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아직 그 달이다 창비시선 398
이상국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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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늘

 

봄이 되어도 마당의 철쭉이 피지 않는다

집을 팔고 이사 가자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꽃의 그늘을 내가 흔든 것이다

 

몸이 있는 것들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아내는 집이 좁으니 책을 버리자고 한다

그동안 집을 너무 믿었다

그들은 내가 갈 데가 없다는 걸 아는 것이다

 

옛 시인들은 아내를 버렸을 것이나

저 문자들의 경멸을 뒤집어쓰며

나는 나의 그늘을 버렸다

 

나도 한때는 꽃그늘에 앉아

서정시를 쓰기도 했으나

나의 시에는 먼 데가 없었다

 

이 집에 너무 오래 살았다

머잖아 집은 나를 모른다 할 것이고

철쭉은 꽃을 버리더라도 마당을 지킬 것이다

 

언젠가 모르는 집에 말을 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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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재간된 볼테르의 <관용론>(한길사, 2016)을 고른다. 2001년에 학술명저번역총서로 나왔던 책이 이번에 그레이트북스 시리즈로 다시 나왔다. 거기에 지난해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옴므리브르, 2015)란 제목으로 다른 번역본이 나온 바 있어서 선택지는 두 종이다. 1763년작.

 

"<관용론>은 계몽사상가로 유명한 볼테르가 18세기 유럽을 휩쓸던 종교 전쟁의 광풍에 희생된 한 가장(家長)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관용’의 개념을 역설한 책이다. 볼테르는 이 책에서 탐사보도 성격의 글쓰기와 시각 자료의 적극적인 활용 등 오늘날 저널리즘의 표본을 보여주며 당시 막 세상에 빛을 비추던 계몽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사상 등을 효과적으로 제시해 종교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 프랑스혁명을 앞당기는 데 공헌했다."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는 원제에다 '칼라스'란 이름을 더 집어넣었는데, "종교 전쟁의 광풍에 희생된 한 가장"의 이름이 바로 칼라스다. 종교적 광기와 맹신이란 게 어떤 것이었나. '장 칼라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장 칼라스는 툴루즈에서 도매상을 하며 자상한 아버지이자 성실한 가장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그는 신교도이지만 종교적 편협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둘째 아들이 가톨릭교로 개종했지만 용인했으며, 열렬한 가톨릭 신자인 하녀에게 자식들을 모두 맡길 정도였다. 그러던 1762년 5월 9일, 장남인 마르크 앙투안 칼라스가 삶을 비관한 나머지 목을 매고 자살한다. 이 사건을 접하고 모여든 군중들 가운데 누군가가 칼라스의 장남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하자 가족이 뜻을 모아 그를 살해했다고 소리쳤다. 근거 없는 소문과 의구심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어, 마침내 신교도에게 적대적이며 맹신적이었던 당시 툴루즈 시민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툴루즈 법원은 여론에 휩쓸려 칼라스 가족을 체포했다. 이후 거듭되는 가혹한 심문에도 장 칼라스는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맹신과 편견에 빠진 일부 재판관들은 증거가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장 칼라스만 수레바퀴에 매달아 죽을 때까지 매질과 고문을 하는 사형을 집행했다."

 

'관용'으로 번역된 단어가 한때 유행한 '똘레랑스'다. 그리고 그 유행의 출처가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비, 1995)였다. 볼테르의 <관용론>을 읽고,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까지 읽으면 관용(똘레랑스)의 의의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 중년 독자라면 다들 알 만한 사실이지만, 젊은 세대 독자들을 위해서 적었다...   

 

16. 05.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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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첫날에 보통 하는 두 가지 일, 밀린 잠을 보충하고 집안청소를 거든 다음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지난주를 걸렀기에 이번주에는 조금 부지런히. 신작 소설과 에세이를 펴낸 한국작가 3인이다.

