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의 미타카 시는 현재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미술관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한편으로 다자이 오사무와도 깊은 연고를 가진 곳이다. 본래 아오모리 현의 쓰가루(기타쓰가루 군 가나기 마을)가 고향이고 그곳에 다자이 오사무 문학관(사양관)이 있는 걸로 알지만 1939년 결혼한 이후 정착해서 살던 미타카 시에도 다자이 기념관이 있다. 그가 자주 다니던 술집 건물의 1층으로 ‘다자이 오사무 문학살롱‘이라고 불리는 조촐한 장소다.

오전에 그곳을 찾았을 때 나이 지긋한 자원봉사자가 기념관의 내력과 미타카 시절의 다자이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태평양전쟁 말에 폭격을 피해 떠나 있던 시절을 제외하면 다자이는 만년의 시간 대부분을 미타카에서 보냈다. 그의 창작활동 중기를 연구자들은 ‘미타카 시대‘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그가 남긴 전체 150여 편의 작품 가운데 2/3 가량에 해당하는 90여 편이 미타카의 작업실에 쓰였다고 하니까 다자이 문학의 가장 중요한 창작공간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런 연고를 고려하면 현재의 문학살롱은 규모가 너무 소략하다는 인상을 준다. 새 기념관이 건설될 예정이라고 하니까 몇년 후에는 사정이 좋아질지도. 다자이 문학살롱과 관련한 사진을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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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소세키 산방에 들렀다가 방문한 곳이 조시가야 묘지의 소세키의 묘소였고 오늘도 미타카 시의 다자이 문학살롱을 찾은 다음에 들른 곳이 다자이 오사무의 묘소다. 일본작가의 묘소를 한국의 독자들이 찾아가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조시가야 묘지는 소세키의 <마음>에서 친구의 무덤을 찾아 ‘선생님‘이 매달 찾는 곳이어서 이번 문학기행 일정에 포함시켰고 다자이의 묘소는 옵션이었다.

묘지로 향하기 전에 다자이가 1948년 6월에 투신한 다마 강(다마가와조스이)가를 1킬로미터 가량 산책할 수 있어서 좋았다(날씨가 약간 차긴 했지만 산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마강은 일본의 강들이 대개 그렇듯이 우리식으로는 ‘천‘에 가까웠다. 다자이는 6월 13일밤에 야마자키 도미에라는 여성과 투신하였고 시신은 일주일이 지난 19일에서야 발견되어 21일에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향년 39세의 나이였다.

아래는 1948년 시신 발견 당시의 사진과 오늘 산책길에 찍은 다마강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의 무덤. 오늘 알게 된 사실인데 그의 묘소 바로 맞은 편에 소세키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모리 오가이(1862-1922)의 묘소도 위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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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관련 일정은 두 가지가 더 있었다. 소세키 기념관을 출발해 소세키의 묘가 있는 조시가야 묘지에 들렀다가 점심을 먹고 도쿄대 안에 있는 산시로 연못을 찾았지만, 여기서는 산시로 연못을 먼저 언급한다. 연못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산시로>(1908)가 조시가야 묘지가 나오는 <마음>(1914)보다 먼저 발표되었기에. 소세키 자신이 조시가야 묘지에 안장되는 것은 1916년의 일이다.

<산시로>의 초반부에서 도쿄대 신입생인 시골뜨기 산시로는 동향의 선배 노노미야의 지하 연구실을 방문하고 나오는 길에 연못가로 가서 쭈그리고 앉는다. 잠시 생각에 잠겨 연못을 응시하던 산시로는 문득 눈을 들어 언덕 쪽의 두 여자를 보게 되는데 흰옷을 입은 여자와 부채를 든 여자다. ˝부채를 든 여자는 조금 앞으로 나와 있다. 흰옷을 입은 여자는 둑 끝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다. 산시로의 눈에는 두 사람이 비스듬히 마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여자가 언덕을 내려와 대화를 나누며 산시로의 앞을 지나간다. 산시로는 뭔가 움찔함을 느낀다. ˝두 여자가 산시로 앞을 지나갔다. 젊은 여자는 지금까지 향기를 맡고 있던 하얀 꽃을 산시로 앞에 떨어뜨리고 갔다. 산시로는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멍해진 산시로는 그저 ‘모순이다‘라고 중얼거리는데 대체 무엇이 모순인지는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고 소세키는 적는다. ˝시골 출신 청년에게는 이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왠지 모순된 것만 같았다.˝

하얀 꽃을 떨어뜨리고 간 여자가 여주인공인 미네코다. 미네코는 신여성이면서 근대성의 미스터리를 상징한다. 어수룩한 청년(일본의 근대) 산시로는 미네코의 수수께끼 같은 매력에 이끌리지만 그게 어떤 감정인지 스스로도 감을 잡지 못하는 위인이다. 산시로는 작품 서두에서 일찌감치 ‘배짱이 없는 남자‘로 낙인이 찍힌 바 있다. 그런 처지에 미네코를 상대한다는 건 역부족이다. 결과적으로 산시로와 미네코의 연애는 연애도 아닌 연애 정도에서 일단락되고 미네코는 산시로도 노노미야도 아닌 제3의 남자와 결혼한다. 산시로는 ‘스트레이 십‘(길 잃은 양)을 되풀이해 중얼거렸다는 게 결미.

