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의 강의 일정도 이제 하루를 남겨놓았다. 숨 가쁜 일정에 치이다 보니(자청한 것이긴 하다) 제때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하고 놓치는 수가 많다. 최대한 구입은 해두려고 하는데 언제나 여력이 닿는 건 아니다(재정보다 더 큰 문제는 공간이다. 책을 갖고 있어도 제때 찾을 수 없으니). 그럼에도 마음은 늙지 않아서 욕심이 줄지 않는다. 그런 욕심 탓에 뒤늦게 주문한 책은 윌리엄 해리스의 <분노의 문화사>(인텔렉투스)다.

‘뒤늦게‘라고 적은 건 책이 나온 지 몇주 지났기 때문이다. 제목은 당연히 보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클릭해보지 않았던 것. 하지만, 엊그제 보니 ‘숨은 보석‘ 같은 책이다. 모르고 지나쳤다면 분노를 살 뻔한. 부제는 ‘고전고대의 분노 통제 이데올로기‘이고 저자는 컬럼비아대학의 역사학 교수다. 고전고대, 즉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가 주 전공분야다.

˝분노란 무엇인가에 대한 용어 정의부터 시작해 호메로스 서사시에 등장하는 아킬레스의 분노, 분노의 옹호자 아리스토텔레스, 분노의 통제를 미덕으로 삼았던 로마황제들, 여성과 노예를 상대로 한 분노 등 아르카익 시대와 고전고대를 넘나들며 분노에 대한 담론을 펼쳐나간다. 저자는 고대의 심리치료 방법과 더불어 현대심리학이 고전고대의 담론을 토대로 삼아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분노‘는 의당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이야기가있는집)와 비교해서 읽어봄 직하다. 그러고 보니 분노라는 주제를 다룬 ‘올해의 책‘ 두 권이로군.

사실 분노는 올해를 대표할 만한 정서는 아니다(그 점은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그럼에도 책이 나오니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은 불가피하다. 주제서평이라도 써볼 만한데 실현하기는 어렵다. 흠, 어렵다고 적으니 유감이로군. 게다가 원저의 책값도 신경이 거슬리게 한다. 이런 유감도 계속 쌓이면 분노로 치달을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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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인도네시아 작가 에카 쿠르니아완의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오월의봄)를 고른다. 일단 인도네시아 작가의 장편소설이 번역된 사실 자체가 주목거리인데, 세계적인 화제작이라고 하니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2015년에 영어판이 나오자 대번에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살만 루슈디와 비교되었다 한다.

˝<상상의 공동체>로 유명한 베네딕트 앤더슨은 그의 소설을 읽고 “순연하게 아름답고 우아한 언어와 충만한 상상력에서 첫눈 내리는 겨울 하늘을 바라볼 때와 같은 설렘”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르몽드>는 “에카 쿠르니아완이 인도네시아 최초로 노벨상을 받을지 누가 알겠는가?”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는 <가디언> 선정 ‘2015 최고의 소설’, <뉴욕타임스> 선정 ‘2015 주목할 만한 책’,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2015 최고의 책’으로 꼽히기도 했다.˝

소개를 보니 인도네시아 현대사를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으로 그린 소설이다.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나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을 곧장 떠올리게 해주는 작품. 에카 쿠르니아완은 1975년생으로 2000년에 첫 단편집 <화장실 벽의 낙서>로 데뷔하고 이어서 첫 장편소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2002)를 발표했다.

˝두 작품으로 그는 일약 인도네시아 문단의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와 <호랑이 남자>가 영어로 번역되었다. 마침 그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은 인도네시아였고 전 세계 출판 관계자들은 뒤늦게야 두 작품의 거침없는 상상력과 독창성에 놀라게 된다. 2016년 두 번째 장편 <호랑이 남자>가 인도네시아 작가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다시 한 번 전 세계 출판계를 놀라게 한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호랑이 남자> 두 작품의 판권이 30여 개국 이상에 팔려나갔고 순식간에 에카 쿠르니아완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일단 읽어봐야 알겠지만 상당한 ‘물건‘으로 보인다. 심지어 인도네시아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에카 쿠르니아완일 거라고 하니까 이 작가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호랑이 남자>도 번역되면 좋겠다). 안 그래도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지역의 문학을 모아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는 일찍 강의에서 다루게 될지 모르겠다(대략 2019년 정도로 가늠하고 있다). 일단 에카 쿠르니아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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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학자 마이클 토마셀로는 내게 이주의 저자 가운데 한 명이다.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이음)이란 책으로 처음 접했지만(‘인간은 왜 협력하는가‘가 원제이자 번역본의 부제)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나온 <생각의 기원>(이데아) 덕분에 관심을 갖게 돼 재작년에 나온 <인간의 의사소통 기원>(영남대출판부)까지 구했다. 알고 보니 <인간 인지의 기원>의 후속작(이건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생각의 기원> 등의 책에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내가 그렇다). ‘영장류학자가 밝히는 생각의 탄생과 진화‘가 부제. 핵심은 어떻게 사피엔스만이 다른 호모속 영장류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는가에 대한 해명이다. 이에 대한 토마셀로의 주장이 아주 강력하다는 게 장대익 교수의 극찬이다.

