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을 쉬고 있는 중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대표적인데(덕분에 이번 겨울학기는, 당장 내달부터, 한강 강의로 도배가 되었다) 매우 인상적인 문학적 사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올해의 사건이면서 한 세대의 사건이다. 한국작가 중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로 점쳐졌지만 나도 그 시간은 10년쯤 뒤로 생각했었다). 강의와 함께 이번 수상의 의미를 짚는 원고를 맡은지라 내일 출발하는 스위스문학기행 커리어에 한강의 책도 몇권 들어갔다. 비행중에, 혹은 스위스의 숙소에서 한강을 읽는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공항서점에서 외국어로 번역된 한강을 기념삼아 손에 들지도 모르겠다.
한강에 대한 페이퍼는 뒤로 미루고, 문학기행중이라 다음주에는 강의가 없는 덕에 모처럼 시간을 내서 밀린 책들의 페이퍼를 적는다. 대충 견적으로는 10여개는 적어야 하지만, 일단 철학책부터. 현대독일철학의 아이콘이라는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철학하는 철학사' 3부작의 마지막권이 출간되었다(젊은 철학자였는데, 1964년생이니 그도 환갑의 나이다). <너 자신이 되어라>. 앞서 나온 <세상을 알라>(2018), <너 자신을 알라>(2018)에 뒤이은 것이다. 6년만의 완간.
3부작을 다 갖고는 있지만, 책이사가 진행중이어서(신규 도서구입이 제한되고 있다) 나머지 두 권의 소재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너 자신이 되어라>는 좀 읽다보니, 역시 허명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관점이 있으면서 흥미롭게 잘 쓰인 철학사다.
다비드 프레히트의 책은 <내가 아는 나는 누구인가> 이후에 모든 책을 구비해놓기는 했는데, 정작 작심하고 읽지는 못했다. 강제독서가 필요한 저자다.
한편 견줄 만한 철학사 책으론 같은 3부작으로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를 떠올릴 수 있겠다. 둘다 영어권이 아닌, 독일과 이탈리아의 철학사란 점에서 가산점도 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따로 적지 않은 건 같은데, 연초에 이정우의 <세계철학사>(전4권)도 완간됐었다. 국내 저자가 이만한 규모의 철학사를 다시 내놓을 가능성은 희박해보이기에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지난해 여름에 나온 고명섭 기자의 <하이데거 극장>과 함께 국내 저자의 철학서로 상찬받을 만하다. 다만 나로선 역시나 강의들 때문에 아직 손에 들지 못하고 있어서 유감이다.
리하르트 프레히트와 함께 주목할 저자는 마르쿠스 가브리엘이다. 1980년생이니 독일철학의 진짜 '젊은 피'다.
슬라보예 지젝과의 공저 <신화, 광기 그리고 웃음>으로 처음 소개된 게 2011년이었다. 그리고 최근 <허구의 철학>이 나왔는데, 흥미로운 저작(확인해보니 아직 영어판이 나오지 않았다). 규모가 좀 있는 책이어서 본격독서는 미루고 있는데(700쪽이 넘는다), 앞서 나온 그의 3부작과 연관지어 읽어보면 좋겠다.
그 3부작은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나는 뇌가 아니다><생각이란 무엇인가>다. 프레히트의 '철학하는 철학사' 3부작과 같이 묶으면, 철학의 종횡이다. 동시에 현대 독일철학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엿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