‘연애실패소설‘이라고 부를 만한 이 소설에서 소세키는 일본 근대의 상황과 문제, 그리고 그 전망에 관한 개요를 작성한다. 아니, 내게는 그렇게 읽힌다. 소세키는 근대로의 이행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의 근대화가 서구의 근대화와 견줄 만한 것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결코 기대하지 않았다.

<산시로>의 초반부에서 러일전쟁 이후 일본도 날로 발전해나가지 않겠느냐고 산시로가 말하자 낯선 사내(나중에 히로타 선생으로 밝혀진다)는 ˝망하겠지˝라고 대꾸한다. 일본 근대에 대한 두 가지 전망이지만 소세키의 판단은 좀더 비관적인 쪽에 기우는 것으로 보인다. 어수룩한 산시로보다는 식견 높은 히로타 선생의 견해가 소세키의 생각을 대변하는 걸로 보아야겠기에.

아무튼 <산시로>의 의의는 그렇다고 해두자. 요는 그 산시로 연못에 가보았다는 것. 일본도 수십년 만의 한파라는 걸(고작 영하 4도였으니 우리로선 믿기지 않지만) 웅변하듯이 연못에는 살얼음이 깔려 있었다. 겨울평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도쿄인지라 얼음이 깔린 산시로 연못을 보는 건 아주 드문 일일 듯싶었다. 소세키 소설의 배경이 아니라면 특별히 찾을 일도 없었을 연못이지만 오늘은 얼음까지 깔린 모습이 더욱 인상 깊었다. 내가 기억할 산시로 연못은 다시 찾기 전까지는 오늘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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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의 핵심 일정은 소세키 기념관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막연하게 소세키문학관이 있겠거니 했는데 공식명칭으로 ‘신주쿠 구립 소세키 산방 기념관‘이 개관한 것은 불과 지난해 9월의 일이다. 이제 넉달밖에 되지 않으니 한국인 단체 관람객도 우리가 처음이지 않을까 싶었다(정말 내장재 냄새도 다 가시지 않은 새건물이다).

기념관이 세워진 곳은 소세키가 만년의 9년을 살면서 <갱부> 이후 <명암>까지 만년의 모든 작품을 집필한 집이다. ‘산방‘은 ‘서재‘를 가리키며, 소세키 가족의 집이자 소세키의 집필실이 위치한 집이다. 당초 1945년 5월의 공습으로 전소되었지만 고증을 통해 복원되었다. 그의 장서는 사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져 보관되었다고 한다.

오사카에 있는 시바 료타로 기념관에 견줄 만큼 공들이 기념관이 늦게라도(지난해가 소세키 탄생 150주년이었다) 세워진 건 다행스러운 일이고 덕분에 이번 일본문학기행도 뭔가 내실을 기할 수 있게 되었다. 소세키 기념관 앞에 세워진 동상과 함께 건물 전경 사진을 옮겨놓는다. 기념관 내부는 촬영이 금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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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라면 나리타공항에 있어야 하지만 일본항공의 비행기 연착으로 이제야 탑승. 이륙을 기다리고 있다. 2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면 3시 반은 되어야 오늘의 일정에 들어가게 될 듯하다. 지금은 오후 1시.

내일은 나쓰메 소세키와 관련한 일정 위주여서 가방에 넣어온 책은 일본이 자랑하는 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나쓰메 소세키론>. <산시로>를 다룬 장을 이전에 읽었는데 이번 여행중에 탐독해보려 한다. 이제 비행모드로.

(...)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건 오후 3시 10분쯤. 인천에서 나리타까지는 2시간 남짓 소요된다. 입국수속이 번거롭지 않아서(내가 경험한 최악은 러시아였다) 곧바로 짐을 찾아서는 미리 도착해 있던 일행과 합류한 다음 도쿄로 이동했다.

당초 진보초 고서점가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지체된 탓에 내일로 미루고 도쿄의 야경을 본 뒤에 저녁식사를 했다. 그러고는 오오에도 온천에서 시간을 보내고(일본식 찜질방이라고 해야겠다. 찜질과는 무관하지만) 호텔에 안착.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한 시점에서야, ‘이제 또 시작이구나‘란 느낌이 든다. 네번째 문학기행(한겨레교육센터와는 세번째).

도쿄는 지난여름에 갔던 교토와는 확연히 다른 인상이다. 말 그대로 거대한 국제도시. 바다를 낀 도시의 야경은 얼핏 뉴욕이나 샌프랜시스코를 떠올리게 한다. 레인보우 브리지와 자유의 여신상 복사판 때문인듯. 이 또한 도쿄의 천 가지 얼굴 가운데 하나이리라.

내일의 일정을 위해서는 ‘하스미 상‘의 책과 함께 소세키의 <산시로>와 <마음>도 다시 좀 보다가 잠들어야겠다. 시차가 없다보니 좀 맨숭맨숭하군. 하기야 환승을 포함해 13시간 넘게 비행해야 했던 러시아문학기행이나 카프카문학기행에 비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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