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우연히 황동규 시인의 예전 인터뷰를 읽고서 검색해보다가 <시가 태어나는 자리>(문학동네, 2001)라는 산문집이 눈에 띄어 주문했다. 대부분의 책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매내역에 없어서였다. 오늘 같이 주문한 시선집과 받아보니 <나의 시의 빛과 그늘>(중앙일보, 1994)의 개정판이다. 한편의 글만 새로 추가돼 있으니 거의 읽은 셈인 책. 그래도 20년도 더 전에 읽었으니 다시 읽어볼 만하다. 책은 드문 종류의 '자작시 해설'이다.
같이 주문한 시선집은 <삶을 살아낸다는 건>(휴먼앤북스, 2010)이다. 이미 두 권으로 묶인 시전집도 갖고 있지만(물론 손에 바로 쥘 수 없는 형편이다) 가볍게 손에 들 수 있는 걸로는 시선집이 요긴하다. 애초에 처음 읽은 황동규 시집도 <삼남에 내리는 눈>(민음사, 1975)이었다. 대학 1학년 때로 기억되니 거의 30년 전이다. 민음시인총서의 시집들이 내게 첫 한국시 읽기였다(교과서에서 나온 시들과 김소월, 윤동주 시집을 제외하고). 지금은 대부분 빛이 바랜 상태라 재작년에 몇 권은 바뀐 표지로 다시 구입했는데, 확인해보니 <삼남에 내리는 눈>은 빠진 모양이다. 조만간 구입해볼 참이다.
황동규 시의 의의란 무엇인가? 초기 시에 한정하면, 시인 자신의 자평이기도 하고 시선집에 해설을 붙인 이숭원 교수의 복창이기도 한데, 그 의의는 '최초의 현대적 사랑시'라는 데 있다.
"초기의 사랑 시는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등의 연시와는 다른, 새로운 감성의 현대적 연애시를 창조했고, 사랑을 주제로 한 연작을 통해 황동규만의 독특한 '사랑노래' 양식으로 정착되었다."(이숭원)
'즐거운 편지'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기도' 같은 초기 시에서도 읽을 수 있는 이런 대목들.
내 당신은 미워한다 하여도 그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주면은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주겠습니다.
한국시에서 '모던 러브', 최초의 현대적 사랑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강변에서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가 보여주는 사랑이다.
요즘의 무더위와는 관계가 없는 자세이긴 하군...
16. 0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