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서울은 아니다. <데카르트의 사라진 유골>(옥당, 2013)의 저자 러셀 쇼토에 따르면 암스테르담이다. 삼일절 아침에 불경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책제목을 보자 문득 이곳을 떠나고 싶어졌다. 간다면 암스테르담. '이주의 발견'으로 꼽는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책세상, 2016).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암스테르담에 있는 '존애덤스연구소(John Adams Institute)'의 소장으로 일하면서 암스테르담에 깊이 매료된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러셀 쇼토의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암스테르담 곳곳을 누비면서 직접 수집한 역사적인 사건들과 이야기를 경쾌하고 위트 있는 문장으로 전한다. 암스테르담의 전 시장 요프 코헌, 안네 프랑크와 어린 시절 함께 뛰놀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의 문턱에까지 다녀온 프리다 멘코, 1960년대에 '프로보운동'을 이끌었던 룰 판 다윈 등 역사의 산 증인과 나눈 인터뷰 내용들은 이 도시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자유'와 '진보'의 역사를 생생하게 구체화한다."

어떤 도시를 방문할 때 필참해야 할 책이 있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나처럼 없던 욕망도 부추기는 책.

 

 

암스테르담 관련서라면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과 데이비드 리스의 <암스테르담의 커피 상인> 등도 찾아볼 수 있지만 모두 절판됐다. 암스테르담이 배경인 소설. 남은 건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마로니에북스, 2009) 정도.

 

 

내게 '물위의 도시' 암스테르담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강력한 책은 카뮈의 <전락>이다. 이 역시 암스테르담이 배경인 소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쓴 자작시('물위의 암스테르담')의 일부.


태엽이 풀리는 소리에 잠이 깬다 눈이 감긴다 눈을
뜬다, 눈을 뜨면 간장에 물 탄 듯이 아침은 온다 

2  
나는 점점 더 나빠져 가는 그이들의 예절을 얘기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런 얘기나 반나절 동안 주절거리고 있는 거야
지금 제대로 듣고 있는 거야, 제대로 듣고 있냐고?
나는 한 나무의 변두리에 주저앉아 눈에 익은 그림자들을 보고 있어
나는 이때쯤 살갗에 모이는 소금들을 부끄러워하지 
나는 이젠 더 참을 수 없는 그이들의 예절을 얘기하고 싶어
나는 등나무 꽃 그늘 아래로 옮겨갈 테야

눈물보다도 맑은 물위에 눈꽃들이 떨어지는 걸 보고 싶어 

(...)

그래 그이들의 예절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자꾸 떠나고 싶어지는 이유겠다...

16.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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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의 소식지 '오늘의 도서관'(240호)에 실은 짧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청탁받은 분량이 5매였던 글이다. 몇 권의 후보 가운데 내가 고른 책은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지식채널, 2014)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년만에 개정판이 나왔군(출판사 이름만 지식채널에서 지식플러스로 바뀐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도서관(16년 3월호) 과학에서 다원주의를 옹호하다

 

‘생각하고 싶어하는 일반 대중과 학생들을 위한 과학철학 입문서’.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가 내세운 모토다. 저자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것은 그가 세계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학자이기 때문이다. 장하석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 과학사-과학철학부 석좌교수로 재직중이고, <온도계의 철학>으로 과학철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책은 EBS에서 기획한 강연에 바탕에 두고 있는데, 저자의 이름값만으로도 충분히 들어볼 만한 강연이고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일반 대중과 학생들을 위한 입문서라고 해서 ‘단순한 개론서’ 정도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학자로서 과학에 대한 견해와 독특한 시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철학 개론서에 해당하는 책은 이미 여럿 나와 있기 때문에 이 책만의 특징이라고 할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그가 보는 과학철학의 핵심은 다원주의다. 그에 따르면 과학에는 절대적인 지식도 없고 절대적인 방법도 없다. 얼핏 저명한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의 상대주의적 과학관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쿤이 패러다임들 간의 교체와 이동을 통해서 과학사를 설명하는 반면, 저자는 경쟁관계의 패러다임이 공존할 수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이 공존하는 게 더 좋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패러다임 이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 간의 공존과 상호작용이라는 것이다.


과학에서 다원주의가 갖는 여러 이점을 저자는 관용의 이득과 상호작용의 이득이란 관점에서  설명하고 그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 반박한다. 이러한 입장은 비단 과학철학 분야에서만 의의를 갖는 게 아니다. 저자는 과학적 다원주의를 사회적 다원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 일원주의 사회, 곧 독재사회가 나쁜 것처럼 과학에서도 독재와 권위주의는 나쁘다. 그런 연속성과 공통점에 비추어 과학탐구의 의의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다. “시민들이 진정한 독립적 과학탐구를 배우는 것은 권위와 이데올로기에 맹종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입니다.”

