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국내 저자 3인이다. 먼저 알라디너로서 다작 저자 대열에 진입하고 있는 서민 교수, 혹은 마태우스님의 신작이 나왔다. <여혐, 여자가 뭘 어쨌다고>(다시봄, 2017). '김치녀에서 맘충까지 일상이 돼버린 여성 차별과 혐오를 고발한다'가 부제. 제목과 부제에서 어떤 내용일지는 가늠이 된다. 


"기생충 박사로 유명한 서민교수가 여성 차별과 혐오에 대한 문제를 말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며, 여혐을 일삼는 남성들의 주장이 왜 잘못됐는지를 알려준다."  


올해 펴낸 세번째 단독 저작인데, 근간 목록을 보니 이번 가을에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도 출간될 예정이다.



그리스 전문가 유재원 교수도 신작을 펴냈다. <데모크라티아>(한겨레출판, 2017). '정치를 발명한 그리스에 묻다'가 부제. "아테네 민주정의 탄생 이야기에 주목하여 참된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긴다.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 정치를 만드는 등 인간 중심의 사회를 만들어 간 고대 그리스인의 고민과 생각, 갈등 등을 현장 답사를 통해 풀어낸다." 민주정의 기원을 통해서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는 의의가 있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이래로 다산학의 막강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정민 교수도 두 권의 책을 상자했다. <다산의 제자 교육법>과 <다산 증언첩>(휴머니스트, 2017)이다. <다산의 제자 교육법>은 "다산의 증언에서 중요한 내용만 뽑아 주제별로 엮"은 책이고, <다산 증언첩>은 다산의 증언을 집대성한 책으로 "80여 컷에 이르는 다산 친필 증언첩 사진을 모두 수록하여 자료적 가치를 높였다. 지치지도 않고, 수없이 되풀이하며 제자들에게 말을 건넨 다산의 애틋한 인간 사랑과 위대한 교육 정신은 오늘의 교육 현장에 새로운 가르침을 전한다." 가히 종결판이라 할 만한데,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이제 더 나올 책이 없는 거 아닐까 싶다...


17. 0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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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길게 써보려 했지만 시간도 기력도 모두 부족하기에 짧게 적는다. 푸슈킨의 딸 얘기다. 풀네임을 적자면 알렉산드르 세르게에비치 푸슈킨(1799-1837). 이번주에는 그의 <대위의 딸> 강의가 있어서 오랜만에 번역본들을 한데 모았다. 검토해보려는 생각은 있지만 뜻대로 될지는 아직 미지수. 다만 각 번역본에 실린 작가 연보를 보다가 교정사항이 있어서 적는 페이퍼다.

현재 주요 번역본은 네 종인데 알라딘의 판매량을 보니, 펭귄클래식판, 새움판, 열린책들판, 창비판 순이다. 저자명은 푸시킨, 뿌쉬낀, 뿌시낀이 혼용되고 있는데 나는 쓰던 대로 ‘푸슈킨‘이라고 적겠다. 푸슈킨은 1831년 나탈리야 곤차로바(1812-63)와 결혼하여 네 자녀를 둔다. 순서대로 하면 마리야(1832년생, 장녀), 알렉산드르(1833년생, 장남), 그리고리(1835년생, 차남), 그리고 나탈리야(1836년생, 차녀), 그렇게 2남2녀다. 애칭으로는 마샤, 사샤, 그리샤, 나타샤라고 부른다.

펭귄클래식판의 간략 연보에는 자녀들 얘기가 빠져 있으므로 넘어가면, 나머지 판본 가운데 새움판만 자녀의 성별을 정확히 기재하고 있고 열린책들판과 창비판은 장남 알렉산드르를 차녀로 오기하고 있다. 둘다 ‘딸 사샤 출생‘으로 적음으로써 2남2녀를 1남3녀로 바꿔놓고 있다.

착오가 빚어진 이유는 아마도 ‘사샤‘를 여자이름 ‘알렉산드라‘의 애칭으로 읽었기 때문. 보통 러시아어 이름은 애칭으로도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데 예외적으로 ‘사샤‘는 남자이름 알렉산드르, 여자이름 알렉산드라, 모두의 애칭으로 쓰인다. 따라서 연보의 내용은 ‘아들 사샤 출생‘으로 정정되어야 한다. 아들이고 딸이고가 중요하지 않다면 그냥 빼면 되는 일이고.

가장 최근의 번역본으로 나온 새움판은 비교적 상세한 연보를 싣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다른 연보에 없는 오류도 포함하고 있다. 푸슈킨의 결투와 관련된 대목이다. 아내 나탈리야와 염문이 떠돌던 프랑스군 장교 출신의 단테스(불어로는 ‘당테스‘)에게 1836년 가을 푸슈킨이 첫 결투 신청을 했다가 주변의 중재로 무마된 일이 있다. ˝단테스와 나탈리야의 여동생 예카테리나와 약혼이 발표되어 결투 신청을 보류˝라고 연보에 적혀 있는데 예카테리나는 나탈리야의 여동생이 아니라 언니다.

나탈리야는 곤차로프 가의 막내딸이었고 위로 두 언니가 있었다. 큰언니 예카테리나는 세 살 위였으니(둘째 언니 알렉산드라가 한 살 위였다) 나탈리야와 동갑이었던 단테스에게는 연상녀였다. 두 사람은 1837년 1월 10일에 결혼한다. 고로 곤차로프 가의 자매와 결혼한 푸슈킨과 단테스는 동서지간이다.

