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무늬'는 성균관대출판부의 출판브랜드인데, 이번에 새 기획물로 '시공의 나침반' 시리즈 5권을 한꺼번에 출간했다. 단행본 공모를 받아서 펴낸 것이라 주제는 제각각이다(말이 시리즈이지 표지도 제각각이다). 저자들도 대부분 낯설다. 저자의 자기소개도 오리무중이어서 책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런 예측불가능성이 흥미를 갖게 한다. '이주의 책'을 대신하여 이 다섯 권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시리즈에 따로 순서가 매겨진 건 아니기에 무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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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빠지다 사랑을 붙잡다- 2천 년 서사에서 길어 올린 16色 사랑
윤혜신 지음 / 사람의무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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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를 욕망하는 생명- 아름다움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동화작가의 미학여행
조준호 지음 / 사람의무늬 / 2016년 2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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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어떻게 거짓이자 진실인가?- 화이트헤드와 함께하는 느낌의 미학
조경진 지음 / 사람의무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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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질서- 인문학의 눈으로 본 세상의 균형과 조화에 대한 이야기
곽한영 지음 / 사람의무늬 / 2016년 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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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재간본'이란 걸 고르라면 단연 마이클 길모어의 <내 심장을 향해 쏴라>(박하, 2016)다. 15년 전에 같은 제목으로 나왔던 책이다. <내심장을 향해 쏴라>(집사재, 2001). 몇년 전에 도서관에서 찾았을 때도 이미 절판된 상태였는데, 두 권짜리라 엄두를 못 냈던 기억이 있다. 책에 대해서 안 건 아마도 하루키에 관한 책을 읽어서였을 것이다. 이런 식의 언급.

 

"나는 <내 심장을 향해 쏴라>를 읽고 인간에 대한, 아니 어쩌면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한 변화에 값하기 위해서 하루키는 이 책을 일어로 옮겼다. 하루키의 독자들에게도 읽어볼 만한 이유는 충분한 셈.

 

전미 도서비평가협회상과 LA타임스 올해의 도서를 수상한 마이클 길모어의 시대를 초월한 걸작 논픽션.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형수' 게리 길모어가 두 명의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스스로 사형에 처해달라고 주장하며 전 미국을 충격에 몰아넣은 사건은 이미 노먼 메일러가 <사형집행인의 노래>를 통해 치밀하게 묘파하여 엄청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1994년 <내 심장을 향해 쏴라>의 출간은 <사형집행인의 노래>의 충격을 넘어선 하나의 사건이었다. 다름 아닌 게리 길모어의 친동생이 자신의 형이 왜 그토록 끔찍한 괴물이 되었는지, 어찌하여 '미 대륙에 사형 제도를 부활시킨 인물'이 되었는지, 자신의 핏줄에 깃든 폭력과 광기의 역사를 파헤치며 길모어 집안에서 이루어졌던 폭력과 학대를 가감 없이 노출했고, 때로 자신의 치명적인 상처까지 백일하에 드러내면서 게리 길모어라는 불우한 영혼의 근원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사형집행인의 노래>(한맥, 1982)는 오래 전에 출간된 적이 있다(물론 절판된 지 오래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도 거의 심장이 멎은 책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소생한 셈. 죽다 살아난 책? 죽은 자식이 돌아온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반갑다...

 

16.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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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테러방지(빙자)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제목으로는 '이주의 책'에 딱 부합하는 책이 나왔다.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문학동네, 2016).

 

"저자 스르자 포포비치는 뭔가 사소한 것, 적절한 것, 그러면서도 성공적일 수 있는 것, 그것 때문에 죽거나 심한 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크게 꿈꾸고 작게 시작하기, 미래에 대한 비전 갖기, 웃음행동주의 실천하기, 탄압에 역풍 불러일으키기가 비폭력 운동의 토대라면, 이를 견고하게 쌓아올릴 비폭력 투쟁의 기본 원칙이 운동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 스르자 포포비치는 세르비아 출신의 사회운동가. 그리고 책은 만화다, 라고 착각했지만 아니다. 알고 보니 굽시니스트의 웹툰이 책소개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저자의 새로운 혁명론은 직접적인 경험에서 나왔다.

"1990년대 중반, ‘인종 청소’라는 말로 유명한 독재자 밀로셰비치의 폭압하에 있던 세르비아의 한 기타리스트는 새로운 전략을 제안한다. 바로 ‘비폭력 행동주의’였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하는 ‘비폭력주의’는 간디나 마틴 루서 킹 목사에게 없었던 한 가지, ‘유머’를 핵심전략으로 삼았다. 포포비치는 상투적이고 반복적이어서 그 누구의 관심도 더이상 쉽게 끌어내지 못하는 집회 방식에서 벗어나, 록 콘서트처럼 역동적이고, 누구나 원할 만큼 ‘힙’하며,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넘치는 시위 방법을 제안한다. 너무나 잔혹해서 아무도 그를 쓰러뜨릴 수 없다고 여겨졌던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오트포르! 운동의 시작이었다."

 

만화가 굽시니스트의 추천사가 핵심을 짚고 있다. 