 

16. 03. 01.

 

 

P.S. 과학철학 개론서는 여럿 나와 있다고 적었는데, 고전적인 책은 물론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까치, 2013)다. 쿤의 과학관과 관련한 논쟁을 엮은 책으로 <현대과학철학 논쟁>(아르케, 2002)도 이 분야의 필독서(였다). 국내 저자들의 책으론 <과학철학>(창비, 2011)이 학계의 성과를 집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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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브라더
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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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 정국에서 가장 화제가 된 책은 코리 닥터로우의 <리틀 브라더>(아작, 2016)다. 제목만 보고 주목하지 않았던 이 책을 들고와서 국회에서도 낭독된 '한국어판 서문'을 읽었다. '리틀 브라더'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를 염두에 둔 제목이란 걸 비로소 알았다. 이종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지난 여름 국가정보원이 휴대폰을 원격으로 통제할 수 있는 스파이웨어를 구매해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감시 사회는 더 이상 소설이 아니다. <리틀 브라더>는 태평양 너머 미국의 픽션이 아니라, 2015년 대한민국의 논픽션이다.

물론 2016년에도 진행중인 논픽션이다. 더불어 섬뜩하게도 우리에게 최악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서문 일부에 밑줄을 그어놓는다...

안녕하세요, 한국 독자 여러분.
서구에 사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한국은 100메가 광케이블과 PC방, 프로게이머가 넘치는 약속의 땅입니다. 한국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미래를 서구보다 앞서 나갔지만, 그와 동시에 디스토피아적인 감시 역시 선두에 서 있습니다.

2015년 `해킹팀`이라는 악명 높은 이탈리아 사이버무기 판매업체가 해킹을 당해 업체의 이메일과 고객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됐습니다. 공개된 파일을 통해 이 업체가 그동안 오랜 기간 잔혹하게 인권 침해를 해온 에티오피아 같은 정부들에게 감시도구를 제공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업체의 최상위 고객의 명단에는 놀랍게도 `한국`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부가 `해킹팀`에서 감시용 도구를 구입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어쩌면 여러분은 영화에서 스파이들이 사용하는 정교한 접시형 마이크나 싸구려 잡지의 광고에 나오는 바늘구멍만한 몰래카메라처럼 고도로 전문화된 장비를 상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이버 감시용 도구는 그렇게 멋진 장비가 아닙니다. 그건 착각입니다.

설령 여러분이 정부가 어떤 사람들을 훔쳐보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소프타웨어의 약점을 이용해서 `나쁜 녀석들`을 훔쳐보는 것은 마이크를 몰래 설치해서 도청하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한국의 국정원과 미국의 국가안전국(NSA), 영국의 정보통신본부는 자신들이 마치 첩보영화에 나오는 스파이 대 스파이 전쟁을 벌이는 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모든 무기는 컴퓨터 안에 살고, 컴퓨터로 몸을 채우고 있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의지하는 자료와 통신, 그리고 우리의 삶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을 악화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컴퓨터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지난 시대의 거친 꿈을 넘어 다른 세계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들은 컴퓨터를 수수께끼투성이의 취약한 블랙박스로 바꿔놓고 우리에게 죄를 물으며 인터넷 접속을 검열하면서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정보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책입니다. 이 책은 컴퓨터가 우리를 어떻게 감시할 수 있는지 경고하는 책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컴퓨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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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가장 아름다운 눈꽃을 본 날(겨울도 떠나기 전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었나 보다), 평소보다 부지런하게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새학기 첫달의 읽을 만한 책이다. 이맘때면 그런 용도의 책들이 쏟아져나올 만한데, 생각보다는 또 많지 않다(느낌만 그런 것일까?). 아무려나 새학기라는 걸 의식하면서 고르도록 한다.

 

 

1. 문학예술

 

소설로는 윤대녕의 신작 장편소설을 고른다. <피에로들의 집>(문학동네, 2016). "삶의 의미를 향한 허기,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과 고요히 찾아드는 희망을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이후 꼭 11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희소한 만큼 기대를 모은다. 전작으로 나온 산문집과 중단편 선집도 이 참에 같이 챙겨놓는다.

