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으로 외식을 하고는 (그 이유만은 아닌데) 다시 장이 불편해서 누워 있다(커피도 원인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고도 손에 펴든 책은 이시게 나오미치의 <일본의 식문화사>(어문학사)와 <음식의 문화를 말하다>(컬처그라퍼).

둘다 지난주에 구입한 책이고,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저자는 일본의 문화인류학자로 특히 음식문화 연구의 권위자다. 그리고 이번에 나란히 나온 이 두 권은 저자와 교분이 있는 요리연구가 한복진 교수가 옮겼다.

<일본의 식문화사>는 제목만 봐도 교과서적인데 실제로 불어판과 영어판도 나와 있다 한다(영어판은 저자의 하락 없이 나왔다가 절판돼 현재는 고가의 희귀본이라고).

˝일본 식문화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기존의 식생활역사서가 역사 시대 구분에 맞춰온 것에 반해 이 책은 식문화의 시점에서 독자적인 식의 역사를 설명한다. 저자가 적용한 식의 시대 구분은 일본열도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구석기시대부터 조몬시대인 선사시대부터 시작된다. 조리도구나 먹거리 갖춰지기 전 인류는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검증된 자료와 함께 설명한다.˝

그렇게 전체적인 식문화사를 다른 것 치고는 분량이 많지 않은 편이다. 일본의 음식문화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기에 나로선 그냥 넘겨볼 뿐. 원저가 그런 것 같지만 이미지 자료가 좀 부족한 게 아쉽다. 불어판을 보면(일식이 거기서도 유행하면서 책이 나왔다 한다) 왠지 화려해보여서.

그러고 보니 음식을 다룬 책은 하나 더 있었다. 카라 니콜레티의 <문학을 홀린 음식들>(뮤진트리). ‘굶주린 독서가가 책 속의 음식을 요리하다‘가 부제다.

˝문학을 사랑하는 푸주한의 매력적이고 짜릿하며 군침이 도는 책과 음식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푸줏간에서 책을 읽던 책벌레 카라 니콜레티는 책과 음식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지를 일찍이 깨달았다. 뉴욕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푸주한이자 요리사이며 작가가 된 그녀는 문학 속의 음식을 포착해서, 음식과 책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그 모든 마법적이고 유혹적인 방법들을 잡아낸다.˝

문학 독자들에게는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음식책이다. 전에 이와 비슷한 (음식)사진책이 있었는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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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이나 ‘이주의 저자‘를 꼽는 일에 손을 놓고 있어서(PC상태가 나빠지면서 없는 여력에다가 의욕마저 고갈돼서다) 서재일이 많이 줄었다(PC는 오늘로써 완전 정상화. 다만 날씨가 차다). 군대로 치면 고참 내무반 생활 같은 것(요즘은 다른가?).

그렇더라도 ‘이주의 발견‘ 정도는 눈에 띄는 대로 적는 편인데, 이번주에는 다카다 리에코의 <문학가라는 병>(이마)이 정말 구미에 딱 맞는 책이다. 내 입맛에만 맞는 것인지 거의 노출이 되지 않았는데 나도 엊그제인가 우연히 발견했다.

책은 손에 든 게 아니고 주문상태라서 내가 적을 수 있는 건 기대평뿐. 처음 소개되는 저자는 일본의 여성 독문학자. 책의 부제는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엘리트들의 체제 순응과 남성 동맹‘이다. 부제만 보더라도 대략 여성주의적 시각의 연구자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전시 체제 아래 일본 문학 엘리트들의 전쟁 협력 문제나 근대화 이후 외국 문학(특히 독일 문학) 수용이 일본의 제국주의화에 미친 영향에 그치지 않고, 그 주역인 남성 엘리트 문화인들과 그들의 활동 배경인 대학(주로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매체, 관변단체 등에 두루 나타나는 ‘이류’의 정신성과 남성 동맹(homosociality), 여성 혐오(misogyny) 등을 분석한다.

세속의 기준으로는 일류 엘리트 지식인이지만 입신출세의 길과 무관한 ‘문학’을 택했고, 제도(학교 등. 이 책에서는 ‘문학부’로 상징된다)에 편입되지 못함/않음으로써 ‘문학’의 편에 서서 열심히 일한다는 자기 특권화가 어떻게 ‘이류’ 문학인을 탄생시켰는지, 또 순수한 문학청년을 표방하던 그들이 왜 전시 체제에 영합하는 모순을 낳았는지를 파헤친다.˝

일본근대문학에 수용된 독일문학(특히 헤세와 카프카)에 대해 다룬다는 점이 더욱 흥미를 끄는데 나쓰메 소세키를 비롯한 도쿄제대 문학부 출신들에 대한 비판도 관심거리다. 나로선 책값이 두 배더라도 구해볼 수밖에 없는 책이다. 이런 경우가 아니면 ‘발견‘이란 말을 언제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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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한주를 보낸 터라 어제오늘은 요양 모드로 지내고 있는데(지금도 점심을 먹자마자 일단 이불을 뒤집어 썼다) 그런다고 당면한 일정들이 자가삭제되는 건 아니어서 곧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래도 아직은 이불속이니 허황된 생각도 해본다. 이리저리 서핑하다 본 얀 마텔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작가정신)을 읽어볼까 하는 것. 현재로선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실제로 가보는 것 만큼이나 불가능하지만 상상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니.