 

 

먼저 알라딘에서도 그렇고 더이상 소개가 필요없는 작가 정유정의 신작이 나온다. <종의 기원>(은행나무, 2016), <28> 이후 3년만의 신작인데,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의미겠다. 전작인 <7년의 밤>과 <28>이 그랬듯이 '올해의 책'의 강력한 후보겠다. 내용은 역시나 '하드'하다. "지금껏 '악'에 대한 시선을 집요하게 유지해온 작가는 <종의 기원>에 이르러 '악' 그 자체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정유정만의 독보적인 스타일로 '악'에 대한 한층 더 세련되고 깊이 있는 통찰을 선보인다." 흔히 대중문학, 장르문학으로 분류하는데, 전례가 드물어서 '정유정'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 하나의 계보가 될지('정유정 스타일')는 두고봐야겠다.   

 

 

부쩍 활동이 활발해진 듯한 인상을 받는 김중혁의 신작이 나왔다. 이번엔 '몸 에세이'다. <바디무빙>(문학동네, 2016).  

소설가 김중혁의 다섯번째 에세이. 특정한 시기에 자신을 사로잡은 주제나 소재를 다방면으로 파고들어가 집중적으로 써내려가는 그의 이번 키워드는 '몸'이다. 작가는 "몸이 겪는 스펙터클한 경험과 몸이 말하는 언어"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써보고 싶었다 한다. 이 책에 수록된 32편의 글은 영화와 스포츠, 드라마, 책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문화 콘텐츠와 현상에서 발견한 소재들로 인간의 몸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보여준다.

에세이로도 다섯번째라면 소설가와 에세이스트 겸업이라고 해야 할까. 김영하, 김연수와 함께 대세 '3김'을 구축하는 모양새다. 대표 장편만 쓴다면?

 

 

16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장편 역사소설도 출간되었다. 김홍정의 <금강>(솔, 2016). "폭군 연산을 폐위한 중종반정 이후 조선의 조정은 이른바 공신과 사림간의 끊임없는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에 쳐 박히고 급기야 선비들이 떼 죽임을 당하는 기묘사화, 을사사화, 기축옥사 등의 참극이 이어진다. 피비린내 풍기는 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침내 사림의 큰 스승 충암의 가르침을 따르는 '동계'가 결성되고, 동계를 중심으로 <금강>의 주인공들은 여민동락의 새 세상을 이루기 위해 자기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다."

 

 

한때 역사소설이라면 고정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눈에 띄는 책도 드물고, 출간 자체도 뜸해진 감이 있다. 최근 사례가 정찬주의 <이순신의 7년>(작가정신, 2016)과 함께 김홍정의 <금강>이다. <금강>은 현직 국어교사인 저자가 10년간의 준비 끝에 내놓은 역작이라고 소개되는데, 어떤 성취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정홍수 평론가의 해설에 따르면, '여민동락'과 '대동사회'를 꿈꾼 일종의 유토피아 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16. 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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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인터뷰집 <레비스트로스의 말>(마음산책, 2016)이 출간되었다. 인터뷰는 디디에 에리봉과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회골고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강, 2003) 이후 오랜만인 듯싶다. 주저 <신화학>이 절반 나오다 만 상태인데(전4권 가운데 두 권이 나왔다), 절판된 <구조인류학>을 포함해(이 또한 절반만 번역되었다) 대표작들이 다시 나오길 기대하지만 언제쯤 성사될지는 모르겠다. 그런 기대와 불만을 담아서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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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의 말- 원시와 현대 예술에 관한 인터뷰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조르주 샤르보니에 지음, 류재화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4월
14,500원 → 13,050원(10%할인) / 마일리지 7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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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강주헌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9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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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면- 레비-스트로스, 일본을 말하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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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토테미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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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문학 관련 강좌 공지다.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와 서울대 러시아연구소가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주제로 연합인문강좌를 개최한다. 일시는 5월 20일부터 6월 24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3시-5시이고, 장소는 명동의 가톨릭회관 신관(마리아홀)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포스터를 클릭해보시길. 나는 6월 17일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주제로 강의한다.    

 

 

16. 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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