 

 

예술분야에서는 <걸작의 뒷모습>(세미콜론, 2011)의 저자 세라 손튼의 신작 <예술가의 뒷모습>(세미콜론, 2016)을 고른다.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현대 미술가들을 만나 그들에게 직접 “미술가란 무엇인가”를 묻고, 이들로부터 다층적인 내면의 이야기를 이끌어 낸 책이다." 덧붙일 만한 책은 니콜레 체프터의 <동물원이 된 미술관>(자음과모음, 2016). "독일 현역 미술잡지 편집장이 이야기하는 미술 앞에서의 감정과 태도에 관한 신랄한 기록"이다. 돈과 권력에 물른 현대미술의 맨얼굴을 폭로한다고 하니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미술관에 자주 다니는 독자라면 필독해봄직하다.

 

 

 

2. 인문학

 

철학분야의 책은 진즉 정해놓았는데, 군나르 시라베크와 닐스 길리에의 <서양철학사>(이학사, 2016)이다. 이미 한 차례 소개한 책인데, "저자들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시각과 참신한 접근, 그리고 명료한 서술과 혁신적인 구성으로 서양철학사 읽기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정통 철학으로 여겨지는 사상들 외에도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끼친 여러 분과학문들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기술하고 있고, 첨예한 논점에 대한 논의도 피해 가지 않으며, 궁극적으로는 독자 스스로 자신만의 철학적 관점을 형성해갈 수 있도록 정확한 안내점을 제시하고 있다." 고로 읽어볼 만하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스피노자 입문서 격인 손기태의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글항아리, 2016). '자유를 향한 철학적 여정'이 부제다.

 

 

역사 분야도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골랐다. 한국역사연구회의 시대사 총서로 나온 <한국근대사1,2>(푸른역사, 2016)이다. "이 책은 근대의 시작을 고종 대신 섭정했던 흥선대원군의 집권기로 설정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위기의식의 심화에서부터 우리 근대의 역사를 짚는 것이다. 근대화를 위한 노력의 구체적 양상과 민족 해방 운동의 실상에 관한 역사학계의 진전된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있으며, 근대적 사회 변화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독립을 위한 투쟁까지 충실하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또한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강제동원의 실상에 대해 일반적인 한국사 개설서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파헤치고 있다."

 

게다가 한권 더 고른 건 조윤민의 <두 얼굴의 조선사>(글항아리, 2016)이다. 저자는 방송 다큐 작가인데, 역사 쪽의 다큐를 여러 편 제작한 경력이 있다. 학계로부터 자유로운 덕분인지 매우 신랄한 조선사 비판서를 펴냈다. '군자의 얼굴을 한 야만의 오백 년'이 부제. 조선사 비판은 흔히 식민사관이라는 굴레를 덮어쓰기 십상인데, 이제는 그런 또다른 족쇄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어제오늘 주목했던 책들을 고른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관료제 유토피아>(메디치, 2016)와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오월의봄, 2016), 그리고 강내희의 <길의 역사>(문화과학사, 2016)다.

 

 

거기에 조금 소프트한 책을 덧붙이자면, 이제 막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읽어볼 만한, 데이비드 매컬로의 <너는 특별하지 않아>(민음사, 2016). "미국 고등학교 문학 교사인 데이비드 매컬로가 공부 경쟁밖에 모르는 학생들에게 건네는 맵지만 따뜻한 한마디를 담은 에세이"이고, <링>의 작가 스즈키 코지의 <공부는 왜 하는가>(일토, 2016)는 "작가가 되기 전 학원 강사와 가정교사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자녀의 교육을 도맡았던 저자"의 체험적 공부론이다. 국가인권위에서 활동하는 김민아의 <아픈 몸, 더 아픈 차별>(뜨인돌, 2016)은 "아프다는 이유로, 아팠다는 이유로, 앞으로 아플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입학과 취업에서 배제되고 심지어 진료와 수술마저도 거부당하는 사람들"을 조명하면서 사회와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

 

 

4. 과학

 

과학 분야에서 읽어볼 만한 책은 단연 오정근의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동아시아, 2016)이다. 얼마 전, 아인슈타인이 예언했다는 중력파가 검출돼 과학계가 들썩였는데, 도대체 무얼 발견한 것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때마침 짚어주는 책이다.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우주의 통찰>(와이즈베리, 2016)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 '위대한 석학 21인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미래, 그리고 남겨진 난제들'이 부제다. 그리고 과학저술가 매트 리들리의 대표작 <게놈>(김영사, 2001)이 <생명 설게도, 게놈>(반니, 2016)이란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이 분야의 책으로 15년이 지나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

 

 

5. 책읽기/글쓰기

 

일단 고전 해제성 책 두 권. 이케가미 아키라의 <세상을 바꾼 10권의 책>(교유서가, 2016)과 조한별의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바다출판사, 2016)은 권수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고전에서 무엇을 읽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2015)로 우리에겐 친숙한 저자가 된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반비, 2016)은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 등을 주제로 한 에세이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나는 나쁜 이야기의 독소를 정화시켜 끝내 아름다운 이야기의 강물로 흘러가게 만드는 더 큰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솔닛은 더 강력한 이야기를 창조함으로써 자신에게 강요된 나쁜 이야기의 마법과 싸워 마침내 승리하는 이야기의 전사다"는 추천사를 붙였다.

