책인가.

모든 것을 시장의 논리로 환원하고, 치열한 경쟁이 모든 사회적 관계 곳곳에 자리 잡도록 만드는 논리. 모든 안정적인 것을 불안정하게 흔들어 놓으며, 모든 견고한 것들을 유동적인 것으로 만들어 놓는 정치. 개개인이 놓여 있는 ‘사회적 환경’ 또는 그 삶의 규칙에 작동을 가함으로써, 그를 둘러싼 환경을 생존 경쟁의 시장으로 만드는 권력. 이 책은 그것을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라 부른다. 노동시장 정책에서, 형벌 정책, 마약 관리에 이르기까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속에서 사회는 어떤 논리에 따라 변화해 나가는지,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인지, 우리는 이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지가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권력과 저항>의 부제가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였는데, <신자유주의와 권력>에서도 알튀세르와 버틀러의 복종화/주체화를 보론에서 더 다루고 있기도 하다. 저자의 관심과 사유 범위를 짐작하게 한다...

 

14. 0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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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일거리로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오래만에 국내 저자 3인이다. 먼저 건축가 김석철. 대담집 <도시를 그리는 건축가>(창비, 2014)가 나왓는데, '김석철의 건축 50년 도시 50년'이 부제다.

 

 

건축가로서 주요 작품이 여의도/한강 마스터플랜, 서울대 마스터플랜, 예술의전당,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이라고 하면 거물급 건축가라는 건 바로 알 수 있다. 저자로도 낯설지 않은데, 근년에 나온 걸로는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창비, 2012), 석학인문강좌로 나온 <건축과 도시의 인문학>(돌베개, 2011) 등이 있다. 이번 대담집은 전체적으로 건축가 김석철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유용한 자료가 될 듯하다.

언론인 출신의 현직 변호사인 오효림 씨가 대담의 진행을 맡은 이 책에서 김석철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의 건축수업, 중년의 해외 도시설계 경험, 암투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현재의 모습까지를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회고한다. 이 대담집은 한 사람의 건축가·도시설계가가 70여년 인생 동안 축적해온 방대한 독서량과 국적을 넘나든 학문교류를 통해 어떻게 코즈모폴리턴의 한 전형으로 성장해갔고 결국 전세계가 주목하는 여러 건축물과 도시계획을 내놓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두번째는 교육자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교육 3부작' 시리즈의 세번째 책으로 <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메디치미디어, 2014)가 마저 출간됐다. <왜 학교는 불행한가>와 <왜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에 이어지는 책이다.

첫 번째 책에서 전성은은 제국주의적 힘의 논리로 운영되는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교육의 목표는 인재양성이 아닌, ‘평화’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두 번째 책에서는 교육의 목표가 왜 ‘평화’인지 교육의 근본을 살폈다. 교육 3부작의 마지막 책인 <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는 우리의 불행한 역사를 만든 절망의 교육을 희망의 교육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교육정책을 펼쳐야 할지 논의하고 실현 가능한 방법을 제안한다. 전성은의 선친 전영창 교장을 거쳐 축적된 거창고 60여 년의 교육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으며, 교육행정과 정책 전문가인 이재강의 명쾌한 정책론을 실었다. 위기에 봉착한 우리 학교교육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일익을 담당할 이 책은 미래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공존과 화해, 평화의 세계를 모색한다.

소개를 보니 저자가 2003년 8월부터 2년간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에 참여하면서 했던 고민을 숙성시킨 결과물이기도 하다. 

 

 

세번째는 알라디너(마태우스)로도 유명한 서민 교수. 작년에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유문화사, 2013)을 출간 좋은 반응을 얻은 여세를 몰아서 인터뷰집까지 펴냈다. 인터뷰어 지승호 씨. '웃기는 의사, 서민의 유쾌한 인생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가.

<컬투의 베란다쇼>의 웃긴 의사 '서민'의 유쾌한 인생 이야기. 강신주, 박원순, 표창원, 공지영 등 한국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인터뷰한 인터뷰어 지승호가 서민을 만났다. 두 사람의 호흡은 아주 잘 맞았고, 그 결과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끌어낼 수 있었다. 자연인 서민과, 직업인 서민,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들이자 친구로서의 서민, 같은 시대를 사는 시민으로서의 서민, 개를 지극히 사랑하는 ‘개 아빠’로서의 서민까지……. 지승호는 물었고, 서민은 답했다. 덕분에 우리는 “월세 밀린 세입자처럼 조용히” 그러나 할 말은 하는 보기 드문 사람, 서민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저자가 바쁜 모양이어서 공식 출간 소식은 알라딘 마을에 아직 올라와 있지 않은데, 아마도 조만간 자초지종 '내막'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다...

