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가장 아름다운 눈꽃을 본 날(겨울도 떠나기 전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었나 보다), 평소보다 부지런하게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새학기 첫달의 읽을 만한 책이다. 이맘때면 그런 용도의 책들이 쏟아져나올 만한데, 생각보다는 또 많지 않다(느낌만 그런 것일까?). 아무려나 새학기라는 걸 의식하면서 고르도록 한다.
1. 문학예술
소설로는 윤대녕의 신작 장편소설을 고른다. <피에로들의 집>(문학동네, 2016). "삶의 의미를 향한 허기,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과 고요히 찾아드는 희망을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이후 꼭 11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희소한 만큼 기대를 모은다. 전작으로 나온 산문집과 중단편 선집도 이 참에 같이 챙겨놓는다.
예술분야에서는 <걸작의 뒷모습>(세미콜론, 2011)의 저자 세라 손튼의 신작 <예술가의 뒷모습>(세미콜론, 2016)을 고른다.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현대 미술가들을 만나 그들에게 직접 “미술가란 무엇인가”를 묻고, 이들로부터 다층적인 내면의 이야기를 이끌어 낸 책이다." 덧붙일 만한 책은 니콜레 체프터의 <동물원이 된 미술관>(자음과모음, 2016). "독일 현역 미술잡지 편집장이 이야기하는 미술 앞에서의 감정과 태도에 관한 신랄한 기록"이다. 돈과 권력에 물른 현대미술의 맨얼굴을 폭로한다고 하니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미술관에 자주 다니는 독자라면 필독해봄직하다.
2. 인문학
철학분야의 책은 진즉 정해놓았는데, 군나르 시라베크와 닐스 길리에의 <서양철학사>(이학사, 2016)이다. 이미 한 차례 소개한 책인데, "저자들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시각과 참신한 접근, 그리고 명료한 서술과 혁신적인 구성으로 서양철학사 읽기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정통 철학으로 여겨지는 사상들 외에도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끼친 여러 분과학문들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기술하고 있고, 첨예한 논점에 대한 논의도 피해 가지 않으며, 궁극적으로는 독자 스스로 자신만의 철학적 관점을 형성해갈 수 있도록 정확한 안내점을 제시하고 있다." 고로 읽어볼 만하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스피노자 입문서 격인 손기태의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글항아리, 2016). '자유를 향한 철학적 여정'이 부제다.
역사 분야도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골랐다. 한국역사연구회의 시대사 총서로 나온 <한국근대사1,2>(푸른역사, 2016)이다. "이 책은 근대의 시작을 고종 대신 섭정했던 흥선대원군의 집권기로 설정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위기의식의 심화에서부터 우리 근대의 역사를 짚는 것이다. 근대화를 위한 노력의 구체적 양상과 민족 해방 운동의 실상에 관한 역사학계의 진전된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있으며, 근대적 사회 변화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독립을 위한 투쟁까지 충실하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또한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강제동원의 실상에 대해 일반적인 한국사 개설서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파헤치고 있다."
게다가 한권 더 고른 건 조윤민의 <두 얼굴의 조선사>(글항아리, 2016)이다. 저자는 방송 다큐 작가인데, 역사 쪽의 다큐를 여러 편 제작한 경력이 있다. 학계로부터 자유로운 덕분인지 매우 신랄한 조선사 비판서를 펴냈다. '군자의 얼굴을 한 야만의 오백 년'이 부제. 조선사 비판은 흔히 식민사관이라는 굴레를 덮어쓰기 십상인데, 이제는 그런 또다른 족쇄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어제오늘 주목했던 책들을 고른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관료제 유토피아>(메디치, 2016)와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오월의봄, 2016), 그리고 강내희의 <길의 역사>(문화과학사, 2016)다.
거기에 조금 소프트한 책을 덧붙이자면, 이제 막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읽어볼 만한, 데이비드 매컬로의 <너는 특별하지 않아>(민음사, 2016). "미국 고등학교 문학 교사인 데이비드 매컬로가 공부 경쟁밖에 모르는 학생들에게 건네는 맵지만 따뜻한 한마디를 담은 에세이"이고, <링>의 작가 스즈키 코지의 <공부는 왜 하는가>(일토, 2016)는 "작가가 되기 전 학원 강사와 가정교사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자녀의 교육을 도맡았던 저자"의 체험적 공부론이다. 국가인권위에서 활동하는 김민아의 <아픈 몸, 더 아픈 차별>(뜨인돌, 2016)은 "아프다는 이유로, 아팠다는 이유로, 앞으로 아플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입학과 취업에서 배제되고 심지어 진료와 수술마저도 거부당하는 사람들"을 조명하면서 사회와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
4. 과학
과학 분야에서 읽어볼 만한 책은 단연 오정근의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동아시아, 2016)이다. 얼마 전, 아인슈타인이 예언했다는 중력파가 검출돼 과학계가 들썩였는데, 도대체 무얼 발견한 것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때마침 짚어주는 책이다.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우주의 통찰>(와이즈베리, 2016)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 '위대한 석학 21인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미래, 그리고 남겨진 난제들'이 부제다. 그리고 과학저술가 매트 리들리의 대표작 <게놈>(김영사, 2001)이 <생명 설게도, 게놈>(반니, 2016)이란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이 분야의 책으로 15년이 지나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
5. 책읽기/글쓰기
일단 고전 해제성 책 두 권. 이케가미 아키라의 <세상을 바꾼 10권의 책>(교유서가, 2016)과 조한별의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바다출판사, 2016)은 권수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고전에서 무엇을 읽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2015)로 우리에겐 친숙한 저자가 된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반비, 2016)은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 등을 주제로 한 에세이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나는 나쁜 이야기의 독소를 정화시켜 끝내 아름다운 이야기의 강물로 흘러가게 만드는 더 큰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솔닛은 더 강력한 이야기를 창조함으로써 자신에게 강요된 나쁜 이야기의 마법과 싸워 마침내 승리하는 이야기의 전사다"는 추천사를 붙였다.
16. 02. 28.
P.S. '3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스탕달의 <적과 흑>(1830)을 고른다. 스탕달은 발자크와 함께 프랑스 근대문학의 토대를 마련한 작가. 알다사피 <적과 흑>이 그의 대표작이다(또다른 대표작이 <파르마의 수도원>이고, 사후에 출간된 <뤼시엥 뢰벤>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번역본은 여러 종이 나와 있는데, 세계문학전집판의 3종 외에 원로 불문학자의 번역으로 범우사판(김붕구 역)과 동서문화사판(서정철 역) 등이 더 있다. 나는 이 모든 번역본을 갖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 일단은 열린책들판과 민음사을 중심으로 읽는다. 강의차 읽는 것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는 거의 25년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