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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아직 그 달이다 ㅣ 창비시선 398
이상국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그늘
봄이 되어도 마당의 철쭉이 피지 않는다
집을 팔고 이사 가자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꽃의 그늘을 내가 흔든 것이다
몸이 있는 것들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아내는 집이 좁으니 책을 버리자고 한다
그동안 집을 너무 믿었다
그들은 내가 갈 데가 없다는 걸 아는 것이다
옛 시인들은 아내를 버렸을 것이나
저 문자들의 경멸을 뒤집어쓰며
나는 나의 그늘을 버렸다
나도 한때는 꽃그늘에 앉아
서정시를 쓰기도 했으나
나의 시에는 먼 데가 없었다
이 집에 너무 오래 살았다
머잖아 집은 나를 모른다 할 것이고
철쭉은 꽃을 버리더라도 마당을 지킬 것이다
언젠가 모르는 집에 말을 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