<파이 이야기>도 그렇지만 대체 제목만 보면 어떤 이야기인지 가늠할 수 없다. 작가도 마찬가지인데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작가를 이름만 보고 캐나다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면 포르투갈이 배경이긴 한 건가? 캐나다 작가라고 하지만 얀 마텔은 ‘캐나다문학‘ 작가인가? 실상 그런 범주는 별 의미가 없는 듯하니 무국적 문학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주로 근대 국민문학에 속하는 작가와 작품 들을 읽고 강의에서 다루다 보니 무국적(성) 문학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예외적인 경우가 남미문학. 국가보다는 언어와 지역이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이기에. 콜럼비아나 페루 같은 국적은 마르케스나 요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얀 마텔과 캐나다의 관계도 그러하지 않을까. 내게 얀 마텔 읽기는 적당한 분류 범주를 찾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당장은 ‘남의 산‘일 뿐이고 나는 그저 이불속에서 표지의 봉우리만 바라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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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플레밍이 그리고 쓴 <여자라는 문제>(책세상)를 단숨에 읽었다. 단숨에 읽을 만한 분량의 만화여서이기도 하고 그만큼 재미있기도(?) 해서다. ‘교양 있는 남자들의 우아한 여성 혐오의 역사‘를 재미있다고 하는 건 어폐가 있지만, 여성주의 만화상의 유머 부문 수상작이라는 걸 고려하면 이상하진 않다. 우아한(지식이나 논리로 정당화하려 했다는 점에서) 여성 혐오의 역사를 저자는 ‘고급진‘ 유머로 고발하고 비판한다. 여학생의 필독서가 될 만하다.

‘여성학이론‘ 분야의 책들도 책상에 쌓이고 있는데 좀 두께가 있는 편이어서 단숨히 읽기는 어려운 종류다. 사라 아메드의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동녘)는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저자의 인생 이야기다. 이름에서 어림할 수 있는데 파키스탄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유색인이자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이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추가된다. 대학에 재직했었지만 현재는 독립학자이자 활동가로 살아가는 중이라고.

˝여성학에서 이미 그 권위를 인정받은 사라 아메드의 이 책은, 오랜 세월 페미니스트로 살아온 저자가 어떻게 처음 페미니스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그 길목에서 어떤 섬광 같은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어떤 외로움과 소외와 굴곡을 만나게 되었는지 등 소소하게 자신의 일상과 함께 풀어낸다. 또한 여성들에게 페미니스트로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유용한 팁을 알려준다.˝

그리고 제일 두꺼운 책으로 사라 팔루디의 <백래시>(아르테). 원저는 1991년에 나온 페미니즘의 문제작이라 한다. ‘백래시‘가 반격이란 뜻이어서 페미니즘의 반격을 뜻하는 줄 알았지만 거꾸로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 내지 반격을 저자는 ‘백래시‘로 지칭하며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팔루디는 이 책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을 저지하려는 반동의 메커니즘에 ‘백래시(backlash, 반격)’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정치, 사회, 문화적 역풍을 해석하고 그에 맞서려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분석의 도구를 제공했다. 사회 변화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자신의 중요도나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불특정 다수가 강한 정서적 반응과 함께 변화에 반발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이 사회학 용어는, <백래시> 출간 이후 페미니스트 사전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를 잡는다.˝

아마도 백래시는 따로 한국판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미국과의 문화적 시(간)차를 생각하면 최근의 상황과 유사한 면을 많이 발견할 수 있겠다. 타신지석에 해당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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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서 침대에 기어들면서 들고 온 책은 <맥스 테크마크의 라이프 3.0>(동아시아)이다. 이미 출간되자 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화제작으로 알라딘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니 뒷북성 페이퍼다. 그렇지만 모든 책은 읽는 순간에 존재하기 시작하므로 내게는 버젓하게 ‘이주의 과학서‘다.

저자인 맥스 테크마크는 국내에 <맥스 테크마크의 유니버스>(동아시아)로 처음 소개된 물리학자다. 그렇지만 생명의 미래 연구소를 공동설립하여 현재는 인공지능과 생명의 미래에 관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으며 <라이프 3.0>은 그의 문제의식과 함께 인공지능 시대 첨단의 쟁점이 무엇인지 소개하는 책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평했다.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은 인공지능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을 바로잡고 기본적인 용어와 핵심 논쟁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SF 작품을 본 많은 사람이 악당 로봇을 두려워하게 됐지만 저자 맥스 테그마크는 매우 능력이 있는 AI가 개발될 경우 닥칠 예상치 못한 결과가 정말 문제라고 강조한다. AI가 꼭 악하고 로봇에 장착되어야만 엄청난 파괴력을 휘두르는 것은 아니다. 테그마크는 “범용인공지능의 진정한 위험은 악의가 아니라 능력”이라며 “초지능 AI는 자신의 목표를 아주 능숙하게 성취할 수 있을 텐데, 그의 목표가 우리 목표와 정렬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곤경에 빠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요컨대 범용인공지능 시대의 도래 가능성과 그 위험을 경고하는 책으로도 읽힌다. 그 가능성이 증가할수록 그 위험에 대한 대비도 현실적이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내가 책을 손에 든 이유다. 국내서로는 몇달 전에 나온 김재인의 <인공지능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보여준 위력 때문에 비로소 주목하게 된 사실이지만 바야흐로 우리는 ‘라이프 3.0‘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PS. 맥스 테그마크의 구분으로 라이프1.0(생물적 단계)은 생존과 복제가 가능한 단계(하지만 자체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바꾸지는 못한다), 라이프2.0(문화적 단계)은 소프트웨어의 설계가 가능한 단계를 말한다. 하드웨어는 진화의 산물이다. 그리고 라이프3.0(기술적 단계)은 자신의 하드웨어까지 설계가 가능한 단계다.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현재의 인류문명은 그 문턱까지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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