˝유인원 중에서 어떻게 사피엔스만이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이 위대한 질문에 답할 단 한명의 과학자라면 그는 단연코 마이클 토마셀로이어야 한다. 토마셀로만큼 인간과 다른 유인원 종들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깊이 들여다본 지구인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집단 지향성’이 그 간극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왜 이토록 독특한 영장류로 진화했는가에 대한 해설서 정도가 아니다. 노벨상급 연구의 요약본이다.˝

저자는 인지발달과 언어습득에 관해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하고 국내에는 <인간의 의사소통 기원> 외에 <언어의 구축>(한국문화사)이 번역돼 있다. 일단은 <생각의 기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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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기 위해 이동중인데 손에 책을 들고 있지 않아서(우산을 들었다) 내주에 주문할 책이나 북플에 적기로 한다. 먼저, 인류학자 팻 시프먼의 <침입종 인간>(푸른숲).

˝‘왜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고 현생인류는 살아남았는가’는 인류 진화의 오랜 미스터리다. 동물고고학과 화석생성학의 세계적 대가로 우수한 과학 도서를 여럿 펴낸 고인류학자 팻 시프먼은 이 책에서 고인류학, 생물학, 유전학, 동물행동학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을 근거로 인류 진화의 미스터리를 촘촘한 논리로 풀어나간다. 인류학자들이 발굴한 오래된 뼈와 유물이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방사성동위원소, 탄소연대측정법 등 최신 과학을 만나 인간의 본성과 행동의 원리를 밝혀낸다.˝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을 펴낸 바 있는 이 분야의 권위자라 한다(저자의 다른 책도 소개됨 직하다). 이 책에 대해서도 기대를 갖는 이유.

국내서로는 정연보의 <초유기체 인간>(김영사)도 관심도서다.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되었나‘란 부제 말고는 정보가 뜨지 않아 목차만 보고 내용을 가늠할 따름인데 대략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여파‘로 읽힌다. 장대익의 <울트라소셜>(휴머니스트)과 비교해서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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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 관련서로도 다시 나옴직한 책은 데보라 펠더의 <여성의 삶을 바꾼 책 50>(부글북스, 2007)이다. 출간된 지 10년이 되었고 현재 절판된 상태라 나는 중고본으로 다시 구했다(소장하고 있는 책이지만 찾는 일이 또 일인지라). 50권의 목록도 그렇고 이 주제의 강의를 하는 데 요긴한 책이어서다.

 

 

전체 50권의 책이 5개의 장에 나뉘어 소개되는데, 내게 특별히 유익한 건 '19세기 중엽부터 1920년대까지'를 다룬 제4장이다. 14권 가운데 콜레트의 <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번역돼 있으니 '여성의 삶을 바꾼 책 13'이라고 좁혀서 말해도 되겠다(조지 엘리엇의 <미들 마치>가 절판된 상태에서 다시 안 나오고 있는 건 유감이다). 따져보니 이 가운데 9권은 강의에서 다룬 바 있다. 대략 70%는 강의한 셈. 토머스 하디의 <테스>나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는 <마들마치>가 다시 나온다면 19세기 영문학으로 묶어서 한번 다뤄보고 싶다.

 

거기에 더하여 욕심이 나는 책은 이디스 워튼의 <환희의 집>(1905)이다. 저자에 따르면,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미국 여성작가가 쓴 최초의 위대한 소설"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워튼의 대표작은 퓰리처상 수상작인 <순수의 시대>(1920)이고 올해 강의 목록에 포함시킨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인지도나 대표성을 고려하여 <환희의 집> 대신에 <순수의 시대>를 고른 셈인데, '여성의 삶을 바꾼 책'으로 <환희의 집>이 선정된 걸 보면, 언젠가 다루면 좋겠다 싶다.

 

 

 

 

<환희의 집>이라고 제목을 적었지만 국내 번역본은 <기쁨의 집>(펭귄클래식)과 <환락의 집>(현대문화센터), 두 종이 나와 있다. 제목의 성경의 전도서 7장 4절에서 따온 말이라고 하는데("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환락의 집에 있느니라"), 구성경 번역으로는 '혼인집'(혹은 '잔칫집')이라고 돼 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어떻게 옮기는지 모르겠지만, 전공자들의 논문에서는 제목이 제각각으로 표기돼 있어서 좀 불편하다. 이런 작품의 제목 정도는 통일시켜주면 좋겠다.

 

 

 

여유만 있다면, 두 번역본을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지만(원서도 구입해놓은 터여서) 당장은 <전쟁과 평화>와 <미성년>, 그리고 피츠제럴드의 <아가씨와 철학자>를 읽어야 한다. 내주에 강의할 책들이다. 이디스 워튼의 경우에는 자서전도 구입했는데, 이 역시도 번역본이 나오면 읽기 편하겠다. 20세기 초 미국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 작가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라도 그 정도는 소개될 만하다...

 

17.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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