 

14. 0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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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간단히 골라놓는다. 딱히 가닥을 잡기 어려워 분야별 관심도서 모음 비슷하게 될 듯하다. 먼저, 타이틀북은 '미네르바에서 용산참사까지 말 못 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살고자 한 사람들, 그들이 지켜낸 이 오만한 시대의 정의로운 순간들'을 담은 <옹호자들>(궁리, 2014)이다. "‘상식의 힘’ ‘인간의 존엄함’을 믿고 이를 지키기 위해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과 싸웠던 변호사들이 육성으로 남긴 기록들"로 <변호인들>이라는 제목도 가능했겠다.

 

지난 2008년부터 2013년 사이에 이명박 정부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해직기자와 해직교사가 대량 양산되며, 민간인 사찰이나 국방부 불온서적 지정 같은 공안 관련 사건, 용산참사를 비롯한 민생 파괴 사건 등의 시국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 사건들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았으며,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MB정권 이후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책. 같은 시기를 다룬 책으로 한겨레21 선정 '2008~2013년 92개 판결'을 다룬 <올해의 판결>(북콤마, 2014)이 좋은 짝이 되겠다.

 

 

두번째 책은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돌베개, 2014).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저자인데, "독일을 대표하는 역사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제바스티안 하프너'가 사후 15년 만에 정식으로 국내에 소개된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작가로 남아 있는 하프너를 처음으로 소개하는 이 책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은 그의 굵직굵직한 저작 중에서도 단연 첫손에 꼽히는 대표작이다." 서문을 쓴 귀도 크노프는 히틀러 관련 책을 딱 세 권을 꼽는다면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1973), 예켈의 <히틀러의 세계관>(1969)과 함께 들 수 있는 책이라고. 페스트의 평전은 번역돼 있는데, 1,2권 가운데 2권은 품절로 뜬다. 곧 절판될 모양이다.

 

 

세번째 책은 독성물질을 고발한 마리 모니크 로뱅의 <죽음의 식탁>(판미동, 2014)이다. 절판된 전작 <몬산토>(이레, 2009)에 이어지는 책.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를 다룬다. "밭에서 쓰는 농약에서부터 식품에 들어가는 첨가제와 플라스틱 용기까지 일상에 만연한 독성화학물질이 어떻게 우리의 건강과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지 추적하여 밝히는 책이다."

 

 

네번째 책은 KBS 스페셜의 동명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시대의창, 2014). 종자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종자 전쟁은 두 가지 차원에서 벌어진다. 하나는 종자를 차지하기 위해 자본과 자본, 기업과 기업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수 자본이 독점한 종자를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되찾아오려는 시민과 농민이 자본과 기업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 곧 ‘종자 독점’ 대 ‘종자 주권’의 전쟁이다. 전자의 전쟁은 결국 후자로 귀결된다." 씨앗, 하면 떠올리게 되는 사람은 러시아의 식량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인데, 씨앗에 대한 그의 열정과 수집 여정을 담은 게리 폴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아카이브, 2010)도 같이 읽어봄직하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오랜만에 천문학 책을 골랐다. 이강환의 <우주의 끝을 찾아서>(현암사, 2014). 우주 가속 팽창을 다룬 책. 빅뱅 이후 우주가 팽창하고 있으며, 그 팽창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게 '가속 팽창'론이다. 장황한 수식과 각주 없이 가속 팽창론을 소개하는 책. <우주의 끝을 찾아서>가 빅뱅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빅뱅 직전의 우주'를 다룬 <보이드>(도서출판Mid, 2014)가 그 짝이 될 만하다. "책의 본문에서 void란 단어는 때로 무(nothing), 때로 진공(vacuum)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 책은 빈 (우주)공간, 무(無), 진공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노력해 온 인류의 역사를 담고 있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옹호자들- 미네르바에서 용산참사까지 말 못 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살고자 한 사람들, 그들이 지켜낸 이 오만한 시대의 정의로운 순간들
김영준.최강욱 외 지음 / 궁리 / 2014년 4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05월 10일에 저장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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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식탁-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
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 권지현 옮김 / 판미동 / 2014년 4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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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종자는 누가 소유하는가
KBS 스페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제작팀 지음, 정현덕 기획, 장경호 엮 / 시대의창 / 2014년 5월
16,800원 → 15,120원(10%할인) / 마일리지 8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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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독서인'에 실은 '독서카페'를 옮겨놓는다. 자유롭게 쓰는 독서 에세이인데, 이달에 고른 책은 김상준 교수의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글항아리, 2014)이다. 출간시에 관심도서로 올려놓았었던 책. 저자는 <맹자의 땀 성왕의 피>(아카넷, 2011)의 저자이기도 하다. 참고로,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의 4장 '온 나라에 굶주린 자 없도록 하라: 유교 양민론과 구민 정책'은 한국국학진흥원 기획의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글항아리, 2013)에 먼저 수록됐던 글이다. 유교에 대한 시각을 크게 긍정론과 부정론으로 나눈다면, 저자는 강력한 긍정론자로 분류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이견을 덧붙였다.