 

16. 02. 28.

 

 

 

 

P.S. '3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스탕달의 <적과 흑>(1830)을 고른다. 스탕달은 발자크와 함께 프랑스 근대문학의 토대를 마련한 작가. 알다사피 <적과 흑>이 그의 대표작이다(또다른 대표작이 <파르마의 수도원>이고, 사후에 출간된 <뤼시엥 뢰벤>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번역본은 여러 종이 나와 있는데, 세계문학전집판의 3종 외에 원로 불문학자의 번역으로 범우사판(김붕구 역)과 동서문화사판(서정철 역) 등이 더 있다. 나는 이 모든 번역본을 갖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 일단은 열린책들판과 민음사을 중심으로 읽는다. 강의차 읽는 것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는 거의 25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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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먼저 지난달 세상을 떠난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돌베개, 2016)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이제 보니 초판은 영문판으로도 나왔었다). 알라딘 MD의 소개에 따르면, "신영복 선생의 글과 글씨와 그림을 엮은 잠언집 <처음처럼>이 초판 출간 이후 근 10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첫 글 「처음처럼」과 마지막 글 「석과불식」만 그대로 두고 전체 구성을 대폭 바꾸었으며, 삭제하거나 교체하고 추가한 원고가 많아 2007년 초판에 비해 3분의 1 가량 분량이 늘어났다."

 

 

더불어, 소개글도 옮기면, "부제 '신영복의 언약'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신영복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言]과 약속[約]이다.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무기수의 옥중 서간이라면, <처음처럼>은 다시 쓰고 싶은 편지라고 하였다." 저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독자들에게 기념품이 될 만하다.

 

 

잡지 <문화과학>의 발행인으로, 그리고 문화이론가/비평가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강내희 교수가 정년을 맞아 신간 <길의 역사>(문화과학사, 2016)와 선집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하다>(문화과학사, 2016)를 같이 펴냈다. 선집은 저자가 지난 30년 가까운 기간에 생산한 글 19편을 골라 묶은 것이고, 신작은 '물리적인 길이야말로 모든 길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길의 역사를 살핀" 책이다. '직립 존재의 발자취'가 부제. 이번에 같이 나온 <좌파가 미래를 설계하는 방법>(문화과학사, 2016)은 "강내희 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하여 그와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운동했던 후배, 학문 동지, 제자들이 함께 참여해 만든 책이다." '문화과학' 그룹의 관심과 성과를 일별하도록 해준다. 

 

 

<나 홀로 볼링>(페이퍼로드, 2009)으로 유명한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의 신작도 나왔다. <우리 아이들>(페이퍼로드, 2016). '빈부격차는 어떻게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가'가 번역본의 부제이고, 원서의 부제는 '아메리칸 드림의 위기'다.   

"저자 로버트 D. 퍼트넘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반세기 동안 미국 사회에서 일어난 변화를 추적한 책이다. <이코노미스트> 2015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저자는 포트클린턴에서 미 전역 방방곳곳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급의 가정과 아이들의 삶을 세심하게 살피는 동시에 최신 사회과학적, 뇌과학적 연구 성과를 토대로 그들이 처한 현실을 엄밀하게 분석한다. 바로 이 시기 동안 누구나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의 신화는 처참하게 무너졌으며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부의 대물림 현상은 심화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현상은 한 사회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아이들의 뇌 발달과 정서적 성장 등 삶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우리들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바로 '흙수저'라는 단어의 유행처럼,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도 하기 때문이다."

소개대로, 미국 사회를 다룬 책이지만 결코 남 얘기 같지 않다. 한국 역시 현재의 젊은 세대(우리 아이들)가 부모 세대보다 못 사는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라고 하지 않은가. 아메리칸 드림의 위기를 다룬 책으론 <능력주의는 허구다>(사이, 2015)도 있지만 조야하게 편집된 번역서인지라 같이 언급하기가 주저된다. <우리 아이들>는 꽤 신뢰할 만한 번역과 편집이어서 다행스럽다...

 

16.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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