하지만 푸슈킨으로서는 처형과의 결혼도 궁극적인 해결이 아니었다. 1월 하순에 단테스에게 재차 결투를 신청하며 이번에는 성사된다. 정확하게는 단테스의 양아버지였던 헤케른에게 비난의 편지를 보내며 단테스가 이에 결투신청을 하고 푸슈킨이 받아들인다. 연보에는 ˝26일 푸시킨은 결투로 복부 총상을 입고˝라고 되어 있는데 결투일은 26일이 아니라 27일이다. 푸슈킨은 29일에 사망한다. 구력에 따른 날짜가 그렇고 지금 쓰는 신력으로는 2월 10일이 푸슈킨의 기일이다.

간단히 적는다는 게 길어졌는데 푸슈킨의 두 딸 가운데 문학사에 다시 이름이 등장하는 이는 맏딸 마리야 푸슈키나(1832-1919)다. 1860년 결혼후 풀네임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가르퉁. 마리야가 문학사에 나오는 건 톨스토이(1828-1910)의 <안나 카레니나>(1877)의 모델이라고 알려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1868년에 한 장군댁에서 서로 알게 되는데 톨스토이가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아래가 1860년에 그려진 마리야의 초상화다. 이런 모습의 여성에게서(게다가 푸슈킨의 딸이라는 후광!) 톨스토이가 안나의 외모를 떠올리게 되었다는 것이니 <안나 카레니나>의 독자들은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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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나서야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차리는 중인데 할일을 생각하니 다시 고개를 묻고 싶다. 강의준비도 일이지만 교정볼 원고와 써야 할 원고가 잔뜩이다. 게다가 이런저런 페이퍼를 적는 서재일까지!

PC 앞에 있다가 일단 물러나와서 <나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기로 했다>(원더박스)를 펴든다. 일주일에 이틀이라도 쉬었으면 하는 게 대다수 직장인의 소망이란 걸 겨냥한 제목이겠다.

저자는 1985년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도쿄에서 칩거생활을 시작했다 한다. ‘칩거‘가 키워드로군. 좀더 알기쉽게 풀면 일주일에 이틀만 일해서 버는 연 수입 900만원으로 도쿄에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프리터족이다. 그 노하우를 전수하는 책.

라이프스타일만의 문제는 아니고 인생관과 세계관에 있어서도 결단을 요구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가령 가족을 가질 것이냐는 문제를 포함하여) 이건 미니멀리스트들의 주거실험 이야기, <3평 집도 괜찮아>(즐거운상상)에도 적용된다. 이웃은 있지만 이들 미니멀리스트들은 각자 혼자 산다. 종이박스 2개가 가진 짐의 전부인 삶은 그런 조건에서야 가능할 터이다.

잠시 유유자적 라이프에 대해 몽상해 보았지만 내가 넘볼 수 없는 삶인 것만 확인한다. 몇만 권의 책을 끼고 살면서 미니멀라이프를 꿈꾼다는 것은 난센스다. 하다못해 이젠 미니멀라이프 책들까지도 머리에 이고 있으니. 그런 처지에서 다만 부러워한다. 일주일에 이틀만 강의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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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자갈치시장에서 거나한 저녁식사까지 한 후에 귀경중이다. 이글턴의 <문학 이벤트>를 읽다가 노곤하여 책을 덮고 눈을 붙이려다가 몇자 적는다. 니체 얘기다.

어제 주문해서 아마도 집에 도착해 있을 책의 하나는 박홍규 교수의 <니체는 틀렸다>(푸른들녘)인데, 문득 이전에 나왔던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필맥)과 같은 내용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니체의 초인사상은 반민주주의적이며 위험한 사상이란 게 요지라면 상당 부분 중복일 듯하다. 따로 개정판이란 언급이 없기에 뭔가 달라지거나 추가된 부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게다가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도 아직 절판되지 않은 상태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돈키호테와 루쉰에 관한 책들처럼 개정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니체와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김진석 교수가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개마고원)에서 검토한 바 있다. 제목에서 시사하듯 니체의 반민주주의에 대해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양면적 의미를 짚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문제에 대해선 나대로의 견해를 강의시간에 밝히곤 하는데 박홍규 교수의 니체 비판이 한번 더 제기된 김에 나도 한번 더 따져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잠이 깨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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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산이라는 말은 없으니 부산 동부라고 해야 할 듯싶은데 해운대 지나 기장 쪽에(가다 보니 지난 5월에 가보았던 용궁사도 지나서) 아난티 코브라는 휴양타운이 있고 이터널저니라는 전시형 서점이 있다. 전시형이라고 한 건 전시공간적 성격을 겸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20세기 러시아문학을 소개하는 강연행사차 들렀다.

뉴스는 듣지 못했는데 태풍이 온다고 하여 흐리고 바람이 좀 부는 날씨에 파도도 높아지고 있었다. 자주 보는 건 아니므로 부산 바다도 인증샷으로 남긴다. 이터널저니의 러시아문학 코너도 같이 찍었다. 행사가 끝나고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와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를 들고 오신 분들께 사인.

내달에는 인디고의 청소년들과 만날 예정인데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를 읽은 소감도 듣고 질문도 받는다. 꼽아보니 매년 한 두번씩 강연차 부산에 내려가고 올해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자갈치 시장에도 들러봐야겠다...

PS. 자갈치시장에서 기억에는 30년만에 회를 먹었다(그간에 다른 곳에서 먹거나 다른 걸 먹었기에). 기념으로 찍은 부산항 사진도 추가한다. 자갈치시장 앞바다 야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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