 

 

 

독서인(14년 5월호) 유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책은 제목 때문에 눈길이 가고, 또 어떤 책은 만만하다 싶은 분량 때문에 손길이 간다. 김상준의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글항아리)은 그 두 경우에 모두 해당한다. 유교란 주제를 다룬 책은 적지 않기에 특별히 눈에 띌 건 아니지만 ‘정치적 무의식’은 호기심을 갖게 한다. 저자도 적고 있듯이 “미국의 문예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의 유명한 문화비평서의 제목”이어서다. 정확하게는 ‘문학비평서’라고 해야겠다. 발자크와 기싱, 콘라드 같은 서구의 정전 작가들을 견본으로 삼아서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을 접목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책이다. 그에 견줄 만한 이론과 해석을 제시한 책이라면 지적 자극으로는 충분하다. 게다가 분량이 상대적으로 얇은 책이라서 독서의 부담이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저자의 전작 <맹자의 땀 성왕의 피>(아카넷)를 나처럼 모셔두고만 있는 독자라면 ‘후기’이자 ‘입문’ 격이 될 수 있는 이런 속편이 나름 유용하지 않겠는가.


책을 읽기 전에 미래 해본 계산이 그랬다면, 읽은 뒤의 정산은 반타작이다. 일단 제목은 제임슨의 책에서 따왔지만 저자는 “제임슨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치적 무의식을 다룬다. 그가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으로 지목하는 것은 “비판성, 윤리성, 민주, 민생, 문명화, 여성화라는 기호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호들이 오늘날 문명 재편의 시기에 여전히 유효한 현재적 가치임을 웅변하려는 것이 저자의 의도다. 제임슨이 시도한 것과 같은,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빠져 있어서 좀 추상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맹자의 땀 성왕의 피>을 읽어보려는 독자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돼주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 두껍다는 불평도 들었다는 전작에 비하면 훨씬 얇은 분량이고 한결 자유로운 기분으로 썼다는 고백이다. 그렇다고 내용까지 가볍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주의도 저자는 잊지 않는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유교에 대한 재인식과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유교를 교양이나 상식 수준에서 대강 알고 넘어가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다. 정확하고 비판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전례 없이 커졌다. 특히 사회과학적인 유교 이해가 긴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새로운 이해가 필요한 것은 그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저자는 유교의 비판성과 윤리성을 우리가 재발견하고 재평가해야 할 핵심 덕목으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유교가 뭡니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주어질 법한데, 저자는 <맹자의 땀과 성왕의 피> 서두에서 미리 그에 대한 답을 마련해놓았다. 한마디로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것이다. <예기>를 출전으로 하고 있는 이 말은 “인간문명, 천하의 모든 일은 공(公)의 실현을 향해 나간다는 뜻”이다. 여기서 공(公)은 요즘말로 공공성이요 정의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이 ‘천하위공’에 짝이 되는 것이 ‘우환(憂患)’ 의식인데, 천하위공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을 때 갖게 되는 근심, 혹은 윤리적 고통이 우환 의식이다. 그리고 그것이 공맹(孔孟)의 마음이었으며, 이러한 마음가짐은 ‘인류사 보편적인 윤리정신’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유교 이해다.


얼핏 유교 예찬론으로 분류됨직한데, 자연스레 갖게 되는 의문은 저자가 유교를 너무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공맹의 마음’을 하나의 제도와 종교로서의 유교와 곧바로 동일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저자 스스로도 말하고 있듯이 유교 역시 두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폭압과 약탈의 구조를 합리화하는 유교도 있었고, 여기에 항의하며 맞서 싸우는 유교도 있었다. 이 둘을 날카롭게 구분해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주문은 저자에게도 향한다. ‘천하위공의 유교’가 한편에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폭압과 약탈의 구조를 합리화하는 유교’도 있었다. 이 모순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폭압과 약탈의 구조를 합리화하는 유교’는 진정한 유교가 아니라 사이비 유교라고 배제할 게 아니라면, 유교의 두 얼굴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 못지않게 그 두 얼굴 사이의 깊은 연관성도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일례를 들자면, 저자는 <맹자의 땀 성왕의 피>에서 북한의 권력 ‘3대 세습’을 ‘유교적’이라고 보는 항간의 속설에 대해 비판하면서 “왕위는 세습이 아니라 선양(禪讓)에 의해 전승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맹의 유교원론(原論)”이라는 근거를 댄다. 이를 그대로 수용하면,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개창한 조선왕조는 선양이 아닌 세습 왕조였기에 유교원론에 따른 ‘유교국가’가 아니었다는 게 된다. 군주가 바로 국가였던 왕조시대에 국가를 매섭게 비판하고 엄하게 다스리는 역할을 유교가 담당했다지만, 그러한 유교정치의 주역인 사(士) 계급을 저자는 ‘국가 부르주아’라고도 부른다. 알다시피 군주와 국가 부르주아는 서로를 견제하는 관계이면서 동시에 공생관계였다. 저자가 지적하듯 국가 부르주아로서 유자들의 한계는 국가-정치라는 틀을 결코 빠져나올 수 없었다는 데 있다. 유교의 현재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에 앞서 이러한 한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더 우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14. 05.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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