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광화문 교보에 들렀다가 제목만 보고 ‘아하‘ 싶은 책이 두 권 있었다.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갤리온)과 롤프 도벨리의 <불행 피하기 기술>(인플루엔셜)이다. 편집자의 놀라운 제목 작명술을 보여주는 책들이다(짐작에 더 뒤에 나온 <불행 피하기 기술>이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독서시장에서 현재 무엇이 통하는지 간명하게 보여주는 책들이기도 하다.

국내에 생소한 저자들이라 이 책들이 어필한다면 순전히 제목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책의 내용(퀄리티)은 부수적이다. 베스트셀러란 읽기 위해서 구입하는 책이 아니라 소유하기 위해서 구입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마치 부적과 같은 용도다. ‘신경 끄기‘와 ‘불행 피하기‘라고 써 있는 부적. 리커버판 책들이 재구매되는 현상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때 책은 읽을 거리가 아니라 기념품이다. 넘겨짚자면 독서는 갈수록 책의 부수적 용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긴 했지만 ‘부적‘ 치고는 저렴하지 않은가란 생각까지 들자 이런 게 구매심리이구나 싶었다. 베스트셀러에는 신경을 끄자며 걸음을 돌려 나오는데 인문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니 (아직도!)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생각의길)였다. 독자들의 속마음이 다 내비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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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할 책들과 함께 미래학 관련서를 조금 읽다 보니 주말과 휴일이 후딱 지나가버렸다(어느 때이고 안 그랬던가). 주목할 만한 책들이 적잖게 나왔지만 페이퍼로 정리하는 건 기약하기 어럽다. 여유가 생기거나 미친 척할 때나.

문태준의 신작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문학동네)를 슬렁슬렁 읽었다. 제목만 보자면 비호감이지만(‘사모하는 일‘에 끌리지 않는다), ‘문학동네 시인선 101‘에 대한 기대감과 (독서)의무감으로. 좀 당혹스러웠는데, 내가 기억하는 문태준(‘가재미‘의 문태준)과 다르다고 느껴져서다(기대가 너무 컸는지도). 그러고 보니 <가재미> 이후에 무얼 더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내가 시인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겠다. ‘동시 세 편‘도 들어가 있지만 동시풍의 시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고 연시풍의 시도 끌리지 않는다.

한 편만 고르라면 ‘염소야‘를 고르고 싶다. 가장 밀착해 있다는 느낌 때문에(대부분의 경우 시는 구체적일 때 와 닿는다).

염소야, 네가 시름시름 앓을 때 아버지는 따뜻한 재로 너를 덮어주셨지
나는 네 몸을 덮은 재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너의 곁을 지켰지
염소야, 새로 돋은 풀잎들은 이처럼 활달한데
새로 돋은 여린 풀잎들이 봄을 다 덮을 듯한데
염소야, 잊지 않고 해마다 가꾼 풀밭을 너에게 다 줄게!
네가 다시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아버지‘가 결정적인 도움을 준 시로 읽힌다. 시는 시인 혼자 쓰는 게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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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보가 있나 싶어서 주문한 책은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엘리자베스 블랙번이 공저한 <늙지 않는 비밀>(알에이치코리아)이다. ‘노벨의학상이 밝힌 더 젊게 오래 사는 텔로미어 효과‘가 부제(원제가 ‘텔로미어 효과‘다).

˝매일매일 섭취하는 음식과 운동, 수면, 사고 습관 등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텔로미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토대로 설명하며, 더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텔로미어란 말이 생소한 독자라면 다른 관련서도 참고할 수 있는데 사전적 정의로는 세포의 염색체 말단부를 보호하는 핵산 서열로 세포분열시 길이가 짧아지기에 노화의 잣대로 간주된다. 세포분열의 카운터라고 보면되겠다. 우리의 생활습관이 이 텔로미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인 것 같은데, 정확한 건 읽어봐야겠다.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카운터를 정지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늙지 읺는 비밀‘이란 불가능한 것 아닌가. ‘천천히 늙는 비밀‘이라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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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저널리스트이자 작가들의 초상사진가‘라고 소개되는 질 크레멘츠의 <작가의 책상>(위즈덤하우스)을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크레멘츠는 작가 커트 보니것의 아내이기도 하다니까 작가들과는 각별한 인연이겠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책상을 흑백사진으로 농밀하게 담아낸 포토 에세이. 캐서린 앤 포터, E. B. 화이트, 조르주 심농, 파블로 네루다부터 제임스 미치너, 존 치버, 커트 보니것, 수전 손택에 이르기까지 56인의 작가들이 자신만의 내밀한 사적 공간에 크레멘츠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 덕분에 우리는 그녀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아무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곳으로 초대받는다. 

작가들의 영혼과 내면까지 찍어낸 듯한 크레멘츠의 사진뿐만 아니라, 집필을 위한 사소한 습관과 금기 또는 남다른 의식 등 개성적인 작업 방식과 창작 비결을 털어놓은 작가의 진솔한 육성도 생생하게 담겨 있다.˝

원저를 찾으니 1996년에 나왔고 이미 절판된 책이다. 즉 영어판으로 희귀한 책을 한국어판으로는 읽어볼 수 있게 된 셈. 저자의 다른 책으로 <작가의 이미지>(1980)도 있는데 더 오래 전 책이다.

잠시 작가들의 책상을 구경하면서 내 책상을 바라보니 차이가 확연하다. 더블 모니터와 어지럽게 쌓여 있는 책더미 속에서 ‘작가의 일‘이 될 성싶지 않다. 쓰기는커녕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못 되니. 다시 식탁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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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2-2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백이라 뭔가 더 있어보이는?
작가의 집을 찾아가는 수고도 없이 작가의 책상을구경할수 있다니.
선물같은 책이네요.

로쟈 2018-02-24 13:08   좋아요 0 | URL
네 문학독자들에겐 꽤 유혹적입니다.~
 

평창 동계올릭픽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오늘은 여자 컬링 경기의 준결승전이 진행되는 모양인데, 생중계로 본 경기는 몇 안되지만 선전을 기대한다. 올림픽 관련 기사를 많이 보다가 떠올린 책이 독일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스포츠와 문명화>(성균관대출판부)다. 주저인 <문명화과정>을 곧바로 연상케 하는 책인데 원제는 ‘즐거움에 대한 탐구‘다.

˝<문명화 과정>, <궁정 사회> 등으로 잘 알려진 문명사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와 그의 제자였던 에릭 더닝이 공저한 <즐거움에 대한 탐구―문명화 과정에서 스포츠와 레저Quest for Excitement―Sport and Leisure in the Civilizing Process>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구체적 일상에 대한 미시 분석과 사회 변동 및 사회 과정에 대한 거시 분석을 통합해 냈던 엘리아스의 문명 이론이 ‘스포츠의 사회학’으로 확장된, 문명론에 관한 또 한 권의 명저다. 여가와 즐거움이라는 스포츠 탄생의 근본적 차원, 사회 문제로서의 스포츠의 기원, 성취 욕구와 스포츠의 사회적 의미, 스포츠와 폭력, 나아가 축구 훌리거니즘까지 스포츠와 인간 문명과의 관계가 엘리아스의 사회학적 맥락 안에서 재해석 된다.˝

다행히 책은 눈에 보이는 곳에 꽂혀 있다. 귀가하게 되면 올림픽 개최 기념(?)으로 몇 페이지라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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