"독재 타도에 있어서 산전수전 다 겪은 한국인들 앞에서 세르비아인들이 감히 뭔가 아는 척할 거리가 있다고? 가소로운 기분이 들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한국인들의 영광은 이미 옛것이 되었고, 독재 타도의 최신 트렌드는 세르비아인들이 선도해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재 타도 시장에 한류 열풍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도 한때는 독재를 무너뜨린 전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도대체 언젯적이란 말인가. 아, 옛날이여...

 

16. 0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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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를 제목으로 단 두 권의 책을 같이 묶는다. 인류학자이자 사회운동가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관료제 유토피아>(메디치미디어, 2016)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오월의봄, 2016)다. 의미가 같지는 않다. 바우만의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지속적인 탐험과 지향점을 뜻한다면, 그레이버의 관료제 유토피아(원제는 '규칙의 유토피아')는 반어적인 명명이다.

 

 

<관료제 유토피아>의 요지는 책소개를 통해서 대략 어림해볼 수 있다. '관료제 유토피아'란 말은 '전면적 관료화'의 의미로 이해해도 좋겠다.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현대 사회가 '전면적 관료화'가 된 현상에 주목한다. 정부 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 금융, 학교에도 관료주의가 널리 퍼져있다. 권력 기관은 제도와 규제처럼 당연해 보이는 규칙을 통해 개인들을 손쉽게 통제한다. 절대왕정 시대와 비교하면 세상은 훨씬 더 관료제화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옳고 그름을 떠나, '자유'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이다.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와 관료제 사이의 끈끈한 밀월관계와 이로 인해 파생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또한 우리가 불만 속에서도 관료주의 체제에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는 온갖 종류의 속임수나 덫들에 관해 조명하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게 해준다."

 

그레이버의 책은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그린비,2009)이 처음 소개된 이후, <부채>(부글북스, 2011),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이책, 2015) 등이 출간되었다. 추세를 보아 마샬 살린스와 공저한 <왕들에 대하여>(2016)도 번역되지 않을까 싶고, 이 역시 기대되는 타이틀이다.

 

 

사회주의란 말은 역사적으로나 의미가 너무 확장되어 그 자체로는 심지어 모호해 보인다. '어떤 사회주의?'라는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바우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우만의 사회주의란 어떤 사회주의인가를 먼저 물어야겠다. '생동하는 유토피아'라고 답할까?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원래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였고, 열렬한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런 바우만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며, 또한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바우만의 현대성 분석과 소비사회 비판이 왜 시작되었고,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대사회에 사회주의라는 '생동하는 유토피아'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탐험한다. 현대사회의 유토피아로서 사회주의의 역할을 분석하고,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반문화로 제시하면서 오늘날의 사회주의가 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원저는 2010년작. 이제껏 그래왔듯이 올해도 바우만의 책은 여러 권 소개될 듯싶다.

 

 

그 전에 밀려 있는 바우만도 몇 권 빨리 해치워야겠다. 읽는 속도가 쓰는 속도를 못 따라가다니...

 

16.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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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라고 적었지만 주관적인 느낌에 그렇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어에 관한 책이 출간됐기에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키에르케고어의 이름 표기는 아직도 고정이 안 된 듯하다. '키에르케고르'와 '키에르케고어' 외에도 '키르케고르'와 '키아케고어'까지 쓰인다. 애초에 통용되던 키에르케고르를 현지 발음을 이유로 흔든 게 문제였고, 학계나 출판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게 그 다음 문제다). 아르네 그뤤의 <불안과 함께 살아가기>(도서출판b, 2016). '키에르케고어의 인간학'이 부제다.

 

"저자 아르네 그뤤은 <불안의 개념>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해명으로 시작해, 불안의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키에르케고어 인간학의 다른 핵심적인 주제들로 나아간다. 불안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실존', '자유', '절망', '역사', '윤리', '믿음', '시대비판' 등을 나머지 9개의 장에서 하나하나씩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다. 불안이라는 실존적 '근원현상'에서 출발하여 키에르케고어 사상 전반에 관한 균형 잡힌 조망을 획득할 뿐 아니라, 그의 인간학의 중심 모티브와 주제들에 대한 적확한 해석, 나아가 이들 사이의 복합적인 연관성에 대한 명료한 이해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저자는 덴마크 철학자로 코펜하겐대학 교수이며 '키에르케고어 총서'의 공동편집자. 곧 키에르케고어 전문가다. 말의 좋은 의미에서 교과서적인 책이라고 해야겠다.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같은 주제를 다룬 국내서로는 안상혁의 <불안, 키에르케고어의 실험적 심리학>(성균관대출판부, 2015)이 나와 있다. 미학 전공자의 책이란 점이 특이하다.

 

 

키에르케고어의 <불안의 개념>은 국내에 3-4종의 번역본이 있다. 나는 세 권을 갖고 있는데, 막상 찾으려고 하니 한권만 책장에 꽂혀 있다. 마땅한 가이드북이 나온 김에 오래 미뤄둔 독서에 나서도 좋겠다, 싶지만, 흠, 강의와 원고 일정을 생각하면 무리겠다. 더 불안해지면 읽어보는 걸로 해야겠다...

 

16.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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